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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앨범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십수년 전 한영애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한대수의 새앨범이 나왔다.
2001년에 했던 콘서트의 라이브 앨범이 이제야 나왔다.
2001년?
그 땐 한대수에 관심도 없었다.
내가 태어난 해에 데뷔를 했으니 당연히 내 세대 가수는 아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두장짜리 앨범을 받았다.
한대수에게 중독된 내 또래의 기획자가
엮어낸 콘서트였다.
앨범에 쓰인 그의 글을 읽으면서
아-후-!
난 감탄과 한탄과 그리고...
* 한대수의 노래를 올렸는데 자꾸 에라가 났다. 내 블로그에 접속만하면 Explorer가 먹통이되고 말이다. 할 수 없이 노래를 지웠더니 멀쩡하네. 덕분에 저작권법 위반은 면하게 됐네. 된장!
다소 우발적으로 전남 곡성을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열차표도 예매를 못했고, 토요일인지라 아침 8시 기차밖에 없었다.
인환씨는 5시정도 되야 일이 끝나는데 난 4시간 정도 먼저 곡성에 도착했다.
일단 역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두 군데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는 중국집. 예까지 와서 중국집을 가긴 싫었다.
백반을 시켰는데 12가지 반찬에 동태찌게까지 나왔다.
역시 전라도다.
전라도 음식치고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반찬에 만족스런 점심이었다.
기차역에 있는 지도를 보니 5Km 떨어진 곳에 도림사가 있다고 한다.
걷기에도 만만하고, 시간 때우기에도 만만하다.
도림사를 찾아가다 길을 물으니 아저씨가 길을 가르쳐 주면서 하는 말.
"걸어가려고요? 솔찬히 먼데..."

솔찬히 걸어서 도림사에 도착했다.


배경에 묻혀서 처음엔 이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긴장해서 그렇지 실제 모습은 너무나 귀엽다.
하는 짓도 그렇고.
털색깔이 너무 특이해서 마치 들개 같았다.
나하고 잘 놀던 녀석이 다른 등산객들이 지나가자 짖어대기 시작했다.


인환씨가 두 개에 5천원 주고 산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간 그 날에야 시운전에 성공했다.
난로옆에 있는 녀석은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누이.

원래 이름은 '루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종자도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데 이름까지 '루이'라면
자칫 왕따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누이'로. 성까지 같이 부르면 '오누이'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든 녀석이다.
진돌이의 공격으로 한쪽 눈이 빠졌다.

진돗개를 일본으로 데려가 종자개량을 했다는 야키다. (맞나?)

누이와 진돌이는 정말 친구같았다.
진돌이가 너무 사고를 많이쳐서 문제였지만.

기르던 기러기도 물어 죽이고,
좋다고 내게 달려들어 머리로 내 턱을 쳐받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마당 너른 집. 먹고 사는 걸 떠나서 그냥 바라보기엔 너무나 좋아보였다.


드디어 보호대를 풀었다. 그동안 제대로 긁지 못해, 한참을 긁고 문지르고 난리였다.
8살이나 먹었는데, 재롱떠는 것이 너무나 귀여운 녀석이다.

산에서 따온 이름모를 열매로 염색을 해보았다.

인환씨 밭 바로 앞에 있는 저수지.
지난 여름에 여기서 수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수영금지라고 써있지만.

요만큼이 인환씨가 뭘 심어놓은 밭이고,

이만큼이 앞으로 풀뽑고 돌 골라내고 해서 밭으로 일궈야 할 곳이다.
실제로 보면 무지하게 넓다.

수확의 기쁨?
배추씨를 심고 비닐을 덮어놨는데 한달만에 와보니 많이 자라 있었다.




이건 마늘. 따뜻하라고 겨를 덮어놨다.
그리고 섬진강으로 갔다.






사실 사진 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이런 얘기를 쓰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귀농을 선택한 인환씨의 얘기도 들어보고, 그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여기에 쓸까 했다.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걸 느끼고 오긴 했는데, 정리가 안된다.
뭐, 사실 안될 것도 없긴하다. 그런데 별로 쓸 자신이 없다.
쓰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들이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생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하룻밤 자고 오면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주절대는 것이
너무 같잖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초여름쯤에 다시 가기로 했다.
2004년 초에 다녀온 것이다.
아버지께서 병이 나는 바람에, 초여름에 다시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역사적인 날?
아버지는 농사밖에 모르고 사시다가
딸 셋 이후로 나온 쌍동이 아들 녀석들 때문에 장사를 시작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버지가
농사지어서는 자식 교육을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구멍가게를 35년동안 하루도 닫지 않앗다.
심지어 자식들 결혼식 날조차도 몇시간만 잠깐 닫고 다시 열었다.
매일 밤 12시 30분까지, 35년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지 한 참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당신이 만들어 놓은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맞춰사느라 계속 힘이 드셨고 말이다.
아버지는 침대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몇달 째 지속되고 있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서 가게를 계속 열었지만
나나 어머니나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지.
일흔 넷이나 먹은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보고
'뭐할라고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느냐'고 하시면서도
막상 가게문을 닫을 엄두를 못낸다.
어머니가 못하면 나라도 해야지.
스스로 가게를 볼 수 없게된 아버지는
차마 가게문을 계속 열라는 말은 못하고
하고 싶은 데로 하라 했다.
내일 35년만에 우곡상회가 처음으로 쉰다.
간병하는 사람이 편해야 환자에게도 좋다는 말을
계속 되뇌이면서도 자꾸 헛헛한 마음이 들고,
나는 몇 달만에 소주를 먹고 있다.
pan이 아니었으면
그냥 맥주나 한 잔 하고 잠들지 않았을까?
가게에서 파는 고추참치와 번데기 통조림을 따서
소주를 한 잔 하고 있다.
알탕이 어쩌니 곱창이 어쩌니 해쌌는 바람에... ^^
어머니에게 내일 깨우지 말라고 했다.
원래도 깨우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대수
렛츠뮤직에 한달 3천원 내고 음악을 듣고 있다.
저작권 협상이 안되서 들을 수 없는 음악들도 많다.
한대수의 이전 앨범은 살 수가 없어서 그냥
렛츠에서 듣고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들은 유료 mp3f로도 구할 수가 없다.
한대수!
이 자를 어찌할꼬?
다음주쯤엔?
주말에 서울을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늦은 시간이겠지만 한두명쯤은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젠 상황이 바뀌어서 아무도 안나오려나?
그래, 혼자 한잔하고 일찍 자고
다음날 조조영화나 보고 내려와야지.
그때 그사람들을 보고잡다.
정말, 오로지 백윤식 때문에.
이 녀석을 왜 티토라고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지은 이름인지, 무슨 뜻이 있어서였는지. (지금은 해체된 유고연방의 대통령 이름이 티토였는데.)
옛 냥이 사진들을 순서대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 순서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거니와, 그걸 굳이 따져서 올려야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순서가 중요하다. '부비'라는 녀석 다음으로 데려온 녀석이다. 부비 사진은 없다. 보통 길냥이를 데려오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서 입양 시킨다. 그런데 부비는 사진을 찍기도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부비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야할 것 같은데 그 녀석 생각을 하면 너무 속상해서 아예 안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부비를 그렇게 보내고 난 다음에 온 녀석이라 티토에겐 무지 신경을 많이 썼다.
골목길에서 이 녀석과 마주쳤는데 부르니까 내게 오는 것이 아닌가. 새끼건 다 큰녀석이건 길냥이가 사람을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사람을 무척 따르는 것을 봐서는 사람이 기르거나 길렀던 녀석인 것 같았다. 이 녀석과 좀 놀다가 그냥 가려는데 계속 쫓아왔다. (개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지만 냥이가 이러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누가 풀어놓고 기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녀석 영양상태가 너무 않좋았다. 게다가 피부병도 있었다. 그래서 죄책감없이 데려오기로 마음 먹었다. 행여 주인이 있다 하더라도 제 가족인 냥이를 이 정도로 방치했다면 같이 살 자격도 없거니와, 그냥 길냥이일 가능성이 더 높았으니까.
집에서 한동안 지내보니 길냥이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콩콩이는 그러지 않는데 이녀석은 비닐을 뜯어서 기어이 먹을 것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러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생존할 수가 없었을테니까.





안타까웠던 것은 자다가 무슨 악몽을 꾸는 것처럼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아마도 힘들었던 길거리 생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 큰녀석이라 입양이 안될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히려 큰녀석을 원하는 여자분이 있었다. 냥이를 처음 키워보는데 새끼라면 어찌하다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서 그렇단다. 냥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메모해서 내 연락처와 함께 주었다. 얼마후 티토가 설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나중에 예방접종 때문에도 연락이 왔다. 우리 동네에 있는 한성동물병원을 소개시켜줬다. 나는 시간이 안나서 정혜가 만나 같이 갔는데 티토는 놀라울 정도로 예쁘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늘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길냥이들을 잘먹이면 정말 몰라보게 변한다. 이렇게 예쁜 녀석을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아닌 이상 백수의 생활이 그리 유쾌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늘상 구질구질한 것만도 아닐 게다.
극소수를 빼고는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극단 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겠나.
물론 난 이 노래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맨날 시쭈구리하게(이런 전문 용어를 써도 되려나) 살 거 있겠나?
저작권
내가 이렇게 노래를 올리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럼 나는 확신범인가?
실정법상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르니 말이다.
내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까부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난 내가 산 CD에 있는 노래를 MP3로 변환해서 올리고 있다.
내 돈 주고 샀어도 이렇게 올리는 것은 불법이다.
진보넷 블로거쯤 되면 이번에 강화된 저작권법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런데 내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 때 그 때 이슈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에겐 무지 귀찮은 일지지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이 불법이라니
마냥 무관심하기도 그렇고....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다.
(난 판도라처럼 간결하게 끝내지 못하고 맨날 주절주절이다.
그래, 안 되는 것 노력하지 말고 하던 대로하자.)
다음 얘기는 아무래도 '라쇼몽'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 같다.
럼블 피쉬 - 백수의 하루
나만 좋아하는 것은

양파링과

맥주
둘 다 좋아 하는 것은?

옥동자 ^^
디지탈 시대에 필름 카메라를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귀찮고 미련한 짓이다. (그것도 흑백필름을!)
일단 돈이 많이 든다. 필름값, 현상료, 인화료 등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인터넷에 올리려면 스캔을 받거나 디카로 다시 찍어야 하는데 그것도 무지 귀찮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디카로 찍는게 그나마 덜 귀찮은데 디카는 필카와 가로세로 비율이 달라서 어차피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사진마다 일일이 다시 잘라내고 크기 조정을 해야한다.
아버지 때문에 집밖을 나갈 수 없는 나같은 경우에는 현상과 인화를 직접해야 하는데 디카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라 이짓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이중으로 커텐을 치고, 약품을 타고 확대기에 필름을 한장씩 끼고, 노출을 맞추려 몇번의 테스트를 하고, 뽑은 사진을 물에 씻어주고(수세) 집게로 하나씩 널어서 말려주고...
이틀전 그 짓을 했다. 2년여만에.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니 예전에 찍은 거라도 뽑아보고 싶었다. 참 미련하게 느껴지면서도 오랫만에 인화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늘 올리는 사진은 변산반도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전에 몇장만 뽑아보고 말았었다. 변산반도에 관한 소개는 귀찮아서 못하겠다.

내소사에서 찍었던 것 같다. 나무결의 느낌이 예술인데 티카로 찍어서 사이즈를 축소했더니 그 느낌이 전혀 안난다.

큰 절 입구에 의례 있는 사천왕상

같이 간 친구. 이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 어디든 한 번 갔다 오자고 해서 떠났다.

절은 이렇게 자연과 자연스럽게 잘어울리는데, 예전에 양수리쪽에선가 산 비탈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버리고 엄청큰 교회를 지어놓은 걸 보고 뜨악했다.

바로 윗사진의 문에 가까이 가면 이런 문양이다.

뽑고 나니 참 재미없는 사진인데 뽑아 놓은 게 아까워서.

사진으로 보니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무지 큰 건물이다. 왼쪽과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면 사람이 있다.

교회에서 헌금을 받듯 절에서도 받는데, 이렇게 기와에 쓰고 싶은 글과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도 한다. 아마도 불전 짓는데 기와값을 보탠다는 식인 것 같다. 글 내용이 꼭 나 같은 인간이 쓴 것 같아서^^

내소사는 참 매력적인 절인데, 문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득실 거린다는 거다. 도저히 절을 둘러보는 '맛'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짜증이난 친구와 나는 이름나지 않은 개암사를 찾아갔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절에 가면 법당안에도 들어가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예를 갖추어 삼배를 드리고 나서 둘러본다. 그냥 세배하듯이 절을 하면 안된다. 손을 양어깨만큼벌려 엎드린 상태에서 손바닥을 뒤집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면 된다.

개암사에서 만난 멍멍이들. 처음으로 제법 그럴듯한 역광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장을 뽑았더니 정혜가 비웃었다. ^^
최근 사진관련 책 두권을 샀다.
하나는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33K, 56K 전화 모뎀을 이용하던 인터넷 원시시대 시절이었다.
인터넷보다도 PC통신이 더 많이 이용되던,
사진 한 장 보려면 클릭하고 잠시 딴 짓하다가 와야하던 그 때.
사진에 관심은 있었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풍경사진은 찍는 것도 재미없고 보는 것도 재미 없었다.
앤젤 아담스 같은 대가의 작품은 좀 남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풍경사진은 풍경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사진 자체가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멋진 풍경이긴 하지만 너무 도식적인 사진들이 많았다.
그러다 인터넷상에서 우연히 '두모악'이란 싸이트에서
김영갑의 제주도 풍경사진을 봤는데
감탄사가 나왔다.

사진은 오마이에서 퍼왔다. 출처를 밝히든 안밝히든 불법이지만 어쨌든 밝히는 것이 나의 예의다.
그 후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참 특이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 몇 년 후 한겨레신문에서 그의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루게릭이란 병에 걸려 몸이 마비되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사진에 미친 것 같은데
더 이상 사진을 못찍게 됐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러다 또 잊고 살았는데 이번에 오마이기사를 보고 한 권 샀다.
워낙 특이하게 살아왔기에 그의 살아온 얘기는 무척 흥미롭다.
반면 두 번째 책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은 좀 실망스러웠다.
최민식의 사진이야 그전부터 많이 본 편이라
이번엔 그의 생각을 좀 엿볼 요량으로 그의 글이 들어있는 책을 산 것인데
글은 좀(많이) '아니올시다'이다.
사진도 그가 직접 고른 것인데, 사실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가 골라서
엮은 최민식사진집(열화당 사진문고)의 사진들이 난 더 좋다.
책꽃이에서 그 사진집을 다시 꺼내 넘겨 보다가 이 사진에서
멈추고 말았다.

1972 부산 자갈치 시장
이 사진은 최민식 공식 홈피에서 퍼왔다.
아마도 무슨 단속반에게 끌려가는 것 같은데
이 아주머니의 표정이 정말이지...
남자에게 낚아채인 어깨춤 하며,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는 것인지,
펄럭이는 전대 앞치마에, 자갈치 시장답게 장화신은 모습까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너무 속상해서 콧날이 시큰거렸다.
처음보는 사진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사진 앞에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면서 감정이 올라가다가
이 사진에서 결정적으로 한 방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사진의 내용이 30여년전의 지나간 어려웠던 추억속의 얘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얘기를 담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내가 나이들어서 그런 것도 있을게고.
이 사진에는 끌고가는 남자의 얼굴이 거의 안보이지만
사진집에는 어두우나마 볼 수 있는데 그 표정이 참 '그렇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참 그렇다.
지난달 말지에서 '평생 빈곤에 시달리는 '엄마 노동자'들'이란 기사를
보면서도 그랬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비정규직 엄마노동자들의 고생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 나간 이 아주머니들이 투쟁가가 나오자
박자에 맞춰 '팔뚝질'을 한게 아니라 '박수'를 쳤다는 대목이었다.
그래, 이들이 평생 팔뚝질 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어려운 살림이지만 큰 욕심 안내고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살면
그럭저럭 크게 남부럽지 않았던 이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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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날은 기어이 오지 못했다. 에고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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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곡상회 문 못닫은거에요?습관때문에였나요.. 다른 이유가 있었겠죠 아마도..
저때문에 소주를 한잔 하셨다니,
쿡쿡. 그런 식의 책임전가는 안좋아요.
오랜만에 소주한잔 좋잖아요. 근데 맥주는 괜찮은데 소주는 혼자 마시기에는 씁쓸한 술인것같아요. 가끔이야 괜찮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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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금요일, 그러니까 3월 4일부터 2주일간 하이퍼텍나다에서 엄마...상영합니다.그중 하루 잡아서 pan도 보고 소주도 한 잔 하면 어떨까요? 하이퍼텍 나다 앞에 닭갈비 집도 있고..에 또..(pan도 볼 것을 기대하며 쓰는 글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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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일요일에 쉬면 3월6일(일요일)에 나다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변심?으로 일이 꼬이는 바람에...pan이 온다면 무리를 해보죠뭐. 그런데 원래 백수가 시간내기 더 힘든 법인데.^^ 그나저나 웹상에서 알게된 사람을 오프에서 만나는 거 괜찮으려나? 모이게 되면 지가 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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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알엠님이 소주한잔 하자고 하신게 이거였군요..^^;'엄마'가 알엠님이 만드신 영화 맞죠? 오아.. 궁금하긴한데.. 헐헐 글쎄...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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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번 주 토요일이 아니라? 전 형이 태일형 얘기하고 그러길래 이번 주 토요일에 오신다는 건 줄 알았음.3월 5일에 만날까요??(지금 술약속 잡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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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감독님 영화 한다는 건 이제야 안 것이고요, 그나마 금요일이라 불가능 하죠.우야뜬 공이 pan에게 넘어가는 분위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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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생각해보니 26일은 유한별 돌이네요.나 정말 이상한 엄마다. 왜 아기 돌도 기억못하는 걸까..아무리 돌잔치를 안하고 넘어간다고 해도...흑흑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