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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게 있는데,
쓰다보니 이 대목이 참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여성학과 자신은 어울리지 않으며 여성학을 공부할만한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을 공부할만한 이상적인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결론은 정해져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로 살기엔 부족한 인간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 말할 자격이 없다."
와 같이 자신을 질책하고
중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포기한다.
도대체 그 자격이란게 뭘까?
<페미 자격증>이라도 줘야 되는 것인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조차도 "나는 페미니스트 될 자격이 없다"니.
많은 사람들이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기를 두려워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꼴통 페미년'에 대한 무시무시한 낙인과 배제 때문이겠지만.
분명히 어떤 부분에서 "나는 페미니스트" 라고 하는 자기 선언에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이 따르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자면 이런 것 같다.
페미니스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투철한 페미니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일상이 전쟁이다. 검열, 검열, 자기검열 사소한 행동하나부터 페미니즘적인가를 검열한다.
이 때 무엇이 페미니즘인가는 정말 실체가 없다.
그러나 이것과는 상관 없이,
하나라도 잘못된 것이 발각된다면,
넌 out ! 자격박탈!
페미니스트가 아닌게야.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의 삶은 진짜 팍팍하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삶을 정말 불행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지나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상/ 규범에 스스로의 존재/행위를 일치시키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가능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페미니스트는 온몸으로 페미니즘을 입증하기를 요구받을까?
내가 페미니스트 대표도 아닌데, 왜 내가 잘못하면 페미니즘이 원래 잘못된 것마냥 비난 받을까?
댓글 목록
자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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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디가서 페미니스트라고 어디가서 얘기하는 게 부끄러웠어요. 여전히 좀 잘 못 하기도 하고. 내가 뭘 잘못 말하면 열심히 일하는 다른 언니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거든요. ;;근데 마지막 줄 정말... 정답, 인 것 같아요.
뭔가 제대로 배우고 갑니다 m(_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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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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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글을 보고 1학년 2학기 여성학 교양시간에 써 냈던 에세이를 찾아보았어요. 그 글에는 여성주의자가 되고 싶은데, 나를 '여성주의자'라고 말하기엔 아직 두려운 그 때의 마음들이 구구절절 적혀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본 페미니스트들은 다 완전 똑똑한데, 나는 똑똑하지 않다, 자신이 없다" 였더라구요. 헤엥- 이 외에도 어찌보면 구차한(!) 변명들의 나열들, 풉.그 때에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정체화하는 순간, 주위에서 나를 페미니스트 대표로 만들어버릴 것임을 그리고 나조차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압박받고 괴로워할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더군요. 헤엥.
마지막 문단 덕분에 많은 생각하고 가요:)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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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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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라고 덧붙이는 거 보고 그 사람이 확 싫어진 경우가 몇 번 있어요. 낙인이 두려워서보다 자기들이 페미니스트를 싫어해서인 것 같았음=_=부가 정보
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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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뿐만 아니라, 어쩌면 진보라는 굴레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한번쯤 겪게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요즘 한 친구라 ㅠㅠ 맑스주의자에 대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 전 아무말도 못하고 혼자 자책만했는데,, 많이 생각하고 갑니다..^^부가 정보
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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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공감. 싫어서가 아닌, 스스로를 검열하는 단적인 예. 마음이 널널해지지 못한 채 살아가게 하는 것들.부가 정보
호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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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래서, 여성인 나를 인식하고 있음을 아는 그것이 바로 페미니스트라고 얘기를 해요. 그 다음은 스스로의 실천의 문제이고, 페미니스트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다른 스스로만의 페미니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여성주의자는 채식을 해야한다라고 못을 박고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타인을 구속하려는 건 다른 문제라고 봐요.부가 정보
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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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추천만 하고 덧글을 못단채 놀러나갔다가 이제보니까나 불탑에 올랐심다? ㅎㅎㅎ난 은수의 이글을 보고 너무 시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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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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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네요. 하지만, 그 뿐이네요. 그 중압감이란 페미니즘 그 자체라기보다는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이 시공간의 공기일진대,. 다시 짊어져야 할 중압감을 잠시 내려놓는 것 뿐인걸요.부가 정보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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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포스트 지대 공감.페미니즘에 대해 상당히 편견 갖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가 오히려 본인의 행동으로 상대의 편견을 강화시킬까봐 무척 겁내고 말이죠. ;ㅅ;
하지만 오히려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함으로써 "아, 저런 페미니스트도 있는 걸 보니 페미니스트라고 다 같은 건 아닌가보다."라는 생각도 상대는 할 수 있을텐데요. 응?그치만 여전히 중압감은 그대로인가;;
게다가 뭐랄까...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막 앞에서는 말 가리다가도 부재 중에는 정말 가부장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경우도 많아서 그때문에 저의 정체성을 공언하지 않는 경우도...음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여성인 나를 인식해야 페미니스트에요??그럼 자신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어요???누구 설명 좀 부탁드려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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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ycled Star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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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나 실천을 위해 구상된 학문에 대한 부담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회주의자가 생존을 위해 약간의 사유재산을 가지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지만, 환경주의자가 (큰 집, 큰 차, 고에너지를 소모하는) 환경에 부담을 주는 삶을 살거나, 여성주의자가 (여성을 지원하고 지지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반여성주의적 삶을 산다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회주의자 보다는 후자 두 부류가 훨씬 더 가짜인 것처럼 보이는 부담감. 몇 해 전의 단상입니다만, 그래서 이런 행동주의로 디자인된 학문을 하는 이들이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부담이 훨씬 크겠구나 하고 느꼈답니다.부가 정보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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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맞아요-여전히 내가 잘못하는 것 같은 느낌..아 저도 그런 강박을 가끔 느낍니다.망이// 아..그랬군요.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 처음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했었던가..기억이 가물가물. 왜 페미니스트=똑똑이 되었을까요? 거참.
덩야핑// ㅋㅋ 분명 본인이 페미니스트를 싫어해서 그런 사람도 많은듯.
설영// 공감공감..꼭 페미니즘에 국한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맑스주의자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맑스주의자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못본것 같아요..ㅠㅠ
잔차// 마음 넓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호치랑// 공감공감..각자 페미니즘이 있는만큼, 타인을 구속하려는 방식의 운동은 지양해야죠.
리우스// 리우스 특유의 말투! ^^ 여러 사람들이 공감해주니 좋으면서도 한편 슬픈..ㅠㅠ
지난 날// 시공간의 공기가 무겁다고 해도, 결국 그 공기를 느끼는 건 나 잖아요. 내가 행복해야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힘도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전 좀 더 가볍게, 사뿐하게(?) 살았으면 좋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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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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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호치랑님이 말씀하신건 제가 이해하기엔 말이죠..내가 생물학적으로 여자임을 인식한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나의 젠더를 인식하고 내가 젠더체계속에서 어디에 위치되고 있는가를 인식한다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러므로 내가 남자구나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생물학적으로 이렇구나의 의미가 아니라(그것과 관계없이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읽히고 있는가를 인식한다는 뜻이 될텍고 그도 곧 페미니스트일수 있겠죠.Recycled Stardust// 사실 어떤 것이 반여성주의적인 것인가..자체가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텐데. 말씀대로, 그런 것과 무관하게 여성학이 '변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학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중압감이 유독 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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