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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동물병원에서 냥이 사료를 사갖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몇몇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양파 담는 망에 들어 있던 새끼 냥이들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니, 누가 고양이들을 이렇게..."
"풀어 주면 엄마찾아 가겠지 뭐."
냥이들이 엄마찾아 갈 확률은?
글쎄.
지들끼리 어쩔줄 몰라 뿔뿔이 흩어져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 한 어미는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근처 냥이인지 다른 곳에서 데려와 버렸는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아마도 이런 것 같다.
자신의 집 어딘가에 길냥이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을 것이다.
냥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울어대기 시작했을 거고,
냥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집주인은 어미가 없을 때 냥이 새끼들을 찾아내
양파자루에 담아 내다 버린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죽이지.
양파자루는 그물이라서 냥이들이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발버둥치다 굶어 죽었겠지.
행여 어미가 찾아냈다 하더라도 꺼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다.
세녀석을 데리고 다시 동물병원으로 갔다.

한녀석은 완전히 까만 녀석이었는데
동물병원에 와 있던 아가씨가 자신이 키우겠다고 해서 즉석에서 입양시켰다.



퀴즈!
그런데 여기 사진에 까만 녀석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원숭이를 키우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원숭이도 산만하고 그 아가씨도 산만해서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았는데,
워낙 동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키울 수 있다고 해서 보냈다.
내 연락처도 주었다. 모르는 게 있거나, 못키우겠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안되겠다고.

까만 녀석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길냥이들이 그렇듯 영양상태가 안좋았다.
그리고 길냥이답게 '하악'을 했다.
길냥이들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잘 먹이기만 하면 금방 놀라울 정도로 예뻐진다.
그런데 이녀석들은 지들끼리 있어서 그런지 그전에 은별이와 달리,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인터넷에 올리자 까만 녀석을 달라는 연락이 무지하게 많이 왔다.
"All Black"인지 확인하는 전화도 많았다.
다 까맣고 발만 하얀(일명 장화신은 고양이) 냥이는 많지만 완전히 까만 녀석은 그리 흔치 않아서 그런가 보다.

까만 녀석이 제일 먼저 입양되고, 두녀석은 다행히 한 분이 모두 데려갔다.
원래는 한녀석만 데려가려 했는데,
내가 가능하면 둘다 데려가길 바란다고 했더니 하루를 고민하고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엄마랑 헤어진 것도 그런데 이녀석들을 또 떼어 놓는 것이 마음에 그래서.
서울에 살 때는 관악산 아래였고 유선도 달지 않아서 TV가 거의 안나왔다. 굳이 볼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현장고발 치터스 (원제: Cheaters)
cheat는 '속이다'란 뜻이다. 우리가 컨닝이라고 하는 것은 콩글리쉬이고 영어로는 cheating이라고 한다. cheat는 '바람을 피우다'라는 뜻도 갖고 있으니 치터스라는 프로그램을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바람피는 사람들' 정도가 될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 살면서 케이블 Q채널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바람 피는 것을 몰래카메라로 담아서 배우자에게 보여주고, 배우자와 함께 현장을 덮친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이 이 훔쳐보기의 진수?를 만끽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바람피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자가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는 경우도 있고, 사돈쪽이긴 하지만 친척과 바람을 피기도 한다. 베이비씨터와 눈이 맞기도 한다. 열 번 정도 보고 나니 그게 그건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다시 예전처럼 TV 자체를 거의 보지 않는데 어쨌든 이 프로를 보면서 상당히 재미있었던 것들 몇 가지.
모자이크 처리를 관전하는 즐거움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 프로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가끔 나온다. 즉 본인 얼굴이 TV에 나오길 원치 않는 경우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인데 모자이크 없이 나오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거다. 당연히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나서 본인의 허락 여부를 묻는 것일텐데, 온갖 쌩쑈를 하고, 온갖 쪽팔리는 일을 다 저지르는(당하기도 하고) 장면이 모자이크 없이 나온다. 즉 본인이 동의했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아예 인터뷰도 따로 한다. 점잖게 말하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TV에서 이런 놈을 봤으면 나도 욕했겠지만 어쨌든 내가 당하고 보니 아주 엿같고, 나를 이렇게 만든 마누라도 엿같고, 이런 짓거리 하는 당신들(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도 엿같다." 뭐 이런 거였다. (fuck을 편의상 엿같다고 내 맘대로 했다. 물론 이 단어는 TV에 나오지 않는다. 입부분만 모자이크하고 소리도 안나오지만 쉽게 알 수 있다.)
들켰을 때의 변명 혹은 반응
열 번 정도 본 걸로 통계를 내기는 우습지만, 어쨌든 바람피는 현장을 덮쳐서 들통났을 때의 가장 흔한 반응이 뭘까? '미안하다'일까? (그럼 재미 없잖아?)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딱 한 번) 제일 많았던 것은 "바람폈다고 이런 식으로 날 망신시켜?" 물론 그걸 트집으로 화만 내고 바람 핀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흔한 반응이 "네가 이렇게 날 의심하고 뒷조사나 하니까 내가 바람을 피우지" 이거다. 이치에 전혀 맞지 않지만 정말 이런 경우가 많았다. 바람핀 상대와 떠나버리기도 하고, 떠나 보내기도 하고, 바람핀 상대가 떠나버리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경우는 남자가 새로운 여자에게 이혼한 상태라며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폈다. 즉 두 여자를 모두 속인 것이다. 그래서 두 여자끼리 동병상련으로 우호적이 됐다.
가족을 지키려는 강박관념과 진행자의 코메디
이 프로를 만드는 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완전히 코미디 프로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진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엮어나가는 진행자가 정말 너무 심각하고 진지해서 미치겠다.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자기들이 무슨 정의와 가정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처럼 말하는데 진짜 못 봐줄 지경이다. 특히 현장을 덮쳤을 때, 당황해서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려고 하면 이 프로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림이 좀 덜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계속 쫒아가며 바람 핀 사람을 꾸짖는 장면은 아주 민망하다. 진행자 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이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화가 난 상대방에게 칼에 찔린 경우도 있다.)
그 진행자가 속으로 "먹고 살려고 나도 별 짓 다하고 있네"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봐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자기 딴에는 부정한 배우자들을 심판하고, 시청자들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줌으로써 가족의 해체를 막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람피는 것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가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족주의 강박관념'에 대해서다. 누군가 스필버그 영화에 대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몽땅 다 가족의 소중함을 주장하는 뻔한 영화들"이라고 혹평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선뜻 공감을 하긴 쉽지 않지만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족에 대해 집착(애착이 아니라)하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확장시켜 가족과 국가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동성애자 의뢰인
굳이 이렇게 끄적일 생각을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치터스를 만드는 과정은 일단 자기 배우자가 바람피는 것 같으니 조사를 해달라고 시청자가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의뢰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안가기도 하는데 어쨌든 가장 인상적인 의뢰인은 동성애자 여성이었다. 이미 '남자'와 결혼했을 때 낳은 딸도 있고 직업은 교사다.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네 수준에서 생각해 보자면 의뢰해서 TV에 얼굴이 나오면 학교에서도 그 교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 것이며 학부모들은 가만히 있을까? 딸은 자기 엄마가 레즈비언이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
미국은 정말 악마 같기도 한 나라이지만 어떤 면은 우리보다 훨 나은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의뢰인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바람핀 애인뿐만 아니라 바람핀 상대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라는 것이 알려져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분위기라면 그 세 명이 모두 모자이크 없이 나올 수 있을까?
"Out At Work"라는 미국 다큐를 보면 분명 미국에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들이 가혹한 취급을 받는 것에 비한다면 미국은 거의 천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에 올려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입양됐다.

초점이 안맞아 남보여주기 민망하지만 입모양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디카로 다시 찍었더니 예쁘고 까만 눈망울이 안보이네.
이름은 임시로 은별이라 부르기로 했다.
영어로 Silver Star

이젠 목욕을 시켜도 될만큼 사람과 친해졌다.

콩콩이에 대한 경계를 많이 풀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집은 좁은 골목을 꽤 들어가야 한다.
오전에 집에서 나가는 골목길에서 새끼 냥이가 어미를 애타게 찾을 때 내는 울음 소리를 들었다.
두리번 거렸는데 보이지는 않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바로 그 지점에서 또 새끼냥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소리나는 곳에 가까워지자 소리가 뚝 끊겼다가 점점 멀어지니까 또 울기 시작했다.
다시 소리가 나던 곳으로 갔다. 당연히 울음 소리는 또 그쳤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아고고고.
지붕이나 옥상에 있는 물이 흘러 내려오는 관 밑에 물이 떨어져 얼어 있었는데
그 얼음위에 새끼 냥이가 달달 떨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아침부터 이러고 있었던 모양인데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쬐끄만게 그래도 길냥이라고 내게 "하악"을 했다.
(냥이 좋아하는 사람은 '하악'이 뭔지 아는 분들이 많을 게다^^)
움직이지 못해 도망도 못가는 주제에 너무나 전투적이기에 집에 가서 벙어리 장갑을 끼고 왔다.
새끼라도 작정하고 할퀴면 상처가 제법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냥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인 뒷덜미 잡기를 해서 집에 데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콩콩이는 뒷덜미를 잡으면 난리가 난다. 새끼 때도 그랬다.)
집에와서 생선 통조림을 주니 정신없이 먹었다.
그래도 경계는 풀지 않고, 내가 다가가면 하악을 했다.
다친데는 없는 것 같고, 그냥 먹지를 못해서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못움직인 것 같다.
그러니 어미가 포기를 했을테고 말이다.
비정한 어머니고 어쩌고 할 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그나마 살 수 있는 새끼들만이라도 챙겼으리라.
안그러면 다 죽으니까.
같이 방에 있으면 이 녀석이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베란다에서 재우기로 했다.
거긴 너무 춥긴 했지만 원래 출신성분이 길냥이다보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박스에 뭘 깔아주고, 바람이 덜 들어가도록 비닐로 씌웠다.
새벽이었는지 아침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베란다에 나가보니 이 녀석은---
보일러 온수가 통과하는 몇 개의 가늘고 짧은 관이 있었는데 그 관과 벽사이에 끼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온수가 흘러 따듯하니까 불편하더라도 그곳을 택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감탄스럽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가끔 방에도 들여놨다.
어차피 사람과 친해져야 입양을 시킬테니까 말이다.
콩콩이는 호기심에 자꾸 들여다 보는데 이녀석이 하도 공격적이라서 가까이 접근은 못했다.
이녀석이 이래서 언제 사람하고 친해지나 싶었다.
길냥이의 습성이 안 바뀔까봐 걱정도 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하긴, 자기에게 밥주는 사람과 안친해지고 베겨?
인터넷에 올리려 사진을 찍었다.

이게 길냥이 데려오기의 시작이다.
다음에도 사진이 남아있는 녀석들을 올려볼까 한다.
그나저나 그 때는 참 사진을 못찍어 쪽팔린다.
여기저기 자르고 뽀샾으로 조금 보정을 해도 수습이 잘 안된다.
그나마 필카의 얕은 심도 덕분에 조금은...
* 이 글은 알엠님의 [나는 내가 무섭다] 에 관련된 것도 같고 전혀 상관 없는 것도 같은 글이다.
푸른영상 타큐보기 모임에 청주에서 늦깍이 대학생이 온 적이 있었다. 뒤풀이 중에 결혼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이런 얘기를 했다.
조카들에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대하다 보면 언니들이 그래요. "네가 네 자식한테도 이러는지 두고 보자"라고요. 전 결혼해서 제 자식한테도 똑같이 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난 "그걸 증명하고 싶어서 애를 낳을 건 아니죠?"라고 농담처럼 말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 계획이 부질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전혀 다른 성질의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맥주 한 잔 하며 인터넷을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게시판에 올렸던 옛글들을 찾아보게 됐다. (나이 먹나?) 어떤 게시판들은 이미 사라져서 볼 수 없기도 했는데 푸른영상 게시판은 모든게 그대로 있었다.
해명 바랍니다.
소식지에 올릴 글을 보낼 때 분명 '김송범수'라고 해서 보냈는데 소식지에는 그냥 '김범수'라고 되어있더군요.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 때는 내가 평소 습관대로 김범수라고 그냥 보냈다가 나중에 김송범수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범수로 실렸더군요. 그 때야 깜박 잊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나야 원래 푸른영상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 평소처럼 아무생각 없이 김범수라고 쓰셨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실수하신 것이니 사과하십시오. 그게 아니고 일부러 '송'을 빼셨다면 사과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무슨 공문서라면 말이 되죠. 하지만 '푸른영상' 소식지에서 그랬다면 이해해줄 수가 없습니다.
난 지난 30년 동안 나의 반쪽이 '송'씨였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양성쓰기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참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송'씨라고 생각을 해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어머니에게 빚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운동이 그렇게 활성화는 안되더군요. 그래도 좋은 것은 나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어머니 성도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인물과 사상이란 잡지 이번 호에 양성을 쓰다보면 자식을 낳았을 때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는 글이 실렸더군요. 예를 들어 김송범수와 윤김정혜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김송윤김철수' 라는 식의 이름이 되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양성쓰기 운동을 제안한 분들이 이런 문제를 생각 못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괜히 맘에 안드니까 딴지 걸자는 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이 부분만 빼고는 인물과사상에 실린 그 분의 글에 100% 공감합니다.)
그런게 걱정되서 양성을 못쓰기겠다면 제가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죠. 그냥 어머니 성만 쓰는 겁니다. 간단하죠? 몇 백년 넘게 아버지 성만 썼으니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앞으로 한 5백년 동안만 어머니 성만 쓰기로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요? 그 문제는 후세들이 고민하게 맡겨둡시다. 자 이젠 동의하십니까? 지금까지 쓰던 성을 모두 어머니 성으로 바꾸면 혼란스럽고 경제적인 비용도 많이 들 거라구요? 물론 그렇겠죠. 그러면 새로 낳는 아이들부터 그렇게 하면 되죠? 그래도 비용은 좀 들겠지만 잘못된 것 고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좀 엉뚱한 비유지만 국가보안법도 고치거나 없애지 말까요? 극우보수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아버지 같은 분들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것이고 가치관의 혼란이 올텐데, 70넘은 우리 노인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상의해서 성을 정하기도 하고, 야예 제3의 성을 쓰기도 합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최소한 남 하겠다는 것에 딴지는 걸지 맙시다. 스스로도 얼마나 명분이 없는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차라리 솔직해 집시다. '너희들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까지 잘못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요. 자신의 잘못된 부분 한가지만 인정하면 되는데(고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걸 정당화 시키려고 하니 우스꽝그러운 논리만 만들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전 '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에겐 '상놈' 소리를 들을 얘기죠. 그렇습니다. 저 상놈입니다. 아니 아마도 상놈일 확률이 95%입니다. 그게 어떻다는 말입니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양반의 비율은 5 %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는 80%로 증가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의 날카로운 추리력에 의하면 양반들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 추리 맞습니까?
실제로 당신이 그 5% 안에 드는 진짜 양반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조상이 양반이었다는 게 뭐 그리 자랑스럽습니까?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조상을 두셔서 자랑스러우십니까? 뭐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셨나 보죠? 그렇다면 당신은요? 당신도 조상 못지않게 훌륭하십니까? 게다가 확률적으로 여러분들이 자기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그 조상이 실제 뿌리가 아닐 가능성이 위에서 보듯이 95 %입니다. 분명 양반의 뿌리는 5 %밖에 안됐는데 제 주위를 보면 왜 양반 아닌 사람이 없는거죠? 게다가 그 뿌리를 더 따라 올라가면 원시공동체 사회 아닙니까? 원래뿌리보다는 거기서 뻗어나온 곁뿌리가 더 중요한 건인가 보죠? 내 뿌리는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광산김씨'이나 '여산송씨'가 아니구요. 그 위에는요? 저도 모르죠. 그런 것 몰라도 난 사람들 사랑하며 잘 살아보렵니다. 여러분들도 잘 사시길 빕니다.
99/11/15
요즘은 양성 쓰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글을 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네. 이제 와서 읽어보니 좋게 얘기해도 될 것을 참 싸가지 없게 말했군. 이젠 윤김정혜도 내곁에 없고.^^ 요즘엔 아예 성을 안쓰기도 하더만. 나도 내 성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림자에 작명소에서 지어준 글자 하나 붙인 내 이름도 그렇고 말이다. 난 그냥 내 스스로가 부친 '무위'란 아이디가 좋다.
아버지를 모시고 방사선치료 받으러 다닐 때 처음 들었으니까 이 앨범이 나온지는 꽤 됐다.
차 안에서 처음 듣는데 아주 신선한 느낌이었다.
독특한 창법이 아소토유니온을 떠올리게도 했다. (물론 장르부터 다르긴 하지만)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다.
음악을 찾아들을 상황도 아니었던 때고 말이다.
그러다 근래 케이블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바비킴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전혀 뜻밖의 모습이었다.
아주 다른 경우지만 아소토유니온의 모습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노래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였다.
전혀 음악하게 생기지 않았는데(음악하게 따로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음악은 훌륭하다.
바비킴의 경우는 오히려 너무 잘생겨서 의외였다.
내가 아는 상엽씨를 닮아서 친근해 보이기도 했고 처음 듣는 Let Me Say Goodbye 라는 노래는 고래의 꿈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그의 음악이 궁금해져서 CD를 샀다.
고래의 꿈 (Falling In Love Again) (feat. 김영근 [Bobby's Father])
송탄에서 짐을 정리하다 옛날 사진들이 나왔다.
대부분은 허접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는데...
처음으로 같이 살게된 냥이 콩콩이
내가 살던 신림6동.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건너편 9동은 고시촌으로 꽤 그럴 듯 하지만 6동은 낙후된 지역이다.
그곳 재래시장에 토끼, 오리등을 약으로 고아서 파는 집이 있는데,
철창에 냥이가 들어있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아마도 동네에서 냥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처치곤란하면 그집에 갖다 주는 것 같다.
가끔씩 다 큰 녀석이 있기도 하고.
콩콩이를 거기서 데려왔다. 아주 새끼였는데 관심을 보이자 주인이 사가라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2천원인가 줬던 것 같다.
그 집은 이렇게 임자가 나타나면 팔기도 하고, 약 고을 때 냥이를 같이 넣어 끓이기도 하는 것 같다.
냥이가 신경통에 좋다는 말도 안되는 속설이 있으니까.
콩콩이의 영양상태는 좋지 않았다.
2천원에 파는 냥이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먹였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콩콩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때부터 냥이용 사료를 먹였어야 하는데 말이다.
냥이를 처음 길러봤고, 그 당시에는 "적게 벌고 지지리 궁상으로 살자주의"였기 때문에 밥에다 생선 통조림을 비벼서 주었다.
콩콩이의 건강을 생각하나,
매번 밥하고 생선 데워서 비벼주는 귀찮음을 생각하나
심지어 비용을 생각해봐도 진작 사료를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한 달에 몇천원만 더 쓰면 됐는데.
콩콩이의 어릴적 사진을 찍기는 했을 것 같은데찾지는 못할 것 같다.
그걸 찾아볼 시간도 요즘은 없고 말이다.
어쨌든 그래도 잘 자라서 드디어 새끼까지 낳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새끼 냥이가 얼마나 놀랍도록 예쁜지를.







제목이 왜 "세상에서 질루 이쁜"인지는 나중에.
내가 뭘 고백을 하겠다고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알엠님의 글을 읽다가 이것 저것 생각나서.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가끔 듣긴 하는데 그 말이 영 편하지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진짜로 페미니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페미니스트라면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하는데 난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려고 노력을 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워낙 거지같아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못된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면 "거봐, 페미니스트 맞잖아" 뭐, 이런 식이다.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유통되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은 분명 필요하다. 어떤 특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따로 부를 필요가 있으니까. (일본에서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은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원래 뜻 그대로인 채로는 일본 땅에서 발붙일 수가 없어서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마치 그들을 특별한 집단처럼 취급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즉 자신들이 보편적인 평균의 인간이고 페미스트들은 뭔가 좀 유난을 떠는 사람들처럼 취급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을 좀 급진적인 사람들로 취급함으로써 잘못된 기성 질서에 길들여진 자신들이 마치 '정상'인양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소 무리한 비교일 수도 있지만 노무현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한마디로 코메디인데도 이 사회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우가(진정한 극우도 없지만 어쨌든) 합리적 보수라며 너스레를 떨 수 있게 된다.
비록 진보넷에 둥지를 틀기는 했지만 난 '진보적'이지 않다. 파란닷컴이나 싸이월드 같은 곳보다는 그나마 이 곳이 약간 편해서 이곳으로 왔을 뿐이다. 난 그냥 좀 '상식적'인 인간이고 싶을 뿐이다.
예전에 누가(女)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시각을 갖게 되었느냐"고, "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나 같은 시각을 갖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말이다. 물론 두 번째에 대한 해답은 나에게 없다. 아마도 내가 특이한 경우이기 때문일 게다. 내가 남녀문제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균형적인 시각을 갖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사실 나 자신도 '남성우월주의자'였다. 즉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잘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세상이 여자들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 생각은 무지하게 단순했다. "남자들이 워낙 잘나서 공평하게 경쟁해도 충분히 여자를 압도할 수 있는데 왜 그리 치사하게 여자들에게 불공평한 룰을 만들었지?" 한마디로 말하면 '남자로서 정말 쪽팔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마쵸였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여건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야 비겁하지 않고 쪽팔리지 않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지금까지도 남자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냐고? 난 바보가 아니다.)
시작은 정말 유치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이 불공평한지 따지다 보니까 정말 말도 안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면서 나도 변해갔다. 20대 초반의 일이다.
결혼하고 몇 년쯤 지나서 추석 때였다. 정혜가 우리집(시댁)에 가지 않고 자기집(친정)에 가겠다는 거였다. 어차피 차례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어차피 지낼거면 자신도 조상이 있는데 왜 남(여기서 남은 '나'다)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냐는 거였다. 난 당황해서 몇가지 허접한 핑계를 대며 설득을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말이 나 스스로에게도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치졸하게 "그렇게 하면 결국 너만 피곤해진다"라는 야비한 설득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고 결국 추석에 나는 우리집으로 정혜는 자기 집으로 갔다. 내가 그랬던 것은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그게 합리적으로 맞는 말이라서 따른 것이다. 이 얘기를 하면 대개는 "잘했다"가 아니라 "깬다"라는 반응이다. 기껏 하는 얘기가 "너희집 먼저 차례 지내고 곧장 처갓집에 가면 될 거 아냐" 정도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결코 "처가집 먼저 차례 지내고 나중에 남자 집에 가는 것"은 용납 못한다.
내가 그렇게 바른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난 적당히 비겁하고 타협도 무지 잘한다.
잠시 엉뚱한...
알엠님의 글을 읽으면서 '같은 남자'로서 무지 쪽팔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건가?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아무런 잘못을 안했다는 것은 아니고) 같은 남자이라는 이유로 쪽팔려 하거나 미안해 해야 하는 걸까? 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해서? 방관함으로써 결국 못된 사회가 되는데 일조했기 때문에?
한국이 베트남 침공에 협조했으니까 한국인인 내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얼핏 당연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는데 정말 합당한 것일까? 난 가해 당사자가 아닌데?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라크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합당하고 양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결사적으로 반대한 사람들도 미안해 해야할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동족을 잘못둔 죄? 파병을 막지 못한 죄?(막을 힘이 있는데 안막았다면 미안해 해야 하지만 최선을 다했는데도 못막았다면?) 조금 이상하지 않나? 무슨 책임회피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으로 맞느냐 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 안에 있는 집단주의? 이 얘기는 아주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
내가 가장 많이 바뀌게 된 직접적인 사건(사실 아무 일도 없었지만)은 대학에 입학해서 여자들이 담배피는 것을 본 것이었다.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는 게 아니다. (내가 자란 곳은 미군부대가 있는 기지촌 같은 곳이었는데 코흘릴 때부터 여자들이 담배피는 것은 지겹도록 보아왔다.) 벌써 20년이 다돼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수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남성들의 수준이 아직도 '여자들이 담배피는 것을 뭐라 하지 않을 정도' 수준에만 머물러있는 게 아닌가 싶다. 딱 거기까지만 말이다.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오늘은 그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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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게 왜 그렇게 올블랙을 좋아하는걸까요? 저도 예전에 올블랙갖고 두 사람이 싸우다시피 한 적도 있었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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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에요. 냥이는 다 예쁜데 말이죠. 아마도 특이한 녀석을 갖고 싶은 소유욕 때문이겠죠. 특이한 걸로 치면 우리 나비처럼 애꾸도 있고 냥이네에 입양을 기다리는 특이한 애들도 많은데...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