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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지율스님이 단식을 접으셨지만, 천성산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천성산의 진정한 봄을 위해서는 우리들의 끊이지 않는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도룡뇽 100만마리 접기에 힘을 실어주십시요.....
이번 명절에는 공무원 노조를 하시다 해고되신 도련님이 귀향 선전전을 하신다고, 좀 늦게 오셨다...... 고생이 너무 많으시다. 도련님 화이팅!!!
그래서 동서도 5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나는 아침에 빠뜨린 물건들을 장을 보고, 어머님 설빔도 사고, 조카들 설빔을 사느라 분주하게 보내고, 신랑은 집주변 대청소를 했다. 밀린 분리수거 쓰레기들도 가져다 버리고,우리는 시골이라 분리수거 쓰레기들을 차에 싣고, 면사무소로 가져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를 해서 가져가라고 해야 하므로 번거로워서 그냥 가져다 준다....
3시가 되니 큰 도련님이 오셨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니 큰 도련님은 일거리를 벌써 찾아 떡을 썰고 계셨다.
늦게 시잔한 음식준비, 마음속으로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남자들이 명절에 같이 음식을 하므로 그렇게 큰 걱정을 없었다. 본격적으로 음식준비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음식들이 채반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두번 해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준비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나는 재료를 썰고 배합하고, 후라이팬 앞에 큰 도련님과 작은 도련님이 앉으셔서, 동그랑탱, 버섯전, 동태전, 산적등들을 부쳐내셨다. 우리 신랑은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떡을 썰고 밤껍질을 벗기고......
3-4시간만에 음식준비가 마무리가 되었다.....
음식준비가 얼추 끝나가자 막내 아가씨가 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잔 하였다....
저녁 먹고 설거지는 남자들이 해치우고......
우리 집에서 이런 모습은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추석에는 며느리들이 돌아가면서 친정으로 명절을 지내러 간다..... 우리는 3형제인데, 모든 명절에 며느리들이 친정에 돌아가면서 가면, 온 식구가 모일 기회가 없으므로 추석에만 돌아가면서 가기로 했다....
제사에는 당연히 남여를 가리지 않고 참여하며, 집안의 대소사는 명절에 간단한 가족회의를 하여 상의하고 결정한다....
평등명절, 어렵게 생각하면 무척 힘들고, 먼 이야기지만, 온 식구들이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힘든 일만은 아닌다......
물론 남자가 먼저 움직인다면, 훨씬 더 쉽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온 나라에 평등명절의 웃음소리가 넘치기를 바라며.....
평등명절을 위해 노력한 여자, 남자 모두 화이팅^^
근 20여일간의 천성산 살리기 촛불 집회 때문에 내 블로그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난 겨우 20여일 집회에 참가했지만, 지율스님은 100일을 넘게 뭇생명들을 살리고자 애를 쓰셨다.
스님, 어서 건강을 회복하셔서, 천성산과 그 산의 생명들과 봄을 같이 맞이하셔야지요!
저희도 그 희망찬 봄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20여일간의 청주 철당간 천성산 살리기 촛불 집회중 한 장면....
내가 학교에 몸 담고 있지만, 항상 벗어나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학교이다.....
자율이 존재하지 않는 곳, 지시가 항상 우선하는 곳...
발령받고 몇 년동안은 정말 학교는 바뀔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움직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어언 10면...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학교운영위, 예산심의,공개, 교육내용의 변화등등
그런데 한가지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학교의 구조이다.
교장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하는 학교.. 교사들의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는 학교구조...
그러다 보니, 학교는 숨이 막히는 일종의 수용소가 된다.
교사들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요구되는 대로 교육을 해야 한다...... 그 안에서 희생되고 있는 우리 아이들
한뫼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커왔던 한뫼는 학교가 일종의 감옥 같았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있어서 학교에는 가고 싶었지만, 학교가 요구하는 시스템을 수용하지 못했다.
집에서의 요구와 학교에서의 요구가 달라지자, 아이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숙제는 불필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아빠
숙제는 꼬옥 해와야 한다는 하는 선생님 사이에서도 아이는 힘들어 했고
체벌은 절대 안된다.라는 아빠와
교육적 체벌은 교사의 권한이며, 꼬옥 필요하다는 교사사이에서는 너무 아파했고....
주변의 자연을 커다란 학습장으로 여기며 같이 공부하는 아빠와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고, 한뫼의 능력을 하찮게 생각하는 교사사이에서는 절망했다.
학교생활 1년 6개월......
결국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있으면 친구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보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더 잃어야 하기때문에......
지금 한뫼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활규칙을 세우며 생활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것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지만, 교육과정, 친구, 학교생활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의 부재의 해결등등
주변 사람들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
<원흥이 생명평화회의 게시판에서 김백주님이 쓴 글을 퍼왔습니다. 상생의 합의라 떠들썩했던 청주 원흥이 방죽, 그 합의 이후의 모습과 상황에 관한 글입니다.>
1. 파괴된 원흥이 방죽
원흥이에 생태공원을 만들고 두꺼비를 살리겠다고 합의한지 1달이 되어 간다. 그 동안 원흥이 방죽 공사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걱정이 되어 몇 사람들과 함께 찾아 가 보았다.
원흥이는 12월 초보다 훨씬 처참하게 파헤쳐진 채 붉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매섭게 부는 바람과 함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 춥게 하였다. 방죽은 여전히 높디높은 흙으로 둘러싸인 섬이었고, 쌓인 흙은 무려 3m이상이나 돼 보였다. 꽁꽁 얼어붙은 방죽은 굉장히 작아진 느낌마저 들었다. 방죽으로 들어오는 물(지표수)길도 차단되어 있었고, 방죽에서 나가는 곳만 물이 계속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의 흙이 너무 높게 쌓인 탓에 공간이 좁아져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싶어 방죽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방죽 왼쪽 곡선지형이 직선으로 잘려 있었다. 방죽 바로 옆 도로공사를 하면서 방죽 쪽으로 5-6m 이상 침범하여 토사가 밀려 내려온 것이다.
벌써 70일이 되었던가...
이러다 스님께 뭔 일이 나지 싶다. 개발의 광풍에 미쳐버린 노무현과 그 똘마니들...
어쩌려고 하는지...
청주의 원흥이도 그 개발의 광풍에 방죽만 하나 덜렁 남아버렸다....
그 원흥이 방죽으로 올해 두꺼비들이 내려와 줄런지..... 정말 걱정이다.
올해 10살인 우리 집 큰 아이 한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 두고 아빠와 집에서 공부한지 이제 6개월 정도 되어간다.
처음에는 사회성 문제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어릴때는 너무나도 공룡을 좋아했고,
크면서는 아빠와 같이 늘 했던 나들이덕분에, 집 주변의 식물을 100여가지 넘게 알고 있으며, 호랑나비 애벌레를 너무나 좋아해 손바닥에 놓고 뽀뽀를 하던 우리 한뫼.....
곤충을 너무나 좋아하고, 집 주변에서 곤충이나 새들을 보면 언제나 엄마나 아빠를 불러 같이 보는 우리 한뫼...
키우면서 너무나 학교문화에 대비하지 않았던 탓일까?
집에서는 모든 문제를 엄마나 아빠와 약속을 정하고, 자신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으면 당연히 항의를 하는 문화에 익숙해 있던 한뫼는 학교를 너무나 힘들어 했다.
학원이라는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고, 항상 밖에서 뛰어놀기만 했던 한뫼는 딱딱한 의자와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고, 1학년인데도 글씨를 엄청나게 써대야 하고, 자신의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인 학교를 너무나 힘들어했다......
더구나 체벌을 하지 않는 우리 집과 달리 학교는 너무나 아이들을 자주 때렸다.
몇 번의 항의와 상담을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고,,,
가족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학교를 그만두자고......
한뫼와 같이 겪은 탈 학교 이야기를 이 블로그를 통해 조금씩 풀어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일을 겪었거나,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과 같이 이 이야기를 나눌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다시 돌아보니 조금은 아프다.^^;;
< 우리 큰 아들과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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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으시네요. 우리 집은 음식을 아예 안하고 외가, 당숙네, 고모네서 얻어오는 음식만도 오래 먹고 전 또 그 얻어온것에서 한 보따리 싸서 서울로 온답니다.(물론 울 엄마도 예전엔 명절때 고생깨나 하셨죠. 할머니 살아계실땐.)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