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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06
    성폭력 없는 충북을 꿈꾼다. (2005년 9월 6일)
    꽃마리
  2. 2005/11/06
    우리 부부의 부모역할 배우기
    꽃마리
  3. 2005/11/06
    내 아들은 문수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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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1/06
    생명 그 위대한 신비 제 2편을 보고나서
    꽃마리
  5. 2005/11/06
    미나리밭에서 찍은 산호랑나비 유충
    꽃마리
  6. 2005/11/06
    천성산 답사에서 찍은 도룡뇽알
    꽃마리
  7. 2005/11/06
    우리동네 고추좀잠자리
    꽃마리
  8. 2005/11/06
    호랑나비의 애벌레 4령
    꽃마리

성폭력 없는 충북을 꿈꾼다. (2005년 9월 6일)

 

성폭력 없는 충북을 꿈꾼다.


(전)영동군성추행 사건이 지역에 알려진지 벌써 넉달이 다되어 간다.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 사건도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때 일어나는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진행되는 일종의 시나리오가 있다. 모든 가해자들은 끝까지 사실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형사상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상으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는 성폭력 사실 공개가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는 사회적 통념과 가해자의 인권 보호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버린다.

가해자의 명예훼손고소는 “고소까지 한 걸 보니 정말 결백한가 보다.”라는 강력한 부인효과를 가져오며, “아무리 성폭력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서는 안된다.”는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논리로 피해자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며, 피해자를 압박하여 위축시키고, 성폭력 피해와 저울질 할 수 있는 명예훼손피해를 구성해냄으로써 성폭력 가해의 책임을 덜고 협상조건 만들어 낸다.(“서로 고소 취하하기로 합의하자”)(전희경,2003)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난계국악단 노조원들,(전)영동군부군수 성추행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도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성추행 사건의 고소인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피고인이 되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봉급의 50%가 차압되고 있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영동부군수는 고위공직자인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이 사건이 청주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된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등의 2차 가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가해자의 이러한 행위들은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았으며, 피해자들은 지역과 소속단체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 어떠한 음모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등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철저히 가해자 중심 사회이며, 공권력도 여성피해자들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청주지방노동사무소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건의 조사기간동안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피해자들은 조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 연가를 내야 했고, 가해자와 참고인들은 공가를 내고 조사를 받았다. 세세한 일들은 너무 많아 다 열거할수 조차 없다.

이 사건이 직장내 성희롱으로 판결이 난다면 그동안 청주지방노동사무소의 판결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충청북도는 즉각 가해자를 징계하고 그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충북도민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철저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성희롱 판결여부와 관계없이 이 사건이 성폭력없는 충청북도와 성인지적 도정운영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라며 우리 지역이 성평등 사회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마지막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사건을 공개하고 끝까지 싸운 피해자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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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부모역할 배우기

  이 글은 교육잡지 ‘좋은 엄마’에 2001년 11월 실렸던 것입니다.

                                            우리 부부의 부모역할 배우기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많은 부모들이 태어날 아기에 대해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나 태어난 후에도 계획을 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계획을 세우려면 아기의 발달단계, 상태와 요구, 정서적 특성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동발달에 관한 일반 이론뿐이었기 때문이다. 또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계획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신도 없었고 똑같은 아이라도 상황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부모가 일방적 계획을 강요하면 아기의 내적 동기가 마르고 정서적 의지적으로 쇠약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아기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원칙을 합의하고 공동의 규범을 만들기로 하였다. 우리가 세운 원칙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기로부터 배우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아기의 요구와 관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을 바르게 세워 아기가 우리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어있는지 따져보았다.
그 기준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 우리가 정말 아이를 원하고 있는가?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가?
둘째, 안전하고 따뜻한 보호와 일관된 지원을 할 수 있는 가족적,사회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가?
셋째, 아기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반응할 수 있는 문화적 능력이 있는가?
그 가운데 첫째, 둘째 조건은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었다. 둘 다 아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우리가 연애경험을 통해 얻은 것, 즉 서로에 대해 깊이 몰두하고 서로의 감정과 요구, 기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결속했던 경험은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부부는 가사를 완전히 분담하고 있는데다가 육아 역시 그러한 원리에 따라 분담한다면 아내의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아기의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교육환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세 번째 조건이었다. 아기와 즐겁게 놀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 지 그 방법과 기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쉬운 것부터 생각하기 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상호작용의 상황, 즉 아기가 잠잘 때, 엄마 아빠와 마주보고 놀 때, 다른 아기랑 놀 때, 놀이감을 가지고 놀 때, 옹알이 할 때, 우유를 먹일 때, 어떤 것이 적절한 상호작용인가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아기의 다양한 놀이자원들인 동작과 표정, 말, 극 놀이, 놀이감을 가지고 애들과 노는 방법에 대해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제대로 마음에 드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임신 5개월쯤 되어 아기가 뱃속에서 움직인다는 말을 듣고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이제 아기가 태어나면 자장가도 불러주어야 하는데, 나는 자장가도 부를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의 깨달음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가 생각한 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많은 부모들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해 두었을 테니까 그것을 찾아 쓰자는 것이었다. 모든 사회는 사회 전체가 공감 속에서 참여하고 전승하는 문화규범인 육아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수 천년 동안 전승되는 과정에서 아기가 가장 좋아하고 아기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데 우리의 생각이 일치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동발달 단계는 다를 것이 없고, 그때 아이들한테 좋은 것은 지금 애들한테도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자장가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놀이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녔다. 우리 어머니한테 배우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기 때문에 우리 집의 문화유산을 복원할 수는 없었다. 배울 때는 가사와 장단뿐만 아니라 표정, 호흡, 분위기 연출 능력을 그대로 따라 배우기에 노력했다. 놀이와 이야기 등은 민중들이 자신들의 집단 경험과 기억을 전달해온 매체이고, 이러한 말과 행동을 통한 전승 방식은 글을 통한 방식과 달리 당시 상황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표정 하나 하나 까지 인류의 발달 과정 속에서 쌓여온 빛나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사한 내용은 우리 아기와 다른 연구원들의 아이들에게 상호작용의 매개체로 사용했는데, 아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창조적인 모습으로 자라났다. 노래와 놀이, 수수께끼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즉흥성을 보여준다. 우리 아들 한뫼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집 가까이 있는 풀밭이나 뒷산에서 살다시피 하는데  그때 발견하는 식물과 나비, 벌, 지렁이들이 모두 이야기와 노래로 표현된다. ‘꿩꿩 장서방’이라는 노래를 가지고 주변 동식물을 배워나가는데, 아마 도시에 있는 부모들은 동식물의 이름과 서식지, 먹이 등의 생태에 대해서 한뫼와 막히지 않고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와 연구원들의 변화도 많았다. 모두가 이야기꾼, 소리꾼이 되었고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통합교육과 지역화 교육에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러한 경험을 공동육아 어린이집, 한국 보육교사회, 초등학교 교사들, 유치원 선생님, 초등학생, ‘아리수’와 같은 전문 문화패들에게 강습을 했고, 작년에는 국립 국악원에서 교사들을 위한 전래노래와 놀이 연수를 1년 동안 전담했다.
우리는 학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상호작용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글자를 가르친 적도 없고 억지로 책을 읽어 준 적도 없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든, 사람을 대하든 그 상황에서 민감하게 느끼고 행동하면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인데, 책은 아이들의 첫 번째 경험을 왜곡하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본능적인 힘을 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의 육아법에 대해 정서 사회성 발달은 되겠지만, 인지발달에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는 정서적 능력이야말로 사회성 발달, 인지 발달의 기초가 되고 그 모든 것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접점이 이야기요, 놀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 소리꾼, 이야기꾼은 총기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는 원래 좋은 것도 있었겠지만 놀이와 이야기 통해서 그 능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운율구조와 이야기 구조는 글이 없는 시기에 집단의 기억을 전승하는 방법으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놀이를 통해 아이를 기른 것은 아이들에게 글읽기나 개념적 사고 등을 배우도록 지나치게 재촉하는 풍토에 대해 반대하기도 하지만, 놀이야말로 아이들의 능력을 어떤 부담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전면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놀이와 이야기를 가볍게 보는 것은 과학적 사고의 영향인데 그 과학 즉, 교육학, 생리학, 심리학, 신경과학들이 이제는 이야기나 놀이가 인간 발달에 가지는 의미를 깨닫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에는 우리와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 동안 교육운동을 해 오면서 느낀 것은 부모들의 조바심과는 달리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순간 그 내용을 공부하는 것이 싫고 생활과 분리된 개념적 사고가 너무 낯설기 때문에 공부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제도 개혁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아이들과 놀 줄도 알고, 아이와 삶의 구체적인 의미를 공유하는 생활양식을 만들어 가야한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한 사람을 깊이 있게 사랑하고 애착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참다운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부모와 아이들의 애착관계를 만들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빼앗고, 그 잠재력을 국가권력과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쥐어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부모가 자기 아이들의 사회적 성공만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다른 사람, 꽃, 동물, 가치들에 대한 애착관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아이, 나아가 아이들 세대 전체와 교류를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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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문수동자

이 글은 교육잡지 ‘좋은 엄마’에 2001년 5월 실렸던 것입니다.

                                                     내 아들은 문수동자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 재 현

  10여 년 전 오대산 상원사로 답사를 가서 문수동자상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 체형에 살이 토실토실 쪄있는 문수동자를 보면서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이 어린이로 형상화 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노인의 지혜가 존중되는 농경사회에서 어떻게 그러한 형상화가 가능했는지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길러 보면서 왜 문수보살을 어린이로 형상화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기는 호기심의 덩어리였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고,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저 산은 왜 저렇게 생겼어?”, “왜 이 산은 높고 저 산은 낮아?”, “ 장미꽃은 왜 빨개?”, “왜 김치를 먹어야 되지?”  등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개념적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감성과 이해 수준에 맞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모든 부모와 사회집단이 직면했던 현실이었고, 이로 인해 한 사회가 교육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의 호기심은 강력했지만 또 한 없이 연약한 것이었다. 내적 동기가 부여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과 상황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반응이 없을 경우 바로 그 불꽃이 꺼져 버렸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과 함께 협조적이고 반응이 풍부한 지역사회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 공동체 교육에 대해서 진지한 접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옛날 마을에서의 육아방식들 아이 어르는 소리, 아이들노래(전래동요), 이야기를 복원하고 마을의 자연환경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아이들 발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또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가정, 어린이 집, 학교, 마을 사람들간에 가치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인간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하고, 이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마을공동체교육 연구소를 만들었다. 아들이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 문수동자였던 셈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 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이 세계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한 관심이고, 진정한 교육열이라면 아이들의 삶에 진지하게 참여할 때 가능한데, 아이들의 요구를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참다운 교육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학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사람의 교육적 성취는 지능이나 적성, 끈기 등 개인적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마을 등 관련 사회단체의 지원과 협력, 공감적 반응, 수용적 태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요즘 학교교육에서 경쟁이 아니라 협동학습이 강조되고, 통합교육, 지역화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와 지역사회, 교사가 지역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교육자원으로 개발하고 자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또래 관계, 가정, 마을에서의 사회적 상황과 경험, 자연환경을 스스로 발견하고 아이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공부하고 공동체적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는 자기 자식만을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있는 인간으로 기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부모들은 참으로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내적인 동력이 경쟁 속에서 소모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부모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 그 때 마다 몇 가지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하는가? 집(마을) 가까이 있는 산 이름과 생태환경을 알고 있는가? 살고 있는 마을의 역사를 아는가? 마을(아파트단지)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시선을 아이들 전체와 공동체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좋은 엄마 독자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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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위대한 신비 제 2편을 보고나서

10월 7일날 생명 그 위대한 신비 2편을 보았다. 처음에 사회자(모리 마모루)가 박테리아의 탄생을 쉽게 얘기했다.
40억년 전에 처음으로 지구에 박테리아가 생겨났다.그리고 20억년 전에는 진핵세포가 만들어지고 다시 10억년 뒤에는 다세포 생물이 생겨났다.

우리의 조상은 피카이아라는 민달팽이 생김새의 생물이다.피카이아는 등에 척수라는 것이 있다. 그게 오늘날의 등뼈로 진화했다. 또 오파비니아는 눈이 다섯개나 있다. 그 다섯개의 눈은 주로 망을 볼때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도 피카이아와 비슷한 동물을 볼수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창고기라는 어류는 눈도 입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양분을 섭취할까? 그건 바닷물을 빨아들여 아가미에서 유기물을 걸러 양분을 섭취한다.피카이아도 이렇게 양분을 섭취 헸을 거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캄브리아기때 가장 크고 무서운 포식자였다. 옛날 과학자들은 아노말로카리스의 척수를 새우를 닮은 동물이라 생각했고 입은 해파리닮은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리 휘팅턴박사가 해파리닮은 것은 입이고 새우닮은 동물은 척수라는 걸 알아냈다.

미국 로키산맥에서는 10만개도 넘는 화석이 발견했다고 한다. 모든 생물다양성은 캄브리아기 때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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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밭에서 찍은 산호랑나비 유충

미나리밭에서 찍은 산호랑나비 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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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답사에서 찍은 도룡뇽알

천성산 답사에서 찍은 도룡뇽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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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고추좀잠자리

 

내가 찍은 고추좀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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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의 애벌레 4령

 

우리집 앞마당 탱자나무의 호랑나비 애벌레 4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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