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 등록일
    2006/04/08 02:32
  • 수정일
    2006/04/08 02:32

4월 2일 대추리 촛불집회에서 박노해 시인이 읊었다는 시

집회에서 듣진 못했지만,

읽고 있노라면 눈물이 저절로 넘쳐흐른다.

-------------------------------------------------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 박노해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