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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없는 충북을 꿈꾼다.
(전)영동군성추행 사건이 지역에 알려진지 벌써 넉달이 다되어 간다.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 사건도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때 일어나는 절차를 그대로 밟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진행되는 일종의 시나리오가 있다. 모든 가해자들은 끝까지 사실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형사상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상으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는 성폭력 사실 공개가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는 사회적 통념과 가해자의 인권 보호라는 말로 정당화되어 버린다.
가해자의 명예훼손고소는 “고소까지 한 걸 보니 정말 결백한가 보다.”라는 강력한 부인효과를 가져오며, “아무리 성폭력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서는 안된다.”는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논리로 피해자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며, 피해자를 압박하여 위축시키고, 성폭력 피해와 저울질 할 수 있는 명예훼손피해를 구성해냄으로써 성폭력 가해의 책임을 덜고 협상조건 만들어 낸다.(“서로 고소 취하하기로 합의하자”)(전희경,2003)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난계국악단 노조원들,(전)영동군부군수 성추행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도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성추행 사건의 고소인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피고인이 되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봉급의 50%가 차압되고 있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영동부군수는 고위공직자인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이 사건이 청주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된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등의 2차 가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가해자의 이러한 행위들은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았으며, 피해자들은 지역과 소속단체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 어떠한 음모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등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철저히 가해자 중심 사회이며, 공권력도 여성피해자들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청주지방노동사무소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건의 조사기간동안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피해자들은 조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 연가를 내야 했고, 가해자와 참고인들은 공가를 내고 조사를 받았다. 세세한 일들은 너무 많아 다 열거할수 조차 없다.
이 사건이 직장내 성희롱으로 판결이 난다면 그동안 청주지방노동사무소의 판결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충청북도는 즉각 가해자를 징계하고 그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충북도민들에게 머리숙여 사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철저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성희롱 판결여부와 관계없이 이 사건이 성폭력없는 충청북도와 성인지적 도정운영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라며 우리 지역이 성평등 사회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마지막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사건을 공개하고 끝까지 싸운 피해자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은 교육잡지 ‘좋은 엄마’에 2001년 5월 실렸던 것입니다.
내 아들은 문수동자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 재 현
10여 년 전 오대산 상원사로 답사를 가서 문수동자상을 본 적이 있다. 어린이 체형에 살이 토실토실 쪄있는 문수동자를 보면서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이 어린이로 형상화 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노인의 지혜가 존중되는 농경사회에서 어떻게 그러한 형상화가 가능했는지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늦게 결혼해서 아이를 길러 보면서 왜 문수보살을 어린이로 형상화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기는 호기심의 덩어리였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고,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저 산은 왜 저렇게 생겼어?”, “왜 이 산은 높고 저 산은 낮아?”, “ 장미꽃은 왜 빨개?”, “왜 김치를 먹어야 되지?” 등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개념적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감성과 이해 수준에 맞아야 하는데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모든 부모와 사회집단이 직면했던 현실이었고, 이로 인해 한 사회가 교육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의 호기심은 강력했지만 또 한 없이 연약한 것이었다. 내적 동기가 부여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과 상황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반응이 없을 경우 바로 그 불꽃이 꺼져 버렸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과 함께 협조적이고 반응이 풍부한 지역사회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고, 공동체 교육에 대해서 진지한 접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옛날 마을에서의 육아방식들 아이 어르는 소리, 아이들노래(전래동요), 이야기를 복원하고 마을의 자연환경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아이들 발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또 다양한 생활 환경 속에서 가정, 어린이 집, 학교, 마을 사람들간에 가치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인간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하고, 이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마을공동체교육 연구소를 만들었다. 아들이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 문수동자였던 셈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 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이 세계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아이들의 자라남에 대한 관심이고, 진정한 교육열이라면 아이들의 삶에 진지하게 참여할 때 가능한데, 아이들의 요구를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참다운 교육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학의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한사람의 교육적 성취는 지능이나 적성, 끈기 등 개인적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마을 등 관련 사회단체의 지원과 협력, 공감적 반응, 수용적 태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요즘 학교교육에서 경쟁이 아니라 협동학습이 강조되고, 통합교육, 지역화교육이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와 지역사회, 교사가 지역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교육자원으로 개발하고 자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또래 관계, 가정, 마을에서의 사회적 상황과 경험, 자연환경을 스스로 발견하고 아이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공부하고 공동체적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는 자기 자식만을 경쟁사회에서 이길 수 있는 인간으로 기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부모들은 참으로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들의 내적인 동력이 경쟁 속에서 소모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부모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 그 때 마다 몇 가지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하는가? 집(마을) 가까이 있는 산 이름과 생태환경을 알고 있는가? 살고 있는 마을의 역사를 아는가? 마을(아파트단지)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시선을 아이들 전체와 공동체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좋은 엄마 독자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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