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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12

과학인을 도구화하는 사회

우리사회는 과학뿐만이 아니라...

과학하는 사람조차도 도구화한다... 사실 과학기술응용분야쪽은 요즘같이 '모든 걸 상품화'하는 세상에선 그래도 나름대로 그 '잠재적 값어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사실 앞날에 대해 '어두운 전망'만을 가질 뿐이다!!!

 

불과 20여년에 걸친 시간 사이에...

우리사회는 완전히 돈에 미쳐버린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옛날 대학다니던 시절엔 여러 학문에 대한 가치 자체를 인정하고 또 그래야 만이 '좋은 세상'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하나의 가치만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돈"... 그래서 삼성의 이건희가 '우리사회 만인의 왕'으로 거듭나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 이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그 존재가치를 당연히 인정받아야 함에도, 우리 사람들조차 '가진 돈'에 따라 '좋고 나쁨'을 평가받는다. 이 '미친 광풍'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세상의 흐름에 가장 먼저 굴복하는 건...

늘 시류를 좇아 '영화'를 쫓는 기득권의 언저리 세력들이다. 심지어 감격적으로 대통령이 된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마저도, 어떤 노력도 제대로 하는 시늉조차도 없이, '너무나 떳떳하고 뻔뻔스럽게' 반민중, 반민초적 작태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런 우리사회가 과학하는 사람들을 그 본래의 존재가치로부터 바라보고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따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임이 틀림없다!!!

 

'나라를 위한다'는 허황된 '이데올로기' 아래...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도구화되고 있다... 어쩌면 이미 도구화 되었다고 봐도 틀린 얘긴 아닐 듯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소통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권력은, 국가권력은 쥔 지배세력들은...

이런 소통마저도 그들 맘대로 제한하려 한다... 소통의 원활함이 가져올 수도 있는 '파괴력'을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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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서리쳐지는 한국현대사"에 또하나의 전환점(?)

우리 한국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회의 모든 것들이 위아래 두쪽으로 갈려 이젠 가운데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듯하다!!!

 

만약 이번 황우석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황우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휩쓸려 갔다면... 그 '역사상황'은 생각하기조차도 싫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다'라는 혼잣말과 함께 '편안한 숨'을 내쉬는 내 모습에... 도대체 무엇에 이리도 짓눌렸는가?

 

"한국사회에서 '상식'과 '합리적 이성'은 아직도 사회전반의 '의식'은 아니다!!!"

 

또한번 정신 차리고 우리네 최근 현대사를 돌아보게 한다!!!

아니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파시즘'과 '파쇼적 체제운영 및 틀', 구석구석 작동하고 있는 '그 아주 나쁜 헤게모니'... 무섭다!!! 해방 뒤 한국전쟁 앞뒤로 있었던 엄청난 학살, 그 작동의 원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 바로 내 몸을 굼실굼실 기어올라 턱턱 숨이 막히게 한다.

 

파쇼의 작동원리는 늘 '폭압적 국가권력의 사용'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이 두 축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갈등을 살펴보면, 우리사회의 발전수준과 단계를 알아챌 수 있다.

 

우선 신흥정치세력인 노무현 정권과 그 세력들조차도...

집권과정에서의 원죄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과 의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황우석 사태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아가 지금도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썩어빠진 보수기득권 세력"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보수기득권세력들은 "이 최첨단 초후기자본주의 시대"에 그들끼리의 결합을 더욱 튼튼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들의 '교모한 이해결합'은 온갖 기득권 세력들의 총집결을 "황우석을 정점"으로 하여 이뤄냈다. 적어도 몇 주전까지 그들에게 "황우석"은 그들의 기득권을 좀더 길게 만들어주고 굳건히 해줄 "왕도"였다!!!

 

이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상식'과 '합리적 이성'을 99.99% 마비시키고 나라를 "파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좀더 실감나게 말한다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과도 같았다... 그런데 우리 민초들이 흘린 '60년 동안의 피'는 절대로 '헛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현정권의 정치절차적 민주성(사실 이것도 매우 위선적이지만 말이다)은 그나마 "블랙홀의 흡인력"을 약간 떨어뜨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주 작았다. 국가권력을 오랫동안 장악해 온 "기득권세력"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뿌리채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이 바뀐다고 몸뚱아리를 만들고 있는 '그 옛것'이 바뀔 리 만무하다. 더구나 새로 들어선 정치세력조차도 그런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깨달을 만한 '의식의 바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황우석을 둘러싸고 우리사회는 온통 미쳐버렸다.

 

여기서 그간 폭압적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머릿속에 들어간...

'이데올로기'는 우리 민초들로 하여금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타날 만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게까지 했다.

 

우리의 옛 임금들이나 정치세력들은...

그래도 그들의 근본을 백성들에서 찾았다.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숱하게 남아있는 역사기록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뚜렷이 본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훨씬 더 높은 '인권'을 확립했다고 자처하는 '현대사회'의 집권세력들은 과연 그런가?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면, 쉽게 "그렇다"라고 답하기 힘들다... 갑자기 "짧은 혼란"에 빠져든다!!!

 

 

너무도 뚜렷한 잘못을 보고서도 그것을 벌할 수 없다면...

과연 그 사회가 그것을 보고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인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앞으로 어떤 과정으로 발전해 갈지... 짐작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리사회의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생각과 의식은 이런 우리네 "전통적인 근본사상"에서 멀어도 한참 멀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앞으로도 이런 근본적인 것을 둘러싼 '싸움'들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임을 알게 해준다!!!"

 

왜?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야 만할까?

정치적인 면에서의 민주화 발전에도 우리사회는 전세계적인 흐름에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대응과 반작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의 근본원인은 다름 아닌 한국사회의 기득권구조에 있다. 우리 민초의 힘이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의 현상적 분리흐름과 이와는 반대로 내적으로는 강력하게 결합된 구조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바탕을 둔 나라운영원리와 체제 및 체계로 인하여 "극단적으로 갈린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과 실제에도...

우리의 머릿속은 지나간 "60년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이번 문제가 "과학" 분야의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또 한번 "엄청난 실망과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쨌든 그런 "파쇼의 미친 흐름"을 막아냈다. 그것도 우리 민초들의 힘으로 말이다. 적절한 지도자도 없이... 물론 꼭 지도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의 열매는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합리적 이성'의 아주 큰 울림(공명)을 겪었고, 만들어냈다.

 

"오로지 이것만이 우리네 역사를 열어줄 것이 틀림없다!!!"

"기득권 세력들이 틀어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들의 '억측'과 '폭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만 하는가?"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이성... 이걸 빨리 되살려 우리 민초들 모두가 '또렷한 정신'을 지녀야 한다!!!"

 

이것들이 어떻게 되살려지는지...

우리는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 똑똑히 보고 있지 않는가? 이제 다음으로 어떻게 이런 열매들을 우리사회안에 남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요구해야 한다. 아니 우리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생각하고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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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세상

언제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었는가 마는...

이번 황우석 사태를 보면서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인가 하는 맘에 잠도 제대로 오질 않는다. 그래도 위안을 삼는 건, "젊은 과학도들이 보여준 건강한 모습"일 뿐이다.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자!!!

황우석이 진짜 줄기세포 복제 및 배양기술을 갖고 있어, 그가 한 말이 "진짜"라면...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웃기지도 않은 소동"을 벌이며 조사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대건 뭐건 모두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로 '조사 및 검증 위원회'를 구성하여, 황우석이더러 직접 줄기세포 만드는 과정을 보여달라고 하면 된다.

 

황우석이가 말하는 온갖 변명들을 다 고려한다고 해도...

나라에서 공인한 "위원회"에서 그냥 조사할 것이 아니라, 다시 보여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첨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검증받도록 하면 된다.

 

"왜 이리 어렵게 일을 하는 것일까?"

 

하긴... 잘못된 일을 파헤쳐 세상에 알렸더니...

그 알린 사람은 처벌하고서 "죄"를 지은 놈들은 모조리 "무죄"라고 면죄부만 던져주었으니... 이 놈의 세상이 과연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웃기는 세상에 사는 걸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조차 제대로 알아챌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만큼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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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우릴 너무 슬프게 한다!!!

[나의 추천 글]

 

황-우-석... 이 사람, 우릴 너무 슬프게 한다!!!

정말 나쁜 사람이다... 이젠 스스로 하는 얘기가 거짓이었다는 것조차도 잊은 것이 틀림없다!!!

 

"아니 줄기세포를 만들 원천기술이 있으면 된다고?"

"2005년 논문 조작이라고 시인하고선 "거짓말" 안했다고 하면, 이게 웬 "자기모순", 헐헐헐 ???"

 

"냉동보관했던 줄기세포 5개 검증해서 아니라고 나오면?"

"누군가 바꿔치기 했다고? 미즈메디에서 왜 바꿔치기를 해?"

"바꿔치기 했다고 치자, 그럼 그것도 모르고 논문을 냈단 말이야? 뭐? 모르는 일이라고?"

 

이 사람 정말 국민을 무슨 "백치"로 아는 모양이다!!!

근데 국민들 가운데는 과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젠 어떤 "뻥"도 먹히지 않는다!!!

 

[ 아래는 어느 과학기술인의 한탄입니다!!! 정말 같은 과학인으로서 눈물나게 만드는 글입니다!!! ]

 

황우석, 당신은 참으로 못난 사람입니다

 

황: 당신은 정말 못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국민" "일반대중" 말고 " 우리 " 가 당신의 paper, 당신이 CNN에 헤드라인으로 나오고, 당신이 Time에 등장하고, 당신이 당당한 그 모습 보여주었을 때 얼마나 함께 기뻐했는데... "우리"가 오죽했으면 이런 시나리오까지 생각하겠습니까? 지난 며칠간 일하며, 실험하며, 당신 추이만 지켜본다고 wife랑 싸웠어요. 결국...오늘 이 좋은 주말 전야에...당신 생각하면서, 당신 lab member들 생각하면서, ... wife는 wife대로 혼자 자기 친구 불러서 저녁 식사(집에서)하고 나는 집에서 나왔어요. 그 낯선 손님에게 웃는 낯으로 대해줄 수 없었습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 생각, 당신 제자들 생각하니까....씨발 밥이 안 맥혀요. 지금 나는 실험실에 왔습니다. 불이 모두 다 꺼지고,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모두 불꺼진 복도를 걸으며...내 실험실...내 desk 위에 앉았습니다.

황 우 석....

당신 정말 못난 사람입니다. 내,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너무 야 속 합 니 다. 우리는, 과학기술인들은... " 피도 눈물도 없이 causality로만 사는 줄 아쇼?" 하지만, 과학이 뭔지, 과학이 뭐고 공학이 뭔지...우리가 과학을 살고 공학을 살고 그것을 좋게 사용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지만...

당신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음글은 황우석의 대사기극을 풍자하여 예술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글입니다!!! ]

 

어느날 아버직께서 수험생 황고러를 부르셨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수능 성적이 나온 날 저녁 아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들아... 이번 수능은 잘 보았니? 몇점이나 나왔니?"

"아버지 성적은 걱정마세요!"

"아들아... 그래서 잘했니? 몇점이나 나왔니?"

"아버지! 제가 누굽니까? 절 못 믿으시는 거예요?"

"아들아... 그래서 몇점 나왔나 한번 보자..."

"아버지, 정말! 저 못믿으시는 거예요? 친구들한테 전에 380 받았다고 다 자랑까지 했는데도요?"

"아들아... 믿긴 믿지만 부모가 성적을 알아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 사실 만점 맞았는데 그만 옆에 넘이 지우개를 떨어뜨려서... 뒤엣놈꺼 보고 쓰다가... 밀려써서.... 한 120점 정도.... 맞은것 같은데 오다가 성적표를 소매치기가 가져가서... .... 그래도 아버지 저 믿으시져? 지난 모의시험에서 전교에서 놀았잖아요! 120이면 어떻고 380이면 어때요? 재수 시켜주면 한번 다시해 볼께요!

"우리 집에 재수는 없다..." OTL

 

 

"황우석, 앞으로 이 이름은 누군가를 저주할 때 쓸 이름이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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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황우석...!!!

진짜 한심한 사람이다!!!

어찌 저리 한심하고 어리석을까? ㅎㅎㅎ... 끝장을 보자는 속셈인데... 이미 다 끝났는데 무슨 끝장!!!

 

이젠 사람들이 이 "대사기극"을 이미 겪어 "학습효과"가 있으니...

 

"황우석 아자씨, 더 뻥칠 생각 하지마쇼!!! 당신 말처럼 있는대로 다 까자고 하면, 정말 당신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정치권력 핵심의 사주를 받아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사람들 이번에 또 황아찌의 말놀음에 놀아나면 정말 구제불능이다!!!"

 

이미 논문 사기치고...

그림이 같은 건 딴 연구원이 한 짓이여... 그럼, 줄기세포 11개 성공해서 5%의 수득율로 "맞춤형 줄기세포"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뭐여...

 

"참, 한심도 허요... 도대체 "황빠"들한테나 먹힐 얘기를 허고 있으니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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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의 결론은?

[나의 추천 글]

 

황우석 사태가 이젠 조용히 그 폭발성을 높여가고 있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검증 제기와 섀튼의 논문 취소 요구 등등... 이미 황우석 교수는 더 이상 외국유명학술잡지에 논문 내는 일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사진, 유전자지문 등을 조작하는 짓은 "그래픽 작가"들이나 할 짓이기 때문이다!!!

 

황교수의 버티기, 폭발성만 최대로 키울 뿐...

 

지난 주말을 고비로 해서...

이번 주초를 지나며 사태는 급격한 반전을 겪으며 '조용히'(왜 이리 조용한지는 뒤에 밝히겠다) 그 폭발성을 더해만 간다. '조용'하다면 폭발성이 줄어들면서 사태가 수습되는 국면으로 가야 하는데... 정작 실제 사태의 진행은 그렇지 못하고 더욱 폭발성을 키워가고만 있다.

 

급기야 오늘은 미즈메디 병원의 천신혜씨의 논문이...

황교수 논문에 나온 사진과 같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저자는 논문 취소 요청하여 취소했다는 해명과 함께 김선종 연구원이 작업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실수로 잘못 들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는데... 이 사람들 아주 '구제불능의 베끼기 습성'을 가지고 있네요!!!

 

"도대체 어느 쪽에서 베낀 것인지 알 길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 할꼬!!!"

 

황우석 교수는 우리나라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렇게 자신감을 보여도 되는 걸까? 용수철을 있는 힘껏 누르면 손에 느껴지는 압박도 점점 커지고... 그걸 놓는 순간 용수철은 그 압박만큼 튀어오르게 되어 있다. 그는 이 정말 '단순한 자연의 섭리'를 모르는 걸까?

 

"발표한대로 줄기세포가 하나라도 있다면 용서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도 없다면, 이는 정말 '희대의 용서받지 못할 사기극'이 된다!!!"

 

왜 이런 엄청난 짓을 했을까?

 

황교수의 속을 알 길은 없다!!!

다만 생명공학자들의 얘기들과 일부 그래도 바른 소릴 하는 사람들의 얘길 들어보면 알 듯하다.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난자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이미 국제적으로 "금지" 방향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따라서 국제적 분업에 바탕을 둔 "국익 도모"... 이런 큰 명분 아래 황교수를 비롯한 국가권력 및 이를 둘러싼 기득권 세력들의 욕심이 용케도 맞물린 결과임이 틀림없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사회병리현상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의 역사에 그 뿌리가 있을 듯하다. 아직도 "불의"의 세력들은 "만수산 드렁칡"이 되어 너무나 튼튼하게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놓고 떵떵거리고 있으니... 잘못이 명명백백한 "이건희", "홍석현" 등등의 중범죄자들이 너무나 황당하게도 "죄가 없다"고 '섞어빠진' 검찰의 선고를 받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황교수는 이런 자들의 상징으로 이들에게 인식되었음이 틀림없다!!!"

 

한심한 노무현 정권 역시...

황교수 사태에 대해 그 "불의"의 세력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들과 힘을 합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이젠 그들은 모두 같은 패거리임이 뚜렷이 밝혀진 셈이다.

 

국면이 반전되면서...

조선일보는 그 특유의 생존감각으로 갑자기를 태도를 바꾸고 있다. 날을 거듭하며 그 논조는 수위를 높여 확실한 증거가 공식적으로 터져나오기라도 하면, 당장 황우석 교수를 거꾸로 까댈 기세이다!!!

 

"잘못된 세상"에선 책임있는 자들은 모두 침묵한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니...

당연히 그들, 책임있는 '높은' 사람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다. 혹여 무슨 말 실수라도, 아니 책이라도 잡히는 날엔 괜히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나름의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겐 아주 치명적일 수 있으니... 당연히 조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엠비씨마저도 저렇게 숨죽이고 있고... 오로지 "민초"들만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설왕설레할 뿐이다!!!

 

"불의의 세상"에서 민초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정말 이렇게 고단한 것일까? 이젠 중간은 없어지나 보다... 사실 대학원엘 갈 정도면 이는 사회의 윗쪽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잘 '순화'(?)시킨다면, 아니 "불의"에 고분고분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출세"는 보장된 것이므로...

 

세상을 제대로 바로 세울 힘은 우리 민초들에게만 있다!!!

 

황교수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우리 과학기술계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토/일까지 나와 일해야 마치 훌륭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거나 정말 "국익"에 버금가는 "연구"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시킬 수 있다거나... 이거 어디서 많이 보고 듣던 논리와 모습 아닌가? 그렇다... 2차대전 때 "일본"과 "독일"에서 아주 신물 나게 본 모습이 아니던가?

 

"그럼... 우리나라는 지금 뭐여? 완전 '파시즘'에 빠진 나라네!!!"

 

이번 황우석 사태를 그나마 바로 잡아갈 실마리를 우리 젊은 과학도들이 찾지 않았나?

권력은 뭐라고 외치건 그 달콤함에 함정이 있다. 우리 민초들의 이름을, 그 어떤 기득권자들이라도 앞으론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우리 민초들을 위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우리나라에선 곧바로 "희극"이 되어 버린다. 결국 기득권자들이 늘 정의와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끔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우리 민초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비겁한 기득권자들을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황교수는 지금이라도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렇게 옥죄여 가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이 그에게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도 같은데... 이미 그는 외국에서조차 제대로 연구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라도 그간의 연구성과물을 인정받아 "백의종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가 일으킨 이 '웃지못할 사태'에 대해 최선의 노력으로 수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줄기세포 하나라도 제발 봤으면 한다!!!

황우석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유전자 검증으로 의혹을 말끔히 씻어주길 바라지만... 지금까지의 자료와 증거들은 "줄기세포 하나"에 대한 미련마저도 산산히 박살낼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를 '영구미제'로 남겨놓으려 하겠지만 말이다!!!"

 

<<< 끝으로 황우석 사태 관련자료들을 모아놓은 사이트가 있어 연결해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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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젊은 과학도들... 자랑스럽다!!!

[나의 추천 글]

 

온 나라 사람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한 마디씩 했다!!!

아니 두 마디 세 마디... 하도 해대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신탁통치를 둘러싼 미국과 당시 우리나라 극우세력들의 여론조작"을 떠올렸다. 아직도 우리네 역사는 되풀이되고, 우리의 의식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절망감'에 우울하게 바라 보아왔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외국에서도 그러더니, 서울대에서도 검증 얘기가 나오고... 결국 그 뒤를 알아보니, 소장파 교수들과 젊은 과학도들의 식지 않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주] "진리에 대한 열정"에 클릭된 곳은 "브릭"이라고 하는 과학기술재단 지정 "생물학연구정보센터"입니다!!! 이 곳에 "아릉"님이라고 하는 분이 줄곧 논의해 오던 자료를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전문가의 앎이 필요한 자료입니다. 전문검증 및 문제제기자료입니다!!!

 

나 역시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번 "황우석 사건"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우선 후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과학기술정책" 하며, 쓰러져 가는 이공계의 분위기와 실제 모습들, 미국과 똑같은 도제식 관계, 늘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어쩔 수 없는 "생활의 논리"에 "진리"마저 버려야 하는 때에 수도 없이 당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 현실!!! 이거 고치지 않으면, 다음에 또 "황우석" 같은 과학자가 나온다. 물론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 하지만, "황우석"은 너무나 크게 해먹었다. 그래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젊은 과학도들의 "진리에 대한 열정"은...

나라를 구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익을 아직도 생각하지만, 민초들에겐 먼 얘기다. 아니 스위스가 생명공학에서 좀 뒤졌다고 세계 제일의 부국이 아닌가? 사람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차려야 한다. 그래도 "그 열정"을 놓지 않고 한켠에서 불을 지펴온 "그 과학기술민초"들이 나라를 구했다.

 

아니... "우리의 마비된 이성"을 되돌려 놓았다!!!

난 정말 과학도들의 고생을 겪은 사람으로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가 세계 최고의 과학자를 잃을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진리"는 지켰으니, 그래서 온 나라사람들의 틀어진 이성을 되찾게 되었으니... 이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혼자서 무엇이든 다했다는 식의 태도는 우리사회에서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 끝으로 덧붙여 많은 자료들이 올라오고 정리되고 있는 사이트의 글을 소개합니다!!! >

 

* [참고] 늦게 와서 뭐가 먼지 모르는 횽아들 여기 참고 (디시인사이드 사이트 "과학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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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

어제 한겨레 기사에 난 조세희 선생의 200쇄 기념말이다!!!

 

>>> 27년 만에 <난쏘공>이 200쇄를 기록했지만, 지금 상황은 처음 이 소설을 쓰던 때와 똑같아 보입니다. 날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에게 매를 맞고 착취당하고 있어요.

 

<난쏘공>을 처음 쓸 때는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소수만 알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죠. <<<

 

그는 200쇄 감회를 얘기하기 보다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얘기합니다... <난쏘공>을 쓰게 된 까닭과 똑같은 까닭으로 말이죠!!!

 

>>>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명이고 농민이 350만명입니다. 합해서 1,200만명이죠. 이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집안의 유일한 노동력이기 십상입니다. 이들이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슬프게 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수는 없는 것이죠. <<<

 

>>> 당시 분위기는 엄청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농민들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분노로 몸을 떨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계속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두 가집니다. 동시대인으로서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카메라를 지니고 있으면 현장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에요. <<<

 

그는 '진정한 작가이자 사람'이다!!!

 

여의도에 모아놓은 전경차는...

87년 6월항쟁의 서울시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아펙 때부터 등장한 물대포 차는 노무현 폭압정권이 개발한 노동자/농민 탄압 신무기인 모양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정권을 '물대포 폭압정권'이라 부를 것이다. 아니 지금 그렇게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경차를 모아놓은 모양새는...

이 땅의 "정의"들이 혹시라도 물 새듯 들어샐까봐... 앞뒤를 딱맞게 붙여놓아 그 사이론 고양이 새끼조차도 들락거리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 집권정치세력의 핵심은 <난쏘공>을 읽은 사람들이 아니었나?"

"그들은 아마도 조세희 선생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했나 보다... 그들은 그저 그때의 분위기에 몰려다녔던 사람들이던가?"

 

어쩌면 이들과의 소통을 이젠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아니 이미 포기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새로운 적이 되었고... 이젠 이 땅의 모든 "기득권" 세력들과 싸워야만 한다. 그래야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말처럼...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희망이 없는 싸움'(그들이 생각하기에)을 포기하고 '권력의 단맛'을 조금이라도 맛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세상에 대한 불편함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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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학교 때 읽었던 <난쏘공>을 다시금 빼어 읽었다!!!

올 늦봄이었나 싶다... 2003년 여름에 나온 165쇄(총발행수 기준)판을 읽었다... 나만 변치 않고 사나 싶은 생각에 빼내어 읽었다. 가끔씩 읽어보지만... 세상은 본질적으로 바뀐 게 없는 듯하다!!! 200쇄를 맞는 <난쏘공>을 들고 그가 한 얘기 역시 다르지 않다!!!

 

조세희 선생의 얘기를 생각해 보았다!!!

2000년에 쓴 그의 머릿말을 먼저 들어보자...!!!

 

>>> '난장이 연작'이 씌어지던 시기의 이야기를 나는 정색을 하고 앉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어떤 식으로든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의 짐에 칠십년대라는 과거의 짐을 겹쳐 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나는 그 이중의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젊었던 시절 칠십년대와 반목했던 것과 같이 나는 지금 세계와도 사이가 안 좋다. 내가 작가가 안 되었더라면 젊음을 다 잃어버린 나이에 자기 시대, 그리고 동시대인 상당수와 불화하는 불행한 일은 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육십년대 후반 어느 해에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나는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었다. 이것 역시 괜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예술가들은 이상하게도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모두 불행한 삶을 살고 간 사람들이었다... <<<

 

그의 머릿말은 행을 띄움이 없이 그냥 쏟아낸 하나의 단락으로 씌어져 있다!!!

그래서 위의 단락 나누기는 임의로 나눈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를 더 따라가 보자!!!

 

>>> ... 나에게 책은 분열된 힘들을 모아 통합하는 마당이었다. 나는 작은 노트 몇 권에 나뉘어 씌어져 그 동안 작은 싸움에 참가한 적이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아직 분명한 정체를 잡혀보지 않은 소부대들을 불러모았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누구가 쉽게 말할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장이'는 읽을 필요가 없는 작품이라고 아주 간단히 말했다.

 

따져보면 이 모든 말이 옳았다. 내가 바로 그렇게 쓴 사람이었다. 말이 아닌 '비언어'로 우리를 괴롭히고 모독하는 철저한 제삼세계형 파괴자들을 '언어'로 상대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써 절망에 빠졌던 것도 바로 나였다...

 

이 작품은 그동안 이어져온 독자들에 의해 완성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 그러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기만 한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제삼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이다. <<<

 

그는 그의 분신인 <난쏘공>을 보듬어 발전시켜가고 있는 세상을 알지만...

<삶>으로서의 <글쓰기>는 그에게 꼭 글을 쓰는 것만이 <진정한 삶>을 꾸리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몸으로 가르쳐 준다.

 

"그는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난쏘공>으로 그때 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한 진정으로 올바른 자세로부터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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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우리들의 올바른 자화상

[나의 추천 글]

 

장준하 선생은 우리들의 올바른 자화상입니다!!!
그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우리나라 우익 민족주의자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열악한 박정희 시대에...
아무도 얘기하지 못하던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통일은 우리민족의 절대선'임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으로만 보아도 장준하 선생의 성격은 짐작할 만합니다!!! 그런 뜨거운 가슴 때문에 그는 우리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를 풀고자 그 압제의 서슬퍼런 칼날앞에서도 주저없이 '통일'을 외쳐 '분단체제'를 해체하고자 했습니다!!!

누구든 통일을 외치면 '빨갱이'가 되고...
소리없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속에서도 분단체제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그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보기전까지는 매판독재정권들이 주장해 온 극우반공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아무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분단체제의 극복'과 '통일은 우리민족의 절대선'임을 주장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일본신학교 재학중 학도병으로 일군에 들어갔다가...
중국 서주에서 탈출하여, 제비도 날아 넘지 못한다는 험하기로 유명한 파촉령 설원을 넘으며 6천리를 걸어 중경임정에 도착하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집니다!!! 이를 통해 그의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정에 도착한 그는 임정의 분열상에 다음과 같이 치를 떱니다!!!

>>>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일군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중경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선생님들은 왜놈들한테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

(인용출처: "비극의 현대지도자", 서중석)

장준하 선생의 격정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는 이렇듯 불의를 보면, 절대로 참지 못하고, 자신이 느낀대로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전형적인 열혈지사적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역사적 중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얘기됩니다!!!
하나는 "사상계"의 출판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운동의 제기'입니다. 그가 벌인 통일운동은 반박정희 운동의 핵심이었고, 이는 박정희 정권에 가장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엊그제 조사에서...
해방 뒤 60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준 출판물이 바로 "사상계'라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상계"는 최초에 이교승이란 국회의원과 부산 미국공보원의 지원아래 창간되어 주로 친미적인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이때 주로 들어있던 내용들은 미국의 자유주의와 반공주의 기조가 깔린 책들의 번역물을 많이 실었고, 50년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구문화'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려는 주 흐름과 편승하여 학생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해방 직후엔, 친미극우반공주의자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역시 초기에는 "사상계"의 내용 역시 그런 기조가 주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목도하면서 생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함석헌 선생과의 결합은 그런 그에게 더욱 큰 생각의 탈바꿈을 불러왔습니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부분의 진보세력들은 궤멸적 타격을 입고 그 세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조봉암 선생의 국보법에 의한 사형은 분단의 상황을 민초들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민족의 염원을 남한에서 긴 시간 동안 없어지게 만듭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장준하 선생은...
1958년 여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란 이승만의 북진통일운동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함석헌 선생의 글에 고무되어 같은호 권두언에 "거족적 반성이 촉구된다"라는 글로 자신의 깨어난 의식을 만천하에 천명합니다!!!

>>>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쏘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여, 있은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노름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

(사상계 1958년 8월호, 함석헌 선생의 글)

>>> 우리가 얻은 해방은 한낱 주인을 바꾸어 섬기는 것이요, 형태를 달리한 노예생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생각하는 방향은 일인이 가르쳐준 바요, 조직된 제도 첨단적인 미국류의 모방이요, 운영방식은 이족을 통치함에 사용한 일제의 방식이니 우리의 문화를 어디서 찾겠는가. 이러고도 해방된 민족이라고 하겠는가? <<<

(사상계 1958년 8월초, 권두언)

이때 직전인 1957년엔...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최남선과 이광수를 위한 특별모임을 "사상계"가 주도하기도 하여 함석헌 선생의 비판을 받기도 할 정도였으니, 바로 다음 해에 나온 위의 글은 엄청난 의식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월혁명은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되찾고...
분단된 민족의 통합을 위한 첫걸음을 다시금 내딛게 해준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4월혁명 공간은 우리사회가 해방 뒤, 어둠속에 숨죽였던 이성을 드디어 다시 빛속에 드러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장준하 선생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임을 깨닫고 그간 극우반공이데올로기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습니다. 이는 1960년 6월호 "사상계"에서 "혁명상미성공"(손문이 서거할 때 유언으로 남긴 글의 제목)이란 제목으로, 반혁명세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 (해방 3년후 친일파들은) 확고부동한 기성기반을 재형성하는데 성공하여 오히려 이를 건드리는 자가 해를 받게 되어버렸다. 혁명과 그 수습의 주객의 전도로 말미암은 미온적인 정책은 끝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버렸고, 의당히 받았어야 할 그들의 응징은 고사하고 일약 건국공로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으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인사들은 백안시 당하고 그래도 조국독립을 위하여 남북만주나 중국대륙에서 일생을 바친 혁명선배들의 유가족들은 가두에서 문전걸식을 하게 되는 등 의는 떠나가고 불의만이 성장하여 충천하는 세력으로 이 땅을 뒤덮게 됐다.

누가 다시 애국을 하리오!!!
누가 다시 의에 살리오!!!
누가 자기의 몸을 민족의 흥망을 거는 재단에 불사르리오...!!!

이 사태를 혁명적으로 해결치 못하고 넘어간다면 불원간 앞날에 더욱 처참한 비극이 우리 눈앞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모든 여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당연히 4월혁명으로 불러야 하며, 이에 따라 모든 수습책이 혁명적 기틀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

하지만 이런 의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4월 혁명과 함께 중립화 통일방안이 모색되어지면서...
이에 대해 극우반공 지배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반이 되는 분단체제와 태생적인 도덕적, 정신적 취약성에 대한 위협을 강하게 느낌에 따라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즉 이런 상황 아래서 장준하 선생 역시 지배세력과 같은 의식의 기반을 가졌으되, 세상의 변화를 직접 겪으며 서서히 올바른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갖게 됩니다. 이는 70년대에 들어서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 ’74 남북공동성명’때까지 이어집니다.

그의 열정적 가슴과 실천적 용기는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권력욕에 의한 배신’이 일어나면서 또 한번 극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박정희와 숙명적인 라이벌이 되면서 그의 삶은 진정 올바른 의식을 갖추게 됩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장준하 선생은 다른 극우반공지배세력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활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파악하고 지지하였으며, 심지어 미국과의 화해를 위해 만남을 주선해 주시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지는 곧 극렬한 반대로 바뀌고 맙니다. 쿠데타 세력은 약속한대로 군대에 복귀하지 않고 숨겨두었던 권력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며, 특히 박정희는 장도영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을 체포하여 갈아치우며, 자신의 영구적인 집권음모를 실행해 옮기고, 반공법과 인신구속특례법을 공포하여 혁신계 세력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이를 통해 흐트러진 극우반공체제를 다시금 강화합니다.

이에 장준하 선생은 스스로 “사상계”를 통하여 박정희를 비판함은 물론...
함석헌 선생에게 부탁하여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유명한 글을 같이 실어냅니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1962년 3월 소위 ‘정치활동정화법’이란 것을 만들어 권력을 독점해 버리는데, 이 법에 의해 장준하 선생은 ‘부패언론인’으로 지목되어 험난한 박정희 시대를 시작하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적대적 관계가 박정희와 시작된 것입니다!!!

박정희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대리인으로 논쟁을 벌였던 김종필과 격렬한 ‘민족주의 논쟁’을 시작합니다.

>>> 요즘 민족주의를 팔아 자기 옹호나 자기 변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무리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김종필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귀한 외화를 써가면서 사치한 외국호텔 창가에서 향수에 젖어 흐르는 눈물 같은 것이다.

(자신은 중국 광야에서 광복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면서) 춥고 배고프고 발톱이 빠지도록 조국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뱃속으로 체험한 민족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김종필 등이 민도가 높아야 민주정치가 가능하다고 하면서 강력한 지도자 운운하는 것은 건방진 수작이다, 민도가 높으면서도 우리처럼 못사는 민족은 온 세계에 없다. <<<

(인용출처: “대한일보” 1963년 11월 6일자, 재인용: “비극의 현대지도자”, 서중석)

박정희 세력이 주장했던 ‘민족주의’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역사인식 아래, 몽매한 대중에게 민주주의는 아직 필요치 않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제군주적 통치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파시즘’ 또는 ‘군국주의’ 논리의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김종필이 강연한 내용을 들어보죠!!!

>>> 이씨정권은 사대주의와 퇴폐성의 근원이 된 유교를 국교화하여 이를 국가이념으로 채택하고, 봉건적 신분제로의 유교국가적 관료기구를 완비함으로써 오늘의 후진의 씨를 뿌려 놓았던 것입니다.

이래 오백년, 우리 조상들은 유교만을 지상의 것으로 숭상하였고, 유교는 그가 지니는 매우 비과학적인 관념론으로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무위도식하면서 그저 담론풍발 제사횡담 쓸데없는 비분강개로 장구한 시일을 허송케 함으로써 후세에 민족감상주의를 뿌리박았을 뿐만 아니라, 사화와 무자비한 당쟁은 민족을 분렬시켰으며... (중략)

마침내는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에 긍하는 식민지 분할시대에 신흥 일본의 식민지로 된 것이 결코 우연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인과를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중략)

1945년 이래 16년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시행기였습니다. 즉 내 몸에 배지 않은 보편주의 사상을 그대로 시행해본 것입니다. 결과는 정치는 파쟁으로, 경제는 파탄으로, 사회는 문란으로, 자유는 방종과 무질서로 각각 전락됨으로써… 민족을 신념과 예지로써 이끌어나가야 할 강력한 리더십이 강력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정치 풍토를 특징지우는 것에 강력한 행정부와 영도력의 확립이라는 권력 집중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

즉 이들은 강력한 독재권력과 일방적 통치방식만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그 명분은 ‘우리역사의 열등함과 비굴함’에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야말로 민족의 자주성 회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꾀할 ‘강력한(?) 독재권력’이며 또한 독재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죠!!!

장준하 선생에게 박정희의 집권은...
우리 역사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오욕의 상징이었습니다!!!

5천년 역사를 이룬 조상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얘기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있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그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죠!!!

박정희와의 대립은 장준하 선생을 정치계의 투사로 내몰았고...
그는 더욱 강렬하게 박정희를 비판하며 올바른 현실인식에 다가갑니다!!!

그는 박정희의 손에 돌아가기 전까지 박정희 정권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의 반대투쟁에 중심에 서있었습니다. 한일회담 반대, 삼성밀수사건 폭로, 베트남 파병 반대... 그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행동의지는 67년 ‘옥중당선’이라는 기적을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의 상황은...
새로운 민주주의 열기의 부활을 꿈꾸듯, 학원과 사회 각계에서 자주화, 자율화 운동, 병영화반대운동이 있었고, 대통령선거에 이은 총선에서는 분열상을 보였던 야당이 예상을 뒤엎고 크게 약진하여 민심이 박정권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실기업의 증가에 대한 조치로 83 조치를 통해 재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줌은 물론, 정경유착을 한층 더 부채질하였습니다. 이런 국내상황과 더불어 미국과 중국의 접근으로 인한 동아시아에서의 데탕뜨 분위기는 ‘분단체제’를 권력기반으로 삼아 온 극우반공세력인 박정희 정권에 가장 큰 위협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생겨났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꺼져가는 민족통일에 대한 새로운 불을 지펴 올림은 물론이거니와, 외세의존적, 대결지향적인 분단체제의 극복을 남북이 공동으로 선언함으로써 그간의 남북간에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었다는데 큰 뜻이 있습니다. 이런 ‘74 남북공동성명’의 정국은 장준하 선생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의식과 인식을 ‘완전한 지평’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북 출신의 친미반공인사였던 장준하 선생은...
엄청난 탄압으로 궤멸적 상태에 있었던 혁신계 인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박정희 정권과 대립해 오다, ‘74 남북공동성명’과 이를 송두리째 뒤집는, 영구집권음모인 ‘유신쿠데타’를 보면서 ‘올바른 통일운동’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진정한 민족주의자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친미반공주의자였던 그가 완전한 의식의 탈바꿈과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합리적 이성에 의한 역사와 현실인식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973년에 썼던 “민족통일전략의 첫단계”의 초고를 살펴보죠!!!

>>> 분단적인 민족관, 국가관에 입각한 교육, 이념, 문화의 제가치관을 통일적인 민족이념과 가치관으로 고친다. 모든 가치를 통일에 두고 분단적인 사고행동을 반민족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유신을 폐기하고 냉전논리에 입각한 모든 제도, 법률, 가치관, 문화질서를 청산한다. <<<

해방 뒤, 남북의 분단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체제화됨을 인식한 장준하 선생은 ‘분단체제’라는 말로 우리민족의 현실을 규정하며,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이의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는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라는 말로 그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자주 나타냈으며, 이런 민족통일에 장애가 되어왔으며, 또한 분단체제의 영구화를 통해 독재정권을 영구적으로 실현하려 했던 박정희 유신쿠데타의 즉각적인 폐기를 주장했습니다. 분단체제를 끝까지 유지시키려고 했던 박정희 정권의 검은 속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거듭나면서, 해방 뒤 3년 동안의 민족사에 대해서도 완전히 탈바꿈한 시각과 평가를 제시합니다.

>>> 건국준비위원회는 민족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으려는 기민한 대책으로, 몽양을 비롯한 국내항일세력이 항일운동과정에서 획득한 전진적 확신의 표현으로 파악하였고, 송진우 일파가 이에 동조하지 못한 것은 일제 식민지체제에 편입되어 있었던 자주 친일세력으로서 도덕적 파경의 표시로 인식하였다.

또한 김구의 임정에 대해서는 이승만을 필두로 한 세력을 일찍이 극복하지 못했고, 반탁운동을 이승만의 민족분열의 명분으로 연결시켜 주었으며, 새나라 통일조국이 이념을 과감하게 제시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지적하였다. 그리고 백범노선의 실패원인으로 친일민족반역자의 타도, 반이승만 운동으로서의 대중적 역량을 확대하지 못했고, 반이승만 운동의 방법과 시기를 놓친 점 등을 들었다.

그 시기(1970년대) 어떤 전문 연구가도 미처 깨닫지 못한 놀라운 탁견이었다. 그는 몽양과 우사의 합작운동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백범의 통일운동을 가장 순결하고 애국적인 길이라고 확신하였다. <<<

(인용출처: “비극의 현대지도자”, 서중석, 미발표 원고 “민족통일전략의 첫단계” 발췌)

분단은 우리 민초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된 삶을 살며, 기껏 극우반공지배세력이 던져주는 ‘먹이’로 배를 채우며 우리는 우리의 현대사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져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젊은 세대들은 박정희 신드롬에 붙잡히어 ‘지워버린 현대사’를 완전히 왜곡하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이는 우리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실에 대한 열정과 합리적 이성을 되살려...
잃어버린 우리의 민족현대사를 되찾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사회의 올바른 길을 찾아 민족통일을 이룹시다!!! 암울했던 시대에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던 장준하 선생을 우리의 올바른 자화상으로 삼고 맘속 깊은 반성과 통찰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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