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돌아보기01] 태안 만리포에서 서산 해미까지
벌써 한달 반을 흘려보냈다. 첫 3월은 연수휴가가 어찌될지 몰라 잡아놨던 교육때문에 흘러갔고, 이어진 백두대간 종주는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산불방지 기간이라는 수렁에 빠져 벽소령에서 50만원의 악몽으로 중단했다.
이어진 안나푸르나 등정은 청주지검의 출국금지 조치로 인해 여권조차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1년 반의 수도기간에 너무도 걷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한비야 씨의 "지구밖으로 행군하라,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 등을 읽으며 남쪽 땅을 걷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백두대간 종주기를 읽고, 수도기간을 마치고 나와서 산을 다니며 최우선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꿈꾸었다. 그런데... 낭패다.
그렇다면 남쪽 땅을 아무런 제한도 목표도 없이 걷자.
아무런 부담도 없이...
그렇게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전날 급작스레 연락이 왔다. 소중한 분이 중병에 걸리셨단다. 출발일을 하루 미루고 급히 서울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어렵지만 살려고 하는 의지를 끊임없이 보이셨다. 제발 의지로 극복하시기를...
출발하기로 한 당일... 아침 일찍 카메라를 AS 받으러 대전으로 갔다. AS를 받고 돌아오던 중 정말 죽을뻔했다. 신탄진IC를 지나는데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다. 어... 이놈의 헬기는 나만따라오나? 엉덩이가 내려갔다. 아뿔싸... 급히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간다.
타이어가 걸래가 됐다. 급히 보험 긴급 출동을 불렀다. 기사 왈 "또 넥센타이어네". 이런 사고의 80%가 넥센이예요"
액땜했다.
오후 첫 출발지인 만리포로 간다. 왜 만리포? 그건 나도 모른다. 그냥 아는 형이 거기서 출발하란다. 나도 사실 산에서 쫒겨나 일주를 하기로 한 바에 서울이나 경기도같이 매연구석을 돌아다니기는 싫다. 충남부터 돌자. 그럼 어디부터... 가장 서쪽인 만리포부터 시작하자.
다음은?
발길 닫는대로다. 목표는 그냥 이 남쪽땅을 발길 가는대로 가는 거다.
가다가 좋으면 그냥 며칠이고 주저앉고, 맘아 않들면 뛰어가면 된다.
차는? 되도록 타지 않는다. 뭐 이쁜 아가씨가 "야! 타"하면 어쩔 수 없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걷는다.
숙박은? 처음엔 텐트를 치고 갈까 하다가 "이건 아니다. 쉴땐 쉬어야 한다" 싶어서 민박이나 여관을 이용하기로 했다.
음식은? 아침은 냉동건조식, 점심은 초코바 등 행동식, 저녁은 포식 하기로 했다.
이러다 보니 짐은 조금 무겁다. 20kg 정도... 근데 나름 무겁다.
지금 여긴 만리포 S#ARP 란 모텔... 3만원인데... 컴터도 있다.
기름사태로 너무 힘들단다. 그런 와중에 생계비 받는 것도 몇몇이 장난질을 쳐서 법적 소송까지 진행중이란다. 그러면서 삼성이야기... 정말 너무하다고 눈시울이 붉거진다.
나쁜 놈들. 삼성 이건희.
푹 자고 낼 부터 발길 닿는데로 가련다. 근데 오다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도는 갓길이 없어 보행자에게는 죽음이다. 살아서 가자.
4월 16일(수) 만리포 - 태안 (29.1km)
지난 지리산 처럼 새벽 2시에 깨더니 잠을 못 이룬다. 어거지로 선잠을 자고 일어나 건조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정말 먹은게 아니라 해결한거다. 이거 정말 계속 먹어야 하나? 군대에서 씨레이션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 맛이 어떤지. 애구 그래도 우짜나 아껴야 잘 살지.
8시 만리포를 사진에 담는다. 욕심 때문에 떡팔이(니콤 D-80)를 가져왔는데 배낭에서 꺼내기가 영 귀찮다. 2-30여명의 젊은이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린다. 명찰을 보니 SAMSUNG 마크가 찍혀있다. 그전엔 로고찍힌 것은 않입고 왔다는데 요즘은 자랑처럼 입고다닌다고 한다. 뒤에서 욕하는 줄도 모르고... 지속적으로 그룹차원에서 자원봉사를 보내고, 올 여름 계열사의 피서지는 무조건 서해안으로 잡았다고 자랑한단다. 바보 아냐? 그룹차원이라니? 개인의 의견은? 맘에도 없이 개끌여 오듯 끌려와 성심어린 봉사를 하고, 온가족이 기름때 낀 해변에서 휴가를 즐길 수 있을까? 이건희 독재의 진면목에 웃음이 나온다.
시민들이 내건 플랑카드 중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삼성은 ‘행복한 눈물’ 팔아 서해안 서민의 ‘슬픔의 눈물’을 닦아라” 그 그림 한 장이 얼마라더라? 국민들의 가슴에, 아니 생존에 대못을 박은 삼성에 면죄부가 주어질 거라는 뉴스가 씁쓸하다. 어찌된 특검이 재산만 늘려주나? 기가 막히다.
씁쓸함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한다. 태안까지 대략 17-18Km 정도... 서산까지 역시 그정도... 내 걸음이 능성타면 한시간에 3-3.5km는 충분히 탔으니 평지는 4km는 될테지... 뭐 넉넉잡고 8시간이면 되겠다.
9시 30분 소원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한 여학생이 산발을 하고 뛰어온다. 내 뒤로 만리포 고등학교가 있다. 음... ‘넌 네 선생님한테 죽었다.’ 그냥 즐겁다.
서해안은 육쪽마늘이 잘되나 보다. 보성도 그렇더니 이곳 역시 온통 마늘밭이다. 그 뒤로 숲은 온통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으로 난리가 아니다. 길가의 야생화 역시 장난이 아니다.
봄이다.
갓길 참 위험하다. 1m 정도 되는 길도 있지만 불과 30cm도 않되는 길도 있다. 게다가 바로 옆엔 가드레일까지... 이런 길은 뛰는게 상책이다. 4차선 국도는 100km를 넘게 달리기에 왠만하면 우회로를 탄다. 많이 돌더라도...
도보 여행을 한다 했을때 모두들 그랬다. “산타는 것과 아스팔트 걷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각오 단단히 해라” 흘려들었던 말이 정말이다. 산타면서 숨이 턱에 걸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릎이 시큰거려는 봤어도... 발에서 불이난다. 양말을 벗어보니 양말이 몽땅 젖었다. 발은 정말 뜨끈 뜨끈하다. 찬물로 씻고 새 양말로 갈아 신는다. 새끼발가락, 뒷굼치, 엄지 발가락 옆 등 굳은 살 박힌 옆 연약한 살들이 눌려서 찢어지는 것 같다. 아스팔트의 반사열에 평평한 길로 인해 아주 죽을 맛이다.
이를 악물고 간다. 12시 태안에 도착한다. 준족이다.^^ 간단히 초코바를 먹고 다시 간다.
태안을 지나 서산으로 넘어간다. 연평저수지를 앞에 두고 물한모금을 마신다. 그런데...
문득 대검이 머리를 스친다. 아뿔싸... 성배의 산아버지(사수)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에 주고 간거라고, 내 여행에 수호신이 될 거라고 빌려준건데... 어제 모텔에서 꺼낸 기억은 있는데 챙긴 기억은 없다. 배낭을 뒤집어도 없다.
급히 모텔에 전화를 해 본다. 다행히 챙겨놨다고 한다. 와서 가져가란다. 어쩔수 없이 후진다. 해본 사람은 안다. 이 경우 정말 걷는게 지옥이다. 고통은 10배다. 어쩌냐. 머리 나쁜 주인 만난 다리가 잘못이지... 태안터미널 까지 40분을 걸어나온다.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나오니 4시가 다됐다. 에이... 오늘은 여기까지다. 6시간. 대략 23km정도 걸은 것 같다.
4월 17일 (목) 태안 - 해미 (28.2km)
힘내고 다시 걷는다. 4차선 길을 위태 위태하게 걷는다. 혹 4차선 국도 걸어봤나? 정말 쓰레기가 장난이 아니다. 병, 캔은 약과다. 비닐에, 장판에, 심지어 냉장고 까지... 인간들아! 제발 그만 버려라.
한시간 쯤 걸으니 인평 삼거리다. 좀 우회하더라도 안전하게 가자. 이차선 국도로 우회한다. 낚시꾼이 아닌 어부인듯 한 이들이 낚시대를 대여섯개씩 드리우고 있다. 멀리 서산의 금강산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이다.
다시 발바닥에서 신호가 온다. 불위를 걷는 것 같다. 새끼 발가락과 뒤꿈치가 불로 지지는 것 같다. 어제 씻고 분명히 맨소래담으로 맛사지를 해줬는데... 양말을 벗으니, 아뿔싸 자세히 살피질 못했다. 몽땅 물집이 잡혀있다. 우씨 우짠다냐?
이를 악물고 Go. 12시 50분 서산이다. 맘 한구석에선 여기서 Stop를 외치고 있다. 지도를 보니 목적지인 해미까지는 10.5.km 정도... 3시간코스다. 가자.
4차선 국도다. 우회길도 없다.
경치고 뭐고 앞만보고 간다. 근데 지도와 길이 다르다. 서산. 이동네 엄청 발전했다. 택지개발인지 뭔지 하면서 길이 바뀌었다. 대략난감... 내위치를 모르겠다. 발은 이미 내 의지를 벗어나 천근만근이다. 길가에서 밭을 갈고 계시는 아저씨를 만났다. “해미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걸어서는 한참인디... 좀있다 내가 태워줄테니 기다려” 하신다. “아니 됐습니다.” 맘에도 없는 거절을 한다.
지도에서 내위치를 찾을 수 없으니 갑갑하다. 그리고 이정표. 지도는 분명 10.5km로 나왔는데 이정표는 16km로 나온다. 도대체가... 내 걸음걸이도 현저히 늦어져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냥가자.
해미까지 3km...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목적지가 코앞인데 발은 천근만근이다. 5시 30분.... 9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했다.
모텔에 들어서자마자 찬 소주에 발을 담궈 열을 식힌다. 그리고 바느질을 한다. 한땀 한땀 신중하게 잡힌 물집을 실로 꿰어 딴다. 군발이 시절 배운 노하우다.
먹거리 Tip. 터미널 앞 허름한 야식집이 있다. 매운 갈비찜을 먹는데 정말 꿀맛이다. 1인분 6천원인데... 정말 끝내준다.
걸레가 된 내 타이어
만신창이가 된 서해안
삼성 이건희를 처벌하라.
농민이 마늘 밭을 돌보고 계신다.
알록 달록 끝내 봄이다.
멀리 서산의 금강산이 보인다.
1000여명의 천주교도를 죽인 해미읍성의 화회나무
4월 15일 (화) 만리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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