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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노동자만 사람이냐 !

타워크레인 노동자만 사람이냐 !

 

요 며칠 건설노조 사무실엔 몇가지 유형의 전화가 온다. 대개는 타워크레인만 건설노조의 조합원이고 그들의 근로조건만 건설노조가 보호하는거냐는 항의성 전화이다. 누구는 꼭두새벽부터 나와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떨어져도 퇴근은 커녕 내일 일을 하기 위한 단도리를 마쳐야 일을 끝내는데 오후 4시가 되면 퇴근한다는게 말이나 되냐는 것이 항의전화의 요지이다.

이런 전화를 받는 노동조합은 뭐라 답변해야 할까??? 불필요한 사족을 다 떼고 당신들도 그렇게 단결하고 싸우라는게 답변일 수밖에 없다. 성의없는 답변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에 이르기까지의 성의 있는 답변을 하기에는 해야 할 말도 설명해야 할 말도 너무 많은게 건설노동조합의 투쟁의 역사이다. 불법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그 시스템이 당연한 듯 흘러가는 건설현장을 바꿔내는 것이 건설노조의 목표이기에 마음먹고 항의전화를 한 노동자에게는 야속하게 들릴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빼앗긴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하루 8시간 노동이 지난 5월1일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지난해 60여일간의 파업투쟁으로 5명의 지부장 구속과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타워크레인 조합원 335명의 재판투쟁에 이르기까지 구속과 2억원에 가까운 조합원들의 벌금형을 감수한 투쟁으로 피와 땀이 반영된 단체협약의 결과이다.
즉, 타워크레인 조합원은 2008년 5월 1일 이후로 하루8시간 주44시간 노동이 단체협약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건설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정착시키기 위한 건설노동조합의 외침은 오히려 일관성없는 관행과 빠듯한 공기를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건설자본과 현장소장, 오야지들의 찌뿌린 얼굴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단체협약으로 맺은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나서는 놈은 보기가 힘든 형편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현장의 관행만을 얘기하며 건설현장의 노동시간 단축은 어림없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할지도 모른다. 장시간노동으로 현장노동자를 쥐어짜도 이익을 얻기가 힘든 요즘 8시간 일하면서 쥐어짜기가 만만치 않을터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미국, 프랑스 노동자만 가능한 일인가 ?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전국에서 34만명의 노동자가 거리행진에 참여했고 19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미국 경찰은 농성하던 노동자에게 총을 쏘아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이 사건은 이후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단결할 것을 호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열린 전세계노동자대회에서는 1890년 5월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고 매년 5월1일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전세계 노동자가 함께 투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메이데이(노동절)는 시작됐다.
하지만 100년도 훨씬 넘어 세계노동절 118주년을 맞는 오늘 한국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지독한 일중독인가 ? 자본의 노예인가 ?

 

최근 OECD가 발표한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357시간으로  1777시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노동시간보다 580시간이 길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다는 네델란드(1391시간)와 비교하면 966시간이 길고 우리나라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는 그리스(2052시간)과 견주더라도 305시간이 더 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건설현장의 노동시간 단축을 얘기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주5일 근무, 주40시간 노동은 먼나라, 다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얘기가 아니다. 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밤잠을 줄이고 눈뜨면 일만했던 중동에 나갔던 건설역군의 일화를 소개하지 않는다하여도 우리나라 건설노동자에게는 눈만 뜨면 일할 것을 강요하고 그렇지 못한 인간은 건설현장의 현실과 일머리를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말도 없이, 현장이 바쁘면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게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양, 지극히 일중독에 빠져 자본의 노예가 되고 있단 사실마저 모른 체 일하는 손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단지 당신이 꿈꾸지 않았을 뿐 !!  단결하고 투쟁하라 !!!

주면 주는대로 받고 일하는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일한 노동의 대가가 이미 시장에 나온 수건 1장, 비누 1장 가격처럼 못박아 놓듯 결정되는 임금구조라면 일할 맛이 나겠는가? 힘든 일, 어려운 일을 하는 노동자가 대접받기를 희망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일이 그토록 잘 못된 일이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지금처럼 장시간 중노동을 일하는 자의 미덕으로 생각하고, 일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 우리는 건설자본의 건설시장 노예일 뿐이다.


언제까지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고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가 커지는 일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 받아들일 것인가?
탈의실이 없어 길거리에서 속살 드러내는 일. 길가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볼일을 보는 일. 일 끝나고 땀냄새 풍기며 죄지은 것도 아닌데 맘 편하게 지하철, 버스도 못타는 처지. 이루 나열하기 힘든 건설노동자의 참담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문제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미친소를 들여오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먹고 사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정부의 정책이 그 모양이니 건설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할 노동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오로지 건설자본의 이익을 만들어주기 위한 ‘규제완화’와 ‘법과 원칙’만을 강조할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분위기에 편승해 현대건설과 같은 대표적인 건설자본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고 피 땀을 쥐어짜기 위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건설노동자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내부 지침서를 공공연히 내놓고 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매일노동뉴스 5월9일]

 ☞   [현대건설에서 현장에 보낸 공문보기]
하기야 MB정권을 키워낸 굴지의 건설자본이기에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건설현장의 현실을 개선할 노동정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질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눈 멀쩡히 뜨고 쳐다만 볼 것인가?
‘미친 놈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란 말이 있다. 노동자 스스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길만이 참담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건설현장을 바꿔내는게 두려운가 ? 

우리 건설노동조합은 지난 2006년 11월 국회앞 총력투쟁과 2007년을 잇는 겨울철 천막농성을 통해 끝없이 피폐해져가는 삶의 고단함을 중단시켜내고 건설현장의 만악의 근원이었던 다단계하도급을 뿌리뽑기위한 투쟁을 벌인바 있다.
그 결과 다단계하도급을 묵인하고 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던 시공참여자제도를 건설산업기본법 법조문에서 파내는 성과를 얻어냈다.
물론 이 기간의 투쟁만으로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2006년 6월 월드컵 열기만큼 뜨거웠던 한달에 걸친 대구 건설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의 성과였고 7월11일 대학로를 가득메웠던 건설노동자 1만명이 외쳤던 함성, 그리고 포항에서 하중근 열사가 참혹하게 공권력에 맞아 죽어가면서 투쟁하였던 성과이기에 건설현장의 시공참여자제도의 폐지는 단순히 이룩한 성과가 아니다.  이는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의 투쟁과 구속,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단계하도급이 불법임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결과이자 건설회사는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불법이 난무하는 건설현장에서 혁명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폐지된 시공참여자제도를 꿈꾸는 자들에게

 

그동안 팀반장이 여태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시공참여자라는 허울로 강제도급을 받지 않고서는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과 도급받은 공사금액을 절감하기 위하여 중국교포의 고용을 통한 값싼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욕심을 다른 말로 둘러대는 핑계와 다를 바 없다.

그동안 팀장이 임금지급과 노동재해에 대한 책임 등 모든 것을 떠안는 체계속에서는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하였고 체불되거나 노동재해 당사자의 고통만을 가중 시켰다는 점도 채찍질 삼아야 할 교훈이다. 또한 팀장들간의 경쟁으로 일을 하기 위하여 더욱 낮은 단가를 수용하고 장시간 노동을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였던 도급체계는 건설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고위험을 키워내는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하다. 임금이 체불되어도 현장에서 동료가 다쳐도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못하는 팀장이 현장의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건설자본의 노예가 되어 건설노동자 등골 빼먹는 도구로 전락하였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한마디로 밥숟가락 놓기 싫다는 것이다. 

지난 3월24일 밀린임금 450만원을 받으러 간 고 이철복 철근노동자가 현장소장에게 맞아죽은 사건에서 우리는 다단계하도급이 건설현장을 얼마나 피폐한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았는지 목격을 하였다. 그 현장 또한 다른 현장과 다를 바 없이 발주처, 원청, 하청, 팀장이 있었지만 그 어느 놈 하나 폭력살인의 원인이 되었던 체불임금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밀린 임금을 받으러간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는 현장소장에 맞아 싸늘한 주검이 되었고 죽은지 한달이 지나서야 밀린 임금을 받아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팀장의 자세는 협상자리에서 노동부 담을 넘어 도망가는 추태만을 보여줬고 공권력에 잡혀와서도 자신은 억울하다는 호소만을 하였다. 충직한 건설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온 세월의 억울함일까???


빌딩, 고속도로, 터널, 항만시설 등... 건설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건설되어지지 않지만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는 다만 노예일뿐이다. 건설자본의 충직한 노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잘못된 현실에 대항하여 투쟁에 나설 때만이 건설노동자도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 내려올 때마다 이놈이 떼어먹고 저놈이 등쳐먹어 결국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일을 강요당하는 다단계하도급의 망령이자 허울뿐인 팀장이라는 이름을 우리 손으로 반드시 걷어내자. 

단결하여 투쟁하는 노동자, 건설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애써 외면하지 마라!



2008년 5월 9일  김병융

** ******************사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이긴 하다.  몇 부분 인용도 했지만 어디서 본 글인지 생각도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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