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개성공단, 북 기습남침 전략...
- 솥귀
- 2006
-
- 한나라당 보수혁명 원희룡
- 솥귀
- 2006
-
- 민청련 동지 이해찬 vs 김근태
- 솥귀
- 2006
-
- 통일문제 해결사 정동영
- 솥귀
- 2006
-
- 한나라당 수요모임 리더 박형준
- 솥귀
- 2006
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출판업은 관할등록청(구청)에 신고하여야 하는 사업입니다. 신고를 하지않고 출판업을 영업하는자는 300만원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게 됩니다.
우선 사업을 시작하시려면 사업에 필요한 여건에 대하여 다시한번 신중히 검토(판로,자금, 인력확보 등)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시면 사업의 실체를 만드셔야 합니다. 즉 개인기업 또는 법인기업을 설립하셔야 합니다. 사업의 체에대한 인적구성과 물적구성(자본구성, 사업장확보)준비가 되시면 법인기업은 상업등기소에 등기를 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출판사등록신청을 관할구청에 하시야됩니다. 이때 등록신청서와 사업장매매계약서(임대차계약서), 법인등기부등본(법인기업인경우)을 제출하셔야 합니다.
출판사신고필증을 받으신 후 관할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을 합니다. 이후 사업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출판업은 부가가치세법상 면세사업자이어서 부가가치세법상 사업자로서의 의무는 가벼운반면 이후 사업목적이 추가되면 면세사업과 과세사업을 분리하여 관리하셔야 합니다.

다시 반제국주의를 생각한다
장석준
최근 들어 ‘반미자주화’투쟁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SOFA개정투쟁이 광범한 지지를 얻고 있는가 하면, 매향리 미군사격장반대투쟁은 공중파에 1시간 짜리 르포로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녹색연합이 폭로한 용산 미군기지 포름알데히드방류사건은 미군 당국의 사과 거부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 한총련 학생들의 철없는 구호로만 여겨져왔던 ‘주한미군철수’ 요구는 이제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연 지금 한반도에는 ‘반제국주의 직접투쟁’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의 이면에는 이와는 다소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또 다른 변화도 감지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당국이 천명하고 있는 주한미군문제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그것이다. 북한 당국은 주한미군문제를 남북회담의 기본전제로 내세워왔던 그 동안의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 이제는 단순히 주한미군문제 거론의 유보 정도를 넘어서서 주한미군의 장기간 주둔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는 언질을 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 통일운동 일각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진보진영의 통일 관련 토론회석상에서는 일부 통일운동 활동가들이 북한의 입장 변화에 따라 남한 통일운동 진영도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신축적인 입장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철수 요구가 모처럼 대중적인 슬로건으로 등장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까지 주한미군문제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통일운동 내부에서 소위 ‘유연한’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이런 모순된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작금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그 동안 우리 민중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했던 반제국주의투쟁이 그 뿌리부터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필요성을 웅변한다. 사실 민중운동 내 비NL 진영이 주한미군철수 요구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 내세웠던 가장 강력한 논거는 그것이 해당 국면에서 지극히 몰정세적이라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반미투쟁은 그러한 비판의 사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반미제국주의투쟁의 새로운 가능성
사실 미군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이미 제도 언론에서도 관심있게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남미의 미국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섬에서도 미군사격장에 대한 반대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이미 몇십년의 전통을 갖고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반대운동이 최근 일련의 미군 범죄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크게 불붙고 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미군문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반미투쟁의 물결은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미에서는 냉전 붕괴 이후 미국 자본의 경제 침투와 미국 정부의 대(對)남미 직접지배전략이 노골화되면서 반미제국주의투쟁이 새로운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반미 민족해방투쟁을 핵심 강령으로 삼았던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주의는 더 이상 단순한 저항의 아이콘만이 아니라 하나의 노선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상황은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유일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경제, 정치, 군사를 막론하고 말 그대로 총체적으로 지구 전체를 옥죄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자본의 세계화라고 부르는 현상의 이면에서는 사실 전 세계의 미국화라는 또 다른 진실이 자리잡고 있다.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세계은행과 IMF의 뒤에는 미국의 금융자본과 초국적자본이 웅크리고 있고 이들의 집행기관이 바로 미국 정부다. 미국 재무부 장관이 한국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을 검열했던 97년의 상황은 이제 월스트리트 자본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보들을 미국으로 소환해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걸프전이 그래도 UN이라는 껍데기를 걸쳤다면 코소보 폭격을 계기로 미국은 이제 그마저도 거추장스러워 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마저도 저항의 대열에 불러들이고 있는 반미투쟁의 전 세계적인 확산은 결국 이러한 도도한 흐름에 대한 필연적인 반작용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반미투쟁의 전통은 주로 NL 진영에 의해 견지돼왔다. 그런데, NL 경향은 주로 ‘민족자주화’와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주의 담론에 기반해 반미투쟁을 지속해왔다. 반면 NL 경향의 이러한 측면을 비판한 남한 민중운동의 여타 흐름들은 상대적으로 반미제국주의의 문제를 소홀히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미제국주의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NL 전통은 반미투쟁의 자원으로서 새롭게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에 반해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다소 추상적이며 합의가 덜된 구호에 열중하던 운동 세력들은 반미문제에 관한 한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낡은 논의 지형을 벗어나 2000년의 세계 상황을 직시하는 가운데, 반미제국주의 문제는 진보진영 전체의 적극적인 과제로 부각되어야만 한다. 앞질러 이야기하자면, 이 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NL-비NL 분열 구도의 일정한 극복 가능성까지 내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NL 전통의 여전한 모순
하지만, 여타 진영으로부터 NL 진영에 가해졌던 비판의 쟁점들은 여전히 문제거리다. 하나의 ‘국가 공동체’(물론 통일을 통해서만 완성될 미완의 공동체)로 전제되는 ‘민족’ 관념이 반제국주의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어쩌면, 반미투쟁의 호기에 등장한 통일운동 내부의 일정한 혼란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NL 경향은 반제국주의투쟁의 근거를 ‘민족’에서 찾고 이 ‘민족’을 통일민족국가의 건설로 완성되는 무엇으로 상정한다. 반미‘자주화’라는 말 자체가 민족국가에 대한 관념을 깊숙이 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미제국주의 과제란 것도 통일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과제에 통합되어서만 의미를 갖게 되며,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성취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동아시아 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한편으로 반미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동시에 이러한 NL 경향의 전통적인 관념에 기반한 반미투쟁에 일정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즉, 한편에서는 동북아시아 주둔 미군의 존재가 냉전 해체 이후 줄곧,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더욱 그 정당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오키나와와 매향리 투쟁의 부각은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 당국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오히려 주한 미군의 장기 주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베를린 합의 이후 열린 잠정적인 평화 국면을 북한 국가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유 시간으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 미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는 흡수통일 가능성의 차단을 위한 북한 국가의 지속과 발전이라는 점에서 현실정치상의 가능한 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 국가의 선택이 동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과연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만을 지니는 것인가? 동아시아 차원에서 미군 문제는 이미 북한과 미국의 대치라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아래서 동아시아 주둔 미군은 미국의 최대 가상적국인 중국에 대한 무력 견제 장치로 존재한다. 미군의 존재가 일본 군사력에 대한 일정한 견제력이 된다는 일부의 궤변은 그야말로 궤변일 따름이다.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파트너로서 육성돼왔고, 지금 판은 정확히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철수투쟁은 중․러 대 미․일의 신제국주의 분열 구도를 낳고 있는 미제국주의의 전략 사슬의 한 고리를 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전 세계 반미제국주의 투쟁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의 하나를 이룬다.
어쩌면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정권(중국, 베트남, 북한 등의)이 반미제국주의의 핵심 주체를 이루던 시기는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국가의 선택과 동아시아에서의 반제국주의 과제가 꼭 일치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도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NL 노선의 한 논리적 귀결은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북한 정권이 취했다고 생각되는 정책 노선의 추종을 위해 동아시아 차원의 반미제국주의 과제를 소홀히 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정권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동아시아 각국의 민중운동에 기반한 반미제국주의 역량의 성장은 북한 정권이 주한미군문제를 양보하면서까지 확보하려 한 평화국면 그것을 위해서도 북한 정권의 현재의 정책 노선보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진보세력은 현재 이 국면을 주도하는 것이 각국 정부 당사자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확고히 할 것은 각국 정부가 아니라 반제국주의 평화․민중운동 역량이라는 점을 확신해야 한다. 역사의 불가역지점을 넘어선 듯이 보이는 남북정상회담 국면조차도 단기적으로는 부시 공화당 정권과 한나라당 정권의 출범 가능성에 의해, 장기적으로는 중․러-미․일의 신냉전 구도에 의해 충분히 교란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안적인 상상력을!
SOFA개정투쟁과 매향리투쟁은 확실히 반미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매향리의 경우, 어떤 추상적인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피해 대중들 자신의 투쟁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앞으로 주한미군반대투쟁은 계속해서 이러한 대중적 이성에 기반해 발전해야만 한다. 요구사항이 SOFA 개정이어야 하느냐 철폐여야 하느냐, 혹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냐 즉각 철수냐 하는 것은 순전히 논리적인 쟁점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중간적인 요구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투쟁의 대중적인 발전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바로 이러한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반제국주의 과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함과 동시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근본적인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그 중 하나는 진보세력들이 반미투쟁 구호가 몰정세적이고 기계적이라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대중운동과 반제국주의 과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선 미제국주의의 경제지배전략과 정치․군사지배전략을 총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제국주의 비판의 새로운 전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매각반대투쟁 등의 노동자 투쟁을 반제국주의 인식과 분명히 연결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IMF 위기 당시에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등이 현실적 전술로 제시했지만 노동운동 주류에 의해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됐던 모라토리움 요구 같은 것을 재평가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과제는 반미투쟁의 근거인 ‘민족’의 내포와 외연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족=민족국가’라는 제한을 넘어서는 게 관건이다. 여기에서 오키나와 기지반대투쟁과의 연대 가능성은 단순한 전술적 중요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존재 의의가 의문에 부쳐지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동아시아 차원의 미군반대 국제연대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정권들이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주된 주체는 아니게 된 현재의 상황에서 반미제국주의의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가능성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지금 반미투쟁은 민중운동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각자의 과거 노선과는 상관없이 이에 주목해야 하며 그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난 세기의 민족해방투쟁과 그것의 민족주의적 편향과는 다른 근거를 찾는 가운데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필자의 문제제기의 핵심이다. 20세기 민족해방투쟁의 와중에서도 그 단초를 보여준 바 있었던 동아시아 국제연대를 한 핵심으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정신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결코 빈약하지만은 않은 실마리임에 분명하다.
동아시아,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용광로
- 백낙청 외, ꡔ21세기 한반도 구상ꡕ, 창비, 2004.
장석준 (기획부장, newer@jinbo.net)
요즘 ‘동아시아’가 난리다. 서점의 인문․사회과학 서가에 가보면 ‘동아시아’를 제목으로 단 책들이 수십 권은 나와 있다. 대체로 한 세기 전의 격동기를 다룬 역사 연구서들이 많지만, 걔 중에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다룬 책들도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동아시아’를 열쇠말로 해서 한국 사회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책들이 잇달아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영선 엮음, ꡔ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ꡕ(풀빛)나 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 엮음, ꡔ동북아공동체를 향하여ꡕ(동아일보사)가 바로 그런 책들이다.
평자는 최근에 나온 이런 류의 책들 중에서 비교적 ‘진보적’ 시각에 바탕을 두었다고 평가받는 책으로 백낙청 외 지음, ꡔ21세기 한반도 구상ꡕ(이하 ꡔ구상ꡕ)을 살펴보려 한다. 이 책은 계간 <창작과 비평>에 2003년 여름호부터 겨울호까지 세 호에 걸쳐 실린 기획특집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창작과 비평>은 본래 문예지이지만 창간자인 백낙청(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을 중심으로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왔고 사회과학 논문에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왔다. 해외에서는 이 잡지를 한국의 대표적 ‘좌파’ 저널로 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럼 ꡔ구상ꡕ은 ‘동아시아론’의 홍수 속에서 진보적 분석과 대안의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ꡔ구상ꡕ의 구상들은 현재 동아시아 담론 일반이 그런 것처럼, 혼란과 모순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왜 지금 ‘동아시아’인가?
우선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하필 지금 ‘동아시아’가 이렇게 문제냐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동아시아가 화두가 되었던 시기가 언제였는가를 회상해보면 우회적으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때는 정확히 100년 전 19세기와 20세기의 교체기였다.
백낙청이 ꡔ구상ꡕ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당시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격변하는 세계 질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그 혼돈 속에서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길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탐색과 논란이 계속되었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황쭌셴(청의 외교관)의 ꡔ조선책략ꡕ이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청, 일본, 조선이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서구 세력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합종연횡해야 하는지가 이 책의 주된 관심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놓고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위정척사파부터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까지 어지러이 이합집산했다. 기층 민중들의 세계에서도 동학운동이 나름대로 이러한 초국가적 격변에 대해 대안의 밑그림을 제시하려 했다.
세월은 흘러 20세기와 21세기의 교체기를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100년 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것은 단순히 외면상의 유사성만은 아니다. 역사의 기본 구조 측면에서도 유사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100년 전에 동아시아의 격변을 낳은 세계자본주의의 운동이 지금의 세계자본주의 양상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면이 있다. 당시의 세계자본주의는 오늘에 와서 ‘제국주의’라고 불린다. 그것은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서구 자본주의의 축적 모순을 함포외교를 통한 식민지 해외시장의 확보와 열강간의 극한 대립으로 풀려던 시대였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다시금, 투자 배출구를 찾지 못하는 금융독점자본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그리고 이들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세계화’라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군함과 해병대 대신 해외 주식시장을 누비는 기관투자가와 IMF 고위 관료의 서류가방이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지만, 100년 전 제국주의와 작금의 세계화 사이의 유사성은 결코 좌파만의 강박관념은 아니다.
동아시아는 이제 다시 이런 역사적 소용돌이 한 복판에 놓여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가 전 세계의 행로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100년 전의 그것 훨씬 이상이다. ꡔ구상ꡕ에 실린 글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듯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시장의 부상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자본주의의 사슬 속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경제로 부상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국가는 예를 들어 유럽에 비해 훨씬 불안정한 국가 체제, 그리고 국가간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북핵 위기로 집약되는 한반도의 지속적 불안정성은 그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한 마디로 세계자본주의의 장래 한, 두 세대를 좌지우지할 지역이면서 또한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가장 불안한 곳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천형(天刑)인지 우리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로 그 한 가운데에 있다.
ꡔ구상ꡕ의 동아시아론은 과연 진보적인가
하지만 ꡔ구상ꡕ을 비롯해서 ‘동아시아론’을 특징짓는 음조가 꼭 비관적이고 착잡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만 하면 한국이 그 흐름의 주된 수혜자 중 하나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많은 이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 대표자가 바로 노무현 정권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임 김대중 정부에서 비롯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구상을 더욱 발전시켜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중국 시장을 배후로 한 소위 ‘거점 경제’(hub economy)를 구축하기만 하면 한국이 2류 소국에 머무는 대신 동아시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게 그 골자다. 다만 ‘거점 경제’의 주축을 놓고 노 정권 내에서도 ‘금융 중심’이냐, ‘물류 중심’이냐, 아니면 ‘연구개발(R&D) 중심’이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살린다는 변증법적 낙관주의라는 점에서는 ꡔ구상ꡕ도 노 정권 못지 않다. 사실 <창작과 비평>이 애초에 이런 기획을 내놓은 것도 노 정권의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에 화답하고 그것에 나름대로 개입하려는 취지에서였다. 한 마디로 노 정권의 구상을 상수(常數)로 놓고 그것에 훈수를 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ꡔ구상ꡕ은 노 정권의 구상과 만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한다. ꡔ구상ꡕ의 필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백낙청 등 <창작과 비평> 단골 필자들은 ‘동아시아론’을 단순히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 차원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백낙청의 언급에 잘 드러나 있다.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절대적 요구가 인류문명의 발전이나 존속과 양립하기 힘든 성격이라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안에서의 대안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진다. (23쪽, 강조는 원저자의 것)
그렇다면 동아시아 변혁과 노무현 정권 식의 구상은 과연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ꡔ구상ꡕ의 가장 야심찬 목표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해명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따라 ꡔ구상ꡕ의 대안이 과연 ‘진보적’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될 것이다. 그런데 평자가 보기에 이 목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논문과 1편의 긴 좌담을 다 읽어봐도(물론 이중에는 한국 사회 정치개혁의 현 주소와 방향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김종엽의 「정치개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 썩 괜찮은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변혁과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이 서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필자들 중 다수가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가 한반도 분단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해준다는 데 주목한다는 점이다. 남한과 북한, 두 국가의 관계로만 놓고 볼 때 항상 막막함만을 던져주던 분단 체제도 동아시아 다자 질서를 염두에 두고 보면 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그것이 중국, 일본, 러시아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매개로서 동아시아 차원의 에너지 협력(천연가스관 등)․사회간접자본 협력(대륙횡단철도)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물론 북핵 위기나 동북아의 신냉전 가능성에 비하면 이런 식의 경제협력 전망은 분명히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노 정권의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론 전반을 긍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ꡔ구상ꡕ은 그러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한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극복해야 한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노 정권의 정책 방향을 일방적으로 긍정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김원배(국토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동북아중심 구상의 재검토」 같은 글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주장하는 글들과 나란히 한 책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김원배의 글은 그야말로 노 정권의 정책 지향의 대변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은 아주 전형적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통한 발전전략이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만큼 써비스 수출로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55쪽)
김원배는 한국 경제가 물류를 중심으로 하고 금융과 연구개발을 보조축으로 하는 ‘거점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는 우정은(미시건대학 정치학과 교수이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인 부인이기도 하다)의 글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세 개의 거울」 역시 마찬가지다. 동북아 금융․물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분단 모순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식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 김원배와 다를 뿐, 노 정권의 구상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자체는 다르지 않다.
전장(戰場)으로서 ‘동아시아’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평자가 동아시아 차원의 경제협력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게 결코 아니다. 동아시아 차원의 경제순환구조의 형성이 분단 체제의 극복에 결정적 의의를 지닌다는 주장에도 분명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경제․사회 통합의 전망이 항상 신자유주의 교과서를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논의되고 추진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지상주의에 충실하고 사회적 권리들에 배치되는 정통파 경제학의 낡은 교과서를 따를 때 경제․사회적 통합은 실패하고 만다. 각국 국민의 구체적 이해들과 충돌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일정들만이 남게 되고,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동아시아산(産)’ 초국적 자본이 등장하게 될 뿐이다.
노 정권의 구상은 이미 이러한 모순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거점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거점 경제가 내수와 어떠한 선순환 구조를 이룰지, 다수 노동 대중은 어떻게 소득과 복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아무런 대안이 없다. 오직 인천과 광양 같은 몇몇 도시가 부흥하면 국민 모두가 ‘2만 달러’의 소득을 누리게 될 것만 같은 환상만이 덧칠돼 있을 뿐이다. 수출은 호황인데도 내수는 침체하고 국민 전반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현재의 ‘이중 경제’ 상황이 ‘동북아 물류․금융 중심’의 구축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과도기가 아니라 그것이 영구화할 우리의 미래가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 전략은 아무런 답도 던져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수 언론이 제시하는 ‘우리 내부에 고립될 것인가, 아니면 바깥으로 향할 것인가’라는 구도는 쟁점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참된 쟁점은 차라리 우리의 눈을 동아시아로, 세계로 돌리되, ‘어떤’ 방향으로 돌리는가에 있다.
가령 김석철(명지대 건축학과 교수)이 ꡔ구상ꡕ의 기획좌담에서 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ꡔ구상ꡕ의 필자들이 가진 현실 인식이나 평자의 그것이나 서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제일 큰 문제는 인력과 금융자본의 과잉입니다. 4백조가 굴러다니고 있어요. 몇몇 분야의 기술수준은 제가 보기에 최강입니다. 중동에서 가장 제대로 된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 그리고 조선과 전자 및 자동차에서 한국을 세계 최강으로 만든 사람들이 밀려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올 때까지 참여했던, 또 그런 과실로 생긴 금융과 인력들이 놀고 있거든요. 잉여금융은 지금 투기자본화해 자본시장․노동시장을 왜곡하고 있어요. (346쪽, 강조는 인용자의 것)
그럼 그 ‘400조’를 어떻게 투자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백낙청이나 김석철은 ‘황해도시공동체’의 건설을 주장하는데 그런 식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추진하려면 결국 누가 나서야 하는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것처럼 경제특구를 만들고 규제철폐경쟁을 벌여 ‘바닥을 향한 경주’라는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시나리오를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노동자 농민 운동의 목소리가 관통하는 민주화된 국가기구가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투자 계획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적절히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새로운’ 무엇일 수 없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결코 그 자체 해답의 실마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서로 다른 대안이 각축하는 또 다른 전장(戰場)일 뿐이다.
ꡔ구상ꡕ은 비록 ‘진보적’ 동아시아 담론을 제시하려는 시도로서는 성공작이라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적어도 이 전장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는 유용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동아시아 구상’이 정리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좌파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 ![]() | |
![]() | ||
![]() |
[박영자의 북쪽 이야기](1) - 진보진영은 왜 ‘북한’을 알아야 하는가? | ![]() |
![]() | ||
![]() |
박영자 | ![]() |
![]() | ||
![]() |
20세기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승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아직도 20세기 ‘역사와 공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이념과 현실 간 갈등’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놓여있으며, 더욱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며 ‘정치적 민주주의의 추진과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폭력이 공존하는 불협화음’이 진보진영의 진로를 고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진영을 혼란스럽게 하는 노무현 정권의 불협화음에 근저에는 경제문제로 외현화된 20세기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 중요하게는 북한과 통일문제가 놓여 있다. 한편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 확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을 중시하며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유지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는 진보진영 내 좌파는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급격히 변화는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그리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무기력하다. 물론 더욱 세련되어지는 노동자계급의 분할 통치전략과 아직도 무수히 벌어지는 노동착취와 사회적 약자의 문제들이 진보진영 내 좌파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더 깊숙이 들어가 현재 진보진영 내 좌파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이들의 운동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①과거 소위 주체사상 그룹과의 갈등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북한사회를 이성적으로는 사고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예외국가’로 치부하거나 ②맑스와 레닌의 전통교리를 벗어났다며 북한사회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지 않았고, ③이데올로기일 뿐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통일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방해하는 해악적인 전술로 사고하고 비판하면서 북한과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제도권과 소위 주체사상 그룹의 전유물로 넘겨준 것이다. 그런데 ①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동유럽 사회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체제전환을 추진하였으며, ②중국이 시장사회주의라는 논리로 자본주의의 운영메카니즘을 급속도로 흡수하여 실업과 빈부격차 문제 등을 야기하면서 고성장하고 있고, ③북한의 경제위기와 한반도 통일의 문제가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남북경협과 교류로 현실화되며, ④탈북자들이 급속히 증대되어 남한의 하층 노동자가 되고 있는 상황, 더 중요하게는 ⑤자본주의의 병폐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끝없는 경쟁체계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좌파 진보진영은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문제들, 그리고 한반도의 국제적 긴장과 정치경제적 문제에 주요 변수가 되어 노동자 일상의 의식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북한과 통일문제를 외면할 것인가? 필자는 좌파 진보진영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을 조건짓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 삶과 운동의 동력을 풍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일의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와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고민할 것을 제기하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경쟁력 강화와 강대국 건설이라는 논리에 의해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과 다양한 통일의 흐름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스스로 사회주의를 포기한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이 급속도로 자본주의화 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문제와 갈등들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나부끼는 자본의 논리가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병폐를 해결해주거나 이전보다 더 나은 ‘인민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가 다시 20세기 사회주의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상대적 수혜자였던 사회적 약자와 노년층,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수는 회귀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 다수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이며 생활수준의 향상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주객관적 상황에서 남한사회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좌파진영은 더 이상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문제와 북한문제를 외면하거나 방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냉전시대 남북한 정치체제는 고정화된 이념으로 상대방과 대결하였다. 북한에게 남한은 자본주의적 착취 속에서 계급갈등에 신음하며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고통받는 ‘이중종속’ 국가였으며, 남한에게 북한은 1인 독재의 전체주의 공산체제하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기능이 마비된 ‘폐쇄국가’였다. 북한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남한사회를 해방시켜 사회주의체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정치의 핵심목표로 삼았으며, 남한은 1인 독재와 전체주의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북한사회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에 굴복시켜 통일하는 것을 정치의 핵심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김대중 정권과 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보의 담론’이 현실정치로 제기되기 시작하자, 그동안 굳건하게 침묵을 지켜도 기득권이 보장되던 보수세력이 ‘보수의 담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진영이 보여주었던 절실함과 응집력을 다양한 집회와 가두시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민주화진영이 총결집하여 ‘역사의 유물’로 박물관에 보관하려 하였던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지 못하였으며, 수많은 민주주의의 부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세력은 ‘북이라는 적’이 여전히 건재한데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노무현 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이들은 단지 정치권의 일부만이 아니다. 해방 60년의 역사 속에서 반공을 내면화했던 대중들이 이러한 불안을 표출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1994년 김일성사망, 그 이후 연속된 자연재해와 생산력약화 문제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으며 이들은 생존을 위해 시장을 형성하고 탈북을 감행하기도 한다. 북한정권은 위기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보루로 군대와 군인정신을 선전하며 체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소위 ‘선군정치’ 즉 군을 앞세워 국가안정을 이루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여 농민시장이나 암시장 등 과거 불법적인 시장경제를 합법화하였다. 북한주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실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책이다. 1990년대 중반이후 탈북자가 증대하였으나 각종 탈북자조사와 증언을 통해 볼 때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사회에서 살기를 원하고, 김일성에 대한 향수와 김정일에 대한 충성, 그리고 강성대국 건설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말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과 동구사회주의의 몰락, 그리고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대인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탈사회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병폐와 갈등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들고 전 세계를 재조정하려는 미국의 절대패권에 의한 갈등과 이에 대한 저항흐름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러한 내외적 상황에서 과연 21세기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펄럭이는 20세기 자본주의체제의 승리로 종결될 것인가? 또한 북한의 핵문제가 사실 여부의 상황도 확인되지 않은 채 연일 회자되어 국제사회를 뜨겁게 하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경제문제와 미국의 패권이라는 정치경제적 배경 속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남북한 상황,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전염된 듯한 중국과 일본의 패권적 국가주의가 한반도의 사회구성원에게 다시 한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폐쇄적인 결집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좌파 진보진영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이러한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 우리 주변의 노동자와 일상인들과의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가 가능하겠는가?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거창한 이론이나 수많은 문제의식을 쏟아 부으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내가 알고 고민하는 수많은 현실과 상상을 ‘북한’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2005년03월21일 10시 | |
| “한미합동군사훈련, 미국의 대북정책 강요 수순” | ![]() | |||
![]() | ||||
![]() |
대규모 군사훈련에 맞춰 라이스 미국무장관 방한 | ![]() | ||
![]() | ||||
![]() |
용오 기자 | ![]() | ||
![]() | ||||
![]() |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과 ‘독수리 훈련’을 연계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실시될 예정이어서 반전 평화단체들이 강하게 반대하게 나섰다. 특히 이번 대규모 군사훈령 기간에 맞춰 부시행정부의 대표적인 대북강경론자인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오고 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상임대표 홍근수, 문규현) 등 반전평화 단체들은 18일 오전 미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라이스의 한국방한에 대해 “군사훈련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정부에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강요하려는 수순을 밟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우리의 의구심”이라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즉각 중지 △라이스방한반대 △라이스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철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전평화단체들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현재는 북미간에 대화 상태가 아닌 심각한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만이 존재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 하에서 벌어지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느끼기 어렵고 대화상대방인 북한에 대한 심각한 자극과 도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참가단체들은 오는 19일부터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라이스방한반대 투쟁을 각 지역에서 벌여나갈 예정이다. 서울지역은 21일부터 25일까지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매일 집회를 열 계획이며 19일에는 지역별 동시다발 집회도 잡혀 있다. 참가단체들은 특히 울산지역에서 22일 해병대 훈련과 관련한 구체적인 집회를 갖는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종일 평통사 사무처장은 “만약 미군이 한반도 상륙작전을 곳곳에서 벌일 경우 강력히 작전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홍근수 평통사 대표 등은 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
![]() | ||
![]() |
![]() | |
![]() | ||
![]() |
![]() | |
![]() | ||
![]() |
2005년03월18일 23시 | |
| 독도 둘러싼 긴장,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 | ||||||
| 극우를 극우로, 제국주의를 파시즘으로 막을 수는 없어 | ||||||
| ||||||
|
일본 시마네 현 의회의 조례안 제출로 촉발
물론 역사적으로 또한 실효적 지배의 관점에서도 명백한 한국 영토인 독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에도 양국 정부간에 논란이 격화됐었으나 결국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협정을 체결하기로 미봉책에 합의했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 전권을 행사하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1999년 1월 발효된 한일어업협정 협상당시에는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키는데 한국 정부가 합의하고 독도를 ‘섬’이 아니라 ‘암석’으로 해석함으로 분란을 자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자체 차원이 아닌 일본 중앙정부 노림수 있나 한편 독도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는 일본 중앙정부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해 일본 외무성은 2005년 외교 목표를 ‘국민을 보호하고 주장하는 일본 외교‘로 설정했다. 이 맥락에서 ’한일 양국간 논쟁이 계속되는 동해 호칭문제에 대한 실태조사와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자료작성‘을 명목으로 약 8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결국 시마네 현 지방정부의 조례 제정으로 독도 문제가 다시 촉발됐지만 결국 그 뒤에는 일본 중앙정부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마네 현 의원연맹이 조례안을 현의회에 제출하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민감한 시기인 지난 2월 23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가 “다케시마 문제는 한일간에 분명한 시각차가 있다”며 “하지만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다케시마는 명백한 일본 땅”이라고 이례적으로 발언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긴장은 격화되 지난 11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항의 표시로 일본 방문을 무기한 연기하는데 이르렀다. 이 와중에 일본의 극우단체 ‘새역사를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든 후소샤간 일본 공민교과서 검정 제출 소식은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가져왔다.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식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 한 것은 2001년판과 다를바가 없지만 이번 개정 교과서에는 "한국과 일본간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라는 설명과 함께 독도 전경 사진까지 수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본 극우잡지에 식민지 지배 정당화하고 친일 과거청산은 친북, 친공적 주장이라는 글을 게재한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 사건도 민족감정 자극에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사태는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 평화헌법 폐기, 중러와 연이은 충돌과 궤를 같이 해
이보다 이틀 앞선 14일,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 신헌법기초위원회는 4월 확정될 예정인 신헌법 초안에 대해 중간보고 했다. 이 초안에 따르면 군대와 전쟁을 포기하고 전수방위 원칙이 포함된 일본의 ‘평화헌법’의 핵심조항인 헌법 제 9조 2항이 개정되어 군대부활이 가능해 진다. 또한 집단자위권의 명분으로 해외파병등이 가능해지게 된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헌법 전문에 포함시켜 국민 강제징집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 밖에 정교분리 조항을 완화해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헌법으로 허용하게 했다. 심지어 일왕을 국가원수로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이 북방 4개섬 관련해서는 러시아와 충돌을 일으키고, 조어대및 센카쿠 열도를 두고는 중국과, 독도를 두고는 한국과 좌충우돌하며 동북아 전역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군국주의적 헌법’ 제정과 밀접하게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변국과의 분쟁과 충돌을 통해 일본 내의 보수적 흐름을 강화, 헌법 개정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한일 우정의 해‘의 허약성 사실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오기 이전까지 최근 한일 관계는 해방 이후 최고조에 달했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 정례적으로 이른바 '노타이 회동'을 갖기로 했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에는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욘사마 열풍’으로 대표되는 한류가 일본열도를 강타했고 특히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민간 부문에서 한일 양국은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적 관계로 바뀌는 조짐까지 보였다. 이러한 밀착감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 정부는 ‘2005년을 한일 우정의 해’로 지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일본대사관에서는 연일 일장기 소각 시위가 이어지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 박지문 외교부 장관등 한국의 주요 외교라인이 연달아 대일강경방침을 내놓는등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다시 떨어졌다. 이러한 점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 식민지배에 대한 성찰적 인식의 확립, 한일 양국 극우 세력에 대한 시민사회 차원의 공동대응 등이 밑받침 되지 못한 탈정치적 한일 우호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지점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결국 양국 민중의 손에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나오고는 하는 ‘식민지배는 강제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일본 대중정치인들이 내뱉는 망언들이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일본국내정치 보수 우경화, 일본내 독점 자본의 이해와 역사성을 반영하는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임을 감안할 때 독도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보수회귀를 막는 길은 일본 민중들의 건강한 의식 확립 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공투 세대의 붕괴와 제1야당의 지위를 언제까지 지킬 것 같았던 거대 야당 사회당의 몰락, 노동운동의 퇴조, 심지어 NGO의 부재와 젊은 세대의 탈정치화 현상은 일본사회 우경화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독도 문제등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하기 위한 단기적 해결책은 요원하고 결국 한일 민중의 연대를 통한 제어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독도의 상징성이나 일본 식민지배에 의한 고통, 민족감정등을 감안한다 할 지라도 최근 일부 극우 진영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보이는 행태들은 적절치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할복, 투신자살 기도를 통한 시위는 파시스트들의 그것을 연상시키기 까지 한다. 극우를 극우로, 제국주의를 파시즘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 ||||||
| 2005년03월18일 13:12:35 |
1. 새로운 것과 낡은 것
한나라당은 지난 해 12월 21일 ‘한민족 선진공동체 통일방안’ 시안을 내놓았다. 통일방안은 통일의 미래상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통일국가로 제시하고,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통일정책의 목표를 북한의 변화유도와 변화관리(협력적 변화관리)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열린자주, 민주평화, 민족복리를 통일의 3원칙으로 삼아, 남북화해·협력 - 남북연합 - 선진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 과정을 통해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방안은 김영삼 정부의 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골격은 같지만, 남북관계의 변화, 북한 핵 문제 등 주변 정세의 변화를 고려하여 몇 가지의 내용이 수정·보완되어 있다.
첫째, 통일의 원칙과 관련하여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통합발전을 의미하는 민족복리를 추가하였다. 이는 최근 한나라당이 남북경협 문제에 대해 과거에 비해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며, 기존 당론이었던 ‘전략적 상호주의’를 ‘호혜적 상호주의’로 수정한 것과도 이어진다.
둘째, 공허한 김영삼 정부안과는 달리 북한 핵 문제의 해결에서 화해·협력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즉,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이후 대북 경제지원, 북미·북일 수교, 남북미 3자 회담 활성화, 남북미 3자간 상호불가침 선언, 남북이 당사자가 되는 평화협정의 체결과 UN 및 주변국가들이 이를 보장하는 협정 서명 등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수립하며, 대북 경제지원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연계시킨다는 것이다.
셋째, 전반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상정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한국의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의 거론 등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변화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급변사태에 대한 위기관리 및 급변사태 대책이 강조되어 있는 것 역시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한나라당의 통일방안에서는 이를 ‘포용적 개입’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의 방안은 보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과거에 비해 구체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구체화된 내용은 비본질적인 일부분을 제외하곤 현 집권세력의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과연 한나라당이 열우당과의 차별성이 별로 없는 내용을 채택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내용의 유사성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통일방안은 현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전략의 한계를 거의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새로운 통일방안은 기본골격에서 김영삼 정부의 방안과 차이점이 없으므로, 김영삼 정부의 안이 간직한 한계 역시 고스란히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평화체제 수립의 전략 부재 : 민족화해협력단계
① 북핵 문제 해결의 능동적 역할 포기 한나라당의 통일방안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을 거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이룬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핵 문제의 해결에 관한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시안에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와 핵 폐기를 전제로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 활동 및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사찰과 검증을 수락할 경우” 에너지를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제시되어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선핵포기’ 주장이다.
한나라당이 서 있는 전제, 즉 북한의 ‘선핵포기’는 미국의 입장과 동일하다. 미국과 북한의 대치 상황을 조정·중재하면서, 쌍방의 양보를 이끌어내어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능동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이라 할 때, 한나라당의 주장은 이를 부정하고 미국에 문제 해결을 맡겨놓고 나중에 대북 경제지원만 하자는 입장에 불과하다. 수세적이고 상황추수 논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선핵포기’는 가능한 것인가? 선핵포기, 즉 신뢰할 만한 안전보장 없이 북한이 전면적인 국제사찰을 수용하는 것은 북한으로선 백기 항복에 가깝다는 점이다.
선핵포기는 북한의 급속한 붕괴 또는 정권의 교체와 같은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경우에나 가능한 방안이다. 그러나 이미 페리보고서는 북한 붕괴론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현재 북한 정권의 안정성 정도를 볼 때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하다. 따라서 북한의 선핵포기를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근본적인 비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이 제시한 민족화해협력 단계의 추진 정책은 소극적인 상황 추구논리이며, 그 진정성에 의문을 낳는다.
② 미군 문제가 빠진 기형적 평화체제 전략 통일방안 시안에서는 북핵 해결 이후 남북미 불가침 선언의 채택, 남북 평화협정 및 주변국의 안전보장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남북미 불가침 선언의 채택은 의미 있는 주장이지만 북한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또한 지금까지 미국이 주장한 의회를 통한 ‘서면안전보장’이나 ‘집단적 안전보장’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하였음에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북한을 선제공격 명단에 포함된 것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선 법적 구속력을 갖춘 안전보장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불가침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약하므로,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여 불가침선언에 비해 강제력 있는 규범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평화협정의 체결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문제는 주한미군의 문제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평화체제 협상의 대상 전력(戰力)은 휴전선 이남에 존재하는 군사력 전체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주한미군의 요소는 단순히 남한에 배치되어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전력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동원되는 미국의 가용전력 전체를 그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시안은 주한미군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시안은 남북한 사이의 군비통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주한미군의 존재로 인하여 남북한간의 군비통제는 결코 남북한만의 문제로 처리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지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에서 주한미군 보다 정확히 표현하여 미국이 빠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시안에선 남과 북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되고, UN과 주변국가들이 보장협정에 서명을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미국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용인하고 있다. 미군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라는 사실, 미국이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러시아, 일본 등과 달리 크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미국이 다른 주변국가나 UN처럼 단순히 평화체제의 보장 국가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과 한·미 군사동맹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남북만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한다는 방안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법적 구속력 있는 대북 불가침조약과 한국에 대한 핵우산의 철거, 미군의 역할 변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등을 전제로 하여 북한이 주한 미군을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주한 미군의 문제를 제외시킨 평화체제 논의는 불구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3. 통일방안이 아닌 분단관리 방안 : 남북연합단계
① 자주가 아닌 ‘열린 자주’가 강조되는 이유 한나라당이 한미공조를 강조하고, 주한미군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열린 자주’라는 원칙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의 원칙이 들어갔지만,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자주’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외세배격’과 같은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에 바탕을 둔 개념 정도로 주장해왔다.
한나라당의 통일방안에서도 남북한의 주도적인 노력아래 긴밀한 국제협력을 통해 통일을 달성한다는 원칙으로 열린 자주가 설명되어 있다. 자주의 원칙이 국제 협력의 원칙과 조화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한나라당의 설명에는 자주의 원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원칙인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고, 오히려 이와 모순될 수 있는 국제협력이 더 강조되고 있다.
분단이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외세의 개입 때문에 촉발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지금도 주변 강국들이 한민족 통일을 추구해야 할 절실한 이유는 없다. 더욱이 미국은 지금까지 ‘미군이 주둔하는 남한’과 ‘적대관계를 청산한 북한’, 즉 두 개의 한반도(Two Korea)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한나라당이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남북이 국가 대 국가의 새로운 평화협정으로 전환함으로써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개입과 발언을 국제적으로 불법화시키며, 주한미군의 지역군화와 한미동맹의 재편을 착실하게 추진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한나라당이 자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은 한미동맹을 남북화합이나 민족통일보다 더 높은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북한을 적대국으로 보고, 미국은 우방으로 인식한다. 같은 민족을 적대시하고 다른 민족과 정치, 경제, 군사, 심리적으로 더 가깝다는 사실은 한나라당의 가장 심각한 결함이라 하겠다.
② 두 개의 한반도 전략으로서의 남북연합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내용이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와 주한미군의 지역군화를 전제로 한 것이며, 미국의 중국 억제 전략에 편승하는 것인 한 주변국 특히 중국이 반발할 것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이 주변국들에 의해 가로막히고, 한반도가 다시금 주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한나라당은 시안에서 2번째 단계인 남북연합단계는 남한과 북한이 상대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규정되며(1민족 1연합 2국가 2체제 2정부), 남북정상회의의 정례화 및 남북 교류·협력의 제도화 단계이자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적 통일체제이다. 이는 김영삼 정부의 방안과 동일한 내용이다. 남북연합제는 그동안 영구적인 분단 고착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 비판받아 왔다.
첫째, 상대방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함으로써 분단을 국가적 분열로 확정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둘째, 남한에 의한 북한 흡수를 꾀함으로써(북한의 개혁개방 유도와 변화관리)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셋째, 남한이 북한을 흡수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장기간의 남북 균형상태와 공조상태를 거쳐 분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남북연합제는 남북 국가간의 느슨한 결합 형태라고 할 수 있으나, 핵심적 권한을 모두 남북한 양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도 ‘통일체제’라고 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특히, 국가간 협의기구가 아닌 초국가적 기구의 수립 등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남북연합이 통일의 과정에 놓여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남북연합제는 흡수통일의 포석을 깔아 둔 ‘분단관리’ 방안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런 점에서 한나라당의 남북연합제는 6·15 공동선언의 2항과 날카로운 차별성을 갖는다. 6·15 공동선언 2조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2조의 내용 중에서 ‘남측의 연합제안’이라는 표현을 보면, 연합제안의 앞에 ‘국가’라는 말이 빠져있다. 또한 연합제안을 ‘통일을 위한’ 그리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상에 놓음으로써 두 개의 한국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4. 공허한 체제통합의 논리 : 통일국가단계
한나라당은 남북연합단계에서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단일 정부, 단일 국회를 구성하여 최종적인 통일로 나아간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남북연합’이 단일체제의 ‘통일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남북연합에서 통일국가로의 진입을 매우 급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비현실적이다. 남한과 북한이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주주의가 확대·심화되었다 하더라도, 장기간의 분단으로 인한 차이가 해소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일정부로의 통일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남북연합 단계에서부터 남북한 정부의 합의 하에 공동기구를 창설하고, 그 기구에서 권한을 확대시킴으로써 통합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며 현실적이다.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남북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연방제는 연방정부와 구성국 정부의 책임의 분배를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의 궁극적인 단계에서 남북한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피할 수 있는 통일 방안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연방제를 통일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민족통합이라 할 수는 없다. 민족통합을 제도의 통일과 문화적 일체감의 형성이라고 생각할 때, 연방제는 이러한 조건에 미달한다고 볼 수 있다. 통합은 궁극적으로 두 국민을 합쳐서 하나의 새로운 국민을 형성하는 문제이다. 또한 재 분리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연방국가제도는 완성된 통일국가의 형태로는 부적합하거나 부족하다. 그러므로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사회통합이 이루어진 통일국가 단계에서는 1국가 1체제 1정부의 국가형태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그 형태가 무엇이 될 것인가?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안에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원리가 구현되는 공동체를 통일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북한의 국가 사회주의 체제가 가진 취약성과 폐해는 이미 드러났으므로, 북한 사회가 이를 극복, 개선해야 함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남한의 천민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고, 결식 아동수가 30만 명을 넘어서며, 생계형 자살자로 자살율이 세계 2위인 남한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통합은 한갓 꿈일 뿐이다. 제도상의 통일, 즉 체제의 통합은 북한만이 아니라 남북한 모두를 진보케 하는 통일,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 극복을 이루는 통일, 따라서 현존하는 남북체제를 지양하고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통일의 원칙으로 제시한 ‘민족복리’의 원칙은 현재의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하며 남북한 체제를 지양하는 진보적인 사회경제체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할 수 있다.
5. 마치며
지난 해 총선 이후 한나라당은 ‘New 한나라당’을 표방하며 반공과 수구로 덧칠된 과거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절치부심하고 있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통일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새 당헌 전문에 넣은 것 역시 합리적 신보수의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라 하겠다. 그러나 표현만 바꾼다고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통일방안 시안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몇 가지 부분에서의 긍정적 변화와 구체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러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와 같은 안보문제가 걸려있는 현재 상황에서 안보정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동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달라진 것은 없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미공조와 대북 압박을 우위로 하는 안보정책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통일방안을 발표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 아닌가?
| 제목 : 평양, 봄을 기다리다 | |
| 작성자 : 연구소 | |
| |
21세기 세계 질서의 가장 큰 변수는 오늘날 유일 초강대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과,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사이의 충돌 여부이다.
이미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21세기의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는 것을 핵심적인 전략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의도에 경계심을 품고 대응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저명한 두 전략가가 '중국 논쟁'을 벌여 주목을 끌고 있다. 카터 행정부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자문역을 맡고 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강대국 정치의 비극'이라는 책을 통해 국제정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존 J.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가 그들이다.
미국의 외교문제 전문잡지인 <외교정책 매거진> 1/2월 호를 통해 전개된 두 사람의 논쟁에서, 브레진스키는 중국은 패권 추구보다는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패권 추구를 전제로 한 미·중간의 충돌은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 반면에, 미어셰이머는 중국은 아시아 패권을 추구할 것이고 이에 따라 미중간의 충돌 가능성은 높다고 봤다.
아래의 글은 <외교정책 매거진>에 게재된 두 사람의 논쟁을 요약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 전략가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쟁보다는 경제성장이다"
![]() |
|
|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고문 | |
![]() | |
| ▲ 존 J.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