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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30
    화성침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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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3/26
    기차길 옆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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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3/23
    Before & Aft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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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3/18
    노동운동이 되살려야 하는 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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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3/16
    누가 아줌마인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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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3/12
    담배피는 여자(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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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3/07
    세상 밖으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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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3/06
    제길! 내가 이걸 왜 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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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3/02
    영화 <엄마...>을 보러 가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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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침공? ^^

몇년만에 수원 화성에 다시 가 보았다.

 

일요일 오후

아버지도 안좋으신데 어머니까지 허리병이 나서 심난했다.

서울에 갈까말까 망설이느라 아무 약속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용산에 가서 불법 DVD라도 몇장 사올까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우리동네까지 뚫린 전철도 타볼겸,

오랫만에 사진도 찍어볼겸 해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 화성에 갔다.

그런데 초입부터 짜증이 좀 나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은 것이야 그러려니 했다.

입구에 있는 설명을 보니

70년대 국방유적 복원 사업의 하나로 복원이 시작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유적 복원'이 아니라 '국방'유적 복원이라니

역시 위대한 박통 깍까 시절다운 발상이다.

그래, 그것도 괜찮았다.

온 나라를 병영화 하고, 온 국민의 생활 깊숙히까지 군사문화를 찬연하게 꽃피우게 했던

박정희 덕에 복원이라도 시작했으니 까짓거 넘어가 주자.

 

나를 짜증나게 만든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공사중"

복원을 위한 공사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이건 그게 아니다.

흙길을 없애고 시멘트를 쳐바르면서 야경을 위해서 바닥에 조명을 까는 공사다.

밤에 보면 열라 멋지겠지? 기다렸다 그 멋진 야경사진을?

시멘트 깔아 놓으면 비가와도 질퍽거리지 않고 되게 좋겠다. 그지?

빌어먹을.

몇년 전 왔을 때는 없었던 기념품 판매점.

그 옆에 만들어 놓은 "효원의 종"

일반 시민도 칠 수 있다.

단--!!!!! 타종권이란 걸 돈주고 사란다. (자본주의 만세다)

"타종 안내"는 더 웃긴다.

돈내면 3번 칠 수 있는데 무식한 중생들이 아무 생각없이 칠까봐 걱정이 됐나?

친절하게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까지 지정해 주셨다.

- 1타: 부모의 건강 기원 (고아는 치지 말라?)

- 2타: 가족의 건강 기원 (부모는 가족 아닌가? 뭘 따로 쳐?)

- 3타: 자신의 발전 기원(차라리 부적을 사라!)

'사적 제 몇호'라고 되어 있는데 올라가 보면 수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낙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근데 복원이라는게 시멘트 바르는 방법밖에 없나?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하는데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오우삼인양 비둘기나 찍고

화성 바로 옆에 있는 50년 역사와 전통의 이발관이나 찍고.

유치찬란함의 백미는 역시 '화성열차'

서울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열차에서 영감을 얻었나?

지난 번에는 성 안쪽으로만 돌았는데 이번에 성 바깥쪽으로 나가봤다.

이 사진을 왜 올렸을까?

다음 사진을 보고 알아 맞출 것.

나중에 복원 된 벽이다.

두 개가 합쳐지면 이렇게 된다.

성벽 아래에는 조명시설이 줄줄이 박혀있다.

이번에 처음 가 본 것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몇년 전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정말 '꽝'인 일요일 오후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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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 옆 공부방

한겨레 신문에 '인천 만석동 기찻길옆 작은학교’라는 기사를 보면서 서경화 감독이 만든

'기차길옆 공부방'이란 다큐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 당시 푸른영상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참 마음에 안든다.

그래도 일단 올려본다.

내 스스로 가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차길옆 공부방

 

 일단 재미있게 봤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면 TV에서 맨날 보는 최루성 휴먼 다큐멘타리 한 편이 추가되는 것으로 끝났을

것 같다.

 

 인권영화제에서 어떤 분이 말한 "가난이라는 것을 너무 낭만적인 시각에서

그렸다."라는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그 분 의견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꼭 한 번 거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물론 그 분이 철거민들을 거론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비교였다. 그렇게 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소한 굶어'죽을' 걱정까지는

안하는 철거민들 얘기를 다루는 것도 배부른 소리가 되지 않는가?)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

 

 거의 일년이 다되가는 것 같다. 전에 경화씨와 술먹으며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 거기서 같이 살아가기로 작정한 분들이 궁극적으로는 원래

가난한 사람들과 절대 같아질 수 없다고 말했고, 경화씨는 동의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분들의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다. '가난하다'는 현재의

결과가 동일하다고 해서 결코 그들이 같아질 수는 없다. 이런다면 말이 된다.

'처음엔 자발적으로 가난해졌는데 이젠 그 가난이 지겨워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데 잘 안된다.' 아니면 '원래 가난했던 분들이 이젠 가난의 미덕을

발견하고 평생 그렇게 가난하지만 아름답게 살겠다고 작정한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같아지는 것이라고 본다. 극히 부분적으로는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아직은 '차이점'이 더 많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차이점을 인정해야 올바른 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영화속의 이모, 삼촌들은 이 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생각이

정립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경화씨가 뭘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경화씨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

 

 자 이제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자. 미리 겁먹고 말하는 것이지만

'지가 그렇게 못사니까 괜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다'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말 들어도 상관은 없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니까.

 우선 만석동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신 분들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참으로

의미있게 사신다고 본다. 하지만 그 분들도 '자 이제 우리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만 합니다'라고 주장할 것 같지는 않다. 즉 '자발적 가난'이란 의미있는

삶의 모델 중의 한가지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고지선의 유일한 가치이며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4천만이 모두

가난해지려고 노력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문제가 한 가지 생긴다. 그 분들의 자식들에게 가난이란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가?

 말지 이번 호에 김동원 감독의 기사를 보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그 자식들도

가난하게 살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는 말이 나온다.(내 기억력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자발적 가난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김동원 감독도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난 김동원 감독을 가난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다른 것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 가난을 택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그 덕분에 '선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타고난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말 좀 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면 부모님을 이해할 확률도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못한다면? 이해는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이 땅에서 살면서 가난하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상당히 좁게 만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게 살아라'

같은 것은 강요해도 되겠지만 '가난하게 살아라'하고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이러지는 않을까? '우리집은 원래 가난하진 않았어. 훌륭하신

우리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렇게 하신거야.' 라고.

자식이 우리집은 왜 이렇게 못사냐고 칭얼대면 비슷한 말을 해주게 되지는

않을까? 그렣게 되면 자식대에까지도 원래 가난했던 분들과 같아지는 것은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몇가지 것들

 

 경화씨의 평소 끼(?)로 봤을 때 나래이션을 아주 잘 할 법도 한데 솔직히 좀

어색했다. (물론 성우를 쓰는 것보다는 좋았을 것이라 본다.) 이런 면에서

경화씨보다 별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서명진씨의 경우엔 '봉천동 사람들'에서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나래이션의 '시점' 차이가 아닐까?  명진씨는 회상하는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정리하듯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경화씨의

경우는 (아마도 만석동에서 생활하면서 그때 그때 적어두었던 것을 활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계속 현재 시점으로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하려니 어느 정도의

연기력이 필요한데 다소 역부족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이상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조금, 아주 조금 아쉽다는 말이다.

 

 마지막 정리할 때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 한 명씩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인가 보다. 'Women Outside'에서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아주

깔끔하고 인상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후로 그렇게 끝나는 것을 몇 개

봤지만 그렇게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럼 기차길옆 공부방은? 글쎄다. 별

무리는 없었다고 보는데 뭔가 아쉽다. 하긴 이건 다큐도 뭔가 극적이고 폼나게

해서 사람들을 좀 움직이길 바라는 나의 (어쩌면 잘못된) 취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딴 소리

 

 위에 쓴 글은 작품평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뭔가 생각나는 데로라도

말해주는 것이 경화씨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쓴 것이다. 앞으로 이런 글을 다시

쓰게될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나에게 회원기간이

만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1년치 회비를 낼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게됐다. 보증을 서준 것이 문제가 되서 일년동안 매달

41만원씩 갚게됐다. 꿔준 돈 천만원을 못받게 된 것은 그나마 여유돈을 빌려준

것이라 속이 좀 쓰리지만 마음을 비우면 되는데, 이번 문제는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상황이 다르다. 내 한 달 수입은 육칠십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정혜 공부도 하고 몇 푼 안되지만 처가집에 다달이 용돈도

보내드리며 잘 먹고 잘 살았는데(이게 다 탁월한 나의 살림솜씨 아니겠는가!),

이젠 거의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난 처분할 재산이 있으니

절망적이지 않다. 정혜는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쉽게 생각하느냐?'라고

하지만 어렵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뭘 힘들게 어렵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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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 After

 

아래 사진과 글은 알엠이 2003년에 올린 것이다.

 

며칠 전부터 고양이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같은
그런 어린 고양이들이 동네를 아장거리고 있었다.
귀엽다기보다는 애처롭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어린 생명들.

어제 밤에 열명 정도 되는 동네 아이들이
자동차 아래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막대기로 쑤시며 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동네를 돌며 고양이를 데려왔다.
그대로 있다간 죽어버릴것같아서이다.
뭐...안죽더라도 길냥이로 살아가겠지.

세 마리인데..
고양이를 키우실 분..연락바랍니다.
암튼 정말 고민이군요...

 



이 녀석들을 내가 데려왔다.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아마도 한 녀석은 알엠이 입양시켰다가 파양되서 나중에 따로 왔던 것 같다.

이쁘다고 별 생각없이 입양해가는 사람들, 정말 무책임하다.

 

일단은 케이지에 넣어서 작은방에 두었다.

급작스럽게 환경이 변화했는데  너무 신경을 써주면 오히려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처음 며칠간은 사료주고 응가한 것 치울 때 말고는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생긴 것 하고 성격이 어쩜 이렇게 일치하는지! 아마도 표정 때문이겠지?

이 녀석은 호기심은 많은데 겁도 무지하게 많았다.

 

완전한 역삼각형에 카리스마 있는 눈빛!

겁이 많다기 보다는 사람을 많이 경계해서 친해지는데 제일 오래 걸렸다.

 

코 주변의 점들 때문에 좀 웃기게 생겼는데 하는 짓도 제일 웃기다.

가장 활달하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기 좋아하고, 나에 대한 경계도 가장 빨리 풀었다.

 

내 카메라 가방을 뜯고 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알엠은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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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되살려야 하는 것

예전엔 말지 기사를 하나도 안빼고 다 읽기도 했는데 요즘은 반의 반도 못읽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괜찮은 글도 많긴 하지만 일단 너무 많아 괜찮은 글을 '찾아내는 것'도 큰 일거리다. 이미 검증된 잡지를 보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말지를 사서 읽는 이유다. 특히 나는 데스크 칼럼을 좋아하는데 이전 편집장이던 김성환보다는 못한 것 같지만 이종태 편집장의 이번달 데스크 칼럼은 읽어볼만 하다. 진보넷에서는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 같기는 하다. 내 블로그에 오는 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무슨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노동운동이 되살려야 하는 것

 

 "저 공장도 토지도 건물도 문화도 무기도 우리의 것이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나왔던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뒷표지에 새겨져 있었던 문구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 계급을 의미한다. 이 잡지는 '노동해방'(사회주의)이란 '노예의 언어'를 사용하긴 했으되 "노동운동의 목표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뚜렷이 못 박는 선명성을 과시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랬다. '80년대' 대다수 노동운동가들의 꿈은 사회주의였다. 20세기 초 러시아 지식인들이 공동체 건설을 위해 농촌으로 들어갔다면, '80년대' 남한에서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규정한 운동가들이 공장으로 들어가 "변혁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길은 레닌 등이 교시한 대로 너무나 선명했다. 임금인상 등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경제투쟁"은 필수적인 것이었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었다. 노동자들은 이 경제투쟁을 통해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정치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운동가들은 생각했다. "파업(경제투쟁)은 혁명(정치투쟁)의 학교"인 것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80년대' 내내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웠다. 그 경제투쟁은 단지(!) 해당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참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예비적 투쟁'으로 설정되었다. 그래서 투쟁의 성과가 설사 해당기업 노동자만의 처우개선에 그친다고 해도 그것은 '전체 노동자를 위한 싸움'이라는 '윤리적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자부심 덕분에 당시의 노동운동은 '자본의 앞잡이'들이 식칼로 옆구리를 찌르고, 감옥에 가두고, 때로 조직 내부에 프락치를 투입해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리적 확신과 자부심이 강한 만큼 투쟁은 치열했다.


 이렇게 '80년대'는 해방 이후 줄곧 수세였던 남한의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연대가 되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이 거둔 성과는 놀라울 정도이다. 노동운동의 치열성은 당시 3저호황과 맞물리면서 1987년을 전후한 3년여 동안 전체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을 100% 정도 올려 놓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끈 '80년대'의 노동운동이 오히려 한국 자본주의를 더욱 튼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를 주도한 것은 자동차, 아파트 등 내구소비재 산업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업들이 쏟아내는 고가의 내구재 상품들이 팔릴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이 급속히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의 생산능력 확대와 임금상승이 맞물려 경제 전체적으로는 선순환을 이루었던 셈이었다. 심지어 1980년대 말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은 내수의 급증이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공로'와 별도로 남한 노동운동은 임금인상 이후 사회주의쪽으로는 한치도 나가지 못했다.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사회주의의 합리적 핵심인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의 문제의식만큼은 놓쳐서는 안되었다는 이야기다.


 1980년대 이후 남한 노동운동이 잃은 것은 사회주의적 문제의식이었고, 간직한 것은 레닌주의적 노동운동의 과격성이었다. 이는 자기 기업 내부에서는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윤리적 확신'에 근거한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이지만 기업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심하다는 비난은 이제 모함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기아노조의 채용비리나 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은 이런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2005년의 대한민국에서, 밑천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모두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정규직은 내일의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유럽복지국가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금 뿔뿔이 분열된 남한 노동자들이 우선 '계급'으로 단결할 때 국가-자본과의 사회적 협약과 국민경제의 발전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교적 여유 있는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먼저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진보운동의 주요 세력이다.

 

<말> 3월호 '데스크 칼럼' 이종태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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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줌마인가?

- 아래 글은 몇 년 전에 '아줌마와 아가씨의 차이점'이라는 게시물에 내가 댓글을 단 것이다. (사람이름 몇 개를 고쳤다. 그리고 알엠의 예전 게시판에도 올린 적이 있는 글이다.) 친구와 전에 이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내 블로그가 없어서 이 글을 보여줄 방법이라곤 그 게시판을 찾아가 내 아뒤를 검색해 찾아 읽어보라는 수밖에 없었다. 흔적은 안남기지만 내 블로그에는 들어오니까 이 글을 보고 있겠지. ^^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때 -아가씨: 예쁘게 해주세요! -아줌마: 오래가게 해주세요! 몇 년 전 아줌마 씨리즈가 유행할 때 들은 얘기다. 재미있었냐고? 아니, 엄청 짜증났다. 하나 물어보자. 영부인은 아줌마인가 아닌가? 백지연은? 박근혜는? 이들이 아줌마가 아니라면 아닌 이유를 말해달라. 아줌마가 맞다면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길 바란다. 이 아줌마들이 미용실에 가서 과연 "오래가게 해주세요"라고 말할까? 강남에 사는 나의 사촌 형수(50세쯤)는 절대 뽀글뽀글 파마하는 일이 없다. 당연히 "오래가게 해달라"라는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그럼 잘사는 강남엔 아줌마가 없는 건가? TV에 나오는 여성정치인이나 정치인들의 부인, 잘 나가는 캐리어 우먼들을 한 번 보라. 아줌마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뽀글뽀글 파마"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아줌마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가 나면 몸을 날린다고? (이 얘긴 좀 있다 다시 할 것이다.) 잘사는 집 싸모님들은 그럴 일 없다. 자가용 타고 다니던가 택시 타고 다닐 테니까. 어찌 천박하게 자리 하나 갖고 그러겠는가? 귀하신 몸인데. 사실 아줌마 씨리즈의 상당수는 중산층 이하인 아줌마들이 그 주인공이다. 까놓고 말하면, 먹고살기 힘들어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아줌마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다. (물론 잘사는 아줌마들 중에서도 절약하느라 그러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또 다른 관점에서 정말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가 나면 몸을 날릴까? 대부분 "그렇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커다란 착각이자 기만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줌마"인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다. 이건 사실이다. 근데 이걸 "청소년들은 대부분 본드나 부탄가스를 흡입한다."라고 말하면 옳은가? 당연히 아니다. 만일 누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특징"을 -본드나 부탄가스를 마신다. 담배를 핀다. -선생에게 대들고 폭행을 하기도 한다. -가출을 자주한다. -원조교제를 한다. 라고 말하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특성처럼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할 수 있는가? 중학교 때 나온 간단한 수학 한가지. "p이면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면 그 명제의 역인 "q이면 p이다"도 참인가? 당연히 아니다.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고 그때마다 따져봐야 한다라고 배우지 않았나? 내가 아는 아줌마들 대부분은 "당연히" 자기 앞에 있는 자리가 나야 그 자리에 앉는다. 당신들이 아는 아줌마들은 다들 몸을 날리는가?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몸을 날리는 아줌마들이 있는 것 뿐이다. 다들 몸을 날리는 것이 절대 아니고. 이런 얘기하면 꼭 이러시는 분들이 있다. "그냥 웃자고 하는 건데 너무 과민반응이다"라고. 재미있자고 사람 바보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옛날에 이경규가 바보연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신문에서 독자의견을 읽었다. 그건 바보연기가 아니고 정신지체자들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라고 말이다. 이경규의 행동이나 말하는 것이 자신의 아들과 너무나 닮았다고 말이다. 바보 연기의 대가 배삼룡(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도 이젠 꽤 있겠지)의 불만도 그것이다. 요즘 코메디언들은 바보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지체자를 모욕하고 있다고. 배삼룡이 연기한 바보는 순진하고 어눌한 사람이지 정신지체자가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 사는 사람을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데려다 놨다고 생각해봐. 하는 행동거지가 얼마나 어설프고 바보 같겠어." 배삼룡이 연기했던 바보는 이런 바보였다. 이경규의 연기를 보고 분노하는 정신지체아의 부모에게 "과민반응하지 마시라"고 말할 수 있나? * 아래 퍼다 놓은 게시물과 그림은 그나마 재미로 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불만 한가지. 나이 들면 살이 찌는 것은 그렇다 치고, 거기 나오는 아가씨들은 왜 그렇게 눈이 크다냐? 아줌마 돼서 살이 찌면 눈이 그렇게 까지 작아지나? 마치 영화나 TV에서 둔하고 미련한 사람역할은 살찐 사람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뚱뚱하면 미련하다? 아님, 미련하면 살이찐다? 둘 다 거짓명제! 내가 또 오바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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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피는 여자

이 글은 내가 전에 쓴 진짜마쵸?라는 글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걸 읽어야 이해가 갈 내용은 전혀 아니다.

 

대학에 가서 여자선배나 동기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불쾌'한 감정이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기분 나빠할 이유가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기분 나쁠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상당수는 기분나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을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합리화 시켜본다. 모성이 어떻고, 남자든 여자든 담배는 무조건 해롭다 등등(당시 그 얘기를 담배피는 '남성'에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이댔지만 까놓고 말하면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었다.

"어디 여자가 감히 담배를..."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쪽팔리는 일이라는 것쯤은 아는 먹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들을 잘도 만들어냈다.



정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운동권 남자들에서는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는데,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자신들이 인정해주고 말고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마치 자신들이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주는 사람임을 증명이나 하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거의 모든 가부장적 태도는 전혀 바뀌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에 길들여진 잘못된 나의 감성

 

사실 아주 단순한 문제였다. 내가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잘못된 환경에서 자란 때문이란 것이 명백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내자신이 무척 못나 보이고 짜증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진짜 마쵸에서 말했듯이 난 양공주(우리 지역에선 양색시라고 불렀다.)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왔기 때문에 여자들이 담배피는 모습은 무척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생'들이 담배피는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다니!!!  이건 명백한 나의 차별의식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니...

 

이성적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괜찮아지는데 2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다. 스스로에게 쪽팔리고 싶지 않았기에 노력을 많이 했다. 감정적인 부분이 노력한다고 전부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바뀌지 않는 영역도 아니다.

 

내가 라쇼몽이란 카테고리를 만들 게 된 이유까지 포함해서 꽤 긴 글을 쓸까 했는데 졸리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생때 나누던 이야기 스타일

 

"갠, 여자애가 무슨 담배를 피고 그러냐?"

 

- 여자가 담배피는 게 어때서?

 

"야, 좀 그렇잖아"

 

- 넌 할머니들이 담배피는 거 보고도 기분이 않좋냐?

 

"그건 좀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너 지금 할머니들은 여자도 아니라고 무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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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이 도둑고양이라고 생각할 게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가면 나비가 따라 나온다.

처음엔 불안해서 문단속을 하고 못나오게 했는데

늘 갇혀있는 나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겁많은 녀석이 멀리 가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모험을 감행했다.

그래도 처음엔 어찌나 불안하던지.

 

 

이 뚱땡 고양이를 우째야 쓰것나?

늘씬한 냥이를 기준으로 하면 거의 몸무게가 두배는 나간다.

다이어트 사료를 먹이긴 하는데 워낙 식탐이 심해서리.

마음 약한 내가 더 문제다.

 

옆집이 궁금하긴 한데

넘어가 보자니 무서워서...

냥이는 호기심도 많은 것이 겁도 무지 많아서 웃기는 녀석들이다.

 

역시 자연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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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내가 이걸 왜 샀을까?

한 대수의 예전 앨범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중고 앨범을 사고 파는  먹통레코드란 곳을 알 게 됐다.

한대수 8집만 주문했어야 했다.

중고 CD 목록에 있던

김현식 Sickbed Live 미개봉 9,000원

 

20대 초반에 그를 좋아했지만

들을 수 없게 돼서 이미 버린  LP와 함께 잊고 있었는데.

한 장 사나 두 장 사나 똑같은 배송비 때문인지

그에 대한 옛추억이 생각났는지

어쨌든 그의 앨범도 주문하게 되었다.

 

그의 CD를 틀어놓고 난 곧 후회했다.

아, 그래, 그는 이 세상에 없지.

너무 숨이 가빴나?

안그래도 애절한 노래를 이렇게 힘들어하며 부르고 있는데...

 

나이가 자꾸 들어가서 그런가?

속상한 것을 자꾸 피하고 싶다.

내가 안보고 안듣는다고해서

 그 속상한 일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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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을 보러 가자

* 이 글은 알엠<엄마...> 라는 영화 를 소개 하려는 글인데 내 글이 역효과를 내진 않을지 걱정이다.

3편의 작품을 냈지만 나에겐  류미례'감독'보다 '미례씨'가 더 익숙하다,

그건 류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준비조차 하지 않던 시절에 그를 알 게 됐기 때문일 게다.

이젠 블로그상에서 쓰는 '알엠'이 더 편하게 됐고.

 

내가 예상하기 힘든 것들

-TV에서 하는 다큐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이런 독립다큐가 어떻게 느껴질까?

어느 대목에서 재미있어해야 할 지,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먹어야 할 지까지 친절히 '지시'해주는 듯한 TV다큐들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래도 네가 감동안하고 베겨?"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빈곤한 영상과 주제를 말빨로 때우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TV에서 하는 다큐물들을 모두 싸잡아서 깍아내리는 것은 '독립다큐는 모두 훌륭하다'라는 말만큼이나 말이 안되는 짓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 알아서 새겨 듣길!

 

- 류감독을 모르는 사람들(관객의 대부분)이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어떨까?

난 원래 류감독을 안다. 물론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지만, 어쨌든 자신이 아는 사람의 얘기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얘기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게다. 그리하여 류감독을 모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 지 예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류감독을 알고 말고의 문제보다는 '엄마'라는 공통분모가 주는 영향이 더 강할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적 다큐라지만

류감독 개인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은 안들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 일지도 모르는 '무한희생 천사표 엄마'와는 거리가 있는 그의 엄마, 남겨진 가족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아버지, 이 영화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오빠,  이 영화의 방향을 샛길로 빠지게한^^ 매력적인 러시아 언니 등등 무척 이색적인 상황에 처한 류감독의 특이한 가족사 같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하지만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푸른영상 시사회에서 처음보고 류감독과 비슷한 경험들 때문에 공감을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그의 경험이 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카리스마

옛날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산만함'이었다. 그의 글은 정말 인상적인데 비해(오히려 그래서 더) 실제 만났을 때의 모습은 글과 매치가 안되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차츰 변해갔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점점 훌륭해졌다. '훌륭하다'는 말이 적절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정말 그는 훌륭해졌다. 아님 원래 훌륭했는데 내가 늦게 깨달은 것일까?

영화상영 후 행해지는 감독과의 대화를 보다보면 이젠 일종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진다. 어수선한 카리스마!

어떤 사람의 무게감이 몸무게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듯, 그의 카리스마는 외형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본인부터 "왠 카리스마?"라고 할 것 같다. 하여튼 내 맘이다.

 

 

류미례 감독 자신의 엄마에서 세상의 모든 엄마로

영화의 시작은 감독의 엄마에서 비롯됐지만 류감독은 그것을 세상의 모든 엄마로 확장시킨다. 물론 러시아 언니(당신도 영화가 끝나고나서 그녀가 머리속에 남게 되지 않을까?)의 영향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옆길로 샌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진짜 샌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걸리적 거리진 않을 게다.

 

능력이 없다보니 글만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영화관에 가서 볼 것을 추천한다. '독립다큐의 발전'같은 무슨 거창한 이유 때문에 보진 말라. 그런 식으로 발전 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영화를 보는 당신들의 입장이나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말 재미있다. 그래서 보라는 것이다.

다큐는 살아있는 얘기다.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를 추측해 보는 것도 무척 재미가 있고  당신의 엄마가 이 영화속의 엄마(들)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정작 당신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류 감독의 큰 언니(맞나?)가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울먹이느라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류감독은 언니의 예상처럼 나중에 자신의 시점이 변하게 될까?

그렇게 되는지 꼭 보기 위해서 한 10년 정도는 더 친하게 지내봐야겠다.

 

 

3월 4일(금)부터 상영한다. 상영정보 및 영화 소개를 보려면 '포스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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