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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7
    수능 일주일 전(5)
    달달
  2. 2007/11/07
    양심적 소비의 어려움 - 이랜드의 힘이란!(3)
    달달

수능 일주일 전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엄연히

지금은 블로그질 따위 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눈코뜰 새 없이 바빠야 정상이겠지만,

아직 수시 발표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열중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 즈음 되면 정말 대입의 비인간성을 철저히 느끼게 된다.

주위 사람들 중 가장 여유롭던 친구들조차 하나 둘 날카로워지고,

하나같이 눈 밑이 퀭한 채 유령처럼 교복을 걸치고 교정을 떠돌아다닌다.

음... 심지어 너무 심하게 여유로워서 "너 인생 막장치냐-_-"라는 소리를 듣는 나조차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 날카롭다는 소리를 듣는 요즘이니까.

 

공부하기 싫고, 얼마 전 사 놓고 펼쳐 보지도 못한 '리진'에 자꾸만 손이 간다.

사실 그것이 전혀 부정적인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자책해야 하고,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는 수학 모의고사 문제집 안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 들어가야만 한다.

 

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토나온다.

-_-

 

적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사실.

특기자 전형이며 수시 전형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결국엔 수치로 획일화된 붕어빵틀로 찍어낸 사람을 원하고 있다.

대입의 아이러니란 뭔가 알 수 없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음.... 결국 하나로 귀결되긴 한다.

모든 것을 다 잘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정도?

아니면 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영어를 끝내주게 잘하던지 말이다.

부유층이 아니라면....음, 모든 것을 다 잘 하세요! 기계가 되세요! 와하하!

뭐 이런 기분을 들게끔 한달까?

 

글을 엄청나게 잘 써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한 친구도

논술 때문에 대학에서 떨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논술은 글 쓰는 재주와 사고력보다는

체계적으로 '정답'을 써 내는 '분석력'(개뿔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학원이랄까.

정말 엄청나게 공부를 잘 하고, 온갖 상을 휩쓸었으며,

토플 점수도 높아서, '이야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친구도

특목고 간 죄로 내신이 안 나와서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친구 왈, 노무현 때문이랜다.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의 절망 앞에 차마 정치적인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반면 누군가는 내신 좋고 모든 것을 성실히 했지만

고등학교 평판이 안 좋아서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 유학 갔다 온 어떤 날라리 XX는

그냥 Y대 국제학부에 입학했다. 음, 팔자 좋다.

 

이 모양이다, 이런 꼬라지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러니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

그야말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그 속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는 우리 고등학생들, 80만 명의 아해들.

 

하아.

이런 대입 전쟁 속에서

(요즘엔 초등학교 6학년 내 동생 다니는 학원에도 서울대반 있더라!)

레즈비언 친구의 성 정체성도 개방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시민의식과 인성을 함양한다는 것은

정말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소리가 아닐까.

뭐랄까

대학 가고 싶어서 울고 싶어졌고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계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자라나

갑자기 성인이 되고 사회에 던져질 아이들에게

무슨 시민의식 따위를 바라겠나, 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세상이 더 암울해서 또 울고 싶어졌다.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

 

그 일주일 동안 전국 고등학생들 눈 밑의 다크써클은 더욱 짙어질 테고

수능날에는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올 테다

이 틈을 틈타 장사꾼들은 어김없이 떡이며 엿을 과대포장해서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팔아먹을 테고

그 상술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수많은 학부모와 수험생의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생들의 어깨는 점점 내려앉을 테고

자세는 점점 구부정해질 테고

그리고 그렇게 수능이 끝나면

아이들은 수험표를 들고 여기저기로 흩어져

이제껏 쌓아왔던 스트레스를 배설하고 다닐 것이다.

수험표 할인을 내건 미용실에서 퍼머를 하고 옷을 사 입고

어쨌든 어른들의 상술 속에서 그렇게 놀아나다가

대학생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툭, 내던져질 것이다

 

수능이, 대입이 인생의 끝이 아닌데

그 이후에도 알 수 없는 미래는 가득하건만

지금 우리는

마치 대학만이 인생의 마지막인 양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뭐 이래저래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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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소비의 어려움 - 이랜드의 힘이란!

 

 

이랜드와 연을 끊은 지 벌써 두 달이 사뿐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랜드 불매운동에 참가하겠다고 다짐했을 때에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그것 참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군요.

 

제일 먼저 뉴코아아울렛에서 싸게싸게 사던 옷들의 유혹을 떨쳐내야 했지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옷을 싸게 팔면서도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인데,

단기적인 이윤에 눈이 먼 자본주의적 탐욕에 가득찬 인간은 그것을 자꾸 잊으려 듭니다.

서민으로써, 세일 깃발을 크게 내건 이랜드 매장을 외면하기란 참 힘든 일이죠.

거기에 납품업체들의 어려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깔려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싼 가격은 자꾸 내 눈을 끕니다.

 

그래요.

자본이 이 사회를 움직이고, 오직 화폐 증식이 사회의 지상 목표가 되며,

'합법적' 방법을 통한 이윤 추구는 오히려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는

'돈', '가격', 그 아래 있는 착취구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안다고 해도 거기에 대항하기 힘듭니다.

 

처음 한 달 동안, 저는 정말로 심각하게 '이랜드 금단현상' 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동네 유일한 할인마트 홈에버와 뉴코아 아울렛을 거절하고

버스를 타고 좀 나가야 하는 재래시장에 가거나,

똑같은 옷에 돈을 더 내고 산다는 건 뭐랄까,

눈 딱 감고 이랜드 매장에 걸어가고 싶도록 만들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이란 이처럼 강력합니다.

제 생활 곳곳에 이렇게 부도덕한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참 섬뜩한 기분이었어요.

나름대로 유기농 제품을 사고 생협에 참가하는 등 노력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착취구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제법 힘든 일이었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소비란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강력한 돈, 돈 돈에 매몰된 인간성을 살리는 길일 테니까요.

우리 옆집 아주머니일 수도 우리 어머니일 수도 있는 이랜드 아주머니들이

바코드 찍는 기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돈 몇만원보다 훨씬 중요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인 제가 졸업한 이후

저 자신이 스스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겠지요.

 

그래, 그런데,

기계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인 동시에 양심적 개인으로 살아가려니 참.

아니, 사실 생각해 보면 '양심적 개인'처럼 거창한 걸 갖다붙일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나를 위해,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일인데,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한 일인데,

화폐 증식 회로 안에서 쳇바퀴 돌리는 쥐처럼

오늘도 이랜드 매장에 가시는 아파트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참 한숨이 나옵니다.

단돈 몇천원의 의미를 알기에, 따라서 그분들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래서 참 무섭습니다.

이랜드라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대항해 이길 수 있을까요.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도 힘겹게 뉴코아아울렛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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