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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최척전, 우연으로 엮은 해피엔딩의 소망

황혜진 글/박명숙 그림 | 나라말 (전국국어교사모임) |
   



고전은 재밌다.

우연의 연속이 거슬리는 것을 현대소설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않기만 하면 우연이 가져다 주는 해피엔딩의 인간적 소망을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정유재란으로 인한 최척 가족의 헤어짐과 이국에서의 만남, 그리고 귀향...

누구나가 그러한, 보편적인 행복 추구에 공명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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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인간연습-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연습
조정래 저 | 실천문학사 | 2006년 06월

 

 

 

 

 

나는 여전히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한 얘기를 한 인물은 이름 없이 나오는 출판사 사장이다.

 

"냉전시대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한테 안 먹히려고 사회복지제도를 얼마나 강화시켜왔어. 만약 그런 노력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로 자본가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먼저 무너져버렸을 거다."

 

정말 그랬을 것이다. 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제도는 반공이 국시로 떠받들어지던 비이성의 시대인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졌다. 수정자본주의란게 결국 사회주의적 이념의 자본주의적 수용이 아닌가 말이다.

 

조정래는 인간의 삶을 연습이라 적고 있는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연습이라... 그럼 결국 우리에게는 여전한 실전이 남겨진 것이란 건가? 언제 그 실전을 치르는 것인지.

 

난 이 글을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생각이 났다. 더이상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선 파피용호의 1세대들은 그들의 신념대로 절제하며 이상적 사회를 유지해갔다. 그러나 그 떠남을 통한 새운 세상을 해 향해한 혁명의 1세대들이 다 잊혀지기 전에 떠나온 지구와 다르지 않는, 아니 그보다 더 험난한 세상이 이어졌다.

공산당 1세대의 희생과 순수함이 무너진 얘기를 조정래를 호치민 평전을 번역하는 윤혁을 통해 말하고 있다.

 

"호치민은 죽기 전에 유서를 네댓 번 고쳐 썼다. 그런데 처음부터 불변이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시체를 꼭 화장시켜서 재를 전국의 중요한 장소 며 군데에 뿌리되, 그 뿌린 장소를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호치민의 지극한 조국 사랑을 나타낸 것인 동시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자신에 대한 정치적 영웅화를 경계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해방을 맞게 되면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치러낸 인민들을 위하여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호치민 주석을 충실히 뒤따른다고 공언한 당 간부들은 첫번째 유언을 거역했듯이 두번째 유언도 거역하고 말았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어쩌면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성찰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원래가 본능적이고 악마적이어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타락한 인간을 타락한 채 내버려둘 수 없었던 중국의 문화혁명의 시도는 나름의 의의가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는 결과로 과정을 재단하고 승과 패로 나누기에, 결국 사회주의는 제도적 현재적 실패뿐만 아니라 이념적 실패도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거름이라도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이기에, 게다 최근의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그 야만성과 비인간성, 비이성적임을 통렬하게 드러내기에 어쩔 수없이라도 사회주의에서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아지똥'이 되는 사회주의의 양분을 이 책은 '인간'이라 말한다. 인간됨의 철학이라... 인간에 대한 탐구가 지금까지 어디 정답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 5년 동안 좌파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져왔고, 지금 교단에서도 사회주의적 교육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인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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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사막의 꽃을 읽고..

非자본주의 아프리카의 와리스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의 요소인 모델이 되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각자의 관심이 더 큰 영역이 비중있게 각인되나 보다.

그녀는 성공(?)은 용기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했다. 가출할 수 있는 용기(?), 낯익음을 떠날 수 있는 용기. 이 책을 재밌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 하늘 아래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 보건 교사이신 양인순 선생님의 독후기록을 나의 기록으로 대신한다. 어차피 양인순 선생님의 권유로 읽은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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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을 읽고


와리스 디리․캐틀린 밀러 지음


소말리아의 가난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나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낙타 다섯 마리를 받고 노인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가족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난다. 고단한 여정을 끝내고 모가디슈의 친척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런던의 소말리아 대사로 있는 이모부의 가정부로 가게 된다. 이모 가족은 대사 임기가 끝나고 소말리아로 돌아가지만 영국에 혼자 남기로 결심한다. 영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슈퍼모델이 되어 뉴욕과 파리, 밀라노 등 세계적인 무대를 누비는 매혹적인 꽃으로 우뚝 섰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금기, 죽음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상처, 할례의 고통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응어리진 고통의 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수 억 명의 자매를 대표하여 유엔의 특별사절로서 “여성성기절제술”(female genital mutilation, FGM)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여성할례, 여성성기절제술이란 말을 막연히 여성의 성기에 행하는 주술적 행위 정도로만 짐작했었는데 여성의 성기는 애초부터 불결하고 음탕하므로 모든 가능성을 뿌리째 도려내 버리는 도륙행위라니....이 어찌 여성의 몸을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무지몽매한 관습, 너무 가혹하고 소름이 끼친다.



「아프리카에서 자라서 좋았던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순수한 자연과 순수한 삶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나는 삶을 체득했다.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의 삶이었다. TV에 나오는 남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인위적인 삶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겐 생존본능이 있었다. 나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기만 했으니까.」


「소말리아에서 크면서, 우리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할 줄 알았다. 비를 반갑게 맞은 이유는. 비가 오면 물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부엌에서는 물을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쓸 수 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곧바로 나온다. 부족함을 알아야 감사할 줄도 안다. 아무 것도 없던 우리는 매사에 감사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호화로운 집을, 때로는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차, 보트,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원한다. 다음으로 구입할 것이 마침내 행복과 마음이 평온함을 가져다 줄 듯이 말이다. 그러난 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은 인생 그 자체이고 그 다음은 건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갖 하찮은 일에 안달하면서 귀중한 건강을 망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모두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낀다.」


 - 2007년 7월 8일 양 인 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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