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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28
    대추리 공팔이 外(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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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3/03
    조카 입학(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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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공팔이 外

누나를 데려다 주기도 할 겸

여유있게 황새울 들녁을 걸어 볼 겸해서 대추리에 들어갔다.

근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너무너무 추웠다.

벌판이라 더 많이 추웠던 것 같다.

전에 다른 블로그에서 봤던 녀석인데 나도 만나게 됐다.


이름은 '공팔이'

주인의 아이디가 '팔공'이라고 한다. 팔공산의 팔공

사람을 무지하게 따른다.

 


 

그러다 손에 있던 화장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들판으로 나갔다.




무인상

문인상

대추리를 지켜주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웠다고 한다.

워낙 거대해서 진짜 마을을 지켜줄 것도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듬직해 보였다.

이곳에선 이렇게 새들이 대형을 지키며 날아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엄청난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고 한다.

바람 정말 많이 불었다.

그래, 주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놈들을 쫓아내고 싶다.



창고 벽에 그린 이 그림 참 맘에 든다.


전에 이걸 실제 포탄으로 만든 거라고 했는데 잘못된 정보였다.

난 들은 얘기를 아무 의심없이 쓴 건데 이번에 보니 나무로 만든 것이다.

실제 포탄은 여기에 있었다.

미군막기 대장부 / 땅지킴여장부


이젠 나름 유명한 구호가 됐다. "올해도 농사짓자!"

왜 농사꾼이 이런 당연한 구호를 외쳐야 하는가.

 

* 너무 추워서 더 이상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 누나가 시도 때도 없이 대추리에 들어가는 것이 어머니는 영 못마땅한 것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누굴 돕겠다고 그래? "

어머니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말이라 나도 한마디 했다.

" 누나가 무슨 자기 앞가림을 못해요? 오히려 형이나 둘째누나가 시도 때도 없이 도와달라고 손벌렸지 막내누나가 언제 남의 도움 받은 적 있어요?" 

 

어머니는 아무 소리 못하셨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수긍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게다.

일단, 일제시대에 태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 등을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너무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인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에겐 '나이든 여자가 짝없이 혼자 사는 것'이  '제 앞가림을 못하는 것'으로 보일 게다.

어머니도 갑갑하겠지만 나도 갑갑하다. 에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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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닮아서

 


애비 닮아서 나비도 양지만 쫓아 다닌다. ^^

나 인생 그렇게 산다. 우헤헤!

 




 







창문으로 햇볕드는 시간이 두세시간 밖에 안되는데 그동안은 햇볕드는 곳에 찾아 눕는다.

가끔 내가 그쪽으로 옮겨 놓을 때도 있다.

실내에서 기르는 녀석들은 햇볕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 하루 10~20분 정도씩이라도 햇볕을 쬐어 주어야 건강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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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만난 친구들

대학써클 친구들을 몇년만에 만났다. 두녀석은 거의 10년만에 보는 것 같다.

사실 만나 봐야 별로 재미가 없어서 굳이 만나려는 노력을 안했던 친구들이다.

 

10년전쯤에 모였을 때 주요 주제는 ', 자동차, 스키, 직장' 뭐 이런 것들이었다. 그 당시 막 사진에 관심이 있던 나는 한 녀석에게 "쓸데없이 돈도 안되는 짓을 한다"는 타박을 들었다. (그 놈은 스키타면 돈 생기나 보다.) 그래도 다른 한녀석은 "왜 그래,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해주었다.

 

내가 나온 학교는 등록금이 싸서 비교적 가정형편이 않좋은 애들이 많았다. 그런 애들이 졸업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지게 됐다. 10년전만 해도 스키는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난 지금도 꽤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소리하면 별 이상한 소리 듣는 경우가 많아서... -..-;; ) 친구들은 자신들도 이젠 스키 정도는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사실에 꽤 만족한 듯 보였다. 십몇만원 주고 스키복을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을 하고(10년전에!) 어디서 그렇게 싸게 샀냐고 묻는 그 애들의 대화가...

무척 지루했다.

 

이번에 만났을 때의 주요 주제는 '교육'''이었다. 한 친구는 아이와 부인을 캐나다에 보냈다.(부인도 써클 친구다) 조기유학을 보낸 거다. 또 한녀석은 돈은 많지 않은데 초딩 아들녀석 영어배우게 하고 싶어서 필리핀에 보낼 계획인데 아들녀석이 가기 싫다고 해서 걱정이란다.

"차라리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게 어때? 1년 등록금 해봐야 천만원 정도인데"라는 말이 나왔지만 결론은 '천만원이 문제가 아닌'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 골프를 배워. 그리고 좀 지나면 시험을 본다고 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가르쳐 주는 건 거의 없는데 시험은 봐야 하니까 골프 개인교습을 시켜야 하는 거야. 이런 식이기 때문에 등록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래, 그 친구들과 나는 이미 꽤 많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십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사실 과친구들이나 써클 친구들이나 모여서 하는 얘기 들어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과친구들은 그나마 좀 만나는 반면 써클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이거다.

 



과친구들은 내가 자신들과 좀 다르게 사는 걸 인정하는 편이다. 좀 이상하게 산다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뭐라 하는 녀석은 없다. 반면 써클 애들은 늘 “범수 넌 왜 그렇게 사냐?”는 식이었다. 지들이야 내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게네들 말 듣고 바뀔 것도 아닌데 그런 소리 듣는 게 지겨웠고 재미 없었다. 내가 자기네들에게 “그렇게 살지마”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녀석들은 ‘친구’라는 이름하에 참 말이 안되는 간섭을 꾸준히도 했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웬일(미류의 글에서 보긴 했는데 맞춤법이 맞나?)로 뭐라 그러지 않더만. 말해봐야 들어먹지도 않아서 포기를 한 건지, 지들이 썩 행복하지만은 않아서 그런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야 서로 ‘다름’을 인정한 건가??

 

그 분위기를 틈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엔 획일적인 학교 교육이 싫다고 애를 학교에 안보내는 사람도 있어. 너희들이 보기엔 말도 안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지.  생각을 조금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일 수도 있거든"

어허! 이런 말을 했는데도 어쩐 일로 안티가 안들어 온다. 얘네들 정말 나 포기했나봐^^

*여담1

필리핀에 아들을 보내려는 친구는 아들의 “왜 필리핀에 가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생각해도 왜 거기에 꼭 가야하는지 설득력있는 대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내야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것 같지만...



여담2

여름쯤에 스키장으로 사용되는 산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멀쩡한 산을 우리 중고딩 때 머리 길다고 바리깡으로 무식하게 확 밀어버린 듯한 모습에 경악했다. 자연에 저런 죄를 지어도 되나 싶었다. 이래 저래 스키는 내게 씁쓸한 스포츠가 되었다. 스키 타는 사람들을 죄악시하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만큼 내가 미련하진(?) 않지만 아마 내가 스키타는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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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 오세요^^

지난번 침탈을 막아냈고

걔네들 사정상 당분간 다시 치고 들어올 가능성은 낮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태인 것 같다.

 

난 정작 중요할 땐 가보지도 못하면서 가끔 놀러가듯 쉬~익 둘러 보고 온다.

오늘은 같은 당의 당원께서 부탁을 해 사진 찍으러 갔다.

이런 종류의 사진을 찍어 본 적도 없고

그분들도 모델이 아니기에 서로 어색해 하며 찍었는데

역시나 결과물이 별로다. -.,-;;

 

그 분들 사진을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대추리에 놀러들 오시라고 이 포스트를 올린다.

와서 힘을 보태주시면 더 좋고

그냥 놀러 오셔도 좋을 것 같다.

대추리는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오늘은 그런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서

별로 소개할 만한 사진이 없지만 볼거리가 참 많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들도 많고 볼만한 작품들도 많다.

그냥 너른 들녘도 아주 좋고 말이다.

 





실제 포탄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인은 이 사진 안좋아할 것 같다. ^^


이 길따라 계속 이렇게 뭔가가 적혀 있다.


미군 진입금지!



투쟁의 본거지 대추 초등학교 정문은 이렇게 농기구로 막았다.


비닐하우스에선 하루 세번씩 집회를 한다.


세상아, 이 노인네 이젠 제발 좀 쉬게 하라!

 

고인이된 구본주씨 작품이다. 부인께서 기증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보험회사에서 이분의 노동력을 '일당 잡부'로 계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당 잡부하시는 분을 모욕할 생각은 없다)

조각가는 몸을 쓰는 직업이라서 그렇게 봐야한다는 게 보험사의 논리였다.

당근 예술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 보험사가 누구?

대한민국의 최고권력!

딩동뎅! 삼성생명이다.

이 내용을 다큐로 만든 게 '우리는 모두 구본주다'인데 KBS에서 방영키로 했다가 재판이 진행중이므로 방영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갑자기 취소해 버렸다. 그래 KBS 니들 이해한다. 대한민국에서 잘 살려면 삼성눈치 봐야지. 빙신들아.

재판에선 삼성생명이 졌고 다큐는 방영됐다.

 


대추 초등학교는 정말 멋진 공간으로 바뀌었다. 반공소년 이승복도 깜찍하게 변신했다.^^

 

* 대추리에 어여들 놀러 오세요.

농기계 반입은 못하게 할 거고,

봄이 오면 손으로 그 너른 땅에 뭔가를 심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개떼같이 모여주셔야 가능합니다.

아니, 그런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아무 때라도 많이들 오세요.

문화행사도 많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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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입학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다른 조카들 입학할 때 따로 챙겨준 기억이 없어 이 녀석도 챙겨줄 생각은 안했는데 어머니께서 가보시겠다고 하기에 모시고 갔다.

다른 조카들은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이 조카는 나를 '작은아빠'라고 부른다.

즉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직계'라는 말쌈.

누나의 자식이나 형의 자식이나 나에겐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어머니에겐 차이가 좀 있겠지뭐. (물론 어머니는 직접 자신이 키운 외손자 재구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다.)

 

어제 용현이 입학식을 보고 "니 할아버지가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라고 하셨다. 그래, 사실 나도 아버지 생각해서 간 면도 좀 있다.

 

점심값이라도 내가 낼까 하다가, 다른 조카들 때 신경안썼으면서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돈많이 버는 형이 있는데 대충 가난하게 살겠다는 내가 돈을 낼 거 뭐 있나?

 

 




 

형과 형수인데, 형은 이제 정말 나랑 별로 안닮았다.

그래도 우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똑같이 생겼다고 하긴 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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