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삶을 시로 노래하는 노동자 주봉희 씨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12-24 17:05]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지부 KBS 분회 위원장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유정 기자

소외계층에게 12월은 춥다. 계절상 추운 달이기도 하지만 끝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채 한해의 마지막을 맞는 이들에게 12월 찬바람은 유독 시리다.

‘파견 노동자의 상징’ 주봉희 씨도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는 방송사비정규지부 KBS 분회 위원장으로, 열악한 임금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 중이다.


칼바람이 부는 21일 저녁 비정규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삭발한 머리에 모자를 아무렇게나 쓰고 연신 담배를 태워댔다. 파업을 하루 앞두고 까칠해 보이는 얼굴에서 서정적인 시구를 적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솔직히 힘들었다. 주 위원장은 올해 7월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라는 시집을 낸 어엿한 시인이다.

그는 94년 KBS에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했다. 그러나 4년 뒤인 98년 ‘사용사업주가 파견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 한다’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제정됐고 사용주는 이를 악용해 2년 단위로 파견 노동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98년 IMF가 터지면서 공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해 KBS도 운전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죠. 그 뒤 98년 파견법이 생겼고 2000년 6월 30일, 법이 시행된 지 딱 2년 되던 해 15년씩 일했던 운전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위원장 역시 그 때 해고됐다. 그는 “2000년 5월 26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4일뒤 바로 해고됐다”며 “당시 KBS 앞에서 출근집회 등을 진행하며 3개월간 투쟁했지만 생계가 걸린 이들은 하나둘씩 조합을 떠나기 시작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결국 그는 혼자 남았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제법 모여 시집 한 권으로 탄생했다.

“다른 단체 집회도 참석했다가 일정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었죠. 그 땐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심정과 패배의식, 고독감이 한꺼번에 밀려와요. 처음엔 그냥 매일 술만 마시다 어느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순간의 기록들을 남겨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 날 때마다 국회 앞에서 전경들과 싸웠던 기억, 비정규직 동지들이 하나둘씩 해고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죠.”

이후 2002년 5월 한 잡지사에 기고한 글이 독자의 호응을 얻게 됐고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주 위원장은 “새로운 박노해 시인이 나타났다는 농담도 들었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투쟁의 깃발을 내리면서도 날 위해 돈을 모아준 그들의 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부름에 우리는 순응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음 뒤에 화려한 국화꽃으로 장식된 관도
길게 늘어선 조문객도,
선정적인 장면만 잡던 방송 카메라도,
광고만 가득한 신문의 한 줄도,
우리를 외면하였습니다.

-‘아주 편한 곳에서 노동이 없는’(2003년 2.18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시 사망한 용역업체 청소노동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출간된 시집의 수익금 전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기금으로 쓰인다. 이에 대해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유정 기자

묻자 그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했고 눈엔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이 책 속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쓰러져갔고 결국은 깃발을 내려야했고 극한의 노숙투쟁을 하다 반신불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투쟁과정 속에서도 그들은 한두 푼 모아 홀로 투쟁하는 나를 위해 돈을 마련해줬죠. 그 때 이들에게 받았던 마음을 잊을 수 없어 언젠가 나도 꼭 도와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주 위원장은 지금도 계속 시를 쓴다.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술 한 잔 먹은 상태에서 쓴 것”이라는 그는 최근엔 농민대회 당시 경찰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고 전용철 농민을 추모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농약을마시고 죽어도
목을매고 죽어도
불길속에 뛰어들어 죽어도

성냥갑 속 미국놈 햄버거 국회의원들은 농민들 죽으라고
손을 들어 버렸오.

방패로 곤봉으로 찍어
용철이를 죽여버렸다오.

아버지
어머니

이눔의..나라.종이처럼 접을수만 있다면

확.접어서 날여버리고 싶습니다.

-‘이삭을 줍는 촌로’(고 전용철 농민 추모시, 부분)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적다, 너무 적다”

그를 비롯해 다시 뭉친 조합원들이 5년간 싸운 결과 KBS 측은 작년 6월 취재와 제작 차량을 운행하는 방송차량서비스(주)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이에 268명이 파견 노동자 신분을 벗어났고 주 위원장도 회사에 복직됐다.

이젠 파견 노동자도 아닌데 왜 파업을 하냐고 물었다. “열악한 임금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조합원이 받는 임금이 월 93만 2500원입니다. 여기서 세금 떼면, 고작 85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해요. 사측은 기본급 5만 5000원 이상은 못 올려주겠다며 버티고 있고요. 결국 고용안정만 됐다 뿐이지 임금 면에선 파견 노동자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이 엄동설한에 파업까지 하겠습니까.”

주 위원장은 “파견법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며 파견법 현행 제5조에서 ‘업무의 성질, 직종별 인력수급 상황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 규정이 추가돼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에 휩쓸려 비정규직 실태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주 위원장은 “황 교수 사태 때문에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모든 법안들, 심지어 농민 대투쟁까지 묻혔다”고 지적했다.

“두 명의 농민이 국회, 언론사, 증권사가 다 모여 있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경찰 칼방패에 찍혀 죽은 기막힌 현실조차 황 교수 사태에 다 묻혔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맘때쯤이면 계속 언론에 의해 부각돼야 하는데 조용해요.

가장 우려스러운 건 이 틈을 타서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법안을 단숨에 통과시키진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향후 황 교수와 관련해 더 큰 일이 터졌을 때 그 틈에 비정규직 법안을 슬그머니 통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에 언론의 여론몰이에 또 한 번 목을 베이고 있습니다.”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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