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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

 "10년만에 작은 아파트 하나를 장만한 정규직노동자는 출근할 때 아내한테서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못 들어본 지 꽤 오래됐단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가는 오히려 아내의 곱지 않은 눈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일찍 퇴근해 들어왔더니 그의 아내가 집 안에 꿀 항아리라도 감춰놓은 거 있어? 왜 잔업도 안 하고 벌써 들어와? 해도 떨어지기 전에...라고 농담처럼 말하더란다."

 

 

여성노동자

 "생리휴가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더니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하랬단다. 여성노조위원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진단서가 뭐가 필요해. 내가 여기서 벗으면 될 거 아냐.'하며 노조위원장이 정말로 옷을 반쯤 벗어버렸을 때, 직원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말렸고, 그날부터 생리휴가가 실시됐단다. ...<중략>.. 실제로 그날, 피가 낭자한 생리대가 사람들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법에만 존재하던 생리휴가가 실재하게 되었단다. 이젠 그것도 주5일제 근무 도입과 더불어, 기업의 이익을 위해 무급화 또는 없애려 한다 하니 참... ㅜㅜ

 

 

이주노동자

  "무단 침입한 단속반원들을 피해 도망가던 이주노동자가 건물 고층에서 떨어져 중태에 빠졌을 때도, 공장에 들어온 한국 사람을 단속반원으로 착각한 이주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숨졌을 때도, 출입국사무소에서 조사를 받던 이주노동자가 공포에 못 이겨 뛰어내려 숨졌을 때도, 단속반원을 피해 산으로 도주한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을 때도 남의 보듯 했다"는 하종강의 고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그저 몇 개의 얘기만 뽑아 보았다.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자꿈만 눈물이 난다.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기에 도서관에 앉아 애들에게 재밌을 거야 라며 권해줬더니 이틀만엔가 도로 가져와 너무 무거워요, 힘들어요 라고 말하던 아이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지만, 나도 힘들었다고 말해줘야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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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88만원 세대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각 장별로 정리도 하고 모아서 좀더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도 시켜보려 했지만, 나의 지적 수준이 함량미달이었다.

  지금껏 세상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본을 계급이나 계층 정도로만 사고해왔는데, 이 책은 주로 '세대'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궤적과 배경을 통해 그들 세대를 분석하고 있다.

  제목은 꽤 만만하게 보였는데, 그처럼 쉽지만은 않다. 제목만큼 내용이 만만하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해 본다면, 지식적인 것이기보다 실천적 문제들이 짙게 드러나기에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분명한 변화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경제학적으로 분명히 일러줌에도 불구하고 무엇부터 그 변화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막막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저 기억나는대로 떠올려본다면, '승자독식사회'라는 것과 우리 사회가 20대에게, 10대에게 좀더 많은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를 이해했다. 아니 이해와 배려는 너무 사치스런 말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착취'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요즘 애들이 말야'라며 비난을 시작하기 전, 그들이 처한 상황이 30,40대들이 어렸던 그 시절과 상황이 사뭇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내가 이해한 점 중의 하나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며, 이 변화의 주체는 누가 될 것이며 등을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통해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길을 모색한다. 이 길의 모색에 30대 후반의 나이에 들어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텐데....

 

  또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역에서 청소년 아르바이트 권리 찾기 사업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연소자근로에 대한 무지와 그들에 대한 어른들의 착취를 직면하고 소위 '어른들'에 대해 환멸을 느꼈는데, 직접 당사자인 아이들을 어떠했을까?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전교조의 주된 사업 중의 하나가 청소년에 대한 근로권 보장 투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들이 잘 정리되지 않는 것은 나의 무지다. 예전 우석훈 씨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역에서 우석훈 씨 초청강연회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나의 부족한 이해를 풀어줄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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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자율화가 결국 9,000원짜리 사설모의고사 시행인가?

학교자율화가 결국 9,000원짜리 사설모의고사 시행인가?


<교수-학습-평가 상의 문제>

1.

가르치는 활동은 평가를 통해 피드백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가르치는 활동을 개선하려는 것이 가르침과 평가가 맺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평가를 교수-학습을 개선하는 표지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보다는 서열화를 통해 학생들의 경쟁 촉발을 목표로 한다. 이 경쟁이 교육력이나 학업성취력을 높이는 데 관련 있다는 믿음은 실재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불순한 세력이 ‘배후’에서 만들어 낸 ‘괴담’일 가능성이 높다.


2.

가르쳤으면 서열화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교육학적인 상식에서 출발을 하여도 납득되지 않는 것은 사설모의고사이다. 서열화를 하려면 표집 인원이 많아야 하는데, 도총괄평가나 평가원 주관 모의수능은 전국의 고교생들이 거의 다 응시한다. 지난 서울시교육청 주관 모의고사에 99% 이상의 학생이 응시했다. 몸 아프고 결석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학생은 없다. 결국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고 통계를 낸 전수검사인 것이다. 도총괄모의고사는 전체 학생들이 응시한 시험으로 서열화 결과를 통지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정확히 개별 학생의 전국적 수준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반면 사설모의고사는 기껏해야 전국의 10% 내외의 학생이 치르는 것으로, 과학적인 샘플링 검사도 아니고 그저 신청자에 한하는 정도이니 그 결과가 과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서열화 결과라 말할 수 있을까?



<학사일정상의 문제>

1,2학년의 경우는 학기당 2번, 연간 4번의 도총괄모의고사가 있다. 학교 지필시험이 학기당 중․기말 2번, 연간 4번  있다. 수행평가와 서술형 평가가 학기당 1회 이상 과목별로 있어, 연간 2번 이상의 시험이 있다.영어듣기 시험이 연간 2번 이상의 시험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총 10회 이상의 시험을 연간 치르고 있다.

3월부터 해서 익년 2월까지 방학을 제외하면 8개월 정도의 수업기간이 나온다. 9개월 동안 학생들은 최소 10회 이상의 시험을 보고 있다. 월 1회 이상 시험을 보는 셈인데, 그것이 부족해서 사설모의고사를 본다는 것은 2․3주마다 시험을 보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는 기계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경쟁서열화를 전제하면서......

뿐만 아니라 모의고사를 보는 동안은 교수활동이 이뤄지지 않으므로 수업의 결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가르치는 활동 없이 평가만 죽어라 하는 셈인데......



<사설모의고사...... 돈. 돈. 돈>

사설모의고사의 1인당 비용 9,000원에는 시험용지값(실제 얼마 안 된다)과 출제 비용과 채점비용(이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시험감독비이다. 시험감독은 원칙대로라면 업체에서 감독원을 파견하여야 하나,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위탁하면서 사설모의고사 경비의 일부(1,000원)을 감독비로 책정하여 해당 학교 교사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의 교사가 사설 업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셈이 된다. 가령 1,000명의 학생이 시험을 치르면 사설평가기관에서 해당 학교로 감독비가 백만 원이 입금되는 셈이다.




4.15학교 자율화 조치는 과연 학교를 자율적이게 하는가? 단언하건대, 이 조치는 학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학원 자본의 이익 획득을 자유롭게 하거나 교육관료나 학교 관리자의 권력 남용을 자유롭게 할 뿐, 가르치는 교사들의 자율적 책무성이나 학생들의 학교생활․학업과 관련한 선택의 자율성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로 내몰리는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좀 더 밝고 건강한 사회로 만들지는 못할망정, 어차피 그네들이 살아야 될 세상이 그러하니 일찌감치 서열화와 경쟁의 도가니에서 누가 더 늦게 죽나 내기(죄수의 딜레마)나 하라는 식의 내팽개침이 “4.15 학교 자율화 조치”라 확언한다. 그 시작이 ‘겨우’ 사설모의고사인 것이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먼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 암것도 없어. 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목심줄이여.”         -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 중 ‘영희는 언제 우는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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