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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09
    운동권 밴드? -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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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1/08
    진보넷으로 이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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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밴드? - 천지인

내자신이 운동권도 아니었고, 천지인이란 밴드가 있는지도 몰랐다.

마르크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좌파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회에서 자칭 혹은 타칭 좌파라고 하는 이들 중에 진짜 좌파가 몇%나 되는지 의심스럽긴 하지!)

유물론자?

그래 거기엔 좀 해당된다.

 

아, 음악 소개하려다가 얘기가 딴길로 새는 것 같군.

어쨌든 천지인은 내가 10여년째 보고 있는 월간지 <말>에 실린 기사를 보고야 알았다.

아래에 있는 말지 기사만으로도 글이 굉장히 기니까 오늘은 노래 가사나 올리고 그만둬야겠다.

 

청계천8가 version2 _ 김성민 작사 작곡_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낯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rap/ 화려한 불빛도 없이 그저 각자의 삶의 길로 수없이 지나치는 사람들 그 사이로 내 의지보다는 타의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현실의 벽 앞에 난 눈물을 떨구고 가난이라는 글자에 포기라는 단어로 끼워맞춰 보기도 했지만, 쓴 가래 뱉어 버리고 도 자식들의 꿈 있는 미래를 위해 내 한 몸이 이 거리 속에 묻혀 이 두 다리로 버텨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은 가라.

       이게 우리들의 음악이다.”

 

 

글 이오성 레이버투데이 기자 dodash@labornews.co.kr

사진 허태주 기자 tjheo@digitalmal.com

'"우리 앨범을 두고 이번에 메이저 앨범이라고들 이야길 하는데요, 메이저가 뭔지 알려면 먼저 마이너가 뭔지 알아야 해요. 그럼 마이너란 뭐냐. 내 음악으로 내가 밥 벌어먹고 살지 못하면 그게 마이너예요. 메이저라는 게 방송에 나오고, 기획사에 소속되어야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메이저의 지위를 만들어야 되는 거죠. 전문연구직 직장인으로서 우리들의 생계와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천지인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겨 진보진영 '최장수 밴드'의 반열에 오른 '2004년의 천지인'은 최근 그들을 둘러싼 호사가들의 ?리뷰와 코멘트?에 벌써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진보진영 관계자들’ 특유의 ‘단정과 재단’이 그들을 지치게 한 했다.

"한때 ‘팔뚝질’ 좀 했다던 어느 진보적 인터넷매체 기자는 ‘아직도 천지인이 활동하고 있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고 하대요. 그래서 5년 전부터 그런 이야길 쭉 들어왔다고 그랬죠. 그리고 이야기했어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집회에 쉬지 않고 나갔었다고. 어느 일간지 기사제목은 ‘운동권 밴드 천지인 세상 속으로’ 였어요. 세상 속으로라니, 우리가 세상 밖에 있었나요? 그 세상과 이 세상이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랬다. ‘불행히도’ 천지인은 신화적인 밴드였다. 베이시스트 허훈씨의 표현대로 그들은 ‘공동체의 별’이었고, ‘노래하는 거리의 투사’였다. 그리고 그 신화는 꼭 그만큼의 무게로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떤 뮤지션보다도 더 현실에 발 딛고 노래하며 싸웠던 그들이 정작 그 현실 밖에 비켜서 있던 이들의 눈에는 ‘신화’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신화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신화가 아니다

천지인(天地人).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고 명명된 ‘신세대 담론’이 열병처럼 세상을 휩쓴 1993년,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들고 민중운동판에 벼락처럼 나타난 록밴드. 그들은 록이 어떻게 ‘한국’의 민중운동과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최초의 전형이었다. 「청계천 8갯 「열사가 전사에게」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밤바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니까」··· 등 한 번에 열거하기도 힘든 숱한 히트곡들이 말해 주듯 그들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었다.

천지인의 록이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이 ‘나라의 현실’에 발딛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네가 커서 어른 되면 남 다스리는 판사나 정치인이 되어’로 시작하는 「네가 커서 어른 되면」은 1990년대 운동권의 혼란한 정서를 역설적으로 대변했다.

노래패들은 앞다투어 그들의 노래를 따라불렀고,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노래만은 술집의 낮은 창 너머로 이따금씩 흘러나오곤 했다. 그해 출시된 그들의 ‘비합법 음반’은 사회과학 서점에서밖에 구입할 수 없던, 그 ‘열악한 유통구조’에도 불구하고 무려 8만여 장이나 팔려나갔다.

어떤 이는 “서태지류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던 민중가요판에서 음악의 질로 맞장 뜰 수 있었던 유일한 밴드”라고 그들을 평가한다. 당대를 풍미했던 꽃다지, 혹은 희망새의 인기가 서서히 하향세를 그려가는 과정에서도 록밴드의 정체성을 지닌 천지인의 생명력은 남달랐다. 한때 융성했던 ‘록 담론’-록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이 자취만 남기고 사라져갔음에도 그들은 1997년 2집 음반, 2001년 3집 음반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꿋꿋이 지켜왔다. 이제 천지인은 데뷔 이래 10년을 넘긴 몇 안 되는 ‘노래집단’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지난 7월 ‘새음반’을 발표했다. 2년의 준비 과정 끝에 천지인의 지난 히트곡들을 베스트앨범 형식으로 다시 묶었다. 비록 ‘베스트’라곤 하지만, 이번 음반은 과거의 천지인과 확연히 달라졌다. 리듬앤블루스 풍의 랩이 가미된 「청계천 8갯와 세련된 전자음으로 업그레이드된, 그러나 그 ‘슬픔의 정서’는 한층 깊어진 「열사가 전사에게」등 모든 곡들이 좀더 깊어지고 세련돼졌다.



3.5집은 어떤 결별이자 시작

천지인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해봤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앨범을 ‘3.5집’이라고 부른다. 4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낸 ‘베스트’이자, 3집 이전의 천지인과 ‘일정한 결별’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별’의 단초는 무엇보다 이번 음반이 메이저 음반사인 신나라뮤직을 통해 유통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천지인은 이번 앨범을 내며 ‘공격적인 방송활동’을 펼치겠다고도 선언했다.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라던 그 노래, 「열사가 전사에게」가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한 ‘사건’도 기폭제가 됐다.

그래서일까. 천지인의 이번 앨범은 ‘기성언론’으로부터 유례없는 조명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에 그들의 음반소개와 함께, 인터뷰가 비중 있게 실렸다. 10년을 언더그라운드로만 ‘암약’해 온 록밴드에 대한 기성언론의 관심이야말로 천지인의 생명력과 가치를 웅변하는 것이었다.

그런 천지인도 한때 민중운동진영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을 듣던 근엄한 ‘선배’들이 “양키의 음악이 민중가요의 순결을 유린한다”며 술상을 뒤엎었던 것이다. 불과 10년 전의 이야기다. ‘원년 멤버’로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정은씨(34 · 키보드)는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

“정말로 공연하다가 돌을 맞은 적도 있어요. 1994년에 광주 조선대에서였는데, 아마 한총련 출범식이었을 거예요. 사상적으로 조금 다른 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집회를 하고 있던 자리에 초대받아서 공연을 하게 됐는데, 우리 공연을 제지하기 위해서 주최측 학생들이 몰려왔었어요. 결국 사수대들의 보호까지 받으며 노래를 불러야 했죠. 하~ 참.”

 



 

우리는 너희들의 안줏거리 밴드가 아니다

그리고 강산이 변했다. 그런데 10년 전의 천지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또다른 낯섬’이거나 ‘과거에 대한 집착’이 주류다. 그들의 방송활동 선언이나, 메이저 음반유통사와의 계약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흘겨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영화주간지에 실린 음반평은 ‘사운드와 편곡은 비할 바 없이 세련돼졌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청계천 8가의 벼룩시장처럼 10년 전의 투박했던 감동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씨는 차라리 “옛날처럼 반발이라도 하면, 보다 건강한 논의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록밴드 ‘메이데이’ 출신의 베이스 연주자 허훈씨(34)도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 떡볶이도 맛있어야 팔리는 거 아닙니까. 떡볶이가 맛있으려면 떡도 좋아야 하지만, 양념도 좋아야 하고, 그릇도 맛있어 보이는 놈으로 갖춰야죠. 그런데 뭐라고요? 변했다니요? 맛도 보기 전에 함부로 이야기하고. 그런 사람이 평생 가봐야 떡볶이 맛을 알겠어요? 전노협 진군가를 밤에 홀로 들었던 사람은 거의 없겠죠? 그런데 저흰 천지인 노래를 잠자리에서도 듣고 싶은 ‘맛있는 노러로 만들고 싶어요."

이처럼 ‘좋았던 옛날’만 기억하려는 ‘무심한’ 진보진영의 팬들에게 천지인이 가진 서운함은 결국 지금 민중가요판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대중음악판이 휘청거리는 지금, 민중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민중가요판은 이제 정말 삭막합니다. 후배들이 없어요. 문화공연의 경우에도, 보세요. 지금 ‘자 우리 손을 잡자’라든지, ‘자유’, 라든지 그래도 우리 민중음악판에 숨통을 틔워주던 공연들이 최근 5년 동안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이를테면 모두 열린음악회 같은 것들에 뺏긴 거지요. 그 많던 공연 기획자들, 음반 기획자들은 또 모두 다 어디로 갔습니까? 게다가 진보진영의 음악하는 단체들은 어떻습니까. 채 10개도 안 돼요. 한번 꼽아볼까요? 꽃다지, 희망새, 소리타래, 우리나라, 젠···”

결국 채 여섯 개도 꼽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한참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천지인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욕을 먹더라도 악착같이, 아니 번듯하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일담이라도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랬다. 어쩌면 천지인이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우리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자존을 건 생존’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그들을 알고 있다던 이들은 변절, 혹은 타협이란 단어를 들고 나와 싸움을 거는 셈이다. 김정은씨가 말을 잇는다.

“최근 천지인의 오버 진출에 대해서 자본주의화니 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아니, 대체 유물론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돈에 대해 초연하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유물론자가 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기자가 다시 물었다.

- 이분법적으로 물어보죠. 그와 같은 이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그런 게 아니라고, 맞서 싸울 겁니까? 아니면 초연해질 겁니까?.

“사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냥 ‘무시’하고 싶어요. 이 말은 초연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건데요. 말하자면 우리는 술자리의 오징어 안주처럼 추억거리 밴드로 남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어요. 아주 사적인 경험이지만, 옛날 선배들, 특히 일상적으론 진보진영이나 또는 음악과 아무 관계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만나면, 니네 이래서 되겠냐, 아직도 이런 정도밖에 안 되냐며 냉소적으로 훈계를 하죠. 그래 놓곤, 돌아서면 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우리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추억처럼 씹다가 마는 거예요.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충고나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은 무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천지인은 왜 MR 테이프 안 풀어요?”

‘후일담이나 늘어놓는 선배’들 뿐만이 아니었다. 진보진영에 대해 가지는 천지인의 ‘문제의식’은 더욱 심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10년의 깊이가 담긴 문제의식이었다. 보컬 엄광현씨(29)가 정색을 했다.

“노래운동 진영의 선배들, 혹은 공연 관계자들을 만나면 이런 소리를 들어요. 왜 천지인은 MR(반주테이프)을 풀지 않느냐는 거죠. 답답해요. 우리는 멤버가 모두 모여 장단을 맞춰야 음악이 나오는 밴드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반주테이프를 달라는 것처럼 치욕스러운 게 없어요. 물론 우리 문화판의 여러 조건들이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되는 건 압니다. 그래도 하나씩 바꿔 나가야죠. 결국 이런 식으로 우리 같은 밴드들이 집회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겁니다. 정말 화가 나요.”

엄광현씨는 “그나마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큰 집회에선 우리를 부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3월 10만 명이 모인 탄핵반대 집회에 서문탁과 조PD의 모습은 보였어도 천지인은 보이지 않았다. 천지인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3.5집을 내고, 오버에서 활동하기로 하면서 꽃다지의 이은진 선배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러시더군요. 민중가요의 틀을 깰 수 있는 건 지금 너희밖에 없는데 왜 이제서야 내기로 했느냐고. 천지인은 이미 외연의 확장을 해낸 밴드고, 그래서 오버에서 승부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죠. 그리곤 그러시대요. ‘가라, 가서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지만 말라’고.”

지난 8월 3일은 천지인에게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열사가 전사에게」가 공중파를 타고 울려퍼졌다. 대구 MBC에서 방영하는 ‘텔레 콘서트’가 그 자리였다. 말하자면 제도권에서의 ‘첫 경험’에서 느낀 그들의 ‘감개무량의 소감’은 이런 것이었다.

“음··· 모두들 우리를 신인 록밴드 정도로 생각하더군요. 겉늙어 보이긴 하지만(웃음). 그런데 굉장히 특이했던 것은 ‘열전’(열사가 전사에게)을 부르고 났더니, 처음 들어본 이들이 이 노래를 아주 독특한 발라드쯤으로 받아들이더군요. 어떤 이들은 '열전'을 듣고 6·25 전쟁 때 사망하신 순국선열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뭉클했다고도 하고, '청계천 8가'를 듣고 어머니 아버지의 삶을 떠올렸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반응들이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이제 오버그라운드로 첫발을 ‘오래된 밴드’는 스스로 자신들의 장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데뷔 10년만에 가장 튼튼한 라인업이 구성된 거죠. 사실 1집 때만 해도 모두들 군대 문제조차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군대 갔다 휴가 나와서 가발 쓰고 공연하기도 했거든요. 1999년에 이 멤버가 짜여졌으니 벌써 5년 동안 호흡을 맞춰 왔어요. 매니지먼트 역시 과거의 아마추어적 분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이미지메이킹’이 필요하고, 거기에 충실해질 생각입니다. 3집 앨범 낸 뒤에 대중음악계의 한 홍보담당자를 만났어요. 그랬더니 혹시 니네 멤버 중에 의사나 변호사가 있냐고 묻더군요. 없다고 했더니 아니 그러면서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고 반문하대요. 음악하는 사람이 음반 낸 게 무슨 기삿거리냐는 거죠. 우리는 이런 현실에 맞설 겁니다.”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은 가라

천지인은 단단히 ‘작심’한 듯 보였다. 그것은 냉혹한 자본주의의 ‘게임의 법칙’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였다.

“우리는 자부합니다. 지금 이 세상의 어떤 밴드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전략과 전술을 고민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테크니션이라고 불릴 만큼의 실력은 아니지만,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시대정신’에 집착해 자멸하진 않을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9월 10일, 엄광현씨는 빈민대책 집회에 예의 ‘밴드도 없이’ 혼자 노래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 늦은 시각, 그는 천지인 팬 카페(http://cafe.daum.net/bandchunjyin)에 이런 글을 올렸다. 취기 어린 그의 글엔 천지인의 진심어린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날', 천지인은 비로소 ‘살아 있는 신화’로 거듭날 것이다.

‘내 노래의 파장이 좀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내 노래가 내 가사가.. 좀더 많은 사람들 가슴을 후벼팠으면 좋겠습니다..
내 노랫말이 사람들 가슴을 후벼파는 대신..
머리랑.. 가슴만 아픈 하룹니다..
여기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내게 힘을 좀 주세요..
무거운 납덩이 같은 힘을.’

 


기사를 링크시키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그냥 퍼왔다.

기사는 월간<말>의 인터넷판인 디지털말(http://www.digitalmal.com)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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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그 후

수술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지 중간에 우여곡절이 좀 있엇지만 어쨌든 현재는 아주 좋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걱정이긴 하지만...

 

길에서 데려온 푸들 '로드'.

인터넷에 올려도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나비의 앞발 공격을 피하고 있는 로드

 

한동안은 나비가 겁을 먹고 경계를 많이 해서 힘들었다.

로드는 좋다고 자꾸 장난을 거는데 나비는 스트레스를 받고.

이젠 나비도 경계는 안한다. 다만 귀찮아할 뿐.


눈감고 있으니까 눈없는게 티가 안난다.

 


이젠 이렇게 평화로울 때도 많다.

 



 TV를 보면 나비는 쿠션에 올라온다.

가슴에 올라오기도 하고, 가끔 거대한 엉덩이로 내 목을 눌러 숨막히게도 한다.

 

가족사진? ^^

200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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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유감

예전에 1년쯤 채식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써놓은 글이다. 채식을 해놓고 왠 '유감'?


난 채식을 한다. 사이비이긴 하지만 그래도 채식을 한다고 말할 정도는 된다.  엄밀히 말하면 눈달린 것은 먹지 않는다.

년초에 TV에서 채식을 알리는 프로그램 때문에 요즘 채식열풍이라고 한다. 그래서 좀 짜증난다. 내가 그들과 같이 취급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채식한다는 말을 될 수 있으면 안 한다. 민망해서. 근본적으로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한다. 나? 난 건강하고는 전혀 무관하다. 난 오히려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또한 건강에 좀 해로와도, 입에서 즐거운 것을 먹다가 좀 일찍 죽자는 생각이 크다.

또한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려면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기 위해 식단에 무지하게 신경써야 하는데, 난 그럴 여력이 없거니와 별로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럼 난 왜 채식을 하는가? 누가 물어보면 일단 내 대답은 이거다.

"유난떨려고."

그런데 이젠 너도 나도 채식을한다고 해서 유난떨지도 못하게 됐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먹거리 양식이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옛날처럼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고기를 먹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동물들에게 몹쓸 짓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보신탕 먹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의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램이 한가지 있다. 고기맛을 좀 좋게 하려고 살아있는 개를 몽둥이로 패는 일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어차피 잡아먹을 건데 그게 뭐 어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는게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동물들에게 미안해 할 것까지야 없더라도 고마워하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채식을 하고 있는 주제에 채식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하기는 좀 뭣하지만 어쨌든 한마디 하고픈 말이 있다. 건강을 위해서 채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안이다. 물론 채식만 하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증거도 없다. 실제 채식만 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건강위해서 하겠다는데 말릴 생각도 전혀 없다.

얼마전 100분토론에서 채식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채식을 옹호하려고 나온 사람중에 한명이 우리과 선배인데 정말 인상깊은 대목이 있었다. 고양이에게 채식을 시켰더니 건강해졌다는 엽기적인 내용이었다. 처음엔 안먹으려고 하더니 배가 고프니까 할 수 없이 먹더란다. 이건 정말 엽기적이고 또한 대단히 폭력적이다. 육식동물에게(개는 잡식이지만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 채식을 강요하다니!!! 학교다닐 때도 좀 싸이코 기질이 있더니 그런 짓까지 하다니.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생명사상'같은 의미에서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식물은 생명아닌가?

영화 '개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동학에서는 모든 것이 하눌님이라고 믿는다. 나도 하눌님이고 너도 하눌님이고 개도 하눌님이다. 최시영(맞나?)이 딸과 바닷가를 걷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화인데 딸이 아빠에게 묻는다. "사람도 하눌님이고 조개도 하눌님이면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느냐"는 것이다. 이때 최시영의 대답이 걸작이다.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이는 것이지." 그렇다. 난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인간은 잡식하도록 진화했고 그것이 무슨 '악'이 아닌 한 억지로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눌님이 하눌님을 먹여살리고, 그걸 먹는 이는 그걸 고마워하며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아까 개를 패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를 먹는 것이야 무슨 죄이겠냐마는 좀더 맛있게 먹겠다고 팰 것까지야 있나? 그런 면에서 회를 먹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끓여먹든 날로 먹든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굳이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면서 먹어야 마음이 흐뭇한가? 중국요리에서는 아예 생선을 튀기는데 기술적으로 몸만 튀겨서 튀긴 생선이 식탁위에서 숨을 헐떡인다. 그런짓을 해서는  죽어도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는가?

모든 인간에게 인권이 보장되야 하듯이 모든 생명에게는 나름대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옛날처럼 소를 키우면서 일도 시키다가 나중에 잡아먹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개나 돼지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개는 사람하고 친하다고 차마 직접 잡아먹지는 못하고 이웃의 개와 바꿔서 잡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고기'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동물들에게 몹쓸 짓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움직임이 없어야 살이 찌니까 좁은 곳에 가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사료에 육류성분을 넣었다가 생산량은 늘어났는데 광우병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몇백만 마리를 도축했다고 하는데, 게네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난 이런 꼴같지 않은 인간들의 행위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혼자 항의 표시로 채식을 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아무도 안알아 주겠지. 인간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소나 돼지들에게 제대로된 대접을 해줄리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내가 그러고 싶으면 그럴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강타나 문희준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듯이 말이다. 그런다고 게네들이 TV에 안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짜증나니까 돌리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전세계적으로 육식이 늘어나는 것은 커다란 식량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중국인들이 육식하는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데, 십억이 넘는 인구가 육식을 늘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식량부족을 낳을 수 있다. 고기먹는만큼 곡식소비가 줄어드니까 그게 그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전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끼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곡식이 400그램이라고 치자. 똑같은 한끼를 해결하기위해 고기를 먹는다면 아마도 비슷한 양의 고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소나 돼지가 내버려두면 그냥 알아서 자라나? 당연히 뭔가 먹여야 된다. 한끼로 먹을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먹여야 되는 곡류의 양은 5배정도 즉 2000그램을 먹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기아문제는 생산량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나가면 분배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식량부족문제까지 생길 것이니 큰일 아닌가.

 

Rumble Fish - 예감 좋은날(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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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상처

음악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서 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은 아니다.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간혹 올려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다.

가끔 영화에 대한 얘기도 올릴까 한다. 원래는 다큐영화를 좀 올려볼까 했는데 지금의 내 상황을 봐서는 꽤 오랫동안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으로 올리는 곡은 한대수의 '상처' 라는 노래다.

 

    아 그대여  왜그래 왜그래

    상처만 주나, 상처만 주나

    아 그대여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아픔만 주나  아픔만 주나

    아--무리 말하여도

    아--무리 탓 하여도

    그대는 그만  그대는 그만

    -----------------------

    우 --------------------

    -----------------------

    아 --------------------

 

* 한대수의 앨범에는 그가 직접 갈겨쓴 가사가 실려 있다.

이 곡에 대한 짧은 멘트도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여기다 올리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내 나이가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대수 세대까지는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한대수를 알기는 했지만 내가 한대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무척 힘들었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벅스에서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그 당시 나에게 많은 힘이 됐다.

"희망의 나라로" 같은 노래로 힘을 줬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슬픈 노래가 내 슬픔을 달래 줬다는 말이다.

"슬플 때는 오히려 슬픈 노래를 들으라"는 말이 있다.

역시,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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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고

송탄에 있는 큰누나네 가다보면 허름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그 집에 냥이 한 마리가 있는데 가끔씩 내가 가서 아는 척을 하곤했다. 묶여있을 때도 있고, 없는 경우도 많았다. 모처럼 이녀석이 있기에 오랜만에 이녀석과 놀려고 가까이 갔는데 세상에...


한쪽 눈이 반쯤 썩어 있는 거였다. 그래 곪았다는 표현보다는 썩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내가 부르니까 애처롭게 울어댔다. 다친지 좀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냥이 주인이 그냥 내 버려 두는 것 같았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 녀석을 어찌해야하나. 요즘 목돈 들어갈 일이 생겨서 빚내서 살고 있는 주제에 이 녀석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나? 얼마나 들려나? 어쨌든 주인이 있는데 내가 나서는게 주제넘어 보이진 않을까? 그냥 못본척하고 넘어가면 아무래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어쩌겠능가. 더 이상 고름이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주인과 얘기했는데 내가 예상한데로 돈 걱정 때문에 병원에 못데려가고 있었다. 너무 상태가 안좋아서 항생제 주사를 사다가 놔줬다고 한다.(시골에는 가축 때문에 동물용 약품을 파는 곳이 많다) 눈동자는 더 이상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시뻘건 살덩이로 변해있었다. 고양이가 좋아서 키운게 아니라 쥐 때문에 키웠고, 이렇게 되자 차라리 집을 나가 버리길 바랬는데 그러지도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멀리 내다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고양이는 함부로 내 버려서는 안된다는 동네어른의 말 때문에 그냥 데리고 있다고 했다. 주인에게 내가 치료해도 되겠냐고 했더니 "미안해서 그러지, 치료만 해주신다면 저희야 고맙죠." 그 근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자기네는 수술 못하니까 서울에 있는 큰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아무래도 수의사가 아니고 그냥 동물관련 용품과 약품을 파는데 간단한 치료정도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틀후 다시 내려가서 서울로 데려왔다. 꼬마 아이들이 캐리어에 있는 나비를 보고 고양이라고 구경하러 왔다가, 눈을 보고는 꽥 소리를 지르고 도망간다. 그러게 내가 흉하다고 경고했건만. 눈을 적출하고 꿰맸다. 작은방에 녀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로드 때문에 방에 따로 두는 수밖에 없다. 스프레이가 걱정되서 중성화수술도 함께 시켰다. 냥이 사료도 사고, 모래도 사고, 구충제도 먹이고. 내일은 실밥 풀러간다. 사람들은 좀 특별한 녀석들을 기르고 싶어서 적지 않은 돈을 들이기도 한다. 내게도 아주 특별한 냥이가 생겼다. 애꾸눈 고양이.^^ 200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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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으로 이사오다.

현재 '파란'에 블로그가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어쩌다 만들게 된 거였다. 그런데 블로그의 속성상 모르는 사람들이 다녀간다. 원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면 상관이 없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다녀가면 신경이 쓰인다.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그곳들을 방문해 보면 정말 내취향이 아니다. 너무나 다른 취향과 너무나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 원래 서로서로 찾아주며 댓글도 남겨 주고 서로 촌수도 맺고 그러는 건데, 그런 것도 내 성향과 거리가 멀다. 내 블로그는 어차피 자폐성 블로그다.(자폐라는 말을 무슨 비하의 뜻으로 쓴 것은 아닌데 이 표현을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물론 일기처럼 쓰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럴 거면 진짜 일기를 쓰면 되지 블로그를 만들 필요는 없다. 아마도 나란 놈이 사귐성 없고(귀찮아 하기도 하고), 혼자 잘노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블로그들을 다니면서 "사람들은 참 외로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다는 말도 아니고 좋다는 말도 아니고, 그냥 어쨌든 그렇다는 거다. 나는 외로움을 잘 안타는 편이다. 예전에는 그게 무슨 장점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끼도록 노력'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진보넷은 그나마 조금 덜 짐스러울 것 같아서 이 곳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아는 알엠님도 있고 말이다. 내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보넷에 가입하는 것이 좀 꺼려지긴 했다. 하지만 세상 뭐 그렇게 빡빡하게 살거 있나? 대충 사는 거지. 물론 대충 살면 안되는 것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파란에 있던 글들을 한동안 퍼날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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