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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페비안협회 선언문

영국페비안협회의 선언문과 자치헌법 소개
빵장사 200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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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님 많이 바쁘시지요. 개혁당, 개혁신당의 정치경제적 진로에 참고가 될까하여
헨리조지의 영향하에 출범하였던 영국 페비안협회의 초기 강령과 자치헌법을 소개합니다.

노무현정부의 경제개혁과 개혁신당의 정치경제적 강령작성에 참고가 되었슴 합니다.
헨리조지의 영향하에, 버나드쇼가 주도하여 작성된 문건이고, 영국 사회주의의 부활에 기폭제가 된 내용입니다.

버나드 쇼가 1884년 9월 5일 페비안 협회가입후, 9월 9일 작성하여 페비안 트렉트 2호로 발표한 페비안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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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비안선언

폐비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들을 널리 알리고, 그리고 그와 같은 여러 의견들의 귀결에 관하여 토의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현재의 정세하에서는 불명예를 수반하지 않고는 부(富)를 향유할 수 없고, 부(富)없이 살아갈려고 하면 빈곤이 발생한다. 남녀 누구나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의 필수품을 손에 넣는 것은, 국가의 각 성원의 의무이다.

국가의 토지와 자본에 대한 종신소유권은 이 나라내에서 태어난 모든 개인의 생득권(生得權)이며, 이 생득권은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의사에 기초하여 획득되어야 할 것으로, 그 외의 어떠한 사람의 의사에 기초해서 획득 되어서는 안된다.

한쪽편의 극에 있어서는, 왕성한 식용이 있음에도 전연 식사를 할 수가 없고, 다른 쪽의 극에 있어서는 풍부한 음식이 있음에도 전역 식용이 없다고 하는, 서로 적대적인 두 계급으로 사회가 분열되어 있는 현상은, 국가의 토지와 자본을 사인(私人)에게 맡겨 놓고 있는 현 체제가 만들어 낸 가장 두드러진 결과이다.

사인(私人)이 토지를 가장 잘 활용할 것이라고 기대하여, 국가의 토지를 사인에 맡기는 정책은, 사인이 철저하게 토지를 악용해 왔다는 사실로서, 이제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공적인 의무는 어떠한 형태를 취하든지, 토지를 국유화시킨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명(기술혁신)을 장려하여, 가능한 한 공정한 방법으로 그 권리를 분배한다는 주장은, 19세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국가적 산업을 조직하는 일을 당해 산업에 맡겨 놓고 있는 현체제하게서의 품질의 저질화, 불공정한 거래, 그리고 비인간적인 강제는 경쟁의 결과가 가져온 현상이다. 생산자의 경쟁은 명백히 대중에게 가장 만족할 만한 생산물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는 모든 생산부분에서 전력을 기울여 그와 같은 경쟁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입은 직접세에 의해 징수되어야 한다. 또한 중앙관리기구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산업의 수익 중 어떠한 부분이라도, 국고를 충실히 하기 위하여 빼앗아버릴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져서는 안된다.

국가는 아동을 위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모든 아동이 친권자의 학대와 방임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사인(私人)-특히 부모를-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가 위한 특수한 정치적 특권을 더이상 필요로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여가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떠한 개인도 양친, 그 밖의 친족이 국가에 대해서 행했던 공헌에 대한 보답으로서 어떤 특권도 누려서는 안된다.

국가는 그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자유로운 교육과 국가산업에의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의 정부가 스스로를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마치 런던의 검은 매연이 스스로를 공기라고 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지금과 같은 곤궁의 세기가 또 다시 도래하기 보다는, 차라리 시민전쟁이 일어나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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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 시드니 웹, 월리엄 크라아크, 시드니 올리비어, 그라함 왈라스, 에니 베잔트, 허버트 브란드, 등 8명의 만장일치의 안으로 만들어 협회는 수정없이 채택한

1887년 6월 3일 [페비안 협회의 기본원칙]-협회의 헌법-

[페비안협회의 기본원칙]

페비안협회는 사회주의자로 구성된다. 때문에, 협회는 토지 및 산업자본을 개인 및 특정 계급의 손으로부터 해방하여, 일반의 이익, 공동사회에 그것을 귀속시킴으로써, 사회를 재편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 방법에 의해서만이 이나라의 생득적(生得的) 및 후천적 제이익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히 분배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회는 토지재산 사유를 폐지하기 위하여 노력함과 함께, 좋은 경지 및 단지의 이익뿐만이 아니라, 토지사용의 허가에 대해 지불되는대가가 지대(地代)라는 형태로서 당연히 개인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더우기 협회는, 사회적으로 운영되는 쪽이 편리하다고 사료되는 산업자본의 관리를 공동사회에 이전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 이유는, 과거의 경우 생산수단의 독점으로 인하여, 산업상의 발명과 잉여소득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주로 유산계급만을 부유하게 하였고, 노동자는 눈 앞의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유산계급에 종속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시책들이 보상없이(사회적으로 보아 적당하다고 사료되는 구제를 몰수된 개인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실시된다고 한다면, 지대와 이자는 노동의 보수에 보태어 질것이고, 현재 타인의 노동에 의존해서 생활하고 있는 게으른 유한계급은 필연적으로 그 모습을 감출 것이며, 그렇게 해서 사회의 진정한 평등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 현체제보다 월등히 적은 경제력의 자발적 활동에 의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페비안협회는 사회주의적 견해의 보급에 노력함과 동시에(남여 평등의 시민권을 확립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 결과로서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희망한다. 협회는 경제적 윤리적 및 정치적 상황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지식을 일반 사람들에게 보급시킴으로써,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기대한다.

- 주- ( )의 문구는 1907년에 추가 (삽입)된 것이다. 1919년 노동당에 참여할때 까지 전혀 수정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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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사 보충설명]

헨리조지의 사상과 정치경제학 ,그의 책[진보와빈곤]이 직접 영국 페비안협회의 구성원들과 협회선언문, 기본원칙(헌법이자 강령)에 미친 영향을 소개한 한국어 책은 한권 있습니다.

[페비안 사회주의와 복지국가의 형성] 박광준, 대학출판사

저자인 박광준교수는 사회복지전공으로 웹부부의 영국노동복지정책을 공부하러 갔다가, 웹부부의 일제식민지 찬양에 충격을 받았고, 고민 하던중에, 헨리조지의 사상이 페비안협회의 초기에 미친 영향을 공부하고 책으로 ?㎧윱求?.

토지독점의 정도가 1890년대 영국과 현재 우리나라가 비슷합니다. 페비안 협회의 강령과 정치적 실천 방안은 개혁당이나 노무현 정부, 사회당, 민주노동당 등, 개혁정당과 좌파운동권 모두 참고할 사항이 매우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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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쇼를 대표로 페비안 협회의 초기멤버들 대부분이 헨리조지의 직접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강연을 들었고, 1882년에 런던에서만 [진보와빈곤]이 10만부가 팔렸습니다. 페비안 협회의 헌법격인, 위 기본원칙에서도 토지의 무상몰수 후, 지대의 사회화를 가장 기본경제원칙으로 하는바, 보상을 주장한 존스튜어트밀의 방식과 차이나는 조지의 정치경제학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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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사 :
버나드쇼를 대표로 페비안 협회의 초기멤버들 대부분이 헨리조지의 직접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강연을 들었고, 1882년에 런던에서만 [진보와빈곤]이 10만부가 팔렸습니다. 페비안 협회의 헌법격인, 위 기본원칙에서도 토지의 무상몰수 후, 지대의 사회화를 가장 기본경제원칙으로 하는바, 보상을 주장한 존스튜어트밀의 방식과 차이나는 조지의 정치경제학의 내용입니다.
2003-08-25ⓧ
빵장사 :
그러나 초기의 선언문과 기본원칙제정을 정점으로 이후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웹부부가 협회의 주도권을 갖게 되고, 헨리조지의 토지부분은 점점 희석(보상을 일부할수도 있다.) 무시(실제 페비업협회활동에서 토지관련 조사를 안하게 됨)되어서,일부는 그린벨트, 토지재산세 조금더 부과 등 자유당정권에 의해 실현되기도 하면서, 그 취지가 없어져 갑니다.

1910년, 이후 일차세계대전을 지나고, 1919년 노동당에 참여하면서, 토지공유, 지대의 사회화 정책은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게 되고, 그 이론적 본질이 거부됩니다. 현재까지 그러합니다.
2003-08-26ⓧ

빵장사 :
맑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지대의 사회적 사용만 실천되지 못한것 처럼, 위 페비안선언과 기본원칙에서, 지대의 사회화, 토지의 공유화만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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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사입니다. 다음까폐에 헨리조지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gstudyroom

위 강령과 자치헌법의 정치경제학적 내용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의 방문과 공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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