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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짙푸른 녹색의 신록과 검은 대지

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14
    이스라엘 항의 집회
    무나
  2. 2008/11/24
    우리밀(6)
    무나
  3. 2007/11/14
    충치(5)
    무나
  4. 2007/06/13
    건강염려증(9)
    무나
  5. 2006/08/09
    [음식갖고 장난하니?]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큰다 그러나...(6)
    무나
  6. 2005/11/07
    무나
  7. 2005/08/11
    백중사리날 배 위에서
    무나
  8. 2005/04/27
    산리즈카농민반란이 남긴것들
    무나
  9. 2005/03/23
    그래서 환경정의가 필요하다
    무나
  10. 2005/03/21
    [펌]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 - 변홍철
    무나

이스라엘 항의 집회

  • 등록일
    2009/01/14 09:48
  • 수정일
    2009/01/14 09:48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빈집에서 imc모임을 한다길래,

일이 끝나자마자 광화문으로 향했다.

약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도착했을때는 이미 집회가 중반에 접어들어 있었다.

지난 광우병 촛불집회 때 이후로 경찰은 몇명만 모였다 하면 집회를 빙 둘러싼 고립장벽을 만든다.

이번에도 앞 뒤 옆으로 경찰과 경찰차로 꽉 막혔다.

너무 오바도 너무 오바지만 뭐 이명박 정권 이후로 상식적인 일이 있었나?

순수한 촛불행사에 "정치적 발언"을 한다며 해산하란다. 코미디가 따로 없지.

요즘 왠갖 다른 나라에서는 10만 20만씩 모여드는 집회에 고작 200명 모인 것을.

미네르바 구속도 그렇고, 교사들을 해직한 것도 그렇고,

경찰이 친 '바리케이트'는 우리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그들 정부와 상위 3프로도 안되는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신의 눈으로 봐도 아주 추하고 우스꽝스럽게 말이다.

 

BBC라디오에서는 가끔 이스라엘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을 번갈아가면서 인터뷰한다.

한 아미의 엄마라는 어느 이스라엘 여성은, 하마스의 폭격으로 이스라엘은 아이들을 shield(보호한다)하지만 하마스는 아이들을 shield(방패) 삼아 자기들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늘쌍 떠들어대는 소리.

하지만 누가 인질범을 죽이려고 인질을 쏘는가?

결국 하마스에게 겨냥한 폭격으로 아이들이 죽어도 괜찮다는 논리인셈이다.

어쩔수 없다. 결국 너희들은 우리가 쫓아내야할 다 같은 팔레스타인들 아닌가하는 내심이 숨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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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

  • 등록일
    2008/11/24 10:41
  • 수정일
    2008/11/24 10:41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주최로 전남 구례의 우리밀 공장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30년 전부터 유기농을 마을 단위로 실천해온  홍성 홍동면 풀무마을.

오리농법을 위해 길렀던 오리들이 주변 개울가를 활개치고 다니고,

텃밭에는 유기농 무우와 배추들이 소복하게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유기농 제품 공장들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로 세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 구례 농업체험관이라는 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곳에는 80년말부터 우리밀을 제배하며 꾸준히 운동을 해오신 분이 있다.

그분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먹는 밀 중 우리밀이 점유하는 비율은 고작 0.2퍼센트,

그 비율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안 했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종자라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는 우리밀 운동이지만

앞으로는 식량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또는 안전하지 않는 먹거리의 대안으로 충분히 떠오를만 하다.

밀은 초겨울에 심어서 봄에 재배하기 때문에 추수가 끝난 논과 밭에 심어도 되고,

겨울을 나기 때문에 따로 방충제를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단, 제초제를 뿌리는 밀과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밀이 있는데, 후자 앞에는 "친환경" 이란 수식어가 붙는 다는 것.

예전에 먹었던 우리밀은, 사실 질감과 맛이 좀 거칠다랄까?

그래도 자연스럽게 일반 수입밀가루에 입이 갔었다.

요즘 나오는 우리밀가루는 새로운 기계 등을 들여와 더 부드러워졌다.

하루에 밀가루 음식을 먹는 걸 계산해보면 밥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아침에 빵 한조각, 점심에 밥, 저녁에 스파게티나 국수, 간식으로 과자...

밥은 고작 한끼 정도를 먹는 것 같다.

물론 수입밀 안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거 하나 먹는다고 죽겠나'하는 하는 생각으로

사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먹다간 죽겠구나 싶어진다.

미국에서 기계와 농약으로 대규모로 제배된 밀을 20일씩 30일씩 운반해오는 과정에서

약을 치는데, 그렇게 해서 생산된 밀가루는 쥐도 안 먹고 바그미도 끼지 않는다.

어떤 이는 밀가루를 방충제 대신 작물에 뿌린다고 한다.

그런 밀가루를 하루에 두끼 이상을 섭취하면 정말 소리소문없이 죽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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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 등록일
    2007/11/14 13:19
  • 수정일
    2007/11/14 13:19

드디어 이를 싸그리 치료해야 할 시점이 왔다.

강남 U치과 견적 160만원,

회사 근처 D치과 견적 205만원(실충치 제외)

요즘 치과들은 의료보험이 되는 충치 떄우는 데 쓰는 아말감이 몸에 좋지 않다며

의료보험 안 되는 레진(치아 색깔나는 재료)을 권한다.

그 결과 충치 하나 때우는데 5만원을 호가...

어렸을때 의료보험으로 이 때우면 정말 몇 천원 안 했는데,

정말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이다.

그나저나 공포 공포 공포...

 

옛날 사람들은 이도 안 때우고 어떻게 평생을 밥먹고 살았나?

1. 옛날 사람들은 요즘처럼 단 것을 많이 먹지 않았다.

2. 충치가 있어도 그냥 참고 살았다.

수명이 길지 않은 관계로 이 못쓰게 되는 때가 바로 운명을 다하는 때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자연스럽도다~)

3.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충치를 질병으로 인식한것은 현대의학에 와서이고, 돌에 이끼가 끼듯 치석이 끼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의료의 자본화와 연결.

 

벗,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본들

내 충치를 사랑할 수는  없는일.

갑자기 강박적으로 이를 닦던 친구의 모습 인서트...

그가 팍팍 이해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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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 등록일
    2007/06/13 14:01
  • 수정일
    2007/06/13 14:01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부위에 있는 멍울이 며칠전부터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프지는 않은데 복숭아씨 정도의 크기로 멍울이 잡힌다.

우선 네이버에게 물어보려고, 검색창에 'XX부위에 잡히는 멍울'이라고 쓰고 엔터.

 먼저 눈에 띈 것은 "XX부위 암" 어쩌고 저쩌고.

암 하니까 요즘 잠잠하던 건강염려증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건강염려증: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

 

긴장성 두통으로 고생할 때는 뇌종양

소변에 피가 섞여나왔을때는 방광암

단순한 변비로 거시기가 살짝 찢어진 것을 대장암이 아닌가 의심

잇몸병이 낫지 않을때는 구강암

습진이 고질적으로 심해졌을 때는 피부암

계단을 오르다가 숨이 차면 심장병

왼팔이 저리면 중풍이나 마비 의심

단순한 알레르기 결막염을 실명할 수도 있다는 녹내장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근거도 없이 두려워했더랬다.

(아 차마 말하지 못할 잔병치레의 역사여~)

 

그래서 오늘도 그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부위의 멍울을 알아보러 병원엘 갔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아까 인터넷에서 암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을 볼때보다는

호흡수와 맥박이 안정되 있었다,

마침내 의사를 만나고 고놈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발음하기도 어려운 "무슨무슨씨 낭종". 여성들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고

나중에 거기에 염증이 생기게 되면 아프니까 떼어내면 된다고

약도 먹지 말고 그냥 가시란다.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번씩 이런 푸닥거리를 하고 평균 3-4만원 이상의 병원비를 낸다.

돈도 돈이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피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몸에 대해서 내가 모른다는 거,

철저하게 의사와 병원, 검사기구에 내 몸을 맡겨야 한는 거,

질병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거,

그렇게 시스템화되었다는 거,

각종 생명보험, 건강프로그램, 광고에 혹한다는 거,

궁극적으로는 내 죽음을 내가 주도하지 못한다는 거,

그래서 삶도 지배당해야 하는 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현대의 '나'를 살아내야 하는 병

암것도 몰라도 인생 이까이꺼, 하면 되는 것을

그런 낙천적인 성격도 전혀 아니라는 거 -_-;

(건강염려증은 우울증의 한 형태로 온다고도 한다)

 

암튼 열라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보험설계사를 하는 사촌오빠의 말에 따르면

중대질환으로 보험금 타는 사람들은 한 줌도 안된다고 한다.

제 1사망원인은  암도 아니고 뇌졸증도 아니고 노환이라고 한다.

대부분 늙어서 자연스럽게 죽는다.

 

하지만 생명보험 보장기간은 80세까지다.

80세가 넘으면 까무러치든 죽든 상관안한다는 거다.

결국 사람들의 건강염려증을 부추겨 매달 엄청난 액수의 돈을 접수한다.

대부분 노환으로 죽을 사람들이 암, 뇌졸증, 당뇨병이 무서워서 한달에 10만원씩을 붓는다.

 

나도 얼마전에 나이들고 병걸리고 자식도 없고 거기에 돈도 없으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던 차에

사촌오빠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생보 하나를 들었다.

내 돈 뺏아가는 거 다 알면서도 들었다.

생떼같은 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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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갖고 장난하니?]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큰다 그러나...

  • 등록일
    2006/08/09 18:31
  • 수정일
    2006/08/09 18:31
초딩시절에 학교에서 우유를 엄청 권장하던 기억이 납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단백질과 칼슘공급원으로 선전되던 그 하얗고 고소한 우유.
우유당번이 판에다 우유를 받아와 나누어주면,
꼴깍꼴깍 마시고 접어서 팩차기도 하고,
쓰레받기 모양으로 만들어서 소꼽놀이도 했었지요.

그런 우유가 지금은 위험한 음식으로 의심받고 있다지요.
어제 친구가 선물해준 "음식국부론"이란 책을 들쳐보다가 우유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어요.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크긴 크는데, 그게 바로 우유 속에 들어있는 성장촉진제때문이라는군요.
키는 멀대같이 크는 대신에 별로 건강하지 않게 큰다는 것이지요.
뼈도 부실하고 신체의 균형도 깨지고.

또한가지 깨는 얘기는,
흔히들 우유에 들어있는 칼슘이 아이들 뼈에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유회사의 광고 포인트죠)
오히려 우유를 꾸준히 마시면 몸 속의 칼슘을 빼앗는다고 해요.
우유가 동물성 단백질이기 때문에 혈액이 산성화되고 그 ph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리 몸의 대표적인 알카리인 칼슘이 소모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칼슘이 부족해져 오히려 뼈가 부실해진다네요. 거 참~
또, 칼슘은 마그네슘과 같이 섭취할 때만 몸에서 흡수되기 때문에
우유의 칼슘이 전혀 몸에 흡수되지 않는 답니다.

다행히 저는 우유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마셨더니,
우유 단백질을 분해하는 락타아제가 생성이 안되는지
생우유만 마시면 소화가 안되요.
어렸을때 매일 매일 우유를 마시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잔소리 덕분에,
오히려 커서는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런데 가끔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두유로 한번 만들어 먹어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우유가 낫더라고요.
하긴 두유라고 어디 믿을만한 음식인가요?
성분 표시를 보면 대부분 "미국산 대두"를 사용했다고 써있죠.
유전자 조작 콩으로 만들었음에 틀림없는...

시장엘 가도 슈퍼엘 가도 참 먹을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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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11/07 12:41
  • 수정일
    2005/11/07 12:41


               장시기

아름다운 길은
아름다운 사람처럼
모든 것을 길 속으로 흡입한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길 때문이 아니라
길을 따라
나무

바람
하늘의 어우러짐이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

사회
세상
우주의 어우러짐이니

길 중에서 최고의 길은
자연적인 물길이듯이
사람 중에서 최고의 사람은
자연 속에서 사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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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사리날 배 위에서

  • 등록일
    2005/08/11 09:34
  • 수정일
    2005/08/11 09:34

풀꽃세상의 오디님이 올려주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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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을 건들 뿐이지 이길 수 없고

 

자연은 소리없이 우리를 오늘 죽이지 않고

자손만대까지 다 죽인다고 소리없이 비웃겠지.

 

오늘 나 먹자고 인류를 담보하다니?

땅 욕심 나거든 미국땅 애리조나 사막하고 바꿔볼까?

 

흙먼지 등지고 권총차고 말타고 다니면 전북도민 폼 나겠네.

민초만도 못한 원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득실대니

 

삼대걸쳐 뱃놈하며 큰배 하나 장만했다고 제삿날 풍선달고 노저어서

고기잡은 조상님께 정종 따라 올렸는데

그네들 아파트는 먼 산이 안 뵌다고 조망권 이라고

법만들고 앞 공사장에 그늘만 져도 일조권이라고 재판하면서

 

심포항 낙조의 황홀함도 그만두고

하루에 네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대하여 온갖고기 다 몰아오고 온갖 철새 떼지어 날아드는데

 

바다만 쳐다봐도 세상이 행복한데

보릿고개 시라구 죽을 먹고도

 

이 좋은 내 고장에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내 고향이 좋아서

다가는 서울도 안가고 이 강에서 인생의 닻을 놓았건만

막는디야!

안되겠네. 그물값, 기름값, 기계값, 외상값도 갚아야 허고 아들놈 등록금이 내일 인데

 

누구도 안주는 돈, 내일은 금복골에서 대생합이나 잡어야지...

- 백중사리날 배위에서



(지난 2004년 10월 25일 새만금 피해어민 상경집회 때 한 어민의 발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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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리즈카농민반란이 남긴것들

  • 등록일
    2005/04/27 09:33
  • 수정일
    2005/04/27 09:33
<산리즈카 농민 반란이 남긴 것들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2) - 진보운동은 공동체의 재구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이영채 1. 글로발리즘에 저항하는 진보운동의 전략과 산리즈카 투쟁의 교훈 60년대 중반 고속 경제성장 속에서 일본정부의 일방적인 나리타공항건설을 반대하여 일어난 농민의 반란을 [산리즈카투쟁(三里塚鬪爭)]이라고 부른다. 이 산리즈카투쟁은 미나마타의 공해투쟁과 함께 전후 일본 사회운동의 유명한 2대 주민투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위상은 확고하다. 산리즈카 투쟁에 참가한 많은 사회운동가들이 지금도 아무리 바쁘고 비용이 배로 들더라도 나리타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하네다공항이나 관서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이 산리즈카투쟁의 일본 사회운동에서의 의미를 실감하게 한다. 산리즈카 농민의 반란이 일어났을때, 산업화에 맞서 마을을 지키고 토지를 지키고,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하는 [백성]들의 저항을 고속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의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시대적 보수로, 낙후한 사고방식으로 일본사회는 인식하였다. 노동운동 및 좌파운동세력들도, 공항반대투쟁에 참가하였지만, 고속 경제성장에 편승하여 기술혁신주의와 근대화의 망령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토지와 농업을 지키고자하는 농민들의 보수성과 대립하였다. 공동투쟁 속에서 애매하게 처리되었던 이 인식의 차이는 결국 운동전체의 방향성과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었다. 수입개방 저지에 맞서 싸우는 농민투쟁이 국가의 개방정책에 대한 반대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토지,농민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하는 과제를 산리즈카 농민투쟁은 제시해주고 있다. 사회진보운동의 대안사회의 새로운 전략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도 이 산리즈카 농민투쟁은 내포하고있다. 글로발리즘에 맞서 저항운동과 대안운동을 동시에 고민해야하는 현재의 진보운동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테마로 거론되며, 일본의 사회운동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산리즈카투쟁의 역사와 교훈을 운동의 흐름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2. 국가정책의 대상이었던 나리타 지역의 역사와 차별구조 나리타공항 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지역의 역사성에 기반한 국가와 농민의 대립구조, 그리고 토착민이 살고있던 고촌과 이주민 중심의 개척마을의 차별구조가 공존해있기때문이다. 나리타는 광대한 벌판이 있으며, 고대에서부터 야생마의 산지로 알려져왔다. 과거 야마토정권에 의한 군사정벌이 이루어졌을 때 이곳은 벌판에서 군마를 양성하는 정벌의 군사거점이었으며, 메이지유신이후 천황의 직영목장이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1000년전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손을 떼지 않았던 지역이었으며, 따라서 국가정책과 현지민의 대립구조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메이지정부는 말기에 이 지역에 목장을 건설하여 우유와 치즈 등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제조하였다. 이러한 목장관계의 일을 하기위한 직원들의 거주지가 점점 확대되어갔으며, 이 지역이 현재의 산리즈카이다. 반대동맹위원장인 토무라 씨의 조부는 산리즈카에서 메이지 중기부터 농기구업을 시작하였고, 청년행동대의 리더인 야나카와 씨의 조부도, 목장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나리타 북부지역에 일본정부가 60년대 중반 나리타 신공항의 건설을 결정한 것은 천황의 국영목장을 이번에는 국가의 비행장으로 대체하려는 국가논리의 연장에 불과하였다. 오랜 역사는 흘렀지만, 토지는 농민의 것이 아닌 국가정책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나리타 북부지역에는 토착민과 개척민이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착민은 3대째 농업을 하는 백성으로서 삶의 터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개척촌은 신 이주민으로서 아직까지 농업을 천업으로 생각하는 농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 내부간의 농-농차별 구조가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차별구조를 이용하여 나리타공항 건설지를 산리즈카의 개척촌의 경계선과 의도적으로 일치시켰으며, 고촌(古村)이라고 불리는 토착농민들이 살고있는 시바야마(芝山)지역을 공항 건설지에서 제외하였던 것이다. 시바야마 지역은 농업을 지속할 수 있었고, 공항건설에 따른 소음 피해지역에 해당하였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개척촌의 주민은 직접적인 피해의 당사자(주체)인 반면 고촌의 주민은 간접적인 객체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투쟁에 있어서도 개척촌은 투쟁의 주체세력이지만, 고촌은 투쟁의 지원세력이 됨을 의미하였다. 결국 양 마을은 서로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 대처하였으며, 나리타공항 반대투쟁은 산리즈카 마을의 동맹조직과 시바야마 지역 대책위의 연합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갖게되었다. 3. 민주주의 절차의 무시에서 시작된 공항반대투쟁 1966년 7월, 하네다공항을 대체하기 위하여 새로운 국제공항 건설 예정지가 치바현 나리타시 산리즈카(千葉縣成田市三里塚)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결정된 당일, 이 지역의 농민들은 공항건설지가 자신의 논과 밭이다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였다. 일본정부가 내각에서 공항예정지를 결정할 당시, 지역주민과 일체의 상담을 하지 않고, 극비리에 이 사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내각 결정이 발표된 당일, 산리즈카 주민들은 [TV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반신반의했지요.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이것은 내각 결정 이전에 농민들과 직접적인 의견 교환이 없었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산리즈카 농민반란은 정부가 단순한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농민들의 인격과 실체를 완전히 무시한 공항 결정의 방식은, 촌락의 주민, 즉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농민들은 정부 발표 직후 자발적으로 [농지사수], [선조전래의 토지를 지키자], [돈은 일시적이지만, 토지는 영원하다], [부락의 평화를 지키자] 등 고색창연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7월10일 [내각결정분쇄 총궐기집회]을 시작으로, 8월 22일에는 공항 건설지 나리타지구와 소음지구 시바야마지구의 운동체를 통합하여 [나리타시/시바야마연합공항반대동맹]을 출범시켰으며, 이것이 소위 농민들의 투쟁체인 [공항반대동맹]이며, 이 반대동맹을 통해 농민들은 국가프로젝트에 대한 전면 도전을 감행하였다. 4. 3개의 링으로 연결된 연대투쟁 반대동맹은 3개의 링을 연결한 모양이 그려져있는 붉은 깃발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일본공산당, 사회당 그리고 신좌파세력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초기의 운동을 리드한 것은 일본공산당과 사회당이었다. 투쟁경험이 없는 농민들에게, 그들은 나리타 지역에 앞서 공항부지로 선정된 토미리(富里)공항을 저지시킨 [선봉]대들이었다. 연일 집회와 데모, 관계단체에의 진정과 청원이 이루어졌다. 운수성, 공항공단, 치바현, 현의회, 자민당치바현련, 나리타시, 나리타시농협, 그리고 황실에까지.농민들은 여러방면에 걸쳐, 지칠줄 모르고 선전활동을 다녔다. 하지만, 농민들은 어디에 가더라도 문전박대를 당하였으며, 운동의 돌파구가 점점 보이지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허무함과 실망감이 감돌던 때, 정부의 측량대와 농민의 충돌이 있었으며, 농민들은 강렬하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일본공산당과 민청(공산당의 청년조직)은 길옆에서 농민들의 투쟁을 그냥 지켜보는 소극적인 자세로 대응하였다. 일본공산당의 이러한 소극적인 지원과 선전활동 중심의 캠페인투쟁은 단호한 반대투쟁의 원칙을 굽히지 않은 농민들의 불만을 샀다. 반면, 신좌파는 운동의 성격상 타협 없는 전투적 행동으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력투쟁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농민들은 자연히 신좌파의 단호한 입장에 동조하였다. 67년8월, 반대동맹은 [모든 민주세력과의 공투]를 확인하며, 신좌파의 학생단체연합인[3파전학련](공산당계를 제외한 각 당파의 전국학생조직연합)의 지원을 받기로하였다. 신좌익의 비타협적인 투쟁태도는 농민들의 근본적인 갈망을 풀어주는 듯 했으며, 반대동맹은 동년 12월, 동맹을 약화 및 분열시키는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공산당의 지원과 개입을 배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3개의 링으로 연결된 단일한 연대투쟁의 첫 균열이었다. 5. 실력투쟁과 동맹의 분열 : 공항반대투쟁과 농업사수투쟁의 차이 반대동맹의 신좌파와의 연대투쟁은 [실력투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청년행동대를 중심으로한 [무장]이라는 테마가 진행되었다. 1968년2월부터 공항반대 분실투쟁 등 무장투쟁의 전개가 대표적이었으며, 산리즈카의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널리 알려진 오카와 프로덕션의 [일본해방전선 산리즈카의 여름]이 촬영된 것도 이 시기이다. 하지만, 신좌파의 실력투쟁 노선은 결국 인명 손실을 불러왔다. 1971년 9월16일, 도호쥬지로의 충돌에서 경관 3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동맹의 실력투쟁노선은 지속되었으며, 78년부터 산리즈카투쟁은 세대교체를 이루어 청년행동대원들이 중심 세대로 등장하였다. 청년행동대원들의 실력투쟁은 78년 공항개항기를 맞이하여 최고조에 달하였다. 신좌파와 연결된 청년행동대는 78년 3월 26일 관제탑을 점거하는 등 무력에 의한 실력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5월의 공항 개항 이후 반대동맹의 입장은 다양화하기 시작하였으며, 83년까지 단일했던 반대동맹은 서서히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동맹분열의 주요한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1)대정부 비밀 교섭 문제 2)나리타지역 용수사업 문제 3)땅한평재공유화문제 등이다. 각 테마를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나,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문제의 배경에는 공항반대 투쟁인가 농업사수 투쟁인가에 대한 산리즈카투쟁을 둘러싼 제 세력간의 인식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공항반대투쟁보다는 농업사수투쟁을 전개해왔던 세력은 공항반대투쟁 일변도보다는 농업을 살리기위한 방안들을 모색하여 공항건설 자체가 확장되지 못하도록 하길 원했다. 여기에는 토착민을 중심으로 한 고촌지역의 농민들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공항반대투쟁을 주장한 세력은 공항이 건설되면 농업용 토지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공항건설이 되지않도록 정치투쟁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여기에는 개척촌의 농민이 주로 대상이 되었다. 나리타농업용수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이러한 인식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논쟁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기반으로 반대동맹에 존재했던 세력을 성향별로 나누면 대체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리타용수 추진에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농업에 기반을 두면서 다양성 및 애매함속에서 대중적 운동을 지향하려했던 아츠타파(熱田派), 나리타용수 추진에 반대하며 원칙적이고 강한 정치투쟁을 주장한 기타하라파(北原派), 그리고 나리타용수 추진그룹(用水派)이다. 1983년 시점에서 아츠타파는 약70호, 기타하라파는 약 30호, 용수파가 약 100호라는 비율이었다. 결국 인식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채, 1982년1월, 동맹의 부위원장 및 4명이 동맹 이탈, 83년 3월에 아츠타파와 기타하라파의 분열, 그리고 아츠타파의 그룹에서 나리타용수추진그룹(용수파)의 분열, 또한, 1987년9월, 기타하라파에서 오가와,시마무라요수케 등이 이탈하여 오가와파(小川派)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동맹의 분열 이후 동맹의 내부 민주주의 절차도 붕괴하기 시작하였으며, 각 지역의 대표로 구성되던 동맹의 운영도 대표자 선출이 불가능한 사태를 맞이하였다. 결국 운동의 분열은 저항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산리즈카투쟁은 국가와의 대화라는 방식을 끝내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6. 관료주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 담당부서인 일본 정부의 운수성과 반대파의 농민은 66년 투쟁 이후 처음으로 공식 테이블에 앉았다. [나리타공항문제 심포지움]이라고 불린 이 토론회는 1991년 2월부터 15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정부의 나리타지역 선정 과정에서부터 나리타공항 반대투쟁의 농민의 내부 문제까지 나리타공항 문제의 전 분야에 대해 학계를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나리타공항이 산리즈카에 결정될 때 일본의 운수성과 농림성의 의견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림성은 토지 매입에 대한 농민과의 의견 조정의 필요성을 제안하였지만, 운수성은 국가정책이라는 명분을 들어 도지사와 자치체의 양해는 인정했지만, 농민에 대해서는 의견수렴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운수성차관은 [운수성은 비행장을 만들려고 할 때 웃어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농민은 그것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비행장을 건설해왔으며, 한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 인식하는 농민과 대의적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밟았다고 주장하는 운수성과의 사이에는 [대화]가 성립할 이유가 없었다. 농민 측은 나리타공항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를 제대로 다시 처음부터 끼워야 하는 것처럼, 처음의 백지 상태로 돌아가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운수성은 나리타공항 문제의 해결은 현재의 공사를 전제한 조건 위에서 대화를 통해 미완성부분의 추가건설을 의미하였다. 결국 93년 5월, 심포지엄 결과를 바탕으로 운수성이 사건 발생후 27년이 되는 날, 정식으로 농민에게 사죄를 하였다. 이 정부의 사죄로 60년대 이후 지속되어왔던 국가프로젝트의 결정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전후 관료 주도의 민주주의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민주주의로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하지만, 단순한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를 바로잡는데 무려 2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누구나 공항건설부지 결정에 있어서 국가의 절차적 민주주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당시의 고속 경제성장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비단 국가만이 아니었으며, 국민 일반의 의식도 근대화와 기술혁신,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을 [당연한 국가정책]으로 강요하였다. 여기에 대부분의 노동운동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는 점은 산리즈카 농민투쟁의 의의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7. 근대화, 고속경제성장에 제동을 건 농민의 보수성 60년대 중반, 고도 경제성장이 한창이었으며, 전후의 일본 사회는 근본부터 변화하고 있었다. 도쿄올림픽(1964)의 해에, 고속도로망과 병행하여 전국신간선망이 스타트하여 고도 경제성장의 동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속 경제성장의 회오리에 국가와 사회의 모든 것이 휩쓸려갔으며,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한 시대였다. 60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결이라고 불린 미츠이미이케 탄광투쟁(三井三池炭鑛鬪爭)에 패배한 일본의 노동자는 기술혁신에 의한 고도경제성장의 시대를 맞이하여 생산현장에서 기술혁신의 한축을 담당하였다. [기술혁신에 의해서 노동자의 질이 대폭적인 변화를 이루고있을 때, 노동자 자신의 안에서도 주저와 혼돈이 존재하였다. - 숙련노동자는 하룻밤 사이에 미숙련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면서도 노동 밀도는 증대하여갔다. - 그러나, 그때, 몸으로 느끼는 불만과는 다른 차원에서, 많은 노동자는 이성 속에서는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근대화는 노동의 근대화, 과학화를, 역사의 하나의 진보라고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을까.](內山節,戰後勞 者の勞 意識と勞 觀) 노동운동은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의 근대화야말로 진보이며, 국민에게 기여하는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 중심을 이루었던 것이 국민의 리더(내셔날센터)라고 자칭했던 총평계의 조직노동자였다. 즉, 고도 경제성장은 재계와 총평이 [춘투]라는 공동연극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대 위에서 분배를 둘러싼 두 연기자의 대립은 있었지만, 사상적인 의미에서 노사대립은 없었다. 한편,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은 일관되게 임금인상과 고용안정만을 강조해 왔으며, 일하는 것의 내용, 동료들간의 연대방식, 고도성장에의 의문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고도 경제성장이 종언할 때까지 조직노동자는 숙련노동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밀어내었으며, 그들이 쌓아온 직업적 기풍과 직장공동체까지 파괴하는 참담한 상황을 만들었다. 개개인의 노동자들은 고도 경쟁사회에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내팽겨 쳐졌으며, 마침내 노동자들간의 연대의 근거도 없어져갔다. 공해 문제가 다발하고, 주민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 반응이 늦고 때로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기업 편에 선 조직 노동자들도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공업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우선시되고 노동운동이 사회적 통제 역할보다는 기술혁신의 한축을 담당하며 해고되는 비정규직의 동료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을 때, 농촌과 농민의 이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농민 무시정책이 사회적 중심을 이루었다. 말하자면, 일본의 농촌은 [조용한 안락사]를 국가와 많은 국민들에게서 강요당한 시기였다. 나리타공항 반대투쟁은 농민들이 몇백 년간 지켜온 부락공동체가 일본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가려고하는 바로 그 순간, [농촌]을 살리고, 마을을 지키려는 보수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도전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시대의 주요한 조류에 대해서, 민초에 불과하고 한줌도 안되는 농민이 자신의 언어로 행동을 조직하여 국가정책에 균열을 만들었다. 결국 농민의 보수성이 고속경제성장의 국가적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8. 대안농업을 지향한 산리즈카투쟁 산리즈카 농민들의 투쟁의 성과는 단지 국가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대안농업을 모색하였다는데 또 하나의 의의가 있다. 산리즈카는 유기농업을 채택하여 새로운 농촌살리기운동을 실시하여 왔다. 이후 유기농법은 공항에 반대하는 농업적 근거를 세우는 논리로서 발전해갔다. 유기농법을 제창한 이시이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항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농업은 정부의 방침대로 근대농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공항을 만드는 이론과 대형기계를 사용하여 화학비료나 농약을 마구 사용하는 것은 근대농업과 같은 논리였습니다. 즉 저는 머리는 반권력으로, 신체는 권력융합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으며, 농업 속에서도 공항에 반대하는 이론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산리즈카의 농민들은 유기농업과 농업살리기를 실시하였으며, 이것은 [투쟁만들기]와 일치하였다. 유기농법은 이후 농가의 야채를 도시에 직판하여 소비자와 연결하는 원파크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농민들은 1992년부터는 나리타원탁회의를 개최하여, 공항 주변을 새로운 대안 공동체로 만드는 실험마을(實驗村)구상을 제안하였으며, 95년1월 운수성 주최로 [지구적과제의 실험마을(實驗村)] 구상을 위한 회의 및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현재까지 [실험마을] 운동이 한참 진행중이다. 실험마을 운동의 구체적인 성과를 지금의 단계에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고속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논리에 저항한 산리즈카 투쟁이었던 만큼, 산리즈카를 새로운 삶의 공동체로 만들기위한 농민들의 저항은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9. 결론 산리즈카 투쟁을 한마디로 평가하기에는 쉽지 않다. 농민들은 자시들이 전개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싸웠지만, 결과는 공항건설과 농업의 피폐, 거주지의 이전, 잠정 활주로의 건설을 보게되었다. 많은 농민들은 국가의 프로젝트에 의해 삶의 공간을 잃고 이주해야 했다. 표면상 공항건설은 산리즈카 투쟁의 패배로 인식되지만, 국가전략 또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눈에 보이지않는 커다란 승리였다고 자찬하기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패배의식은 농민보다도 좌파세력에게 강하다. 투쟁에 참여한 좌파세력들은 농민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었기에 공항건설을 끝으로 운동의 전선에서 이탈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산리즈카투쟁을 또 하나의 정치투쟁의 장으로 인식한 것에 불과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수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많은 촌락들이 고도 경제성장의 파도에 동승하여, [진보]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때, 산리즈카 농민들은 [보수]라는 깃발을 들고,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어긋난 선택을 하였다. 이러한 산리즈카 농민들의 [어긋난 선택]은 산리즈카 투쟁의 [사상의 발로]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정책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후 일본의 사회운동의 새로운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산리즈카 농민들의 저항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진보운동 속에는 근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논리가 항상 강하게 지배하고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산력 중심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산리즈카 농민들은 이러한 생산력 중심의 공동체 재편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재구성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결국, 보수가 진보를 극복하고 새로운 진보철학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데에 신선한 충격이 있다. 산리즈카 투쟁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진보진영에게 전통적인 공동체의 보호와 새로운 공동체의 재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어려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항반대동맹의 간부인 야나가와 씨가 대중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은 산리즈카가 추구하고자했던 시대적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생활의 편리추구가 매일매일 만연하고있던 고도 경제성장, 그 한가운데서 산리즈카의 농민들은 [절제의 사상]을 실천하였다. 산리즈카 투쟁이 일어난 수년간, 반대동맹에 속한 농촌은, 주변의 농촌에 비교하면 수년은 [뒤떨어진] 느낌이다. 거기에는 전통적인 농가의 순수함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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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환경정의가 필요하다

  • 등록일
    2005/03/23 10:23
  • 수정일
    2005/03/23 10:23

프레시안에서 "환경귀족이 환경운동을 망치고 있다"는 글을 읽고

이제야 좀 바른 말들이 나오는가 싶다. 

 

그래서 환경정의가 필요한 거다.

환경 파괴가 누구에 의해 자행됬고,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갔으며,  

대책와 정책은 누구를 위해 수립되는가?를

꼼꼼히 따져 묻고 저항하지 않으면

그 환경운동이란 결국 권력을 갖은 자 편에

서게 될 수 밖에 없다.

 

예전에 반다나시바의 글에서 전지구적 환경파괴를

타이타닉 호에 비유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부유한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특실과

아이들, 여자들, 가난한 이들이 있는 배 가장 밑바닥의 3등실로 나누어진

그 거대한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을때,

구명보트는 가장먼저 이 특실 손님들의 차지가 되고,

3등실에서 갑판으로 오는 통로는 선원들에 의해 봉쇄된다.

 

지율스님의 투쟁만큼

우리사회를 그대로 비춰 보여준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값진 성과를 얻은 거다.

가진자를 위한 사회 시스템과 정부, 관리, 뿐만 아니라

자칭 풀뿌리를 대변한다는 거대 환경운동, 시문운동의 모습은

지율이라는 거울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거대한 타이타닉의 체제,

개발성장, 착취와 환경파괴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자본주의 체제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환경운동은  유사시에 소수의 인원만을 태울수 있도록

구명보트를 마련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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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귀족'이 환경운동을 망치고 있다"  
  "때깔나는 자리만 찾아다녀" "권력인줄 착각해 폼 잡고 겉멋 부려"

    
   최근 '환경운동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환경운동 안팎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민과 유리된 환경운동이 급속히 제도화되고 있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어 주목된다.
  
  "'환경 귀족'이 환경운동의 위기 부추겨"
  
  최근에 나온 <환경과생명> 2005년 봄호(통권43호)는 이례적으로 편집자의 글과 외부 필자의 기고글을 통해 현재 환경운동의 모습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성익 <환경과생명> 주간은 '풀뿌리와 함께, 현장으로'라는 글에서 "전국의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비장하게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했지만 시민 여론의 반향은 냉랭했고, 천성산 싸움도 지율스님 개인의 고독한 정진이 두드러졌을 뿐 환경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한 역할은 미미했다"며 "그 와중에 우리 국토를 치명적으로 망가뜨릴 각종 법제와 정책들이 쉼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였다"며 환경운동의 현실을 진단하며 글을 시작했다.
  
  장 주간은 "다양한 진단과 분석이 있겠지만, '환경 귀족'의 문제를 우선 짚어보아야 한다"며 "노동운동 본연의 순수한 운동성, 진정성,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자본과 타협함으로써 변질과 오염의 길을 걸은 '노동 귀족'에 빗댄 '환경 귀족' 문제를 우리 환경운동에서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환경운동은 눈부신 초고속 압축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 성장 과정에서 언론의 각광과 대중적 명성을 독과점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환경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개화시키는 소중한 공적을 일궈냈음에도 오늘날에 와서는 환경운동의 진정성, 치열성, 순수성을 훼손함으로써 환경운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사회적 지지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환경운동의 힘이 갈수록 커지면서 운동 단체를 마치 기업체처럼 운영한다든가, 대중의 추앙과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때깔 나는' 자리만 찾아다닌다든가, 현장의 풀뿌리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보다는 고위 관료ㆍ정치인ㆍ기업체 간부ㆍ기자 등과 같이 '힘깨나 쓰고 권력깨나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든가, 여기저기 행사장마다 얼굴 내밀고 사진 찍고 악수 나누는 일에 몰두한다든가, 언론에 입맛에 맞는 운동 주제와 방식을 선호함으로써 언론에 보도된 양으로 해당 운동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든가 따위의 건강하지 못한 관행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마치 무슨 큰 권력이라도 쥔 것 같고 대단한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폼 잡고 겉멋 부리는' 운동을 펼쳐 오지는 않았느냐"며 '환경 귀족'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환경운동에 대해 지지와 성원을 철회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이 위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환경운동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전국의 환경 파괴 현장을 순례한 초록행동단. ⓒ초록행동단

  "정부 들러리만 서는 환경운동, 아직 제도화할 단계 아니다"
  
  <환경과생명>에 '환경의 위기인가, 환경운동의 위기인가'를 기고한 한겨레신문사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환경운동의 제도화'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 기자는 "정부가 겉으로는 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의 양립을 추구하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권위주의적 국가는 여전히 개발 이데올로기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꽃피어 환경과 경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서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한국의 환경운동이 체제 안의 파트너십에 안주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조 기자는 "아직 한국에서 환경운동은 제도화할 단계가 아니며 뒤집어 얘기하면 체제 속에 안주하는 환경운동은 대중의 불신 속에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ㆍ노무현 두 정부 들어 정책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환경운동은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며 "환경운동이 체제 안에 자리를 잡을수록 활동가들은 하는 일은 많아지면서도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활력을 잃지 않은 반핵 운동과 자연 생태 분야에는 현장과 지역 주민이 있다는 특징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익 주간도 동감을 표시했다.
  
  장 주간 역시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거나 정책 과정에 참여하면서 운동의 원칙과 기준이 훼손되는 것이 문제"라며 "특히 환경운동이 정부와 같은 일을 하는 데는 '힘의 균형'이 중요한데 여러 가지 층위에서 국가와 자본의 힘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환경운동은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에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장 주간은 또 "환경운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대개 격렬한 갈등이 불거진 다음 사후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라며 "이 경우 심하게 말하면 정부가 골치 아픈 일의 '설거지'를 환경단체에게 떠넘기는 격이라고 할 수 있고, 정부가 저지른 일의 사후적ㆍ결과적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은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도 이미 <창작과비평> 2005년 봄호(통권127호)에 기고한 '위기의 환경운동, 이제 변해야 한다'에서 제기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글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정책수립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시민들을 좋게만 보지 않는다"며 "어떤 때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극단적인 반대 운동을 벌이면 시민들은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이 좀더 원칙에 입각해 한계를 분명히 정한 상태에서 정부와 관계를 맺어나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입맛 따라 골라먹는 언론 의존도 피해야"
  
  한편 10여년 이상 환경운동의 목소리를 정확히 보도해온 조홍섭 기자가 환경단체의 지나친 언론 의존을 꼬집은 것도 눈길을 끈다.
  
  조 기자는 "언론 기관은 아무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운동 단체가 아니며, 대중 매체가 생산하는 담론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소비자이지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들이 아니라"며 "환경단체로서는 언론을 상대로 한 활동이 효과적으로 보이겠지만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 골라 먹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을 활용하는 기술이 특출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린피스조차도 언론을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며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은 필연적으로 대중과의 직접 소통을 소홀하게 만들고 대중이나 현장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을 꺼리는 운동가는 이미 활동가보다는 기업체 홍보 담당자에 가깝다"고 일침을 놓았다.
  
  장성익 주간은 "환경운동의 위기는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그리고 제대로 이겨내야 한다"며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환경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풀뿌리 대(민)중 속으로, 현장 속으로, 지역과 생활 속으로 환경 운동의 뿌리와 더듬이가 뻗어 나가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끝내 지켜야 할 자리는 현장이며, 온 정성을 다해 만나야 할 사람은 풀뿌리들이다. '높은 곳'에 서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자. '높은 자'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낮은 자'들과 어깨동무하자. '부안'의 경험에서 여실히 보았듯이, 국가와 자본에 가장 강력하고도 끈질기게 맞설 수 있는 참된 저항의 동력은 바로 현장의 풀뿌리들에서 나오는 법이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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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 - 변홍철

  • 등록일
    2005/03/21 09:22
  • 수정일
    2005/03/21 09:22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을 둘러싸고, 또한번 '반일 열풍'이 불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처럼 하나의 목소리로써, 이 사태를 '도발'로 규정하고 일본정부와 우익을 규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이 군국주의화, 팽창주의화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라는 우리사회 전반의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는 물론 정당하다고 본다. 특히나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문제 등 과거사 왜곡의 문제 등과 겹쳐,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각별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독도 문제'를 두고, 우리사회가 갑자기 좌와 우도, 여와 야도 없이 획일화된 목소리로 '반일'을 외치는 이같은 상황을 결코 건강한 사회적 반응이라고 두고 보기에는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어제(3월 16일) 민주노동당의 소위 '지도부'가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사태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은 평소 관심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지켜보던 한 시민으로서,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소위 진보정당다운 신중하고 품격있는 발언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 특히 최근 들어 '천성산 문제'등 주요현안과 관련해 비교적 성실한 태도로 대응하여온 것과 아울러 '2005년 당 사업계획' 등에서 환경 관련 내용을 주요한 사업 목표로 채택하는 등 의미있는 변신의 노력을 민주노동당 스스로 기울이고 있다고 전해 듣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 이번 독도 사태 관련 성명의 내용이 상당히 실망스러울 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열기(광기에 가까운)의 확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진보정당의 역사적/사회적 책무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팽팽한 긴장 대신, 은근슬쩍 분위기와 시류에 편승, 영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다른 것은 두고라도, 독도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면서, '독도 국군주둔', '독도 개발' 따위를 주문했다는 것을 읽고는, 차라리 수치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다만 민주노동당이라는 한 '진보정당'의 입장이고 그 수준의 반영이라면 우리가 새삼스레 이러한 입장 표명에 대해 우려를 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진보' 혹은 '좌파'의 관점과 입장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장과 개발 논리, '국익'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와 유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민주노동당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과 현재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니 오히려 현재 전반적인 '반일' 분위기는 이러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어제, 민간인의 독도 입도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되도록 자유롭게 독도를 방문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국민 여론'에 대한 나름의 수렴과 판단을 거친 것임을 짐작할 때에, 상황전개가 앞으로 상당히 우려스러운 쪽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다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성명으로 돌아가서 -- 그 작고 여린 돌섬 위 어디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섬의 어느 부분을 개발하라는 것인가! 독도를 우리의 '소유'로 다시한번 '확인'하기 위해, 그 작고 여린 섬을 마치 '새만금'이나 '천성산'처럼 메우고 구멍을 뚫어 '개발'함으로써, '경제성장'과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독도에 해상 러브호텔이라도 짓고, 요즘 그 악랄하게 진행되는 골프장 열풍을 동해(일본인들이 '일본해'라 부르는) 한복판까지 불어넣어 해상 골프연습장이라도 세우라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환경, 소위 '국토'를 대하는 우리사회,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의 저열한 인식 수준을 무심결에 드러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진보정당은 두고라도,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발'을,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뱉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좀더 근원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과 언어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러 한 때에 '국익'의 이데올로기적 광기에 합류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차라리 우리는 일본의 시민사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백번 옳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은 그러한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소유(영유)'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리석은 자본과 국가의 개발/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섬인 이 아름다운 섬을 당신네 지도자들과 우익 세력이 굳이 이제와서 차지(소유)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굳이 이런 식으로 우리 평범한 민중의 삶 속에 긴장의 날을 세우려 하는 여러분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획책하려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당신네 일본 정부가 과거, 우리 한국의 민중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끼쳤는지 여기서 새삼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 한국 민중은 이번 독도에 관한 당신들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에 그랬듯이 또다시 동북아시아와 세계에 '제국주의적인 힘'으로써 팽창해 나가겠다는 터무니없고 부도덕한 야심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우려는 여러분, 일본 민중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팽창과 정복, 전쟁에의 유혹은 어느 나라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세력과 권력엘리트들의 것이지, 하루하루를 노동하여 정직하게 먹고사는 풀뿌리 민중의 이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일본의 형제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민중은 원래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거나 함부로 훼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다고 우리 조상들로부터 배워왔습니다. 아마 당신들 일본의 풀뿌리 민중도, 당신들 지배자나 탐욕스런 우익들과는 달리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모든 양심적인 시민 여러분! 우리, 제발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국 풀뿌리 민중의 오랜 지혜와 전통에 입각하여, 독도가 독도로서, 자연이 자연으로서 그냥 아름답게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것은 국가를 뛰어넘어 우리 모든 민중의 의무입니다. 제발 자연을, 독도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같이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맙시다. 독도는 독도이기도 하고, 당신들에게는 '다케시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이 정도의 발언으로써, 저들을 '부드럽게 설득 혹은 제압'하는 것이 백번 정당한 처사이다. 우리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전세계 풀뿌리 민중의 국제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원칙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되며, 더구나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인류보편의 비전을 놓쳐서도 안된다.

특히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자칫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광기가 더욱 확산될 수도 있는(이것은 전체 민중과 진보진영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사태에, 부디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을 엄중하게 촉구한다.

특히 오는 20일로 예정한 민주노동당 대표단과 의원단의 독도 방문을 재고하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럴 바에는 일본의 진보세력 및 양심적/평화적 시민단체들과의 긴급 회동을 기획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동북아시아 평화를 풀뿌리 민중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협력하는 연대의 기회로 삼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필요하다면, 그러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도모하고 리드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이 나름의 구실을 해 줄 것을 충심으로 촉구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팽창주의를 경계하고, 한-일 민중과 평화주의 세력의 연대로 이러한 '도발'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물론 긴급한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과제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대응(처방)'은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라크 침략전쟁에 우리 군대를 파견해 놓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철군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전범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지고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일본의 팽창과 군국주의화만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천성산과 새만금 파괴, 골프장과 기업도시 열풍과 같은 반환경적, 반민중적 거대국책사업으로, 우리 땅 전체와 민중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이 참혹한 '일상의 전쟁상황'을 우리가 제지하지도 못하면서, 독도의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독도를 '개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사회 진보정당의 수준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본의 파렴치함과 야욕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이즈미가 가당찮게도 양국 정부의 '냉정'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분명히 냉정을 찾아야 하며, 문제의 본질을 우리의 변함없는 원칙 속에서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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