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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12
    잔향 - 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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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1/12
    나비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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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1/11
    한대수 -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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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1/11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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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1/11
    집행유예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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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1/10
    통곡의 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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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1/10
    지리산 올라가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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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1/10
    낯선 곳으로 여행/추억 속으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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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09
    통곡의 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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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1/09
    기부문화 시비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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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 - 자각몽

잔향殘香의 CD를 산지는 꽤 됐는데 아직도 제대로 들어보질 못했다.

요즘의 내 상황이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만한 사정이 못된다.

그래서 어떤 곡이 좋은지 몰라 선곡을 하지 못하고 그냥 타이틀곡인 자각몽을 올려본다.

자각몽이란 꿈꾸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때가 있는데 그런 꿈을 가리킨다고 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적이 가끔 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전혀 자각몽을 꾼 기억이 없다.

음반 전체 분위기가 적당히 가라앉아 있어서 마음에 든다.

내겐 역시 밴드음악이 맞는 것 같다.

굳이 밴드들의 음악을 찾아듣는 것은 아닌데 어찌하다보면 솔로보다는 밴드를 더 많이 듣고 있다.

자각몽은 어떤 영화의 도입부에 쓰이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전에 가봤을 때는 홈피도 안꾸며져 있더니 이젠 내용이 채워져 있다.

잔향 홈피 가기

 

 

그런데 잔향으로 검색을 하다보니 '음향/진동학'에서 잔향에 대한 이런 설명이 되어 있는데 난 왜 이런게 재미있는 거지?

뭐 그렇다고 이걸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잔향 [ 殘響 reverberation ]

 

넓은 실내에서 음원(音源)의 음이 정지한 다음 잠시 동안 들리는 연속적인 반사음. 이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도달해 오는데 벽 등의 반사음이 중첩된 것이다. 반사 때 그 에너지의 일부가 흡수되기 때문에 잔향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지수함수적으로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소멸한다. 따라서 그 음압 레벨은 〔그림 1〕처럼 시간과 함께 직선적으로 하강한다. 다만 복잡한 음향특성이 있는 방에서는 〔그림 2〕와 같이 이 직선이 굽어질 경우도 있다.


음원이 멈추었을 때부터 시작하여 잔향음의 에너지가 최초의 값의 1/100만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잔향시간이라 한다. 잔향시간 T를 구하는 식은 건축음향학의 창시자 P.E. 새빈에 의해 최초로 실험적으로 정립되어,
=0.161/
라고 표시되었다. 여기에서 V(㎥)는 방의 부피, S(㎡)는 벽의 면적, α는 벽의 평균 흡음률(음 에너지가 흡수되는 비율)이다. 다만 홀 등의 경우 α는 좌석의 재질이나 청중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한 잔향시간의 식이 제안되고 있다.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잔향시간은 그 방의 사용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음악의 경우 1.5∼2.5초 정도, 강연에는 1.0∼1.5초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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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흑백사진

필름 카메라를 더 좋아하면서도 돈이 많이 들어서 디카만 사용했다.

사촌형이 20여년동안 사용안한 필름 카메라를 주었지만 1년여를 찍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달랑 한통 흑백필름을 사용했는데 뽑는게 귀찮아서 또 그렇게 몇달이 흘렀다.

그래서 이 사진엔 로드도 담겨져 있다.

 

 

통곡의벽이 시작되기 전 나비의 보금자리였던 라면박스.

위쪽을 보면 스크래치한 흔적이 있다.

설마 나비가 위쪽을 긁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내가 박스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신문을 덮어도 가만 있는 나비.

역시 필름카메라의 얕은 심도는 디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로드와 함께 세가족이 살았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필카든 디카든 언제쯤 사진 찍으러 나다닐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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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 먼지

앨범에 가사가 적혀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굳이 여기다 가사를 적어놓는 것이 이 곡을 듣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

가사를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랩도 아니고, 옛날 노래들 처럼 시를 읆는 것도 아니고,

한대수 제멋대로 주절 거린다.

 

운율이 맞는 듯도 하고, 어거지로 대충 갖다 맞추는 듯도 하고,

하여튼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요즘의 나에게는 정말 절절하게 다가오는 가사다.

이 노래 가사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대수! 정말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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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밤새 운전을 하고 갔다.

소록도, 정말 멀더만.

녹동 선창장에 도착을 하고, 코앞엔 소록도가 보였다.

약간 낯설고, 약간은 떨리고, 조금 설레기도 하고.

 

 

어리버리 첫날- 자원봉사

 

대단한 영미씨다. 소록도까지 일감을 싸갖고 오다니!

영미씨는 컴터앞에 앉아 일을하고, 그런데님과 나는 자원봉사자 회관을 찾아갔다.

 

- 며칠간 하실 거죠?

"3일이요"

-단기로 하실 거니까 좀 힘든 일이어도 괜찮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네."

(어, 이게 아닌데. 우린 자봉도 하지만 실컷 놀기도 할건데 이래서야...)

 

그런데님은 중환자병동에, 난 정신병동에 배치됐다.

 

잠도 못자서 몽롱한데, 무엇을 할지 몰라 어리버리한 첫날이었다.

한센병환자도 처음이고, 정신병동도 처음이고.

가자마자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씼겨주란다.

처음 씼겨드린 할아버지는 한센병 때문에 눈도 없고, 손가락도 없다.

아니, 씼겨드리기 전에 한 일이 있구나.

할아버지께서 소변을 보시겠다고 했고, 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죠?"

 

주로 한 일은 씼겨드리기(제일 힘든 목욕시키기는 전날 했다고 한다.),

식사시키기(식사시간도 약간의 전쟁이다. 눈이 안보여도 혼자 드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떠먹여드려야 하는 분도 있다.), 기저귀 갈기, 소변 받기, 옷갈아입히기, 등등.

 

가장 나를 긴장시킨 것은 손톱깍아 드리는 것이었다. 그냥 손톱만 보면 무지 긴데,

손톱 밑을 보면 살과 늘러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만 잘못하면 피가 나기 때문이다.

손톱이 너무 두꺼워져 손톱깍기가 아예 안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3일간을 주로 병동에서 보냈는데 병동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 사진은 없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지 않았다해도 안찍었을 것 같다. 사진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고.

 

첫날 사진은 없다. 너무 피곤했고, 다음날 새벽 4시반에 일어나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에 선영씨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을 잤다. 그런데...

 

 

밤9시가 좀 안되서 영미씨가 깨웠다. 밤바다에 나가자고.

나나 그런데님이나 밤바다에 가고 싶었겠는가?

너무너무 일어나기 싫었는데 그래도 일어났다.

하루종일 혼자 있었던 영미씨와 놀아줘야겠다는^^ 의무감 땜시.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밤바다 좋은 줄도 잘 몰랐는데, 선영씨집에 돌아와 술을 먹으니 좀 말똥말똥해졌다.

송환 얘기도 하고, 소록도 얘기도 하고...

 



그런데님의 셀프샷.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겠다나 뭐라나.


둘째날 점심시간에 선영씨집앞에서.


병동 바로앞 바다에서 


옛날에 사용했던 검시실 내부


일제시대때는 강제로 정관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수술대

 

단종대 (이 동)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차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짱박혀 담배피기


그런데님보다 내 점심시간이 30분 더 길어서 영미씨와 좀 돌아다녔다.

 

 

둘째날

 

둘째날 자원봉사는 훨씬 수월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젠 어리버리 단계를 지나 뭘 해야할지 감이 잡혔기 때문.

하루 자봉한 주제에, 새로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뭘해야 할지 교육도 하고. ^^

 

홍구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셨는데 어깨를 몇 번 주물러 드리곤 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자신의 침대에 와서 앉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곤 창밖의 바다를 보라고 한다.

정신병동이라 창문에 비록 쇠창살이 쳐져 있지만 창밖의 바다는 아름답다.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우시는 거다.

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간호사 지나가다 그런다.

"그 할아버지 원래 그래요."

 

그냥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 할아버지는 정신이 말짱한 편이었고, 나이는 여든이 넘으셨다.

혼자 걷지도 못하고, 기저귀를 차고 사신다.

자신이 이 병동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란 걸 아시고 계실게다.

그런 저런 생각이 들면 울음이 안나오겠는가?

 

 

두 번째 밤바다

 

이날은 정신을 좀 차려서 카메라도 챙기고, 폭죽도 챙겨서 바다로 나갔다.

물론 맥주와 안주도 가지고 나갔다.

깜깜한 바다가에서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찾아서 긁어 모았다.

그런데님의 집념으로 제법 그럴 듯한 모닥불을 피우고.

맥주로 병나발도 불고.

이게 뭔 사진이냐고?

믿거나 말거나 밤바다 사진이다.

낸들 어떻게 하나? 뵈는 게 없는데 어찌 찍냔 말이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잔잔한 파도소리는 들린다.

못온 사람들 부러워하라고, 무지 재미있는 척?하며 폭죽놀이를 했다.

 

 

마지막날

 

영미씨는 아침에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을 하고 긴 아침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사진도 찍고 영미씨 배웅도 했다.

선영씨 집이고,

선영씨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이런 풍경이다.

선영씨가 일하는 어린이집.

말그대로 선영씨집 코앞에 있다.

두 번째 셀프샷. 뭐 바뀐게 있나?

 

거실에서 기념촬영

집앞에서도 기념촬영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내가 찍은 그런데님 사진 중에 이게 젤로 맘에 든다.

 

드디어 배가 오고

혼자 씩씩하게 배를 타러가는 영미씨.

어제밤에 얼핏 사슴 한 마리를 본 게 전부였는데

오늘은 떼거지로 등장했다.

뻘에서 꼭 한 장 찍어야겠다기에.

근데 어두워서 셔터속도를 늦게 했더니 좀 흔들렸다.

뽀샾으로 보정을 좀 하긴 했는데...

어두워지는 바닷가에서 선영씨에게 요술풍선 강습.(그런데님 촬영)

자신의 컴터 바탕화면으로 쓰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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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2주

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왔다.

 

방사선 치료가 끝났는데도 상태가 안좋아져서 원래 한두달 정도 있다가 찍을 예정이었던 MRI를 오늘 찍을 수도 있다고 했다. 스테로이드 때문에 반짝효과를 봐서 좋아졌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어쨌든 호전은 되었으니 2주정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의사나 나나 모두 악성 뇌종양일거라고 예상은 하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뭐가 나온 것은 아니기에 마음의 준비를 2주간은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러기를 벌써 몇 번째인가?

뇌종양인 것을 안 다음부터 양성이니 악성이니 의사들도 의견이 많았고, 뇌수술 후 별거 아니라는 말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제 회복하는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다시 악화되서 뇌사진을 또 찍고, 그 새 또 자라난 걸 봐서는 악성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병원을 못믿겠다고 하고... 그러다 별 수 없이 방사선치료를 시작하고...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보니 방사선치료가 효과있는 걸로 믿기도 했다가... 다시 안좋아져서 거의 다 줄였던 약을 왕창 늘리고...

어쨌든 조직검사에서 악성판정이 난 적이 없고, 아직은 뇌사진을 찍지 않았으니 말그대로 '아직'은 악성이란 판정이 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하지만 사형수가 자신의 사형집행일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아무 차이가 없을까?

 


 

아래글은 아버지가 아주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써놓은 글이다.

나중에 상황이 바뀌었다고 내 스스로가 딴소리 할까봐 적어놓은 것이다.



당사자 되기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아주대 병원에서의 치료 방법중에는 수술이 없었다.
너무 위험한 부위라고 극히 일부 조직만 떼어내서 암덩어리인지 단순한 양성혹인지 알아보고 방사선 치료하자는 거다. 그런데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서도 마취를 하고 바늘로 두개골을 뚫고 세포를 떼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반신불수가 된다고 한다.

어차피 위험한 것이라면 그나마 완치의 가능성이 있는 수술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은 잘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지만 몹시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들고 말이다.

광기형을 통해서 영동세브란스 병원의 실력 있는 권위자에게 수술을 받기로 했다. 수술할 환자들이 워낙 많이 밀려있는데, 아는 사람의 부탁이니 그 스케줄 사이에 아버지를 끼워넣어 주기로 했다. 한국사회의 커다란 병폐중의 하나인 '연줄'을 우리도 동원한 것이다. 연줄 없는 사람들이 그만큼 뒤로 밀려나겠지.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있나? 아니, 못한다. 이 죄를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

병원에서 파업을 하고 있다. 모든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아직은 식사가 제대로 안나오고 하루 세끼 똑같은 도시락이 나오는 정도의 불편이지만 장기화되면 뭐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어 무지 불안하다.
주5일제를 요구하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을 100% 지지한다. 하지만 당장 피해를 입게될 내가 어디까지 이성적일 수 있을까? 벌써부터 TV에서는 평소의 60%밖에는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 아버지의 수술도 그만큼 늦어지겠지.
노사간에 타결이 안되면 난 물론 사측을 더 원망하겠지만 같은 노동자로서 그들을 계속 지지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천지인-열사가 전사에게전(연주곡)

200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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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끝?

아직 다른 벽을 긁긴 하지만 주로 스크래쳐를 긁는다.

아버지 때문에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어 스크래쳐를 긁는 그럴듯한 모습을 찍지 못했다.

오랫동안 긁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긁기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를 찾으면 이미 늦는다.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요즘 형편상...

 

어쨌든 스크래쳐와 많이 친해졌다.

꼭 긁으려고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스크래쳐가 좋은가 보다.

좁아서 전혀 편해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위에서 이것 저것 한다.


슈퍼맨이 날아갈 때 이렇게 한쪽 팔을 쭉 뻗곤 하지.

 

이렇게 앞발을 교차하기도 하다가.

졸다가

지가 긁어 놓은 벽을 쳐다보기도 하고 

이번엔 팔을 바꿔서 날으는 자세?




원래 뜯던 벽쪽에는 스크래쳐를 갖다놔서 그곳을 뜯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디 벽이 거기 뿐이랴.

주로 스크래쳐를 긁지만 짬짬이 이 곳도 이렇게까지 망쳐놨다.

그래-서

이렇게 해놨다.

 


벽을 책으로 가려놨다.

그랬더-니

 

 


을 뜯고 있다. (결정적 순간에 후레쉬가 안터지다니!)

그래-서

 

혼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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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을 버리고 왔지만 이번에도 지는 버리질 못했다.

괜한 미련을 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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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올라가기

젠장 벌써 7시군. 6시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하긴 어제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

텐트치고 라면 끓여 먹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시간에 술을 먹기 시작했으니.

반딧불도 보고 밤하늘의 별도 보고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술한잔 하다보면

친구와 뭔가 그럴 듯한 대화를 나눌 것도 같지만

우리의 일상이 누추하듯 우리의 대화 내용도 그냥 그렇고 그런 것들뿐이다.

늦게 일어났다고 또 라면을 먹을 수는 없으니 밥해 먹어야지.

어제밤에 귀찮아도 쌀을 담가두길 잘했군.

내가 한 밥이지만 정말 예술이야.

 

 

나이를 확인하다 ?

 

한신계곡-> 세석산장-> 장터목 산장-> 천왕봉-> 하동바위

코스를 정했으니 열심히 올라가야지.

난 그렇게 힘든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이 녀석은 자꾸 나이 탓을 하네.

지가 맨날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운동도 안하니까 그렇지

어디 꼭 나이 때문이겠나.

하긴 맨날 술에 쩔어 살던 나도 별로 나을 건 없다.

 

내 눈치를 보며

"좀 쉬었다 갈까? 그리고 앞으로도 자주 쉴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쉬어야지.

"천왕봉까지 가려면 시간 안모자라냐?"

"걱정마. 충분해"

 

"야 여기 기억나냐? 10년전에 우리가 수영했던 곳인데"

나같은 길눈에겐 다 거기가 거기 같은데 기억날 리가 있나.

"수영했던 기억은 난다."

한여름은 지났다지만 그래도 8월이고, 날도 이렇게 더운데 수영이나 하고 갈까?

어제밤 계곡물에 씻을 때도 별로 차갑지 않았잖아.

 

 

어라? 물이 왜 이리 차가운 거야.

기껏 옷도 벗었는데 수영은커녕 발도 못담그겠네.

5초정도만 발 담그고 있어도 발이 시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군.

분하다. 10년만에 수영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야, 예전엔 이렇게 차가운 물에서 어떻게 수영을 했지?"

친구 왈 "그땐 한여름이었고 제일 팔팔할 때였잖아"

그래도 좋다. 수영은 못즐겼지만 눈과 몸은 이렇게 즐거우니.

계곡물은 그냥 마셔도 찜찜하지 않고.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한신계곡 쪽에는 사람들이 왜 없지?

이쪽 코스가 좀 험해서 그러나?

 

 

길을 잃다.

 

올라갈수록 점점 험해지는군.

친구놈은 원래 그랬다치고,

난 왜 갑자기 힘이 쫙 빠지고 다리가 후들 거리지?

배고픈 건가?

친구가 건네준 쵸코바, 이거 완전히 마약이군.

먹자마자 힘이 확 솟네.

이런 효과를 전문용어로 '직빵'이라고 하나?

 

 

바위와 나무들이 온통 이끼로 덮인 모습이

플래툰 같은 베트남전 영화에서 본 정글 느낌이다.

이끼낀 바위는 정말 미끄럽다.

난 이렇게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헤메고 있는데

이녀석은 잘도 올라가네.

 

 

"범수야, 길 잃어 버린 것 같다."

엥? 이녀석 여기 출신 맞아?

지리산을 마치 제 앞마당처럼 얘기하더니.

반달곰이 좋아한다는 연죽만 지천으로 널려있군.

풀에 쓸리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에고 에고 길을 찾아랏!

 

 

막판에 많이 힘들었지만 어쨌든 1차 목표지점인 세석산장에 도착.

이제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기 때문에

좀 전처럼 그렇게 가파른 곳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군.

근데 날씨가 왜케 좋다냐?

 

내 눈엔 별 것도 안보이는데 이 녀석은 뭘 그리 감탄을 하지?

"야~ 구상나무가 살아남았구나!"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빨지산들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토벌군이 산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아직도 흙을 파보면 검은 재가 나온다나.

모든 나무가 불타 버린 그 곳에

구상나무 군락을 만들겠다고 묘목을 심었는데

자생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이렇게 멋지게 살아남았으니 친구녀석이 감탄할밖에.

 

저기 보이는 곳이 천왕봉이라고? 저길 언제가냐?

시간도 꽤 된 것 같은데.

사진이고 뭐고 빨리 빨리 가야겠다.

 

그래도 촛대봉 꼭대기에는 올라가서 내려다 봐야지.

 

이 녀석은 이제야 마약을 복용하는군.

하긴 마약 대신 어제 절에서 얻어온 오이와 과일을 잔뜩 먹기는 했지.

 

"저~기 보이는게 바다야, 구름이야?

여기 올라오면 맑은 날에 바다가 보인다고 하던데."

 

 

어찌하오리까?

 

장터목 산장 가는 길.

핸드폰이 안터지니까 시간도 안나오네.

시계는 핸드폰에 내장된 건 줄 알았는데 시간도 전파를 통해서 받나 보다.

시계를 찬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봤는데.

 

아이고 큰 일 났다. 벌써 3시가 다 돼 간다고?

우린 1시반이나 2시쯤 됐는 줄 알았는데.

아직 장터목도 제법 가야 하는데, 그리고 점심도 아직 안먹었는데.

천왕봉은 포기해야 하나?

 

시간이 넉넉하다고 자신있게 떠든게 미안했는지,

길을 잃어 시간을 허비한 것이 미안했는지

친구녀석은 자꾸 엄한 소리를 한다.

"산이란게 꼭 정상에 올라야 맛이냐?"

"천왕봉이 지리산에서 최고봉이라니까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가는 것뿐이지 사실 별 의미는 없다."

 

맞는 말이긴 한데 거의 다 와서 못올라가는 것도 좀 그렇잖아.

장터목에 도착하긴 했는데 시간 여유가 너무 없다.

해떨어지면 랜턴도 없는데 말이다.

이 녀석은 죽어도 못가겠다고 하니

이 참에 짐을 다 내려놓고 혼자 올라갔다 와야겠다,.

생라면 반개를 후다닥 깨먹고 출발하려는데

친구녀석은 아무래도 걱정스러운가 보다.

올라가는데만도 1시간은 족히 걸릴텐데 1시간안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까?

그나마 한시간도 거의 맥시멈으로 잡은건데.

에라 중간에 돌아오더라도 일단 가보자.

 

 

급한 마음에 너무 오버를 했나보다. 아주 죽겠구만.

이 상태로는 시간안에 도저히 못갔다 오겠다.

10년 전쯤에 천왕봉을 못올라 갔다면 굉장히 짜증났을 것 같은데

이젠 그런 일쯤은 그냥 넘길 만한 여유는 생긴 것 같다.

아님 스스로에게 세련된 변명을 할만큼 교활해진 건가?

뭐 아무려면 어때.

가을에 다시 오지 뭐. 내년에 오던가.

1808M 제석봉,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사진이나 몇장 찍고 가야겠다.

안내판을 보니

예전에 도벌꾼들이 극성을 부렸는데

그들이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렀다고 써있다.

친구 말에 의하면 도벌꾼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는데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렀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우리 국군이 빨치산 잡으려고 불질렀다고 쓸 수는 없어서 이렇게 쓴거 아닐까.

'도벌꾼'을 '토벌군'으로 바꾸면 딱 맞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문수사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던

'지리산 공비'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생각나는군.

 

이번 산행 때 쓸려고 미니 삼각대를 샀는데 한 번은 써먹어야 할 것 아냐?

셀프샷 한 장.

자, 이제 열심히 내려가야 겠다.

 

 

2003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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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 여행/추억 속으로 여행

10년만에 친구와 지리산에 갔다. 10년 전에도 이 친구와 갔다.

친구의 고향이 바로 지리산 밑자락인 경남 함양이다.

나는 시간이 널널한데 반해 이녀석은 무지하게 바쁘기에 일정을 짧게 잡았다.

 

 

문닫은 학교

 

우리가 택한 등산로인 백무동 계곡에 가려면 친구가 태어난 곳을 지나치게 된다.

친구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들렀는데 이미 폐교된 상태였다.

초등학교를 두 군데 다녔는데 두 곳 모두 문을 닫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학교 운동장은 잡초만 우거져 있었고,

새끼를 낳은 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곧 이녀석은 경계를 풀었다.

옛날 학교가 의례 그렇듯 이순신 동상이 근엄하게 서있다.

이승복 동상이 없는 게 오히려 좀 이상했다.

 

 

처음 가본 문수사 / 10년만에 찾은 문수사

 

어릴 적 형편이 아주 어려웠던 내 친구는 5년동안 절에 맡겨졌었다.

10여년만에 찾아가는 그 절로 가는 길 내내

친구는 감회에 젖어 계속 주절주절댔다.

지금은 도로가 뚫려 차로 금방 올라갔지만,

어린 초등학생이 산길을 따라 그 먼 학교를

5년동안이나 다니기엔 무척이나 힘들었을 게다.

친구의 옛날 사진 속의 절은

불전이 달랑 하나 있는 아주 작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난 이런 사진 별로 안좋아 하는데, 친구녀석이 자꾸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이 녀석이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식물도감'을 만드는 것이다.

전공이 뭐냐고? "화학공학" ^^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두 꽃 중의 하나가 다알리아라고 한 것 같은데...

이게 더덕 꽃이라고 한다. 다른 화려한 꽃보다 더 정감이 간다.

절은 변했지만 친구를 돌봐준 스님은 그대로 계셨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절답게 뱀도 돌아다녔다.

내려 오는 길에 호두를 땄다.

난 호두가 그렇게 생겼는지 몰랐다.

쌀밥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는

이 호두가 천하진미의 간식이었다고 한다.

밤늦게 백무동 계곡 야영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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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벽

빈 박스 하나 갖다 놓으면 그게 나비의 보금자리이자 스크래쳐 역할을 했다.

그러다 박스가 너무 헐어서 바꿔주려고 일단 치웠는데

새로운 박스를 갖다 놓는다는 것이 그냥 며칠이 흘렀다.

그러자

 


 

벽을 긁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벽 긁는 것에 재미들인 나비는 계속해서 벽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이젠 박스를 갖다놔도 소용이 없었다.

그냥 기념으로 놔두기에는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할 수 없이 돈을 들여서 스크래쳐를 구입했다.

 

 

그런데 스크래쳐에는 관심도 없다.

내가 억지로 올려놓은 다음 발을 붙잡고 긁는 시범을 보여줘도 나비는 도망 가버린다.

 

 

스크래쳐를 산지 3일쯤 지나서 드디어 나비가 스크래쳐에 관심을 보인다.

 

제발로 스크래쳐에 올라갔다.

과연 긁을 것인가?

 

 

엥? 딴 짓만 하고 있다.


 

그러다 돌아섰다. 그리고

드--디---어-----

긁기 시작했다.






스크래쳐를 밟고 벽을 긁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내가 미~~~쳐!

과연 나비의 통곡의벽은 끝이 났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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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시비걸기

꼬리에 꼬리물기? 아님 횡설수설?

 

아름다운 재단이 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떴다"라는 표현만큼 적적한 걸 못 찾겠다. 참여연대 대표였던 박원순씨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지해 탄생한 듯한 아름다운 재단은 이제 방송은 물론 신문까지 밀어주고 있다. 아니 '기업'까지도 밀어주고 있다.현대증권인가에서는 TV광고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아름다운 재단을 광고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이미지와 접목시키려는 속셈이 너무 뻔해 보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아름다운 광고로 보이겠지.

뭔 문제가 있어서 난 이렇게 시비조일까?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곤 10원도 안내는 내가 이따위 소리를 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무슨 빈민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너무 뻔뻔한 거 아냐?)

 



자선문화가 자리잡히면 빈곤문제가 해결될까? 아니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는 될까?

 TV에서도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금을 받는다. 눈물나게 어려운 사람들을, 감정을 자극하는 멘트와 함께 보여줘서 사람들로 하여금 수화기를 들게 만든다. 공영방송이라는 취지에도 그럴 듯하게 맞는 것 같고, 전화로 돈을 낸 사람도 뿌듯함을 누리게 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 걸 본 적이 있는가? 왜 가난이 대물림 되는지, 그렇게 아프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국가는 대체 뭘하고 있는지 따지는 걸 본 적이 있나 말이다. 할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소녀가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정부보조금이 끊기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 얘기할 뿐 무엇이 문제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TV 구석에 보면 성금액수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억대의 제법 많은 돈이 걷힌다. 시청 앞에도 사랑의 온도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부금 액수가 100억이 되면 온도계도 100도를 가리키게 된다나 모라나. (요즘은 정치던, 운동이던 간에 이벤트가 빠지면 안된다. 뭐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100억, 꽤 큰 돈이다. 숫자로 따지면 꽤 여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퍼센트로 따진다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100억이 매달 모이는 걸까? 아마도 올해 목표액일 것이다. 그래 까짓거 매달 100억 정도는 기부금이 모인다고 치자. 그 돈으로 얼마나 빈곤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간단한 산수 한 번 해보자. 독거노인이 60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한달에 10만원씩만 주려고 해도 600억이 필요하다.(매달 말이다. 그리고 10만원 갖고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그냥 생존이나마 가능한가?) 게다가 어려운 사람이 독거노인뿐인가? 경제능력이 없는 장애인은 몇 명일 것이며, 소년소녀가장은 또 한둘인가? 노숙자는 어떻게 할 거고, 고아수출은 대체 언제까지 할건데? 이걸 기부문화를 확산해서 해결하자고? 장난하나?

 

어쨌든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맞다. 좋은 일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장애인 센터를 운영하다가 자금 사정 때문에 문닫을 뻔 했다가 개인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다.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기부를 하거나 봉사하는 분들의 대부분이 훌륭하다는 것에 딴지 걸 생각도 없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다.

 

횡설수설, 노조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하종강이란 분이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이고 노조에 강연도 많이 다닌다. 노조원들 중에는 맑스니 계급이니를 체계적으로 말할 수 있는 먹물들도 있겠지만 그런 의식없이 그저 "노조에 가입해서 단결하여 싸우면 월급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의식만으로 노조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이런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하종강의 강연을 듣고 나면 감동을 한단다. 그의 강연내용을 무리하게 축약하자면 이런거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 같은 것에 동참했던 분들이 언론에서 게거품 물며 '이기주의'니 '기업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느니 하는 말에 마땅한 논리도 없이 속으로 죄책감 같은 것에 시달려왔는데 하종강의 그런 말을 들으니 얼마나 당당해 지겠는가. 하지만 하종강의 나머지 말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노조 지도부까지 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내가 지금 상관도 없는 것을 어거지로 갖다 부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쨌든

일반 소시민들이 자신의 수입의 일부를 떼어내서 남을 돕고, 소중한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 분들에겐 오히려 존경을 표한다. 내가 지금 시비 걸고 있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여기서 '업'이란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문제 삼는 사람은 빈곤의 문제를 '자선과 기부문화의 확대'로 해결 하자고 '운동'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즉 그것을 운동차원에서 하는 사람, 또는 단체, 언론기관 등등을 말하는 것이다.

 

또 횡설수설? 이주노동자 이야기

참세넷에서 같이 활동하던(하는?)사람 중에 이주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인권운동가가 있다. 그분이 일하는 센터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런점에서 기부금은 매우 중요하다.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기부금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어쨌든 다시 돌아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데 이런거다. 아니 사실 이견은 없다. 그들은 이주 노동자도 우리와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이다. 원래 생각 그대로를 말했다가는 많은 기부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한다. 왜? 상당수의 기부자들에게 이주노동자란 "너무 불쌍해서 도와줘야하는 존재"일뿐 자신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센타의 문을 닫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기부자들에게 솔직히 말해야할까? 아니면 무슨 악마의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런 문제일랑 덮어두고 그 돈을 좋은데 쓰기만 하면 되는 걸까?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조차-아니 어떤 때는 그들이 더- 빈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번엔 신문 얘기?

중앙일보에서는 몇 달전부터 WE START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뭐 그런 운동이다. 오늘은 신문 1면에서부터 <달라진 기부 문화 치솟는 '사랑 온도'>라고 요란을 떨어놨다.운동의 부제도 멋지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자"  그런데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것과 얼마나 관련이 되는지 다소 황당하다. 그걸 보니 마치 이러는 것 같더군. "우리가 가난한 니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하잖아. 그러니 제발 분배니, 평등이니, 생존권이니 하면서 지랄들 좀 하지마." (물론 성격도 않좋고 중앙일보도 싫어하는 내가 오버한 게 분명하다)

 내가 못마땅한 것은 한겨레마저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꽤 한참 전부터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 같은 것을 장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협찬을 받는다.) 한겨레에 대해 이미 포기한 사람도 많다. 나도 한겨레가 대단한 신문이라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되는 '진보적 대중지'라는 모토로 밀고 나가는 신문의 한계이기도 할게다 (대중의 평균수준보다 앞서 나가는 게 진보인데 진보적 대중지라니!)  그나마 한겨레에는 이런 훌륭한 칼럼도 실렸다. (이 사람은 이렇게 짧은 글로 핵심을 파고드는데 난 왜 이렇게 길게 주절거릴까? 사실 이 글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다.)

 --- 중략---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복지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비용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 담당자들은 재정경제부 눈치를 보고, 시민단체들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산을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은 빈곤을 끝내는 게 아니라 연장하는 것이다. 구걸하다시피 해서 따낸 예산이나 기부금이 축소된 복지를 만회해 줄 수도 없지만, 빈곤에 대한 그런 접근이야말로 빈곤층을 사회적 부를 축내는 문제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며, 빈곤층을 양산한 자본과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빈민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왜 빈민운동이 없는가. 디파치오는 이렇게 답했다. 빈민을 돕고 대변한다는 자들이 무엇보다도 빈민을 양산하는 원리에 눈감으며, 빈민을 대신해 자본과 국가에 구걸해주는 선행으로 빈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세력화를 막았다는 것.

결국 빈곤을 둘러싼 투쟁에서 나오는 새로운 비전이 없다면 우리의 패배주의적 시각과 고갯짓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1% 나눔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진정 빈곤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 수익을 빈민들의 생계지원이 아니라,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을 향한 빈민들의 투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전문 보러 가기

 

자선과 빈민운동은 상호 모순관계인가?

 위에서 보았듯이 절대적인 모순관계는 아니지만 모순일 수가 있다. 그 것도 심각하게 말이다. 물론 빈민운동하는 사람이 이웃의 굶는 아이를 외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경우 아무런 모순은 없다. 황당한 비유로 들리겠지만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는 사람들에게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동물 갖고 난리냐?"라며 시비 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꽤 설득력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동조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주절거리겠지만 일단 변명?을 해보자면 이런거다. 동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람도 위하고 다른 생명도 위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강아지의 목숨도 중하게 여기고 함부로 꽃을 꺽지 않는다면 이상한 건가?이처럼 상호 모순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빈곤의 문제는 이렇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더하면 한 얘기 또하는 꼴이 될 것 같으니 일단 그만둘란다. 졸리기도 하고 말이다. 전혀 정리가 안됐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할 것 같지는 않다. 할 수도 있고. 어차피 횡설수설이니까.

 

잔향-노을

* ps 오늘 신문을보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올해 801억의 성금을 모았다고 한다. 위에서 내가 말한 100억이 아니라 1000억이 목표였나보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801억의 내용을 보면 무지 우울하다. 삼성 200억, 현대기아차 70억,엘지70억, SK70억, 포스코 70억 이런 식이다. 이렇게 기업체가 낸 성금비율이 87%이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업에게 구걸하는 단체인가? 게다가 기업들은 기부금을 내면 파격적인 세금혜택을 받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손해볼 것도 별로 없다. 기업 이미지 관리까지 생각하면 아주 남는 장사다 200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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