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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박승호의 현대자본주의론 재구성

한국 진보세력의 우경화 질타한 ‘황야의 목소리’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
(박승호 지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 28000원 / 664쪽


정성진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 책은 저자가 지난 겨울 제출한 서울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논문을 출판한 것이다. 저자는 학자로서 매우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1985년 서울대학교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다른 선후배 동료들처럼 대학 강단으로 가지 않고 10여 년 공안당국의 수배를 받으며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불혹을 넘긴 나이로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학위 논문 준비에 매진했다. 오늘 출판된 700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은 그 결산이다.

이 대작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저자의 노동운동 경험과 지난 수년 동안의 맹렬한 이론 천착의 과정이 그대로 배어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자는 노동운동 현장에서의 존재 그 자체로서 우리나라 정치경제학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의 우경화와 개량화를 질타하는 ‘황야의 목소리’였다. 이제 저자는 오늘 출판된 이 책은 반자본주의․반전운동의 세계적 고양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조절이론'자율주의' 브래너 위기이론

저자는 이 책에서 소련, 동유럽 블록 붕괴 이후 퇴조한 ‘거대 담론’을 초대형 규모로 다시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조절이론과 자율주의 이론, 브래너(R.Brenner)의 세계경제위기론 등 3개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 때 저자는 ‘비판적 재구성’의 입장으로서 주로 개방적 마르크스주의(Open Marxism)의 입장을 채택한다. 여기에서 개방적 마르크스주의란 최근 <제국 >으로 유명한 네그리(A.Negri)가 주도하는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의 한 분파인데, 국내에서도 최근 그 지도적 논객인 홀로웨이(J.Holloway)의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가 소개된 바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주로 개방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물신주의 비판 이론, 형태 분석과 계급투쟁의 관점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채택한 다음 (2장), 이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체계 플랜’ 후반부(국가-외국무역-세계시장)의 재해석 (3장)과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 (4장)에 적용한다.

저자는 이 책 2장에서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과 실체적 추상의 논리에 의거하여 조절이론, 자율주의,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등 3개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이 구조주의, 경제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또 마르크스 물신주의 비판의 관점에 설 경우 “임노동자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이며 “반(임)노동 투쟁”(p.170)이라고 주장한다.

3장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체계 플랜’ 후반부를 자본주의적 국가형태에 대한 추상적 규정으로서 “형태적 분리”와 “내용적 통일”의 측면을 중심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시장, 국민국가, 국민경제 범주들의 관계를 구명한다. 4장에서 저자는 1970년대 이후 현대자본주의가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형되는 과정에 관한 조절이론, 자율주의,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의 논의를 “계급 역관계의 분석방법”(p.332)에 기초하여 자본축적 형태와 국가형태의 측면에서 재구성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격화되면서 케인즈주의의 위기가 이윤율의 저하와 복지국가의 위기로 표출되었고, 이에 따른 1970년대의 자본의 유연화 세계화 공세 속에 노동자계급이 패배하면서 “자본의 일방적 우위의 역관계”(p.489)가 구성되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형되고 제3세계의 “경제적 재식민지화”(p.606)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마르크스 물신주의 비판의 확장

이 책의 주요한 공헌은 무엇보다 그 동안 주로 철학, 인문학 영역의 토픽이었던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을 발전시켜 현대자본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데 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물신주의 비판을 강조하는 것은 개방적 마르크스주의에 특징적인 것이지만, 마르크스 물신주의 비판의 이론적 정치적 함축을 극대화하여 현대자본주의론의 영역에까지 확장, 적용한 것은 저자의 고유한 성취이다.

또 그 동안 대개 문헌주석학적 방식으로만 연구되던 ‘정치경제학비판체계 플랜’ 후반부에서 세계시장, 국제적 국가체계, 국민국가, 국민경제 범주 간의 연관을 체계화하고 이를 기존의 국가론 논쟁, 국제적 부등가교환 논쟁, 세계화 논쟁에 비판적으로 적용한 것 역시 이 책의 독자적 기여이다. 또 이 책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4장에서 2차세계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형”을 “계급 역관계의 분석방법”에 기초하여 설명한 것은 기존의 좌파 이론에서는 많이 간과되었던 역사 발전에서 계급투쟁의 역할을 부각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저자는 또 최근 유행하는 조절이론의 ‘금융주도 축적체제론’이 신자유주의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외관상의 분리를 절대화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통일성”,“산업자본의 금융그룹화로 표현되는 산업자본의 금융적 축적 전략”(p.575)을 정당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관련되어 생각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이 망라되어 논의되고 있고, 책 전체에 걸쳐 저자가 지난 20년에 걸쳐 축적한 연구와 투쟁 경험이 수많은 통찰들로 빛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나 결론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필독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워낙 광범위하고, 또 이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논의가 매우 깊이 들어가 있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 책의 구체적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이 지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에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상세한 검토보다는 이 책이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실천의 역사에서 갖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에 한정하여 몇 가지 동지적 비판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침묵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 >이라는 책 제목으로부터 대부분의 독자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가장 대표적인 ‘정통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인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로 비판하고 있는 현대자본주의론은 조절이론, 자율주의, 브레너 이론 등 3개인데, 저자는 이 이론들이 구조주의, 경제주의의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구조주의, 경제주의의 문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 더 심각한데도, 저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본격적인 비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저자는 또 좌파 이론의 문제점을 구조주의, 경제주의에서만 찾고, 좌파 이론의 정치, 예컨대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전혀 거론하고 있지 않다. 저자에게 좌파 특히 이른바 ‘정통좌파’ 내부의 차이, 특히 스탈린주의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간의 차이의 문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가 이 책에서 비판 대상으로 고른 조절이론과 브레너 이론, 자율주의와 ‘개방적 마르크스주의’들은 모두 현대 상황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 사상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으며, 이 때문에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 사상과 대립적인 스탈린주의 ‘정통’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이론들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반스탈린주의 좌파 이론을 집중 공격하면서도, 스탈린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또 저자가 이 책에서 반스탈린주의 최신 좌파 이론들을 부분적 실용적으로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는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지지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책이 기본적으로 스탈린주의 문제설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이르러 망조가 들었다”(p.5)는 스탈린주의 파국론을 이 책의 결론으로 제시하는 데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또 “사회주의 진영의 등장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축소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자본/노동의 적대적 대립이 냉전체제라는 외부화된 대립으로 정립되었음을 의미했다”(p.355)라는 주장에서 보듯이, 저자는 스탈린주의에 핵심적인 ‘소련․동유럽 블록=사회주의’, 즉 ‘진영테제’를 반복하고 있다. 저자가 개방적 마르크스주의를 실용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그 합리적 핵심인 ‘소련․동유럽 블록=국가자본주의’이론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단계론적 인식의 오류를 개방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단계론은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제2인터내셔날 마르크스주의에서 기원하고 스탈린주의에서 교조화된 역사 발전에 대한 “패러다임적 접근방법”(p.337)으로서 “기능주의로 귀결”(p.337)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의 입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는 다시 단계론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단지 용어가 단계적 이행에서 “전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의 “전형”은 “계급 역관계”를 절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기존의 단계론적 인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는 “제국주의는 역사적으로 19세기말 이후 20세기 초에 걸쳐 출현한 현상으로 특정화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제국주의였다는 식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동일시하는 견해는 잘못된 것”(p.238)라면서 단계론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스탈린주의 청산이 이토록 어려운가

저자가 스탈린주의적 단계론적 “패러다임적 접근방법”을 탈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제3세계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재식민지”(p.606)로 되었다는 허무할 정도로 진부한 스탈린주의적 ‘NL’적인 이 책의 결론에서도 확인된다. 중심부가 고전적 제국주의→케인즈주의→신자유주의로 전형함에 따라, 제3세계도 식민지→신식민지→재식민지로 전화하고 있다는 도식적 패러다임적 주장이다.

저자에게 식민지/신식민지/재식민지 간의 차별성은 의미 없다. 제3세계는 제국주의 중심부의 전략에 의해 철저하게 규정되는 객체로 상정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재식민지” 패러다임은 역사 발전에서 주체의 능동적 개입과 투쟁의 의의를 강조하는 저자의 “계급 역관계의 분석방법”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개념은 “물신적 개념” “기만적 의식형태”(p.324)라는 이론 부분에서의 정식화와도 상충된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을 현대적으로 복원”(p.3)시키는 것을 과제로 하는 저자가 이처럼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의 유혈적 압살 체제인 스탈린주의 교조들을 반복하는 데서 요즘 ‘과거사 청산’처럼 스탈린주의 청산도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알 수 있다.

내용상 문제점을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우선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의 중요성을 환기한 것은 이 책의 중요한 공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처럼 물신주의 비판 이론을 절대화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체계에 대한 일면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기존 좌파 이론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물신주의 비판 이론을 경시했다고 해서, 그것이 예컨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이론 또는 이윤율의 저하경향 법칙의 이론과 같은 경제법칙이 자본주의 동학 분석에서 갖는 중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 저자가 강조하는 이른바 “계급 역관계의 분석방법”의 핵심적 내용이 실은 네오리카아도주의(Neo-Ricardian) 이윤압박론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즉 계급투쟁의 고양이 전후 장기호황의 종식, 케인주의적 자본주의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주장인데, 이같은 주장은 이미 1970년대 마르크스주의 공황 논쟁에서 ‘근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기인한 이윤율 저하 이론)에 의해 마르크스 공황 이론과 아무런 인연이 없음이 밝혀졌고, 최근에는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에 의해 실증적으로 철저하게 논박된 바 있다.

또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계급 역관계는 기본적으로 자본의 일방적 우위의 역관계”(p.489)라는 저자의 주장은, “계급 역관계와 계급투쟁을 ... 승리냐 패배냐 하는 식의 이분법에 입각해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p.372)는 자신의 앞선 주장과 모순된다. 또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의 일방적 우위의 역관계”가 성립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금융적 축적 전략을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회피하기 위한 도주 전략”(p.533)이라고 규정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당장 자본이 노동자계급에 대해 일방적으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면 왜 “도주”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의 원인 구명에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갗의 측면, 혹은 “통합주의적” 측면은 절대화하는 반면, 이 시기 장기호황이 미소 양대 제국주의의 ‘영구군비경제’에 힘입은 사실을 무시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저자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금융세계화와 금융적 축적, 혹은 정보화의 측면만을 주목하고, 이것이 동시에 군사적 세계화, 즉 ‘무장한 세계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경제주의라는 비판은 저자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망의 추상성은 결점

이 책은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투쟁의 전략과 지향점,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가 매우 미흡하다. 이른바 “인간해방투쟁”, “자본주의를 극복한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p.5)이라는 개념만 제시되고 있을 뿐, 그 구체적 내용을 채우고 있지 못하다. 만약 저자의 “인간해방투쟁” 개념이 소외와 물화에 대한 추상적 거부를 절대화하면서,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반자본주의 투쟁, 자본주의 국가 분쇄 투쟁의 의의를 상대화하는 것이라면, 이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 사상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끝으로 이 책은 서술 방식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예컨대 저자는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 시초축적, 후반체계에 관해 최근 이루어진 전문적 연구들을 검토하지 않고 마르크스의 잘 알려진 텍스트를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이는 이 주제에 대한 저자의 고유한 학문적 기여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한다.

또 저자가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을 위한 소재, 전거로 홉스봄(E.Hobsbawm), 글린, 만델(E.Mandel), 카스텔(M.Castells) 등 오래 전에 출판된 개론류의 서적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뜻밖이다. 또 저자가 우리나라 좌파 이론가들의 현대자본주의론을 총망라하여 검토하면서도, 윤소영은 단 한번도 인용하지 않는다든지, 다른 금융화 이론들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판하면서도, 대표적 금융화 논자의 한 사람인 크로티(J.Crotty)는 우호적으로만 인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너무 실용주의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위에서처럼 제기한 몇 가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에 걸친 저자의 혁명 이론의 연구와 실천의 경험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적 타당성의 논증을 시도한 것으로서,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귀중한 학문적 성취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제 ‘돌아온 장고’처럼 학계에 복귀한 저자가 소련․동유럽 블록의 붕괴 이후 우경화를 거듭해 온 우리나라 진보 학계의 풍토를 일신하고, 이 책에서 시작한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을 발전시키고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것을 기대한다.



월간말 2004년 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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