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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REA국호는 회복되어야 한다
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위원 정형기, 2003.10.25
* 아래는 조선대 교지 ‘민주조선’에 기고한 글이다.
*출처: http://www.21corea.org/corea/corea_01.asp
3
외세에 의해 국호가 강제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양한 증거로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국호 회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앙일보의 박철희는 KOREA는 이미 국제적으로 정착된 국호라면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까지 국호를 바꾸어야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국호회복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보수논객들의 공통된 논리에 의하면 대부분 세계가 영어 공용화가 된 상황에서 영어식 표기인 KOREA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국호변경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들이 토론마당에서 흔히 내세우는 시기상조론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 COREA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긴 사실인가보다.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영어공용화시대이기 때문에 영어식 표기인 KOREA를 써야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논리적 모순이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말을 외국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자법이나 전사법에 따라 써야 된다고 한다.
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말의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 표기에 쓰이는 글자, 즉 한글의 철자를 로마자로 적는 것이다. 전자를 전사법이라고 하고, 후자를 전자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신라, 종로’라는 단어를 로마자로 적을 때, 전사법에 따라 발음을 로마자로 옮기면 ‘Silla, Jong-no’로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전자법에 따라 철자를 로마자로 옮기면 ‘Sinra, Jong-ro’로 옮겨진다.
그러나 전자법에 의해 표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글자가 있어야 하고, 또 맞추어 적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COREA가 사용되기 시작한 1250년대는 우리민족이 한자를 사용했던 시대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까지는 아직도 200여 년이 더 남아있던 때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한글은 ‘언문’으로 불리며 여전히 홀시되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대중화되었다. 우리나라의 존재가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1250년대에는 우리민족의 글자가 있지도 않았고 따라서 전자법에 의거해서 표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19세기 말엽까지 세계적으로도 전자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방법이 널리 유포되지 않았던 시대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여 볼 때 우리의 국호에 전자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호표기는 그 어떤 규범적인 성격을 띤 특수한 문자나 부호에 의한 표기가 아니라 라틴문자에 의한 표기이기 때문에 전사법을 적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한 나라의 국호가 전사법이나 전자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경험에 의거해 어원을 밝히는 역사어원론에 근거해서 표기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CANADA(캐나다), COLOMBIA(콜롬비아), CAMEROON(카메룬), 콩고(CONGO), 코스타리카(COSTA RICA), 캄보디아(CAMBODIA), 키프로스(CYPRUS) 등 우리말의 ‘ㅋ’에 해당하는 나라들의 국호의 첫소리가 모두 ‘C’로 쓰인 것인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국호 표기를 영어식 표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호표기가 역사적으로 일단 형성, 고착되면 그 표기를 계속 대를 이어 전승하여 쓰는 것이 옳은 것이다. 국호표기는 일단 형성, 고착되면 그것이 전례에 따라 그대로 계속 쓰여 내려오면서 그 나라의 상징으로 된다. 바로 COREA가 우리나라 국호의 상징으로 된 것이다.
둘째, 국호를 변경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은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논리의 연장에 있다. 국호회복운동은 과거 우리의 국호가 COREA였던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시에, 반세기의 분단시대가 종결되고 코리아반도가 재통일될 때 사용할 우리의 국호로 COREA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국제대회에서 사용할 코리아반도기에 COREA국호를 표기하자는 남북간의 합의도 나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코리아반도의 재통일은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다. 코리아반도가 재통일된다는 것은 지구상에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여 새로운 국호를 사용하는 것은 비용이 드는 문제가 아니다. 혹여 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민족이 치러야 할 비용이며, 또 통일된 마당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치를 수 있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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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를 회복하는 운동은 우선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국호를 되찾아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운동이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오늘의 시점에서 이 운동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낮에 여중생을 장갑차로 깔아 죽여도 가해자 미군을 처벌할 수 없어 장갑차라도 구속시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코리아반도 이남의 현실에서 미국으로부터 자주권을 되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인천을 통해 진주한 맥아더 군대는 그들의 포고령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코리아반도 이남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총독부 건물에 걸려있던 일장기를 내리고 그 자리에 성조기를 올리면서 시작된 코리아반도 이남의 예속체제는 현재까지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낳아왔다. COREA국호회복운동은 변혁운동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세력까지 포함하여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민족자주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호왜곡 과정에 개입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이 운동은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운동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호를 회복하는 운동은 또한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운동이다. 나날이 높아가는 국민들의 민주적 요구를 가로막고 있는 수구세력들은 일제시대 친일파의 후예들이며 해방 이후 현재까지 친미사대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세력들이다. 그들은 지난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입은 응원복을 두고 색깔론을 폈던 사람들이고, ‘FORZA COREA’라는 구호에 알레르기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COREA국호되찾기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KOREA국호고수론을 펴고 있다.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방해하는 이 세력들을 반대하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데에서 국호회복운동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국호를 되찾는 운동은 또한 민족통일을 앞당기는 운동이다. COREA국호가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고려시대였다. 앞으로 재통일될 날에 새로운 국호를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국호가 될 것이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자주, 민족화해의 운동이 적극 전개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제기된 COREA국호되찾기운동은 그 자체가 6.15공동선언실천이며 조국통일운동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낮은 차원의 조국통일운동이자 통일국호를 제정하는 궁극적인 조국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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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에 의해 강제로 왜곡되고 고착화된 우리 국호를 COREA로 바로잡는 것은 재통일을 눈앞에 내다보는 오늘의 시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부정의 부정을 거쳐 다시 되찾을 COREA는 일제 강점 이전의 COREA면서도 그렇지 않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더 이상 외세로부터 수탈당하는 나라가 아니며, 지배자의 탄압에 숨죽이는 나라가 아니며, 갈라져 서로에게 총을 겨루는 나라가 아니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외세나 매국노에 의해 만들어지는 국호가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뜻을 모아 만들어지는 우리의 국호이다. 다시 되찾을 COREA는 코리아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시대의 국호이다.
KOREA는 예속과 독재와 분단의 상징이다. 자주와 민주와 통일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KOREA라는 옷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낡은 옷이다. COREA를 우리의 옷에 새기고, 얼굴에 새기고, 머리와 가슴에 새겨 넣자. 새 시대에 걸맞는 우리의 국호, 그것은 ‘COREA’이다.(21세기코리아연구소 연구위원 정형기, 2003. 10. 25)
盧, "日, 침략과 가해의 과거를 영광으로 생각"
독일신문과 인터뷰, "일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세계의 불행"
2005-04-08 오전 10:00:42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 문제 등 한일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의 태도는 인류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며 "침략과 가해의 과거를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전 세계에 큰 불행"이라고 일본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을 앞두고 가진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간 '외교분쟁'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인들은 과거의 침략전쟁을 왜곡 미화하고 정당화하려 한다는 것"이라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이 신문이 8일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했다.
"일본 과거 침략전쟁 정당화, 과거 사과 백지화 시키는 행동"
노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관련,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아주 민감한 이유는 일본이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를 미화시키는 잘못된 교육할 경우 미래에 대한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한일간 과거사 문제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일본이 몇 차례 사과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최근 이런 사과를 백지화시키는 행동을 보였다"며 "사과라는 것은 사과한 취지에 저촉하는 새로운 행위를 하지 않아야 계속해서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우리도 과거사 문제를 자꾸 거론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계속 과거사에 얽매이고 싶지 않으며 자꾸 과거를 말하고 싶지도 않다. 결코 기분 좋은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이 현재와 같은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한국 국민은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와 불안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일본의 태도는 인류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맞지 않다"며 "침략과 가해를 과거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전 세계에 큰 불행"이라고 강도높게 일본을 성토했다.
"독도 편입이 바로 전쟁행위.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韓.中에 모욕행위"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선 노 대통령은 "독도는 침략전쟁으로 빼앗아 간 땅으로 그것을 우리는 1950년대 초에 돌려 받을 수 있었는데, 일본이 결국 침략전쟁의 결과물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 한국 국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점유에 관한 것,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며 "그러나 점유에 관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독도를 편입했던 과정이 바로 전쟁 행위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나는 독일과 프랑스가 이룩한 화해, 나아가 철강 석탄 공동체에서 유럽 공동체를 거쳐 유럽연합(EU)으로 서서히 발전을 이룩한 것을 관심과 경탄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면서 "독일이 어떻게든 과거를 스스로 극복하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이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국내에서의 긴장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역량이라고 생각한다"고 독일의 과거사 반성을 높게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즉 동북아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희망의 징조가 없다"며 다시 한번 일본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은 물론 중국에게도 "대단한 모욕"을 가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고 이 신문이 밝혔다.
"북핵문제, 미국에 새로운 양보 요구하는 건 무리"
한편 북핵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금 시점에서 미국측에 새로운 양보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라며 "우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야 한다"며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측에 북한의 정권 교체를 의도하거나 핵무기를 포기하는 이상의 요구를 제기하는 발언을 하지 말도록 요구했다"며 "미국은 그 사이에 몇가지 감정적인 표현들을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에 대해 어떤 공격적인 행위를 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에 대해 "대단히 전략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노 대통령은 "현 상태에서 회담을 특별히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이런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을 제의해올 경우 언제 어디서든지 그와 만날 용의가 있다"면서 "남북대화의 주제는 전부 북한 핵 문제로 집중될 수밖에 없고 한국은 결국 미국측과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입장을 갖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정된 평화구조가 무엇보다 중요"
노 대통령은 독일 통일에 대해 "축복받은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독일과 같은 방식의 통일은 그대로 반복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경제적 통합을 이룩해 나갈 수 있는 한국 경제의 역량을 고려해야 할 것이며 이런 통합의 결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라면서 "남북간의 불균형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역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한 이후에 한반도에서의 조속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일괄적 정책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조속한 통일을 실현하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는데, 통일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통일을 자주 말할수록 통일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국 통일정책에서 첫 단계는 남북한 연합으로 EU에서의 국가간의 관계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직은 이런 시기가 오지 않았다. 나는 안정된 평화 구조가 어떤 관념적인 통일 계획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임종석의원 “햇볕정책 계승 아직 모델이 없다” | ||
0 : 869 | ||
기사작성일: 2004-07-22 | ||
북한문제 안정보장이 필요하다 386의원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임종석의원. 16대에 이어 17대에도 무난히 국회에 입성한 그의 정치적 관심사는 무엇일까. 임의원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위 위원이다. 우선은 그의 정치적 관심사가 남북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탄핵정국 이후 국민적 관심사에서 한층 초라해져 가기만 하는 열린우리당의 386의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 내부의 갈등이나 정책혼선 등 신중치 못한 행동 등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것이다. 탄핵국면에 비하면 이후는 상당히 이완되어 있어 긴장감이 떨어졌다. 서민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지고 챙겨야 할 민생문제 등 개혁과제가 많은 데 당이 신속하게 정비에 나서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한 열린우리당의 패배 원인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용을 보면 열린우리당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짚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정리”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다. 그러면서도“잘 될 것”이라는 말로 당의 미래를 시사했다. 이 시대의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국가권력과 시장경제의 현재 틀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해, 그의 진보의 개념은 기존의 이념적 토대에 기반을 둔 진보의 개념을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진보정당이냐는 질문에는“좌파이념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이 있는 한 진보정당이 아니다”라고 답해 그이 진보관을 명확하게 들여다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의 관심사는 남북문제였다. “안전보장만 해결된다면 김위원장은 개혁 개방을 해나갈 의지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그의 시각은 북한을“파트너”로 인식하는 그의 남북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에서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참여정부가 아직 계승정책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정책계발을 강조했다. 이어 현재 진행중인 남북국회회담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통한 남북교류촉진법의 개정과 냉전적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할 호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파병문제 역시 자신의 기본 태도와 변함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에서의 UN의 역할에 따라 파병문제를 유연성 있게 대처할 의중임을 비쳤다. 그렇다면 그의 이념적 포지션은 어디에 놓여 있을까. “생각 안 해봤다. 자신의 이념적 포지션은 스스로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규정해 주는 거라고 본다.” |
인터뷰/데일리서프라이즈 서영석 전문기자-“지방대 중심의 새로운 글쓰기 주류 발굴할 것” | ||
0 : 881 | ||
기사작성일: 2004-09-22 | ||
"시대상황이 바뀌면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웹진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전대표는 최근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창간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웹진 서프라이즈와의 관계청산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므로써 내 역할이 끝났고 생각했는데, 의회의원들의 주체라는 문제가 남아있어 목숨이 연장된 것”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국회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끝났기 때문에”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웹진 서프라이즈 대표로서의 서영석이 아니라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전문기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섰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웹진 서프라이즈와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역할 분담만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서 웹진서프라이즈의 필진을 데일리서프라이즈로 영입하지도 않았다. 웹진서프라이즈의 영역과 역할은 그대로 놔두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새로운 글쓰기의 논객 즉 지방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글쓰기 주류를 만들어 낸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물론 서영석씨로서는 웹진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이“굉장히 좋은 분들이 많고 아깝”고 또“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않”다. 그러나 데일리서프라이즈가 등장함으로써 서프라이즈의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을까는 우려 때문에 역할분담만은 분명하게 지키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새롭게 모든 영역을 만들어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조선일보를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다. 오히려 조선일보에 대한 호의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안티조선이라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회운동”이고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언론으로서의 데일리서프라이즈는“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큰 목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조선일보) 조직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그럴 이유”도“없다”. 함께 그는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오프라인으로의 확대계획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서영석씨는 자신의 이념적 포지션에 대해서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정도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개인 능력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정도”가 그가 생각하는 사회변화의 정도다. 따라서 자신 같은 사람이“보수주의자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본다고 말했다. 나아가“노무현정권은 중도우파인 보수주의정권이며,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나쁘다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지난 8월9일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데일리서프라이즈, 오프라인 계획 있다 서프라이즈에서의 입장정리가 끝났는데 그간 서프라이즈의 역할에 대해 자평해 달라. “시대상황이 바뀌면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므로써 내 역할이 끝났고 생각했는데, 의회의원들의 주체라는 문제가 남아있어 목숨이 연장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국회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끝났기 때문에 내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계기가 없었는데 이번 일이 계기가 되서 정리를 하게 된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앞으로 영구불멸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나아갈 것이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속에서의 내 역할은 이제 이미 정리가 됐다. 나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프라이즈는 내가 없어도 새로운 개혁적인 담론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것들이 전파될 것이고, 계속 지금도 성장하고 있잖은가.” 하지만 서전대표가 서프라이즈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것도 같다. “그게 서프라이즈 초창기 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별 상관없다고 본다.”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웹진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이 옮겨오지 않는가? “기본적으로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웹진서프라이즈의 논객을 쓰지 않는다. 굉장히 좋은 분들이 많고 아깝다. 또 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안 쓰는 이유는 행여 데일리서프라이즈가 등장함으로써 서프라이즈의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을까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역할분담을 시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우리가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프라이즈의 것이고 우리는 새롭게 모든 영역을 만들어 갈 것이다.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고 있고 이미 글쓰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 서프라이즈는 자발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숨어있는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흔히 글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 말고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발굴 등용할 것이다. 서프라이즈에서 글쓰는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필진들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구조화 되어 있다. 그 자체가 움직이게 놔두는 것뿐이다. 우리는 칼럼리스트라는 현 글쟁이들이 주류를 배제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낼 것이다. 제도권에서 현재 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닌 지방대중심으로 한 글을 쓸만한 사람을 소개도 받고 접촉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설이 없다. 사설을 쓸만한 사람이 없어서이다. 그렇다고 우리 형편에 논설위원을 초빙해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론과 칼럼 위주로 해나갈 것이다. 기획하고 있는 게 4가지다. 첫째는 14명을 선정해 7명씩 나눠서 매주 1편씩 쓰게 하면 매주 2편의 칼럼이 나온다. 시론은 300명 정도의 투어를 구성해 시론을 쓰게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정치전문이라고 하는 데 그건 아니고 데일리서프라이즈의 케치프라이즈가 중소기업을 살리자이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들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중소기업 CEO들이 직접 글을 통해 자신들의 얘기를 하게 할 것이다. 한 60명에서 120명 정도의 CEO들을 구성해 두 달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씩 이들의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 할 생각이다. 그들이 중소기업의 활성화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CEO칼럼이 될 것이다.” 데일리서프라이즈가 오프라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오프라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언론개혁 차원이다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데일리서프라이즈에 필진들으로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없고, 인터뷰전문기자 지승호씨는 같이 일할 것이다. 1주일에 한 번 정도이며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정치기자들이 중심으로 국회를 바탕으로 취재를 해나가겠다고 했는데. “모든 사회문제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이런 역할을 하고 우리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들이 취재의 바탕이다.” 기자 출신이고 잔뼈가 언론에서 굳었다. 진정한 언론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언론개혁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데일서프라이즈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지식층을 만드는 것도 언론개혁과 같은 맥락이다.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여러 방안이 많이 있지만 중소기업을 실제 운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이 정책에 반영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언론개혁을 해야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언론개혁의 주체자들은 언론사 혹은 언론인들인데 그것이 여러 가지 제약조건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고쳐지는 모습을 보이고 이것이 독자들에게 와닿고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가짐으로써 다른 언론사들을 계인하자는 솔선의 목적이 있다. 언론사의 가장 큰문제점은 언론 자체가 권력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권력화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언론계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권력이라고 본다. 왜 권력이냐 하면, 언론은 여론을 주도하고 있고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격조건이 제한이 되어 있다. 언론고시라는 게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일단 들어가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지금 언론계는, 100% 그렇지는 않지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외대 성균관대 등 5-6개 대학을 제외하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카테고리 속에서 들어가는 데 있어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고 기득권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 들어가고 나서는 취재도 잘 안하고 하는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지 않은 제 3,4의 대학출신을 많이 포용해서 훈련을 시키고 열심히 취재하는 언론 내부의 개혁을 해보자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사 간에 꺼렸던 언론사 이야기 기자들의 이야기도 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역의 침범 즉 사생활침해로 인한 명예훼손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법률자문단을 구성할 것이다. 5-6명 정도의 언론 관련 변호사를 구성해서 자문을 받아 나갈 것이다. 특히 언론과 관련한 기사는 대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문을 받을 것이며 그것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할 것이다. 나는 소송에 관해 전문가다. 전체 5,60 건의 소송을 당해봤는데 단 한 건도 패소하지 않았다.” 기자의 자질은 뭐라고 보나?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다른데, 국민들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기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취재의 성실성 등 기본적 기자로서의 정도가 있지 않겠나? “글쎄, 기술적인 문제의 자질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신문에 나오는 기사가 100%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 기사는 검증 시스템을 거치게 된다. 기자가 쓴 기사는 데스크의 손이 거쳐지기 때문에 기자가 쓴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기자들 같은 경우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글쓰기에 문제는 있을 수는 있겠지만 훈련을 하고 있고 데스크진이 구성되면 별 문제는 없다고 본다. 오늘날의 기자는 생활인으로서의 위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직업인으로 직장인으로서의 기자의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고 보는데 다만 기자의 글이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볼 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주도하는 데 기여하자는 공동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공공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지 특별히 누구와 무슨 원한관계에 있어 기사를 쓰는 것이다. 조선일보 같은 경우 못할 짓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응보를 받을 언론사이지만 우리가 꼭 그걸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도 언론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룰 뿐이다. 다만 조선일보가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사회적 해악이 크기 보다 좀더 다른 언론사 때문에 많이 다룬다는 차이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일보를 유독 타겟으로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죽이기 위해 데일리서프라이즈 있는 것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이념적 대립각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기 때문에 장점이 상대적으로 가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객관적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바라보고 있다. 안티조선이라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회운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큰 목적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 조직을 죽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무너진다든가 시민운동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조선일보를 죽이기 위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아직 사이트 오픈 전이지만, 취재가 진행됐을 텐데, 특종이랄 기사는 있나? “그건 우리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말 할 수는 없고, 뭐 너무 어렵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 번 나온 것을 보고 기대를 하고 기대를 접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유난을 떨지도 않을 것이고 처음에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야 좋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에 평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하루 이틀의 평가를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는다.” 기자들은 온라인 출신인가 오프라인 출신인가? “오프라인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기자로서 일하고 싶다 웹진 서프라이즈하면 노빠라고 부르는데, 이런 대중적 이미지가 데일리 서프라이즈에도 그대로 인식되어지지 않을까 하는데. “서프라이즈는 정론이다. 대중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개혁을 하자 그랬는데 그 개혁의 주체가 노무현대통령이어서 그것을 지지한다고 노빠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문제다. 80%이상은 노빠와 관련이 없다. 그건 기사가 말해 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노빠다 아니다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할 것인데.” 데일리서프라이즈에서 서대표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영자도 영입을 하고 편집국장도 영입한다고 하는데 구태여 서대표가 중책을 맡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책임있는 역할을 맡는 것이 싫고 지겹다. 또 한다고 생각하니까 캄캄했다. 나는 기자로서의 역할을 더 하고 싶다. 전문기자로서 더 활동을 하고 싶은 뿐이지 나는 남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다.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다만 이 계획을 진행하면서 마지막으로 기자로서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언론개혁이라든가, 친일문제라든가 이런 기획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부분은 능력있는 편집국장에게 맡기고 나는 세부적인 부분을 맡아 심도있게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놓고 앞으로 평생 놀고먹을 것이다. 내 소원이 평생 놀고 먹는 것이다. 그걸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총선 이후 개혁추진을 어떻게 보는가?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지금 노무현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 사회의 수십 년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이일은 끝까지 가야하고 다음 정권까지 가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단기간에 표가 나고 평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향과 수순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봐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어떤 일을 목적으로 갈 때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돌아가기고 하고 곧바로 가기도 한다. 앞서간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돌아간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으로 가고 있는 가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놓고 판단을 하는 것은 숲은 안보고 나무만 보는 것과 같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 시대의 진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글쎄,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 나도 몰라서 묻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표현이 딱 맞다고 본다. 우리사회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 틀을 바꿔서 가자는 사람과 반대로 아니다 그대로 가도 된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꾸고 나가자는 사람이 진보이고 그냥 가자는 사람이 보수라고 본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보면 굉장히 다르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꾸고 나가자는 사람도 보수일 수 있다. 나도 보수주의자이다. 왜 보수냐.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꾸자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틀을 완전히 뜯어고치자는 입장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처럼 분배의 시스템을 모두 바꾸자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개인 능력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회적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하는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정도면 건전한 보수주의자 입장이다. 좌파의 시각으로 보면 보수주의가 맞지만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나쁘다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노무현정권도 보수주의 정권이다. 역시 노무현정권도 보수주의인데 보수주의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는 중도우파정권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도 중도우파다. 자칭 우파 입장에서는 좌파고 자칭 좌파입장에서 보면 우파이다. 한나라당은 절대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수구이다. 나 같은 사람이 보수주의자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바뀐 것이라고 본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보는가? “명백하게 진보하고 있다.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겠나. 느리지만 꾸준히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개인적 화두는 무엇인가? “아무 생각없이 놀면서 살자는 목적을 향해 지금까지 일하면서 살아왔다. 무위도식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산다. 무위도식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왔다.” 무슨 선문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진짜 그렇다. 나는 책임감 같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지금부터 내 생의 최대 목표는 빨리 손을 털고 약간의 돈을 가지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사는 여건을 만드는 데 노력할 것이다. 나는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다.” |
가깝고도 먼 中-日, 적인가 동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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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 ![]() ![]() |
[이코노미스트誌 특집기사] 일본과 중국. 일반적으로 두 나라는 옛날부터 가깝고도 먼 나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근세에 들어서는 양국은 처절하게 전쟁을 벌인 적대 국가이기도 했다.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다. 영국의 시사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특집기사(4월1일자)를 통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영토*역사분쟁을 심층 분석했다. 이에 본지는 기사의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日中,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 만일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 나라(일본, 중국)가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홍콩을 포함할 경우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제1위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으며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대상국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기업인들은 중국과의 경쟁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호 의존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중국의 값싼 물건을 사들이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일본의 정교한 장비를 자국으로 들여와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한편 일본과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는데 있어서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에 일본과 중국은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ASEAN 국가들과 함께 외환위기가 있을 경우 각국은 자국의 보유외환을 상호 교환한다는 ‘치앙마이협정’을 약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증권거래자들과 음모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조만간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공조체제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전망은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일중양국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갖기도 했으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의 지도자들은 중국이 본받아야할 경제 모델로 일본을 꼽았다. 日, 中의 군사력 팽창 우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지난 세기 쓰라린 라이벌 관계였던 일본과 중국이 여전히 긴장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현 사키시마(先島)제도의 일본 영해를 중국의 한(漢)급 원자력 잠수함이 세 시간 동안 휘저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는 비상이 걸렸다. 핵 잠수함이 사전에 아무 통보 없이 영해에 들어왔다면 이는 공격이나 다름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국 일주일 뒤 중국이 일본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국이 잠수함 함대의 규모와 전력, 활동범위 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게 확실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70여대로 2010년까지 20대가 추가된다. 증강 분은 첨단 장비를 갖춘 스텔스형 잠수함이다. 이 중 3대가 원자력 추진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비록 성능 면에서는 뒤질지라도 수치상으로는 미국보다 더 많은 잠수함을 갖게 된다. 이러한 중국의 ‘잠수함 세 불리기’는 이웃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상품 수출과 에너지, 원자재 수입에 이용되는 해상 수송 항로를 사실상 중국이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합동 안보 성명서에,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을 우려하는 구절을 공개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본이 대만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자 헌법을 개정한 뒤 군사력을 증대하기 위한 상징적 움직임이라며 일본을 비난했다. 지난 12월 발간된 일본의 방위백서는 중국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국방비 증액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2500억 위안(약 3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 1996년 이후 연 10년째 이 어지는 두 자리 수 증액이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물론 미국의 4000억 달러(400조원), 일본의 470억 달러(47조원)에 비하면 아직 절대액수에서 적다. 그러나 다른 예산에 숨겨진 것으로 의심되는 유사 국방비 항목을 따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의 최대 4배, 최소 2배는 된다는 것 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편 일중 양국의 고위급 외교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1년 이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다. 물론 중국도 지난 1998년 장쩌민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 공식적인 중국 지도자의 일본 방문이 없는 상태다. 이는 지난 1972년 양국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이후 가장 긴 양국간 외교관계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특히 일본과 중국은 영토분쟁중이다. 양국간 영토분쟁의 핵심은 센카쿠제도(釣魚島*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다. 갈등의 1차적인 씨앗은 석유자원이다. 5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이 섬에서 1970년대 석유 매장이 확인되면서 양국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역사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년 동안 수시로 센카쿠제도에 상륙해 시위를 벌여왔다.
현재 일본 방위청은 센카쿠제도의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이 섬에서 가까운 사키시마(先島) 제도에 육상자위대 200명을 주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에도 센카쿠제도에 설치된 등대를 국유화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대만 역시 센카쿠제도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전부터 대만 동부 이란(宜蘭)현에 속한 지역이라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중국해의 중국*일본 중간수역에서 벌어지는 천연가스 확보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중국의 춘샤오(春曉) 천연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 지역은 일본과의 경계해역에서 불과 5㎞ 떨어졌다. 일본은 중국이 이미 1986년 해저지질조사를 통해 일본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중간지점을 넘어서까지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음을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사실관계를 중국 측에 문의하는 한편 상세 데이터 제출을 재차, 삼차 요구했으나 중국은 공동개발 제안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과 중국 정부는 지난 99년부터 ‘해양법문제에 관한 중*일 협약’ 체결 협상을 시작했지만 이것도 진전이 없다. 이처럼 점증되는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결국 두 나라의 경제적 의존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사라지게 될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두 나라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상호의존과 상호경쟁 관계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의존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호의존과 상호경쟁의 양면을 지닌 관계’로 보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국은 19세기 이전 까지만 해도 일본에 대한 승자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을 속국으로 만든 후 중국을 침략 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60~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한 반면 비슷한 시기 중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등소평은 중국의 경제 체제를 계획경제에서 자본주의경제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따라 중국이 다시금 일어서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기회로 보는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까지 경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 중국을 다른 나라들처럼 경계하고 있지는 않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이 장기적으로 자원 확보를 둘러싸고 상호 경쟁관계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치열한 日中간 자원 확보전쟁 일례로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일본과 중국은 러시아가 건설하게 될 사상 최초의 시베리아 석유 파이프라인(송유관)이 자국을 경유하도록 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으나 러시아는 결국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양국학자와 관료들은 오늘날 일본과 중국 사이의 대립관계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20세기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양국의 대립은 상호 불신(mistrust)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가오 헹(Gao Heng)박사는 일본의 정치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대만을 속국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대만의 군인들이 일본에서 비밀리에 훈련을 받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가오 박사의 경우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모는 과거 일본군을 피해 지하 굴에 숨어 살았으며 박사 자신도 이 시기(1939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나고야에서 열린 비공개 경제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일본의 한 경제인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보이고 있는 영토적 야심 그리고 자원 확보에 대한 야망은 1930년대 히틀러가 추구했던 ‘레벤스라움’(Lebensraum*게르만 인종을 위한 영토 확보)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의 이와 같은 야심을 일본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국의 자존심과 불신의 대결은 군중집회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중국의 젊은 관중들은 일장기를 태우고 일본의 외교관 차량을 파손시키는 등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이와 같은 난동은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를 고이즈미 총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발생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 인사들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고려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만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며 재계 인사들의 충고를 뿌리쳤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일본이 더 이상 중국의 압박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시아에서 중국만이 유일하게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항의하는 나라는 아니다. 한국도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동안 중국처럼 집단적인 대규모 반일 시위는 없었으며 대부분 한일 양국 정부관계자들의 유감표명으로 끝나곤 했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과 중국에는 아직까지 지난 1984년 베르덩(Verdun)에서 “다시는 역사에 과오를 남기지 말자”면서 함께 손을 잡았던 독일의 헬 무트 콜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1945년 이후의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없는 반면 일본의 경우 역사교과서를 통해 20세기 초반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 하는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에 가한 최대 잔혹행위의 하나인 난징대학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공산주의의 대립 중국도 역사를 왜곡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던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역사교과서를 통해 반일감정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의 긴장관계는 서로가 정치*경제*역사적 이해관계를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특히 양국의 긴장관계는 공산주의(중국)와 민주주의(일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국의 정치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양국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아시아공동체와 같은 연합체제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국가 주권을 공동체에 양도하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어느 한 순도간도 자국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본적이 없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도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양국의 긴장관계는 완화될 것이다. 이를 실현키 위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과거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일본과 관련된 중국 역사를 학자들이 충분한 토의를 거친 후 서술할 수 있도록 장려하여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현재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해양주권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야스쿠니 문제의 해법은 2006년 선출될 신임총리가 고민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가의 자존심이란 차원에서 일본의 알링턴 국립묘지 격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1940년대부터 민간종교시설이기 때문에 정부는 그곳에 안치된 전범을 옮기라고 명령할 헌법상의 권리가 없다고 고이즈미 총리는 말했다. 이점은 사실이나, 알링턴이나 프랑스의 무명용사 묘지처럼 총리가 논란의 여지없이 참배할 수 있는 정부가 운영하는 묘지를 설치하는 것이 해법이 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모든 전시 배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본의 공식적 입장이라는 것이 보상 이슈의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독일이 강제노동에 대해 보상을 재개하기로 한 것처럼, 일본도 강제노역이나 전시의 정신대 여성들에게 포괄적인 보상을 제공하라는 압력을 계속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시 동기 및 행위에 관한 일본 내부의 논의가 발전의 징표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원적인 사회에서, 일본이 잘못한 것이 뭐가 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수의 견해가 중국의 발전에 따라 일본도 힘이 필요하다는 선동과 정치적 감정과 결합할 경우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경우 패권추구 대신 화해를 추구할 때만이 긴장은 가라앉을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 | ||||
김필재기자 2005-04-05 오후 4: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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