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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7/26

엘지그룹 노무관리 실태와 해고자 문제

자료/『현장에서 미래를』17(1997/01)
해고노동자 문제를 통해서 본
LG 그룹의 노무관리 실태와 부당노동행위 보고서
최형익(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세상에 태어나 보람된 일,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많이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꿈을 다 접어두고 장렬히 산화하고 싶은 충동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황폐화되고 가정이 황폐화되어 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습니다."-이동렬(LG 전선 안양공장 해고노동자)
1. 들어가며
문민정부라고 자처하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93년 3월 10일, 당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은 지난 5, 6공 군사정권 하에서 해고된 5,200여 해고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발표가 선언에 그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노동부 장관의 발표 직후 전교조 해직교사를 비롯하여 지하철, 현대, 대우, 삼성, 기아, 태평양 등 많은 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이 전체 또는 일부분 복직되어 정든 일터로 돌아갔다. 또한 96년 최근, 공공부문 노조들은 해고자 복직 문제를 임투과 연계하여 해고자 문제가 단체협상의 의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해고자 복직 문제에 미동도 하지 않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국내 굴지의 재벌인 LG 그룹이다.
LG 그룹의 경우 해고자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무소불위, 치외법권의 영역인 양 행세하고 있다. 유독 LG 그룹에서만 해고노동자 문제가 개선은커녕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실제로 LG의 경우 1995년 8월 현재 53명이던 해고자의 수가 줄기는커녕 1996년 7월 현재 오히려 늘어나 67명에 이르고 있으며, 복직을 시킨 사례도 전무한 실정이다(『주간 노동자 신문』, 96. 5. 7. 참조). 그러나 더욱 악질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해고사유가 하나같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의 실현, 특히 노조활동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부당 노동행위와 노조파괴로 인한 해고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LG의 전근대적이고 악랄한 수법의 노동자 탄압이 결코 우연적이 아니며, 그룹 차원의 구조적이고도 치밀한 노무관리 아래 자행된 것이었음을 본 연구과정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자료 2
LG그룹의 노무관리 실태와 부당 노동행위 보고서
LG 그룹의 노무관리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는 달라서, 표면적으로는 노조를 인정한다
) 삼성의 노무관리에 대해서는 김기원, 「삼성재벌의 노사관계」,『이론』, 1995 가을, 새길, 제130∼152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 그러나 일단 노조가 들어서면 길들이기에 나선다. 노조를 노무관리의 일개 부서화하고 사용자의 구미에 맞는 어용노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며, 이러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가 들어설 경우 노조 자체의 와해를 위해 노조집행부와 노조에 적극적인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는 등 부당 노동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실례로, 길게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금까지 11년, 짧게는 올 96년 한 해에 해고된 LG 그룹의 해고자들의 경우, 모두 노조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LG 그룹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95년말까지 64명이었는데, 최근 LG 화학 청주공장 노조간부 3명이 추가로 해직돼 총 67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해고노동자들은 모두 노조위원장, 대의원, 노조간부 등으로서, 사규에 근거한 해고치고는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LG의 해고노동자들은 87년 이전 노조설립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과 그 이후의 해고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은 87년 이후 민주노조 설립과 조합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활동했던 분들이다. 89년과 90년을 지나면서 민주노조 진영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LG 그룹에서는 기획조정실을 만들어서 노조탄압의 선봉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민주노조의 핵심인 노조위원장, 지부장, 노조 집행간부, 대의원 등을 무자비하게 집단 해고시키고 고발, 구속시켰다. 심지어는 노동조합 전체 간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노조활동을 극도로 억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그룹 전체 해고자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64명
) 해고자 현황에 대해서는 LG 그룹 해고 노동자 복직 실천 협의회 간(刊), 자료집 『LG 그룹 해고자 현황과 그룹측의 입장 및 탄압사례』(1996), 본고 부록 <자료­1>을 참조하기 바란다.
에 이른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노조파괴와 활동억압의 일환으로 자행된 노동자 해고를 사업장 중심으로 먼저 살펴보고, 그러한 해고과정에서의 부당 노동행위의 유형을 사례 중심으로 고찰해보기로 하겠다.
2. LG 그룹 주요 사업장 해고자들의 해고사유
현재 LG 그룹 해고노동자 복직실천협의회에 소속된 해고노동자 단위사업장은 LG 전자(구 금성사) 창원 1·2, 구미, 평택 공장, LG 산전(구 금성 산전) 창원 공장, LG 전자부품(구 금성 알프스) 광주 공장, LG 전선(구 금성 전선) 안양, 군포 공장등이다. 먼저 안양, 군포 공장의 경우 해고자는 조용표 외 10명이다. 이들 중 조용표, 김옥수, 김원식, 허태홍, 도영호, 정원용은 LG 전선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활동하던 중 사규위반 및 명령 불복종 등으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김종식과 김상호, 양송욱은 87, 88, 89년 각각 임단협 투쟁의 활동으로 구속·해고되었으며, 이동렬의 경우 89년 1월 노조 조사통계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부당한 출장명령을 거부한 뒤 명령불복종으로 해고되었다. LG 산전 창원 공장의 박원주와 성홍식은 88년 8월경 대의원으로 피선된 후 89년 임단협 투쟁을 주도하다 사측의 고소로 89년 5월경 폭력 및 업무방해 등으로 구속되었으며, 7월경에 단협투쟁(파업)과 관련하여 사규위반으로 구속된 상태에서 해고되었다.
또한 LG 전자 창원 1공장의 해고자는 이균하 외 3명이다. 이균하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89년 5월경 구속되었으며, 구속된 상태에서 89년 파업과 관련하여 사규위반으로 해고되었다. LG 전자 창원 2공장의 해고자는 하태욱 외 11명인데, 대부분 89년 단협 때의 파업과 관련, 사규위반으로 구속 중 해고되었다. 당시 사측의 고소로 무려 70명의 노조간부 및 노조원이 집단으로 고소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해고사업장은 LG 화학 청주 공장으로, 여기서는 신종 부당노동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91년부터 93년까지 청주지부 산업안전부장이던 임진용의 경우, 색상 구분이 잘 안되는 색약자이어서 근무가 불가능한데도 94년 12월 30일 회사측이 제조실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부당한 인사발령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작업거부를 하자, 사측에서 인사명령 및 작업거부로 1995년 2월 6일부로 징계·해고 조치하였다. 또한 대의원을 2회 역임하고 94년 청주지부 교육선전부장을 역임한 오현식의 경우, 95년 11월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자 사측에서 청주공장 모노륨 생산과에 근무하던 사람을 돌연 본사 C/S 팀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부친이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어서 가정형편이 어려움을 호소하였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측은 인사명령 거부로 1996년 1월경 징계·해고하였다. 노조 대의원을 3회 역임하고 96년에도 청부 지부 대의원을 맡았던 이강칠의 경우에는, 96년 4월 15일 청주 공장 공무실에 근무하던 사람을 업무 관련성이 전혀 없는 서울 본사 C/S팀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본인이 부당한 인사명령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휴직계를 제출하고 C/S팀으로의 출근을 거부하자, 사측은 1996년 7월 9일 무단결근 및 지시불이행으로 징계·해고 조치하였다.
LG의 이러한 무단적 노무관리에서 여성노동자들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과거 금성 알프스 전자로 알려진 LG 전자부품 회사는 노조 간부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87년 노동자 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를 세우고 조합원들의 전폭적인지지 하에 노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측은 단지 여성이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노조를 간섭하고 탄압해 오다가, 90년 임금 협상을 앞두고 지부장, 부지부장을 집시법 위반, 노동조합법 위반 등의 이유로 구속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준법투쟁을 하며 맞서자, 또 다시 교육선전부장과 사무장을 구속시키고 40여명의 여성간부 모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정직, 출근정지, 해고 등을 자행했다. 해고자 9명 모두가 미혼인 여성간부였는데, 회사측이 여성 조합원들을 구타하고 실신시켜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광주 지역에서는 구사대의 폭력에 항의하는 집회가 계속되었다.
아홉 명의 해고자들은 출근투쟁을 하였고, 회사측은 경비들과 노무과 직원들을 동원하여 또 다시 폭력으로 대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게 되어 복직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다가, 93년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정부의 복직시키겠다는 발표에 힘입어 다시 복직투쟁을 전개하였다. 현재는 LG 본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하는 해고자도 있고, 결혼한 해고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여성은 해고를 시켜도 결혼하면 그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무자비하게 해고시킨 회사측의 생각을 깨고, 이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LG에서 자행된 해고사례를 단위사업장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규위반과 명령불이행 등의 명령으로 해고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LG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점차 지능화·전문화되고 있다는 점을 잘 반영해준다. 사규위반과 명령불이행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이전에 노조파괴와 부당 노동행위가 진행되었고, 사규위반과 해고는 그러한 노무관리의 예정된 수순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탄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해고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해고되었는지에 대해 수집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3. LG 그룹의 노동자 탄압과 부당 노동행위의 사례 및 유형
사례1> 노조 규약 개악을 통한 노동운동 무력화 기도:LG 화학
청주에 본조를 두고 청주, 울산, 나주에 5개의 지부를 두고 약 4,500명의 조합원으로 결성되어 있는 LG화학 노동조합은 1963년 5월 15일 창립대회를 치루고 결성되어 87년도 이전까지는 조합의 대표자를 간선제로 선출하다 87년도 민주화 대투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여 현재까지 12대 집행부 33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용자들은 과거 87년 이전에는 간선제로 당선된 집행부를 철저하게 지원하여 노조는 완전히 어용화되어 있었다. 87년도 이후 직선제를 쟁취하고도 사측의 치밀한 계획과 노­노 갈등에 의해 민주적인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88년도부터 90년도 까지 장기집권했던 김병욱 위원장이 재선되어 사측의 지원을 받으며 어용의 길을 걸었다. 91년도와 93년도에는 민주후보가 당선되었으나 사측의 분열전술과 리더십 부족으로 이용만 당하였다. 94년부터 96년에는 사측에서 지원한 어용후보가 당선되어 철저한 노조 길들이기를 하여, 96년 8월 28일 대의원­위원장의 이중 간선제가 전격 도입되었다.
화학은 87년 이후 무쟁의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대외적으로는 노사화합이 잘 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94년부터 LG 전자를 모델로 하여 간선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 아래 쟁의도 한 번 없던 회사에서 "1) 노조대표자에 출마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2) 전·현직 노조간부들에 대해 공장에서 본사로의 인사이동 명령을 하여 노조와 단절시키고, 3) 이러한 인사명령을 거부하면 무단결근 및 지시 불이행 등 사규위반으로 해고를 시키는 방법으로 노동자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LG 화학 노조 민주화 추진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대의원 대회 당시 부당 노동행위 현황에 대해서는 <자료­2>를 참조하라.
특히 LG 화학의 경우에는 이러한 탄압이 어용화된 노조집행부와 일부 대의원들과 회사의 공모 아래 추진되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사측은 96년도 임기 대의원대회에 개입하여,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파 쪽에서 출마하려는 조합원들을 회유·협박하여 출마를 저지하였고, 그래도 출마할 경우에는 모노륨 2공장 오현식의 경우처럼 입후보 등록 다음날 전격 본사로 인사조치 하였다. 그리고 타일부 김형오의 경우에는 입후보 등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공고에는 명단조차 나오지 않았고, 투표용지에도 단순히 찬반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간선제 도입과정에서는 해고와 강제 사직서 제출, 강제 직제간 전환을 통한 조합원 자격 박탈, 그리고 부당전직 및 노조지부장과 애로사항 면담 후 인사이동 조치 등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노동탄압 기술을 구사했다. 이와 같은 사측의 뛰어난 각본에 힘입어 노조집행부는 대의원 대회를 통한 대의원­위원장 간선제 도입이라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했다(『중부매일』, 96. 9. 3.;주간 『내일신문』(96. 9. 18.), 자료­3> 참조).
사측과 노조는 대의원 대회 당일에도 민주파 대의원의 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협박·회유하였으며, 불응할 경우 교육 및 출장 명령을 내렸고, 거부하면 사규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교육 및 출장을 거부하고 대의원 대회에 참석하였다. 대의원 총인원 48명 중 상기한 이유로 28명이 참석한 대의원 대회 장소에서조차 대회에 참석하려는 민주파 대의원을 복지관에서 관리자들과 노조 집행부 간부들이 1차 저지하고 본관에서 다시 2차 저지하였다. 그리고 대의원대회에 일반 조합원들이 참관하는 것을 철저히 저지하고 그 자리에 사측의 중역들과 관리자들만이 대거 참석했다. 또 민주파 대의원 9명에게는 발언권을 전혀 주지 않았고, 규약이 변경되었으면 변경된 규약에 의거하여 대의원을 재선출하고 위원장 간선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의원으로 위원장 선거를 강행하려 하였다
) 자세한 내용은 『충청리뷰』(96. 10), '왜 그래요, LG! 노조 어용시비에서 사용자 지배개입 의혹까지 … ' 안의 '정도 경영'(제68∼71면) 기사를 참조하라.
그러나 이 날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규약개정이었다. 총 제적 대의원 28명 중 19명의 찬성 하에 단행된 규약개정은 "노조 위원장, 지부장, 대의원 간선제 도입"(21조, 42조), "임단협 교섭위원 위원장 지명"(51조), "운영위원은 위원장 재청한 자로 선출한다"(25조), "교섭권, 체결권은 위원장이 가진다"(51조), "선거규정은 운영위원회에서 제정, 개폐한다"(39조), "해고자와 지부가 없는 곳으로 인사이동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11조)를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제21조 대의원 간선제 규정과 제51조 임단협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원장이 갖는 소위 직권조인 조항이다. 먼저 제21조는 "조합대의원 선출은 지부대의원 중 지부대의원 대회에서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고 조합원 100명 단위당 1명을 선출하며 단수 51명을 초과할 시에는 1명을 초과선출할 수 있다. 단, 대의원의 총수는 2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료­4>). 이 조항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독소조항임과 아울러, 노동조합법 제20조 제2항 "대의원은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선거되어야 한다"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불법조항이다. 또한 제51조 위원장 직권조인 조항은, 87∼88 노동자 대투쟁의 최대 성과물이자 어쩌면 세계 노동운동, 아니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임단투 쟁의행위와 임단협 체결시 조합원 전체의 총의를 묻는 조합원 투표조항을 무화시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 폭거이다.
현재 LG 화학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당 노동행위는 사측과 노조 집행부의 공모에 의한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에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단호히 대처하지 못한 민주노조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거 이후 청주를 중심으로 LG 화학 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지금 현재 힘있게 투쟁하여 직선제 쟁취(『매일노동뉴스』 제1123호, 제11면)를 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례 2> 유기용제 솔벤트 5200 사용에 의한 산업재해 은폐기도:LG 전자부품
LG 그룹의 대표적인 부당노동행위로 우리는 유기용제 솔벤트 5200의 사용과 관련된 산재 은폐기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LG 전자부품(주) 경남 양산 공장에서 20명의 여성 노동자와 8명의 남성 노동자의 성염색체가 손상되고, 이중 특히 2명의 여성노동자가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중증의 진단을 받음으로써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내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대량 생산체계였기 때문에, 산재사건이 발생할 때에도 주야 맞교대에 하루 평균 11∼13시간씩 근무하였으며, 작업자의 휴가 시에는 다른 동료들이 철야와 특근 등으로 생산 부족분을 채워야 했을 정도였다. 특히 잔업과 특근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해서, 매월 생산실적 96∼99%의 성과달성을 자랑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업과정 중 부품세정 용제로 쓰는 솔벤트 5200+SPG 6AR의 혼합 침지액은 94년 2월 경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휘발성이 강한 붉은 색의 용제였는데, 사용 초기에 휘발 악취로 인해 갖가지 고통들을 호소했다. 호흡곤란, 현기증, 두통, 안구통증이 극심했다. 그런 점들을 관리자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건의하거나 호소하면 '일본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 오는 것인데 걱정말라. 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 근무시간에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반응하며 '주동자'를 찾으라고까지 했다. '주동자'라는 말에 움츠려진 분위기 탓에 작업환경 개선과 관련된 어떠한 건의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도, 작업자들은 후각의 마비증상 때문인지 그럭저럭 근무해왔던 것이다. 외부인들이 '작업장이 이렇게 공기가 안 좋은데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말할 정도로 작업장 내 환기는 최악의 상태였다.
또한 작업의 생산성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었으며, 94년 여름엔 ISO-2000 인증을 위해 작업장과 기계들의 청결이 강조되다 보니 밀폐된 공간 내에서 기계를 청소할 때면 침지액을 계속 겁 없이 사용해 댔다. 그해 여름 기상청 설립 이후 최고 온도가 연일 갱신되던 무더위 속에서, 고장난 환기시설과 가동되지 않는 국소배기장치 시설로 인해 가히 찜통같은 살인적인 실내온도로 많은 동료들의 건강에 이상증상들이 나타났다. 95년 1, 2월에 두 명의 동료가 재생불량성 빈혈로 회사를 그만두었고, 동료들도 온몸에 멍과 같은 반점들이 생기고 한 번 걸린 감기는 낫지 않았다. 이러한 자각증상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의 질병이라 여겼다.
95년 7월 7일 다섯 동료들간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생리중단과 생리불순 문제가 전체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제서야 94년 가을 이후 대개의 동료들이 갖가지 원인 모를 질병들에 시달려온 것이 알려졌다. 생리중단, 두통, 현기증, 지속적인 감기, 뇌기능 감퇴, 요통과 신경통, 말초신경염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온몸에 멍이들고 심지어는 고막이 터지는 등 실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자각증상들로 고생하고 있었다. 또 검사상 밝혀지지도 않는 이상증상들이 있었는데도 과로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들만 하니 벙어리 냉가슴 앓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95년 8월 10일 두 명의 노동자가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도 '불규칙한 습관 때문이다', '용제는 일본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으며, 용제의 성분분석 결과는 없으나 다른 것이 문제지 용제는 문제가 아니다. 작업장 전환을 해줄 테니 이야기하라'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최 과장이라는 자는 '미혼사원들이 술·담배를 많이 하고, 아침식사를 걸러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했으며,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는데 뭐가 걱정이냐, 일이나 하라'고 하는 등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여전히 헛소리만 해댔다. 또한 작업환경의 개선이라고는 전혀 없이, 여전히 유기용제에 노출된 상태에서 특근과 잔업, 철야를 강요받아야 했다(『집단중독 사건 자료집』, 「공청회」 부분 중 차미진의 증언, 제50∼53면, 자료­5>).
더구나 이러한 산재 은폐기도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할 노조위원장이 회사에 빌붙어 한몫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노조위원장은 95년 7월18일에는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사태수습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1) 잔업을 재개하라, 2) 치료 받을 병원을 물색하겠다, 3) 개인적인 질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서 사태의 본질을 호도했다. 또한 96년 3월 8일, LG 전자부품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건 공청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부착 여부에 대해 대책위가 노조에 문의했으나 위원장은 이를 외면했다. 이러한 노조의 비협조로 인해 피해 환자들의 실상과 현황을 알릴 길이 막혀있다 보니, 다른 현장의 동료 노동자들에게조차도 피해환자들의 실상이 잘못 알려져 있어서 피해노동자들은 이중의 격리감을 갖게 되었다고 토로했다(『집단 중독 사건 자료집』, 「보도자료」, 제111면).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요구에 대해 노조위원장은 '산재 신청을 안하는 이유는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이다. 산재에 맡기면 회사는 손뗀다.'고 하였다. 또, 생리중단과 관련해서도 '호르몬 치료만 받으면 깨끗이 해결된다', '알아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조금씩은 문제들이 있더라'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여, 피해 노동자들은 심지어 "LG 전자부품 솔벤트 중독사건 시민대책위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현장에서 미래를』, 96년 4월호)였다고 한다. 환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개별 접촉을 통해 사태를 미봉으로 해결하려는 기도에 맞서서, 피해 노동자들은 95년 12월 LG 전자부품 솔벤트 중독 피해자 협의회를 결성하고 시민대책위와의 공조 아래 힘있게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96년 3월 6일에는 시민대책위 33개 단체들과 함께 300명 이상이 참석한 공청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러한 투쟁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유기용제 솔벤트에 의한 중독을 직업병으로 인정(『부산일보』, 96. 1. 12.)받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96년 6월에는 솔벤트 5200의 주성분인 2­브로모프로판에 대한 동물실험 결과 인체의 생식 및 조혈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노동부 산하 한국 산업 안전공단이 발표함으로써, 산재 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이루게 되었다(『부산일보』, 96. 6. 4., 자료­6>).
그러나 이러한 직업병 인정과정에서 LG 부품측은 은폐기도(『국민일보』, 95. 8. 20., 자료­7>)를 계속하였다. 직업병 판정이 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을 솔벤트 용제에 계속 노출시킨 채 작업을 강행(『부산매일』, 95. 8. 20., 자료­8>)하는 등, 몰지각한 행위를 서슴지 않아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자민련의 정우택 의원은 96년 국정감사에서 LG 화학이 산재 사실을 은폐하고도 무재해 5배 달성장을 수여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LG 에서는 산재 은폐도 노경 협력사항에 해당되느냐'고 힐난했다(『매일 노동뉴스』 1118호, 96. 10. 23., 제8면).
사례 3> 노조 확대 간부회의 및 대의원 대회 방해 사례:LG 전선
LG 전선 노조의 경우에는 95, 96년 두 해 동안 정기, 임시 대의원대회 등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이 사측의 치밀한 방해공작으로 무산되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방해는 95년 2월 12일 사측의 조장제도를 비롯한 신인사제도 저지를 위한 '확대 대의원, 간부 비상 연석회의'를 사측이 무산시키려 기도한 것이었다. 노조 노보에 따르면, 회의 방해과정에서 사측은 전 부서 관리자를 동원하여 조합간부, 대의원에게 회유, 협박, 납치를 자행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노보 『깃발소식』 제9호(95. 4. 4.) 참조). 심지어 조합간부의 집에 부서관리자가 술, 음료수, 안주를 사들고 쳐들어와서 회의 불참을 종용하고 '노조활동을 하면 어떠 어떠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기도 하였다는 것이다(동 노보 제8호(95. 3. 27.) 참조). 이날 회의는, 현 노조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사측에서 '성과급 차등지급'과 '조장 제도'를 일방적으로 도입한 데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한편, 노조측은 2. 12. 조합회의 방해사건과 관련하여 경기도 지방 노동위원회에 사측을 상대로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서'( 자료­9>)를 1995년 3월 16일 접수시켰고, 96년 6월 27일 현재 5차 공판까지 열렸다. 5차 공판에서는 피고측 증인 안양 공장 노경 개발실장 주종명 씨에 대한 원고(노조)측의 심문이 진행되었다. 피고측 증인은 "조장제도는 새로운 직책을 만든 것이 아니고 기존에 실시하던 제도를 확대 실시한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징계규정에는 징계 8급에 경고장 발급이 징계의 종류로 분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장 발부는 징계가 아니다"라며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였다(동 노보 제71호(96. 7. 2.) 참조).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회사측의 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5년 3월 24일 조합원의 생존권이 걸린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하는 매우 중요한 임시 대의원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사측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일부 대의원들은 ― 대의원 대회 동안 일부 대의원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구미 지역 대의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매우 조직적으로 대회장을 이탈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밝혀졌는데, 구미 노경과 차장과 대의원 9명이 모 음식점에서 10시 30분부터(음식점 종업원 진술) 술과 음식을 시켜 놓고 먹고 있는 것을 조합 상근간부가 목격한 것이다. 음식대 금 16만 7천원을 노경과 직원이 지불하는 것도 목격하였고, 카메라와 비디오에 담기도 하였다(동 노보, 95년 제 8호 제4면 참조) ― '대회장소가 비좁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의원 대회를 무산시켰다. 96년에도 일부 대의원들이 임원 인준건과 관련하여 조직적으로 대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함으로써, 임단협을 위한 임시 대의원 대회까지 무산시켰다. 이들이 얼마나 조합원의 대의를 왜곡시켰는가 하는 점은, 무산된 대의원 대회를 대신하여 96년 3월 20일 개최된 임단협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임단협 요구안이 89.2%, 교섭위원 인준이 86.9%라는 매우 높은 찬성율을 얻어 총회안건이 가결된 것이다.
사측의 방해 메들리는 96년 임단투 국면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구미 지부의 경우를 보면, 6월 27일 권선사업부에서 조합원 신분의 반장들이 쟁의결의가 결정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파업을 하면 안 된다'라는 요지의 서명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구미 지부는 성명문을 통해 "이러한 반장들의 행위는 조합원 동지들의 분노를 더 살 뿐이다"라고 강하게 질타하였다. 그리고 '사측의 책임 있는 사람이 공개사과하고 서명을 즉각 중단하고 명단을 소각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권선사업부 관리자들의 관리능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하였다(동 노보 96년 제71호 참조). 사측은 또한 7월 12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동 노보 참조).
그러나 이러한 사측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해 노조는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조는 동 노보 제75호(96. 7. 10)의 집중분석 '사측의 의도적 탄압행위, 무엇을 노리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금 사측의 임단협 파괴공작이 비정상적인 사람의 치마바람처럼 온 공장에 날리고 있다.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의 목적은 투표불참을 강제하여 노조의 정상적인 결의행위 자체를 무산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투쟁을 통해서는 한 가지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향후 노사관계에서 현장을 힘으로 장악하고 앞으로 말 잘 듣는 노조를 양성하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사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조차도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의 안을 제시해 놓고, 노조더러 임단협을 끝내는 협상을 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사측의 또 다른 목적이 노조에 싸움을 거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노조를 궁지로 몰아넣고 성과를 하나도 내지 못하는 집행부 이미지를 심어주고, 집행부를 무력화 시킨 후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몇 가지 안을 더 제시하여 '임단협은 사측에서 알아서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조합원들에게 심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이러한 과정에서 회사의 말을 듣지 않고 부당 노동행위라고 주장하거나 노조활동을 활발히 하는 자에게는 사규위반 = 해고만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러한 자는 다시는 현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것, 바로 이러한 수순이 LG 그룹의 노­경협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4. 노조탄압과 해고노동자 문제의 성격:LG 기조실 간(刊), 『노무관리 자료집』(1988. 2. 15)의 분석
지금까지 우리는 LG 그룹 해고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면서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LG 그룹의 부당 노동행위와 해고 노동자 문제는 대개 어용노조와의 협력아래 자행된다는 것이다. 즉, 노조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노조를 통한 분할­지배 전략(divide and rule)이 구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이미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하여 노조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검토해 본다. 가) 노조견제 세력의 구축. 강력한 노조가 탄생하면 창구일원화로 일사분란한 노조접촉에 편리하고 실익이 있을 수 있으나, 한편으로 경직성과 강력한 요구사항 위주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발생의 예방을 위해 '대의원 선거 낙선자, 현 집행부에 대한 불평자' 등을 포섭, 노조에 대한 반대세력을 구축해야 한다(제148면, 자료­10>)." 그러기 위해서 "노조는 세력을 너무 키워서도 안 되고 약체화해서도 안 되므로 조정가능한 범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제154면)." 만일 노조 본조의 어용화 기도가 실패할 경우에는 LG 화학과 LG 전선의 예에서처럼 지부를 어용화 한다든가, 아니면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연결하는 대의원들을 회유하여 사측의 의도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는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바로 인간화 경영과 한 쌍을 이루는 공작적이고 음모적인 노무관리 체계이다.
『자료집』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근로자들의 본질적인 만족의 증대는 그들을 '인간'으로서 인정해주고 '우리' 의식을 갖게 해주며 더 나아가서 성장감과 성취감을 갖도록 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 이를 위해 기업이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갖추어야 한다."(제20면) 그렇다. 정답은 '인간중심, 정도경영'이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실현하기 위해서 친목회, 향우회, 동문회, 입사동기회, 군동기모임(제179면) 등의 비공식 그룹(informal group)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해서 "재정지원 등 적극적 지원으로 사원 개인간 유대를 강화하여 인화기반의 구축을 유도"(제66면)한다. 더구나 이러한 "조직 내 비공식 그룹(친목, 취미활동 전개, 단체)의 적극적인 후원은 의사소통의 통로를 다원화하여 구성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조직목표에 대한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제110면)하기 위한 취지도 아울러 갖는다. 그러나 인간경영의 실현을 위한 비공식 집단이 허울을 벗으면, 사측 정보조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본색을 드러낸다. 『자료집』을 보자.
"라. 노조 및 현장사원의 동태파악을 위한 정보망 구축. 노조 및 현장사원의 동태파악을 위한 정보망 구축은 노무관리의 필수적인 업무이다. 이것은 주시할 필요가 있는 사원에 대해서는 사내뿐만 아니라 사외활동에 대해서도 소상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보망 구축에 있어서는 2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내 사원을 정보요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예) 운반원 ― 현장 이동작업자이므로 정보수집 용이.
인적, 취미동호인, 동향인 ― 확실한 정보수집이 가능.
신입사원 ― 의도적인 채용이므로 정보수집 가능.
둘째, 사외 정보요원 확보 활용방법이다.
요주의 대상자를 선정하여 추적정보 수집.
예) (1) 주의대상자 주거 인근지역의 가게, 술집의 종업원 포섭.
(2) 회사 주위 음식점 요원 확보 정보수집 가능
(3) 공장 출입의 납품업자에서도 정보수집 가능
(4) 사내 인포멀 그룹 내 정보요원을 확보"(제151면, 자료­11>).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소위 비공식 정보망 운영방안의 기본원칙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가. 기본원칙. # 노무담당자 직접관리(중간보고 매체 없음. # 점조직으로 운영(정보는 신분노출 절대방지). # 구두보고 원칙. # 정보원 관리 신중(신원확인 및 적절한 보상)"(제179면, 자료­12>)
) LG는 심지어 극우조직인 반공연맹까지 자신의 노무관리에 활용하려는 제3자개입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공장장은 반공연맹 지부장이며, 부지부장은 인사부장, 그 산하에 정보부, 공안부, 조직부, 교육홍보부를 두고 있다(『자료집』, 제277면, <자료­13>).
또한 LG는 현행 노동법에서 금하고 있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노무관리에 활용하였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부당 노동행위를 자인하고 있다.
"동향일지 작성(럭키 울산):공장 내 전 기능직을 대상으로 노사분규시 가담정도 및 가입 인포멀 그룹, 성격, 교우관계 등을 파악하고 강경파 List를 작성하였으며 그중 특히 주동급 인물에 대해서는 따로 동향일지를 작성하여 그 부서장을 통해 주 1회 이상 수시로 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문제점 발견시 즉각 대처하고 있음."(제185면)
두 얼굴의 쌍둥이 LG 경영진의 야누스적 행태는 계속된다.
"경영관리자들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정립과제를 최우량 노사관계의 구축이라고 집약했을 때 최우량 노사관계의 지도이념은 … 노동자측에서는 분배의 공정화를 포함해서 '인간성' 및 '민주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대의 자본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은 근로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일실(逸失)하지 않는 가운데 축적된 부를 '配分的 正義' 원칙 하에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자료집』, 제186면)
그런데 갑자기 다음과 같이 태도가 변한다.
"향후 노사전망은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 물결에 의한 근로자 및 노조의 인간화 요구 및 경제적 배분요구가 강화될 전망이며, 특히 좌경의식화 세력의 현재화 및 실질적 대두가 예견되는바 종업원의 건전한 생활보장과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 풍토 개선 및 불순세력에 대한 기업내 대응조직 활동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제187면)
자신들이 민주성과 인간성을 말하면 건전하고, 노동자들이 말하면 불순하다는 식의 발상에는 노동자를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불순한' 기업 논리가 깔려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고방식과 노무관리 방식을 LG 그룹이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LG 그룹의 부당 노동행위와 그에 따른 해고노동자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5. 결론에 대신하여:대기업 노사관계와 해고노동자 문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 LG 그룹의 해고노동자 문제는 전근대적 노무관리 과정에서, 즉 사측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압살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현장에서 격리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음습한 노사관계의 현실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LG 그룹의 노무관리는 찬양 일변도이다. 실제로 96년 환경노동위 노동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LG 그룹 내 LG 정보통신이 95년 대기업 부문 노사화합 대상을 수상하였고, 노동부 산하 한국 노동교육원 노사협력 센터가 수집한 사례집에서 LG 전자의 노사관계가 노사협력 모법사례로 선정되었다. 『매일노동뉴스』 1118호는 「'초우량' LG, 그들만의 '정도경영'」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노동교육원이 발행한 '혁신하는 자만이 미래를 연다'는 제목의 '노경혁신 사례'는 LG 전자를 '공동체적 노경관계를 구축하여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이 되었다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런 류의 치사는 정부관계자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700만원의 예산으로 약 2000부를 발행하여 기업과 언론사 등에 무료배포한 이 책에는 LG 전자의 '노경협력' 사례 4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노조가 앞장서 에어컨 판매에 나서고 바뀐 회사 로고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벌인 사례, 'LG 사랑회'라는 사원 부인 모임 등을 통한 '家社不二' 운동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또 일반소주에 勞經不二酒라는 딱지를 붙여 노조와 회사의 간부가 상견례를 갖는 회식장에 내놓았더니 모두 그 술만 찾더라는 '노경불이주를 아시나요', 임단협 교섭장에 '신뢰', '영원한 사랑' 등의 꽃말을 가진 각각의 꽃을 앞에 놓고 회장의 말씀을 교양강좌로 들으며 교섭을 시작한다는 사례는 이 회사의 노경협력이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게 한다."(『매일노동뉴스』 1118호, 제5면)
다시 말해서 LG의 노사관계와 노무관리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노사관계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한 노조관리를 통해 노조를 기업 내에 묶어두고 소위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LG의 노사관계가 다른 기업도 준용해야 할 동시대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으므로, 현재 LG의 노무관리 기법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LG 해고노동자와 부당 노동행위의 차원을 넘어 전체 노동자 계급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서의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고한 글인 「價値를 創造하는 LG 新勞經文化」(이하 「신노경문화」)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노경문화」는 용어 사용에서부터 남다르다. 「신노경문화」에 따르면, "노사라는 표현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수단으로 삼아서 목적을 달성하자는 사상이 깔려있고, 지금과 같이 고도화된 시장경제를 중심으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은 일정한 목적을 가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뚜렷한 역할분담은 생겨나지만 인간적으로는 대등한 관계에 있으므로 이것을 어떻게 협조적, 생산적으로 조화시킬 것인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고 한다. 또 이를 위해 "노조의 역할을 이해하며 근로자와 경영인이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협력하여 참여의 제 역할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자는 노경관계를 만들어 내었다"(제6면, 강조는 인용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경관계는 "단순히 용어의 변화가 아니라 질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동체적 노경이라는 신노경문화를 창조하게 되는 기반 및 추진력이 되었다"(제6면)고 설파한다. 노경관계가 이렇게 심오한 뜻을 가지므로 이제 우리는 '노사관계'라는 말조차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사관계 개혁 특별위원회'도 「신노경문화」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수단으로 삼아서 목적을 달성하자는 사상"이 깔려 있으므로 실패한 것 아닌가. 「노경관계 개혁 특위」라고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나 이러한 시답지 않은 용어변화 그 자체에 눈을 뺏기지 않는다면, 「신노경문화」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이 '노경관계'라는 용어는 '질적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질적 전환'이 한국 노동교육원의 연구위원 및 관변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권장하는 '협조적 노사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신노경문화」는 이것을 '공동체적 신노경문화'라는 신조어로 정의하며, 그 목표를 "첫째, 노경 partnership의 강화", "둘째,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의 정착", "셋째, 정도경영으로 세계화 선도(제7면)"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 살펴볼 점은 두 번째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의 정착이다. 「신노경문화」는 "조직과 제도개혁 추진"을 통해 "인적 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생산적으로 조직하였다"(제7면)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붕붕데이(상대방을 칭찬하는 날), flexible time제, two-to time제(오전에는 기획 관련 업무, 오후에는 기타 업무를 하는 업무능률 향상제도), 반일 휴가제 등이 유연한 조직문화로써 창의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고, 발탁승진 및 능력주의 처우 보상체계, 사내공모제 등은 HLP(high performing leader)를 육성하는 제도이며 고충처리 전용 전화 운용, speak up 제도, 구로 공장의 소사장제(현장 책임사원에 사장 직위 부여), 구미 공장의 뚝딱 시스템(다품종 소생산을 위한 고능률 생산 시스템), 평택 공장의 바로바로 시스템(고능률 자율생산 시스템) 등은 인적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어 자율경영팀으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고 있다."(제7면)
간단히 말해서, 「신노경문화」가 부르짖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란 "발탁승진 및 능력력주의 처우 보상체계"와 "HLP(high performing leader)"와 "소사장제" 등 직반장 체계의 완비를 통해 현장 통제력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측의 '공동체적 신노경문화'가 현실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LG 전선(노조위원장 장건)의 소위 '신인사제도'이다. '신인사제도'는 '성과급 차등지급'과 '조장제 도입'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사측의 입장인 「신노경문화」에서는 "조직과 제도 개혁 추진을 통해 인적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생산적으로 조직"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혀 상반된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LG 전선 노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합원들은 사측의 탄압에 강력한 대응을 원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금 사측의 신인사제도 도입에 따른 불안감과 고용문제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번 집행부는 위원장, 지부장 모두가 신인사제도 저지를 최고공약으로 걸고 당선되었다. 이런 조합지부의 일체감으로 인해 사측은 집행부가 강력한 집행체계를 잡기 전에 성과급 지급보류 공작과 차등지급을 일방적으로 실시하고 신인사제도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조장제도를 도입하여 집행부를 초기에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집행부는 희생을 각오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런 사측의 노조 무력화 기도를 직시한 조합지부에서는 군포지부 성과급 차등지급 조합원 보고대회, 여의도 항의방문 투쟁 등을 벌여 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동들은 집행부가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
집행부는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 희생을 감수하여야 한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집행부에서는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더욱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장건 위원장의 행동신조인 '필사즉생'의 각오로 사측의 교묘하고 지능적인 노동조합 말살책동을 박살내고 신인사제도 도입 기도 분쇄와 성과급 차등지급 철폐, 조장제도 철페를 위한 투쟁의 길은 지금보다도 더 험한 가시밭길인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더욱 힘차게 전진하는 집행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LG 전선 노보, 『깃발소식』 제10호(1996. 4. 11.))
이러한 노조 집행부의 의지는 근거 없는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조합원들의 설문조사에 기반하고 있다. 소위 신인사제도라고 알려진 두 가지 조치에 대해서 일반 노조원들의 절대 다수가 반대했다. 노조가 신인사제도와 관련하여 실시한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 다수가 임금격차가 커지며(92.9%), 고용안정이 침해당하며(90.8%), 노조가 무력화될 것(90.7%)이라고 답했다(동 노보 제8호(1995. 3. 27.);자세한 내용은 자료­14> 참조). 또한 실제로 조장으로 임명된 일부 조합원들은 "조장 임명장을 반납하거나 찢어버리는 일까지 발생"(동 노보 제8호(95. 3. 27.))했다고 한다.
LG의 '공동체적 신노경문화'가 표방하는 목표나 그것의 일환으로 실행된 '신인사제도'는, 대기업에 열풍으로 밀어닥친 소위 '신경영전략'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신경영전략이 왜 새로운 전략인지, 그리고 노사관계가 아니라 '신노경문화'에 왜 새로울 '新'이 들어가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현대중공업 노조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현대 중공업을 사례로 하여 신경영전략을 장기간에 걸쳐 심도있게 추적·분석하였다. 그 결과물인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1995)에 따르면, 신경영전략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첫째, 개별적 노사관계 관리의 정비와 체계화라는 성격을 지닌다. 둘째,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경쟁하게 만들어 서로 통제하게 한다. 셋째, '강압적 통제'와 '유화적(부드러운) 통제'를 동시에 구사한다. 그리하여 넷째, 밑(현장)에서부터 노조를 무력화시킨다. 다섯째, 극단적인 노동강도와 효율적 노동력 이용을 통해 최대한의 노동력 지출을 뽑아낸다.(『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 제16∼18면 참조).
정리하면, '신경영전략'은 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와해시키고 현장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을 높여서, 궁극적으로 노조를 회사에 종속시키는 '협조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LG 그룹의 경우에는 약한 노조를 바탕으로 소위 '신경영전략'을 성공적으로 이식시켰기 때문에 자본의 귀감이 되었다. 그에 따라 영광에 빛나는 95년 노사화합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노사협력 사례집에 일순위로 들어간 것이다. 그다지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신경영전략 및 그와 관련된 정리해고제와 변형시간 근로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이 민주노조의 적절한 대응책 없이 그대로 관철될 경우 노동자 계급에게 닥칠 현실은 끔찍한 것이다. 노동강도를 가일층 강화시켜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며, 신인사제도에 관련된 앞서의 설문조사가 잘 보여주듯이 동료 노동자들간에 경쟁을 격화시켜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를 경쟁력 강화와 '가치창출'을 통한 이윤 제고라는 기업논리에 맹종하게 하여, "하는 일이 재미있고 이기는 일이 하고 싶어 출근하는 삶터를 만들어 영원한 승리자가 되고자"(「신노경문화」, 제7면) 부당 노동행위도 감수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쓰다 녹슬면 버리는 고철기계처럼 산재와 직업병으로 시들어진 노동자를 폐품 처리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 "어떻게 하루가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퇴근 뒤 쓰러져 잠만 자 가족들로부터 '통나무'란 핀잔까지 듣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산재사고가 크게 늘었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들리고 직업병도 심각하다는데 이러다 큰일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태산같다. 그러나 고충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다. 같은 작업반 동료도 이제는 경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대평가와 다름없는 반장의 고과점수에 따라 호봉승급의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 동료를 밟고 서지 못하면 내가 밟히게 된다.
올해 들어서만 5백여 명의 동료들이 이곳을 떠났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퇴근 뒤 동료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그 날의 피로를 달랬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한숨만 나온다.(중략) 집회에 참가하려 해도 큰맘을 먹어야 한다. 반장에게 찍히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나 하나 때문에 반의 실적이 떨어져 도매금으로 고과점수에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반장과 동료들의 눈총이 따갑다. 이것은 '신경영전략'이 성공적(?)으로 도입된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생각이다."(『한겨레 21』(1995. 7. 20., 제68호), 「대우 조선 '옥포의 눈물':고속성장 이면에 고단위 노동통제. "희망90s에 절망"」)
노사협력 대상에 빛나는 LG가 동시에 "LG 화학 청주 공장 등 49곳 산재은폐"(『한국무재해신문』 제89호, 제1면) 등 이 분야에서도 제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앞으로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과 신경영전략의 정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해고 노동자 문제가 현재처럼 LG나 일부 기업에 집중된 부당 노동행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제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민주노조 전체의 사활이 걸린 대안책이 시급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기원, 「삼성재벌의 노사관계」, 『이론』, 1995 가을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노무관리 자료집』, 1988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매일노동뉴스』 제1098, 1106, 1108, 1118, 1123, 1124흐
·현대중공업노동조합·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현중노조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보고서 요약집』, 1995
·LG 그룹 해고노동자 복직 실천협의회, 『LG 그룹 해고자 현황과 그룹측(계열사)의 입장 및 탄압 사례집』, 1996
·LG 전선 노조회보, 『깃발소식』, 1995, 1996
·LG 전자부품(주) 솔벤트중독 피해자협의회, LG 전자부품(주) 노동자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태해결과 모성보호,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LG 전자부품(주) 노동자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건 자료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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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 -신병현

연구논문/『현장에서 미래를』37(1998/10)
작업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
*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연구소 제32차 콜로키움 발표문을 지면관계상 대폭 요약정리한 것이다. 원문은 연구소통신방(나우누리 → GO LABOR → 10번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 올려져 있다.
- H중공업 노동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사례 연구 -
연구논문
작업장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
신 병 현
연구위원/홍익대 경영학 부교수
1. 노동과정론과 정체성 연구
근대 세계에서의 인간 소외와 노동의 문제는 사람들의 삶에서 핵심적인 의미의 원천으로 자리해 왔음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에서는 노동이라는 통념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범주화를 추구해 왔다. 대부분의 사회과학도들의 논의 역시 맑스를 따라 건축가적 이미지를 통하여 인간 노동의 중요성과 창조성을 묘사해 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 Paul Du Gay, Consumption and Identity at Work, (London: Sage,1996), pp.11
그리고 산업사회학이나 근대 조직에 관한 연구들 속에서 노동(일), 임노동은 인간 생명성
) 황기돈, 「생동성의 경제학」, 『산업노동연구』, 제2권 2호, 55~67쪽
또는 안정적이고 일관된 자기 정체성의 핵심적인 원천으로 자리해 왔다. 노동이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해온 중요성은 또한 근대 세계의 중요한 사회적 프로젝트로서 소외 없는 세계에로의 다양한 지향들 속에서, 그리고 사회적 분화와 통합의 문제틀 속에서, 그리고 국가 권력을 비롯한 각종 조직화된 사회 기구들에 있어서(나아가 가족 관계나 인간 관계들을 포함하는 타자와 그들의 행동과 통제에 대한 관심들 속에서는 언제나) 사회 공학적 관리 기술의 대상으로 늘 관심의 초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 Nikolas Rose, "Identity, Genealogy, History" in Stuart Hall & Paul Du Gay eds.(1996), Questions of Cultural Identity, London: Sage, pp.128-150 여기서 그가 말하는 기술은 "다소 의식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일종의 실천적 합리성에 따라 구조화된 어떤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기술은 인간에 대한 특정한 전제들과 인간을 위한 목표들에 의해 프로그램적 수준에서 지지되는 것들로서, 지식들, 도구들, 사람들, 판단 체계, 건물과 공간들의 잡종적 총합(hybrid assemblages)인데, 여기에는 훈육적 기술과 사목적 기술이 포함된다. 학교, 감옥, 수용소는 푸코가 훈육적 기술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들이다.
따라서 산업화와 연관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주요한 산업사회학의 노동과정 연구들이나 경영담론에서는 노동윤리와 노동의 가치가 한결같이 강조되었고,
) C.Perrow, Complex Organizations: A Critical Essay, (N.Y.: Random House, 1979), R.Bendix, Work and Authority in Industry, (N.Y.:John Wily & Sons, 1956), N.Rose, Governing the Soul: the Shaping of the Private Self, (London: Routledge,1989).
노동과 관련된 주체의 생산이나 정체성의 형성이나 변형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 이에 대해서는 Rose Nikolas(1989), Governing the Soul: the Shaping of the Private Self, London: Routledge.
전통적으로 노동자 주체성 및 정체성에 관한 논의들은 맑스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객관적 소외 논의로, 베버나 뒤르케미안의 경우는 정반대로 무력감이나 도구주의적 가치 지향성에 대한 관심과 같이 주관적인 소외 현상에 대한 논의로 표출되었으나, 양자는 결국 객관적 소외 구조와 의식 혹은 가치 지향성의 탈구 논의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 Paul Du Gay, 윗책, pp.9-27
노동자 의식과 집합 행동에 관심을 둔 대부분의 맑스주의적 계급 연구나 노동과정 연구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객관적 소외로서 노동의 결과물로부터의 소외 현상을 강조하면서 유적 존재(species-being)로서 노동자들의 인식 부재를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도식은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과는 유리될 수밖에 없는, 초월적 존재의 인식 능력과 같은 계급 의식이라는 관념에 더하여, 주체들과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구조적 모순으로 추상화, 일반화시키는 엘리트주의 및 환원주의적 경향을 띠어 왔다.
) 우리는 이러한 추상화의 위험성 즉, 사고 수준에서의 과학적 추상의 현실화, 자립화가 야기하는 사회 관계의 엘리트주의적 조직과 운영의 문제점을 도덕적 주체의 조형과 관리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조직 맥락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그 모순의 폭발을 가히 야만적인 강도와 거대한 규모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자아에 대한 사회 통제 기술에 관한 관심은 조직 심리학을 비롯한 경영담론들에서 그리고 노동 소외에 관한 비판적 관심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 중의 하나다.
이러한 모습은 베버주의자나 뒤르케미안의 산업사회학적 전통 속에서도 정반대의 방향에서 출발할지언정 객관적 소외현상을 전제하고 분석을 출발하고 결과로서의 소비영역의 문제점들과 노동자들의 가치지향성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동일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어 왔다.
) Paul Du Gay, 위의 책.
이러한 객관적 소외현상에 대한 관심의 과잉은 사실상 근대 세계의 주요한 특징이었으며, 노동과 관련된 사회과학의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요한 경향들을 산출하였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절대적 구분이든 분석적 구분이건 간에) 생산과 소비의 구분, 公과 私의 구분, 일과 여가 혹은 노동과 비노동(work/non-work)의 구분,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구분 도식의 일반화 현상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이분적 구분 도식은 그동안 많은 포스트모던 비평가들에 의해 비판되어 온 도식, 이데올로기적 통념들이다. 그러나 노동연구나 작업장 문화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쟁점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외의 근원이 노동자들의 가치지향성이나 태도 등과 같이 의식속에 있기 때문에 '직무충실화 프로그램'과 같은 기법들로 노동자들의 소외를 줄일 수 있다고 보는 산업사회학 및 산업심리학적 설명들에 정면적으로 반대되는 연구를 통해서, 노동과정의 분업이 야기하는 객관적 계급구조의 변동과 계급의식의 문제를 사고한 대표적인 연구는 브레이버만(H. Braverman)의 『노동과 독점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뷰러웨이 등의 비판처럼 소외의 주관적 측면을 배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의식과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들어갈 수 없는 한계를 보였다.
) Thompson, Paul & David McHugh(1995) Work Organizationss: A Critical Introduction, 2ed., London: Macmillan,(1988), "Crawling the Wreckage: The Labour Process and the Politics of Production" in Knights, D. & H.Willmott (eds.) Labour Process Theory, London: Macmillan, pp.95-124
뷰러웨이는 노동자들의 주관적 경험을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통해 조명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재생산 기제로서, 잉여창출의 은폐와 착취의 불명료화를 야기하는 다양한 기제들을 포함한 작업장 체제(factory regime)와 노동자들의 작업장 게임규칙에의 자발적 연루 메카니즘들을 밝히고자 하였다.
) M.Burawoy(1979), Manufacturing Consent, Chicago:Univ. of Chicago. (1985), The Politics of Production, London: Verso.
그의 생산 시점(site)에서의 '동의의 생산'에 관한 논의는 노동자들의 특정한 정체성이 작업장에서의 노동 관행속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창출됨을 잘 보여 주고 있지만, 작업장에서의 동의의 생산이 어떻게 해서 작업장 외부의 사회적 맥락, 즉 노동자 개인적인 조직외적 경험들이나 성, 연령, 인종 등과 같은 사회적 속성들과는 독립적일 수 있는지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선 '생산', '노동'이라는 범주에 지나친 존재론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시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맑시스트들이 그래왔듯이 뷰러웨이도 맑스를 따라서 노동이 인간을 유적 존재로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활동으로 봄으로써, 종족성, 성, 연령 등의 사회적 존재 양식들이 모두 노동에 의해 매개되거나 결정된다고 간주하는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빠지게 된다.
) 이러한 비판은 Paul Du Gay, 윗책, pp. 17-18을 참조할 것
창조적인 노동이나 그것을 보상하고자 하는 행위에의 참여함(예컨대, 작업장에서의 게임)으로서 인간 본질(essence)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것이 오직 노동뿐이라는 가정은 방법론적 편의주의라는 비판 뿐 아니라, 기존의 구조화된 남성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지배적 권력 관계의 존재론적 지형을 그대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이루어지는 주체성 및 정체성 연구와 그에 따른 실천은 자연스럽게 지배질서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연루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생산에 대한 강조의 과잉은 앞서 지적되었듯이, 가족과 같은 '사적' 영역이나 소비 및 여가 영역과는 대조적으로 '공적인' 임노동 영역만을 인간 존재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산출해 왔다. 이에 따라서 노동과정의 분석은 자연스럽게 가시적인 통제 기제를 강조함으로써 지나치게 수동적인 노동자의 이미지를 산출하거나(브레이버만이나 일부 푸코주의적 경향들), 정반대로 작업장 내부의 행동들을 외부의 정치과정으로 환원시킴으로써(대표적으로 산업사회학의 가치지향성 연구들이나 개인사나 가치 및 태도를 강조하는 조직심리학 및 경영담론들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속에서 하나의 노동력으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사실상 기존의 노동과정 연구들에서는 기업의 관리적 통제하의 작업장내 노동자들이 구체적 노동과정 속에서 체험하는 사회·문화적 관계들(lived relations)에 관한 연구나 가족 및 친지 등 직장 외적 사회 관계가 노동과정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연구는 많지 않았다.
) 특히 한국에서는 그러한 연구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뷰러웨이(Michael Burawoy)와 영국의 CCCS 초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M.Burawoy, Manufacturing Consent와 The Politics of Production 그리고 John Clarke, Chas Critcher and Richard Johnson (eds.),(1979), Working-Class Culture: Studies in history and theory, London: Hutchinson & CCCS을 참조할 것.
전통적으로 산업노동 관련 담론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생산과 소비, 공과 사, 일과 여가를 대립 관계로 설정해 놓고, 이 사이의 탈구 또는 비조응 현상을 허위의식의 극복을 통한 의식화(각성이)나 규범적 통합(가치 혹은 도덕적 지향성, 태도의 변화)의 사회적 기획으로 봉합하려는 시도로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주체성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들은 거의 모두가 이러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뷰러웨이의 경우도 분석적 관점을 생산에 제한함에 따라서 작업자들의 체험된 관계와 사회적 관계들이 노동자들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분석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 이러한 문제는 분석 결과의 실천적 함의와 관련해서도 구조결정론적 기계론에 다시 함몰될 위험을 초래한다.
2. 분석틀의 탐색
최근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자본 합리화는 생산의 합리화 뿐 아니라 소비 및 일상생활의 전 영역에 이르기까지 상품·화폐 회로로 통합시키면서 새로운 '소비자 문화'의 재창출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
) Don Slater, Consumer Culture & Modernity,(Cambridge: Polity, 1997), pp.9-16
영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경향들은 노동자들의 삶의 형태 전반에 많은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고, 기존 문화형식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형식들의 등장을 초래할 수는 있다.
) 영국의 경우, 전후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나타난 전통적 노동자 문화형식의 해체와 지속의 역동성에 관한 논의는, Paul Corrigan & Simon Frith(1976), "The Politics of Youth Culture" in Stuart Hall & Tony Jefferson(eds.), Resistance Through Rituals: Youth subcultures in post-war Britain, London: Hutchinson & CCCS.
우리사회의 대기업 노동자들이 겪어 온 지난 20여년의 경험은 '조국근대화의 역군', '산업전사'로서 '00가족'으로서 가족구성원들의 생계와 학업유지를 위한 '희생자'로서 다양하게 경영담론 및 정치담론들에 의한 상징적 의미부여로 점철된 과정이었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구호와 담론의 홍수속에서 자신을 보아 온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의 비약적인 발전 경험은 기존 농촌사회의 가족 및 연줄 중심적이며 가부장제적인 사회 규범에 의해 강하게 규제되어 왔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정체성 형성과 문화형식의 발전에 중요한 준거로 작용하였을 것이고 전통으로부터 '탈규제되고' 산업화 가치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는' '노동자 문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비교적 장기간의 근속 경험과 가족의 구성에 따른 가장으로서의 독립적 생활은 친인척과의 기존의 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가정 형성을 가져 오고 회사와 가정과의 관계의 밀도가 한층 증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 맺는 주요한 사회적 관계들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의미있는 사회적 타자로 작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과 변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적으로 노동자들이 귀속적으로든 성취를 통한 것이든 참여하게 되는 '공동체적' 관계들을 회사와 가족, 그리고 노조와 보다 추상적 관계속에서 참여하는 민족 및 국가 공동체를 분석적 초점으로 설정하였다.
국가경쟁력이나 생산성 증대를 강조하는 주요 정치 및 경영담론 그리고 면접과정과 주요 노동조합의 생활 실태 조사 자료들은 90년대 이후의 호황기 국면에서의 주요 변화로서 임금인상과 소비성향의 증대가 지적되었고, 노동자들에 대한 소비생활 조사나 사기조사 자료들이 보여 주는 임금 불만족 그리고 노조 활동가들이 진단하고 있는 '노동자 도구주의와 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화 경향'에 직면해 있음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 『현대중공업 활동가 상태와 의식조사』, 97. 11, 현대중공업노동조합,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그렇다고 해서 우리사회의 대공장 노동자들이 과연 임금에만 도구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율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행동 패턴을 보이며, 여가나 소비를 즐기는 '윤택한' 노동자상이나 소비자 문화에 어느 정도로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과거 87년 이후 10여년간 보여 온 집합적 노동자로서의 행동과 최근의 변화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의 변화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또한 우리사회의 집합적 노동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는 가의 문제와 관련된 질문이다. 과연 87년 이후로 나타났던 집합적 노동자의 위세 과시가 하나의 독특한 '노동자 문화형식'의 표현인지 아닌지, 그리고 이러한 문화형식이 기존의 것들과는 '단절된' 혹은 '탈규제된(de-regulated)' 문화적 표현인지? 그리고 최근의 '변화된' 노동자 행동 성향과 삶의 양식들을 이전의 것들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문화 형식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80년대 중반 3저 호황과 자주적 노동조합의 설립 이후로 주요 대기업 그 중에서도 중화학 공업 종사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 수준은 크게 인상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담론이나 경영담론에서 강조해 왔듯이, 대기업 노동자들이 '윤택한(affluent)' 생활을 향유하고 있는가?
) 포드주의적 축적하의 노동력 재생산구조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 드문 연구 중에 한 연구로, 정건화(1994), 「한국의 자본축적과 소비양식의 변화」, 『경제와 사회』, 21호, 봄호, 20~44쪽을 들 수 있다. 비록 이 글에서 그는 87년 이후로 나타나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소비양식의 고급화 경향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전형적인 포드주의적 대량생산과 소비양식에서의 변화일 뿐이다.
자본의 이윤율이나 노동분배율에서의 괄목할 많한 패턴 변화가 있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 예컨대, 정명기(1996), 「포드주의적 임금결정방식에 관한 연구: H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산업노동연구』, 2권1호, 135~158쪽
주기적인 임금인상을 통한 경제적 궁핍의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탈피가 이루어 지고 이들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군화되었다고 할 때, 과연 이 노동자들의 소비패턴이나 생활패턴에서의 변화를 도구주의나 개인주의와 같은 행동 및 가치 지향성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구의 청년층(18∼30세 후반)에게서 드러나는 중간층의 미국적 생활 스타일은 우리사회의 경우 극히 소수의 부유한 가정의 청소년층이나 '신 부르주아'라고 부르디외가 말한 연령이 많지 않은 자영의 전문직층에게서나 간혹 드러날 수 있는 예외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백화점 세일시 몰리는 소비자들이 비교적 중간수준의 구매력을 지닌 소비층이라고 보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소비 패턴은 여전히 대량생산된 표준화된 상품의 구매에 치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동자 생활 실태조사에서 드러나는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내구재의 구비가 노동자 생활 수준의 향상의 지표인양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포드주의 체계하의 표준화된 상품의 소비패턴일 뿐이다. 물론 연령 별 소비지출 패턴에서 약간의 차이는 드러나지만 이는 결혼을 통한 가정 형성 여부로 설명될 수 있는 생애 생계비 지출 패턴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단지 노동자들이 생산-소비의 순환적인 경제체계의 상품-화폐 관계속에서 월급여 액수나 임금인상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80년대 말 이후의 '상대적인' 소비패턴의 변화가 '풍요'속의 노동자상이나, 소비자 문화 패턴으로의 변화 혹은 도구주의적 경향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Paul Du Gay, 윗책, pp.25-27
노동자 삶속에서 소비가 지닌 중요성은 포드주의하의 표준화된 대량생산 시스템의 기능에 수반되는 노동력 재생산 및 문화형식의 변화와 같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한편, 전통적 문화형식들의 지속과 변동에 관한 견해 차이들이 있다. 김동춘은, 한국의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연대지향성과 기업협력적 행동의 모순적 공존은 한국 노동자가 기업과 진정한 공동체성(?)을 느낄 수 없는 조건에 있으나 저항 행동 역시 차단당하고 있는 구조적 조건의 반영" 때문이라고 보고, '임금에만 관심을 갖는' '노동자 이기주의'나 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화' 경향을 '자기보존적 이기주의', '기회주의' 혹은 '실리주의'로 설명한다.
) 김동춘, 윗글, 115~116쪽
그는 노동자의 '실리주의적' 성향을 강력한 국가 억압아래 "무력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자연스런 행위양식"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의 견해에 따르자면, 노동자들의 실리주의는 언제나 있었던 것이고, 이에 대한 활동가들의 '서운함의 표현'은 자신의 활동에서의 무력감을 동료 조합원 노동자들에게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결국 그는 생산현장에서의 민주화나 시민적 권리의 확보를 위한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 민주화와 집합적 정치 의식의 제고와 법적 제도적 형식화를 위한 노력과 같은 노동자·노동운동의 각성이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이 된다.
이와는 약간 다른 견해를 보면, '노동자들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경제적 수준 향상'과 대기업 노동자들의 '생애주기의 변화', 투쟁 일변도의 노조활동 경험에서 온 '패배의식', 억압적 노무관리의 약화 및 개별화된 통제와 같은 '미세하고 부분적인 것'들에 대한 '중앙' 집중적 통제, 노조활동에 대한 불이익 대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게다가 현장 활동가들과 노동조합이 변화하는 자본의 통제 전략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 현대중공업노동조합,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윗책, 120~123쪽
따라서 임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실리주의적 행동 경향은 항상 이미 있었던 정치적 억압 때문이라고 보기 보다는, 자동차 등 기타 내구재 소비의 증가나 자녀교육 투자와 같이 생애주기 상의 변화로 인하여 겪는 금전적 압박과 회사의 변화된 통제, 그리고 노조 및 활동가들의 대응력 부재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노동통제(이에 덮붙이자면 자본의 운동 양식)와 노동자들의 행동 성향을 비롯환 삶의 양식에서의 변화가 초래되고 있으며, 변화하는 이러한 정세적 조건에 따른 노조 및 현장활동가의 변화가 무엇 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활동가 조직 문제나 교육 문제가 당면한 과제로 제기될 법하다.
우리의 질문에 비추어 볼 때, 위의 김동춘의 진단은 집합적 노동운동의 역사속에서 87년 이후로 나타난 집합적 노동자의 위세 과시와 노동자들의 삶의 양식은 하나의 독특한 '노동자 문화형식'의 표현이라고 보기 힘들며, 이러한 문화형식이 기존의 것들과는 '단절된/ 탈규제된' 문화의 표현형식도 아니라는 해석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의 견해에서 보면 최근의 변화된 노동자 행동 성향과 삶의 양식들을 이전의 것들과는 다른 문화형식의 표현으로 보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된다.
다른 한편, 김동춘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경제적 주변성이 노동운동 자체를 주변화시키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노동영역이 지닌 주변부적 한계를 노동자 정당과 산별노조와 같은 법적, 제도적 형식들을 확립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 경우, 즉각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범세계적 자본운동의 맥락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주변부적 성격을 과연 일국적 시민운동속에서 어떻게 이론적, 실천적으로 용해시켜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단지 구호로만 남을 뿐인 '국제연대' 운운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이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 운동 전체가 주변부성 혹은 제국주의적 지배질서에 대한 인식론적, 이론적 성찰이 부족했던 이유에 기인한다고 본다. 맑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달결하라'고 말했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느 누구도 인식론적, 이론적 문제로 현상황을 진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오히려, 복거일과 같은 자유주의 문필가에 의해 촉발된 외국어 논쟁으로 이 문제는 희화화될 수 있었을 뿐이다. 조선일보 1998년 7월에 실렸던 한영우(7.9), 이윤기(7.12), 최원식(7.20) 등의 논쟁을 참조할 것.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국 노동운동에서 과연, 성, 인종, 지역주의, 종교 등과 같은 몰적 차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있었는가? 김동춘의 문제제기는 비록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탈신민성 (post-coloniality)문제는 매우 긴요하고 긴급한 이론적 문제제기인 듯 싶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견해는 다시금 노동조직의 법적, 제도적 형식화나 정당 문제로 퇴행함으로써, 사회운동의 제영역들이 갖는 특수성을 '시민운동'으로 조급하게(?) 혼합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이끈다. 지난 97년 1월의 총파업시, 어떠한 새로운 성찰도 없는 가운데, 노동자의 '시민적' 분노를 도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총파업을 철저하게 타락시켰던 점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변성 혹은 주변화 메커니즘과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정반대 방향으로 즉 중심과 정체성을 설정하는, 즉 또 다른 외부를 창출할 개연성을 창출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같다.
) 이러한 견해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억압적 지배구조하의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해방적인 잠재성과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역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즉자적 계급으로서), 그것들은 언제라도 정치, 경제적 위기의 조건만 형성되면 봉기적 속성이 폭발적으로 발현될 것'이라는 기계론적이며, 본질주의적인 전제다. 여기에 실패에 대한 희생양을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개인에서 찾는 지식인의 간지가 숨어 있지 않은가? 사회주의의 실패 경험은 단지 남의 이야기일 뿐인가? 파시즘의 맹아는 우리 주위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두번째 진단은 대체로 현시기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노동자들의 변화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인 가운데, 현장에서의 새로운 활동방향을 모색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특히 노동자 및 활동가들의 일상생활과 조직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다양한 길들에 개방적이다. 이 진단에서 특히 주목할 수 있는 점은 가족에 대한 암묵적인 강조이다. 가족은 전통적으로 산업사회학에서 강조되어 온 중요한 재생산 장치였다. 또한 신보수주의 담론에서 강조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가족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기존 질서의 위반이나 일탈을 새롭게 가두는데 효과적인 장치로서 복고적인 가족에 대한 기능에 초점이 두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의 경우 특히 활동가 그룹의 경우에, 가족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던 것 같다. 주택 문제로부터, 융자 문제, 자녀 교육 문제, 나아가 최근의 능력주의 인사제도와 잔업 문제에 이르기 까지 가족 부양의 부담자로서 노동자가 전면에 부각되었던 것 같다. 87년을 거처서 90년대의 운동 경험은 부모와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결혼과 가족 형성을 통한 가장(부양자)로서의 역할과 지속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과거 70, 80년대에 '조국 근대화의 역군' 혹은 '산업전사'로 호명되었던 노동자 주체 형태와는 분명히 다른 노동자 주체 형태에 대한 확인 필요성과 활동가 조직 및 그들의 활동 방식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대안의 탐색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본 연구에서는 설문조사 결과를 검토하여 작업장을 중심으로 맺게되는 사회적 관계선들에 초점을 두고 다음과 같은 분석요소들을 추출하였다.
) 본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한노정연의 현장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이루어진 노동자 실태에 관한 기존의 설문조사 결과들을 검토함으로써 분석적 이슈를 추출하고, 이에 대한 추가적인 면접 및 라이프 스토리 방법에 의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주요 완성차 공장의 작업장 문화 및 노동자 정체성 형성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1995. 12~1996. 8월까지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병행하여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1996. 12~1997. 2월에 걸처 조선업체인 H중공업 울산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면접을 실시하고 1997. 6~8월에 걸쳐 활동가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면접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연구소와 현중노조에서 발행한 위의 책의 면접자료도 추가적으로 이용하였다.
먼저 작업장 삶 측면으로서 노동자의 일과 관련된 관계와 노조 및 회사와의 관계로 나누었다. 다시 일과 관련된 관계로서 동료, 직책자-조장, 반장 및 직장, 관리층, 노조간부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이들에게 쟁점이 되는 분석요소로 추출된 것이 권한의 문제, 작업과 기술의 의미, 교육과 작업사이의 관계, 노동시간과 임금 등의 요소들이었다. 직장밖의 삶 측면에서 형성되는 주요 사회적 관계들은 가족구성원, 친인척 및 친구, 이웃 등이며, 이와 관련된 분석적 요소들로서 가족 관계의 양과 성격, 친인척과의 관계 유지의 성격과 갈등, 친구 관계의 성격, 이웃과의 관계의 성격과 지역사회 활동 참여등이 회사 소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의 여부, 정치 사회적 의식 수준 등이 고려되었다.
3. 노동자 정체성과 활동가 그룹의 문화적 특징
노동자들의 정체감은 가족, 친인척 및 친구, 회사 및 관리층, 노조활동가 및 동료, 국가 및 민족 등 작업장을 둘러싼 기본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1> 참조).
사례 작업장의 노동자들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속에서 비교되고 부딪혀 갈등하고 변화하고 상황적인, 모순적으로 행동하는 육체 노동자인 나로서 스스로를 경험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세상 살아가는 요령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자신의 희망을 하나씩 달성해 가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개별화된 종속적 주체로서 대기업 노동자이다. 동시에 집합적 노동자로서 우리사회의 민주화의 역사적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자부심이 있으나, 다소간의 비장함과 책임감을 갖는 노동운동가들과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를 지닌채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는 나. 그리고 친구나 가족 및 친척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중요한 삶의 터전이지만, 오직 상상속에서만 동일시될 수 있는 회사의 생산직으로서의 나. 한편으로는 존경스럽지만 자괴감의 원천이며, 최고 경영자의 '선한 의지'와는 별개로 권력을 휘두르는 경영진들과 대립하는 가운데 나름대로의 회사원으로서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닌 나. 이런한 점들을 통해 볼 때,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속에서 스스로를 종속시키고 그 관계를 일상적으로 재생산하며, 다양하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는 대기업 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만의 문화적 차이를 가장 독특하게 보여 주는 집단은 현장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오랜 노동운동속에서 상호 학습과 경험의 공유가 있었고, 회사나 정부로 부터 주요한 감시 및 탄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 집단과는 다른 문화적 이질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1> 작업장 사회관계와 노동자들의 정체성
주요 사회적관계들
관계의 이슈와 정체성 구성의 요소들
가족
- 회사생활에 대한 수치심과 비밀.
- 가정사 : 부모모시기, 형제부양하기, 자녀가 공부를 잘할 경우의 풍족한 교육 못시키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죄의식, 보상욕구.
직장 외부의 친인척이나 친구들
- 회사에 대한 자부심: 어엿한 대기업 직장인, 돈 잘쓰는 00.
회사 내에서의 화이트칼라나 경영층
- 많이 교육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뛰어남, 존경스럽고 대단한 회장의 선한 의지와는 달리 과잉충성하는 경영진 및 중간관리층에 대한 이상화되고, 자기중심주의적인 비판: 자존심 고양, 주요 적대자 집단.
직책자
- 같은 노동자 이면서도 중간적 위치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일밖에 모르는 성실한 사람들, 요즘들어서는 리더쉽 교육 등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 같이 얘기가 통하기도 하는 사람들.
노조활동가
- 노동자를 위해 희생적으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 말잘하는 사람들, 하지만 일부는 농땡이, 감정적이거나 회사에 역이용되는 사람들, 자존심 상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기피대상자들, 노조의 많은 돈을 쓸데 없는데 많이 쓰거나 쓸 수 있는 사람들
- 익명성만 보장되면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
- 없어져서는 안되는 마지막 호소처로서 노조
동료
- 나이많은 동료의 무능력함에 대한 경멸
- 고령자 및 농땡이 동료와 동일한 임금에 대한 불공정성 지각과 애처로운 느낌의 공존
- 나이적은 젊고 빠릿빠릿한 동료들에 대한 의존과 부러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직장 및 인생의 선배, 부.
회사
- 상상속만의 동일시 대상
- 자부심과 수치심의 원천,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는 직장.
국가와 민족의 일원
- 산업전사, 근대화의 기수 - 상상적 허구적 동일시
- 정치에 대한 많은 관심
우선, 노동자와 활동가의 관계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감성적 측면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감성적 측면은 특히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의 물질적 측면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들의 연령 증대 및 회사의 주택보조정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고령 노동자들은 주택 마련할 수 있었으며,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노동자들의 상당 부분이 융자를 통해 주택을 마련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잔업 등을 통해 융자금을 갚는데 힘겨워하고 있었다. 또한 자가용을 통한 이동 거리의 증대와 사적인 공간(피난처?)의 확보 가능성도 증대시킨다. 가족만의 오붓한 휴일, 여가의 동경, 개인적 쾌락의 추구, 노래방 문화 등은 대중문화와 자율적 공간 확보가능성 증대와 관련해서 과거와는 다른 강도로 정서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전통적 문화형식과는 다른 문화형식들이 서서히 등장해 감에 따라 개인주의적 행동 경향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활동가 집단의 경우는 이러한 경향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잔업 근무를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훨씬 적은 임금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활동사항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정례적인 모임에 참여하며 조합원들의 고충을 상담하거나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의 일상생활이 '시간', '술', '돈', '건강'과의 '전쟁'으로 묘사되듯이, 활동가들의 하루 하루 삶은 그야말로 '숨가뿐 삶'이다.
) 현대중공업노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윗책, 99~110쪽
여가나 각종 문화생활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 조차 어렵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이들은 활동가 및 그들의 가족끼리의 유대를 꾀하는 경향이 크다. 그뿐 아니라 이들의 사회적 교류 및 관계망은 일반 노동자들의 그것 보다 '훨씬 넓고 언어 구사'나 가족에 대한 생각 및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 윗 책.
하지만, '전쟁'과 같은 '숨 가뿐' 삶속에서 주위의 다른 노동자들의 삶과 직장에서, 가정에서 비교되면서, 그리고 일상적 상호작용속에서 겪어 알게 된 일반 노동자들의 태도와 반응에 실망하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자신이 속한 조직속에서의 갈등으로 인하여, 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은 지치고 마는 측면도 드러난다.
둘째, 이념적 공세, 강압적 통제와 억압적 노사관계 관리에 따라 80년대 말의 노동운동의 비장함과 도덕적 의무감의 풍토는 아직까지는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활동가 집단과 일반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중적인 효과를 갖는 것 같다. 그 하나는, 일반 노동자들은 대의에 따르는 노동운동은 그로부터 사회적, 문화적 자원(예, 권위)을 얻는 사람들(활동가)의 몫이라고 보는 경향을 낳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노동자 일상생활의 많은 비공식적이고 개별적인 기존의 사회적 공간들을 황폐화시켜 갔다. 그로 인해 예컨대 경제적 합리성(?)을 표방하는 노동조합주의적 전통이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면접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경찰인 동생과의 활동가의 가족내 이념 갈등이나 작업장내 동료들 사이 사적인 동호회의 파괴,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 소원화 등은 작업장 및 개별적 삶의 세계를 이념적으로 구획함으로써 조직내 권력 무기력감과 같은 소외를 노조에서도 동일하게 경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가족, 친구, 자녀와의 갈등에 관해서는 윗책, 100~107쪽을 참조할 것.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노조의 대회사 투쟁에 집단주의적 동조하에 적극적인 참여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단지 도덕적 의무감에 터한 '죄의식을 지닌' 많은 노동자들을 산출하였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셋째, 노동운동의 이념적 자원의 고갈, 대안적 세계에 대한 비젼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80년대 노동운동이 대학출신의 현장활동가들의 활약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 질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이는 주요 활동가들에게 일차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지만, 일반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엄청난 정치적 격변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워진 이데올로기적 상태에 대한 회의가 탈정치화로 빠지게 하여 현세주의적 생활방식에 집착토록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소비 일상생활 영역에 대한 상품-화폐 관계의 심화 현상 역시 피상적으로나마 신자유주의 정치 담론에 친화성을 보이도록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모습은 노동운동의 이념, 조직 운영 원리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생활 세계에 까지 뿌리내려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 형식들을 창출해 가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오직, 활동가 집단 내적으로 공유된 사명감과 경험과 그에 대한 상징적 의미들의 침전된다. 노동운동이 다소 추상적인 구호로만 남거나 조직적 활동 방식의 기계적 성격과 활동가들의 조급성 등이 노동자들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삶의 영역에서의 노동자적 창의성 개발 가능성을 스스로 구속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생활 여건의 변화와 회사의 통제 시도라는 조건의 탓으로 쉽게 자신의 불참("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원인으로 돌릴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운동의 대안적 비젼이 제시되지 못한 가운데 진행되어 온 노동자 정치 세력화 논의 역시 구체적이지 못하였고, 조합원 대중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주요 상급 단체 노조활동가들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온 정당 건설 활동은 철저하게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역시 못 믿을 사람들이 하는 것").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는 관망자적 평가 태도가 일반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많은 활동가나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이 다물 교육, 국가 경쟁력 담론 등 민족주의, 애국주의적 노동운동 담론을 자연스럽게 동일시하는 견해들에 대해 개탄해 하며 노동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크다. 회사의 노사관계 통제 전략이나 감독직 및 노조활동가들의 다물 교육과 외국 시찰 경험 그리고 고충 처리 방식의 일선화(노조의 배제) 등은 노조나 활동가들의 작업장 영향력의 현격한 약화 추세와 어느 정도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활동가들의 반응은 "희생의 자세", "무지한(미운)대중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 1996년 12월~1997년 1월의 H중공업 교육위원 간담회 자료.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광범한 비판 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점이나 동료 비난 등은 단지 회사의 관리적 통제 시도에 기인하는 것 뿐아니라, 노조의 관료적 활동 방식이나 활동가들이 보여 왔던 엘리트주의적 방식이나 분파주의적이며 도구주의적 노조 정치에서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조합원들의 행동 및 가치, 태도의 교육을 강조하는 활동가나 노조 간부의 경향은 노조 역시 경영층과 유사하게(동형적으로) 작업장 권력 체제의 구축과 권력의 작동에 요구되는 기술, 즉 노동자 주체 형성 및 정체성 변화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 준다.
4. 결론에 대신하여
1) 공통적 특징들
사례 작업장 노동자나 활동가들 역시 작업장내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주요 이슈들에서 다른 작업장에서 확인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례 작업장의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육체노동으로 부터의 탈피 욕구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으며,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수행하는 일을 은폐하고자 하는 수치심이 비교적 적었다. 이 점은 사례 작업장 노동자들의 과거 파업투쟁의 경험에서부터 온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노동과정의 위험성과 노동강도의 세기가 다른 점, 그리고 교육수준이 비교적 낮은 점등으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권한 수용과 관련된 책임감, 불안 및 공포 의식, 거리감이나 소외 정도에서는 다른 작업장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작업장이나 공통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사항으로는 (1) 일의 내용과 무관하게 육체 노동자들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비교될 때, 강한 남성적 이미지로 자신을 표상하려는 경향이 드러나며, (2) 일과 관련된 측면에서나 가족과 관련해서 책임감 혹은 성실성이 노동자들의 대인적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3) 나이가 많을수록 축적된 부나 세상사는 나름의 요령을 자존심 공양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4) 노조의 불가피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회사와의 상상적 동일시가 (혹은 양가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 등이다.
2) 활동가 집단과 문화적 권위
사례 작업장의 노동자들에게 과거 노동자 투쟁의 상징성은 불균등하게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노동조합과 명성이 있게 한 귀중한 투쟁 경험으로 의미 부여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들 사이의 인간관계의 황폐화를 야기시킨 사건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강조하듯이, 집회시나 활동가들에 대한 반응에서 드러나는 경향을 통해 추론해 보건대, 생활주기의 변화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더불어 일반 노동자들의 감성적 차원에서의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며, 이에 따른 감수성에서의 변화 역시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활동가들의 일상 생활은 일반 조합원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상적인 감성의 맥락은 우리가 체험한 것들에 색조나 음색 혹은 결을 부여하고, 이에 따라 우리의 감수성에 영향을 미치며, 이데올로기의 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 이에 대해서는 Grossberg L.(1992),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 Popular conservativism and postmodern culture, New York: Routkedge.
이렇게 본다면, 활동가들의 문화적 형성을 지배하는 감수성은 대중문화와 사회의 지배적 질서에 동화되어 가는 일반 노동자들의 그것과는 점점 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데올로기적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활동가들의 실천이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과거와는 다른 접점을 형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반 노동자들에게 활동가들의 희생은 더 이상 희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들의 할 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즉,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문화적 자산의 인정)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활동가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일반 노동자들이 삶에서 감성적으로 마음을 쏟는 중요성의 순위가 활동가들의 그것과 너무 크게 차이가 나게 된 점이 아닐까? 과거 엘리트적인 활동가들의 실천들이 계속해서 분절해 들어갔던 노동자들의 삶의 흐름은 '기표의 흘러 넘침'으로 인하여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단지 자본주의적 지배질서하에 전개되는 '과정들' 뿐이 아닌가?
) 크리스테바(J.Kristeva)는 현대 자본주의는 더이상 도덕적 가치나 사회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자본 자체의 운동 '과정을 통한 과정의 재생산'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비록 제3세계의 경우는 여전히 강제적 법이나 규범,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로 특징지워지는 서구 자본주의의 경우는 더이상 그러한 것들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 주체형태들에 대한 유혹으로서, 연루의 과정을 통해서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노동력을,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J.Kristeva,(1984),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 (N.Y.:Columbia Univ. Press), pp.16
3) 활동가 집단의 위상적 관계
사례 작업장의 활동가 집단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놀랍고도 주목할 만한 점은 활동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투심(投心. investment)이다. 비록 엘리트적 문화의 코드에 의해 분절되고 각인되었을지언정, 그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자신들의 프로젝트와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자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데올로기적 투쟁속에 특별하게 감성적 효과를 각인하고자 노력하게 되며, 그 투쟁의 효과들이 형성하는 장속에서 활동가로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다른 문화적 감수성들과 접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일상적 실천들 속에서, 그리고 주요한 사건들과 관련해서 형성된 문화적 감수성들이 침전된 장은 그 효과로서 활동가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권위와 문화적 자산을 갖게 한다.
) Grossberg L.(1992), 윗책 그리고 신병현(1995), 「'현장'과 노동자 문화정치」, 『현장에서 미래를』,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2월, 5호.
이들에게 드러나는 엘리트주의적 특성, 남성적 의리와 권력 지향성 및 종속성 등은 변화된 조건하에서 이제는 활동에 투심하게 만드는 힘인 동시에 벽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들이 스스로 구성요소가 되어 형성한 조직의 층들은 이제 이들의 활동의 힘과 감성적 맥락을 가두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산별노동조합의 건설' 혹은 '조직의 보존'과 같은 구호들 속에서 은폐된 것은 현장활동가들 및 노동자들의 욕구를 집합적 형태로 분출시키고 발화하는데 장애로 작용하는 벽들이다.
) 현장활동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시기 주요한 장애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이고 집합적인 요구를 가로막는 민주노총에 반대해야 한다는 역설적 현실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 3주년 심포지움 자료집을 참조할 것. 곽탁성(1998), 「노동운동의 계급적, 정치적 주체형성을 위하여-계급적 단결, 민주주의, 그리고 연대」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47~182쪽
조직원리와 조직 작동 방식(운영원리)이 서사적이거나 메타 과학적이 되면, 그 조직은 위계화될 수밖에 없음을 기호학의 조직 원리가 보여 준다. 언어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보자면, 즉, 글쓰기로 표현하자면, 활동가들을 활동하게 만드는 힘은 규정할 수 없지만 사회적, 상징적, 육체적 제약을 각인하고 그것들에 의해 규제되는 물질적 육체적 흐름들인
) 쥴리아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를 기호적 코라(semiotic chora)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J.Kristeva,(1984),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 (N.Y.:Columbia Univ. Press), pp.25-33
반면, 노조운동사의 강조와 같은 희생을 강조하는 서사적(과거 지향적 이데올로기적 이야기체) 문체는 상징적 질서에의 포획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립은 구분되어 변별적 대립 관계지만, 그 대립은 부정되어 동일화 된다. 서사구조는 가족 혹은 유사가족과 같은 구조에 의해 중층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무의식적 표상들로 에너지가 구속됨으로써,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공간속에서(즉, 가족 혹은 써클이나 학연, 지연 등의 연줄조직과 같이 유사가족적인 공간속에서) 자유로운 에너지의 순환이 형성되고 반복된다. 이 글쓰기 즉, 실천은 엄격한 언어적 구조에 따르는 규범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의 가족은 실제 가족인 동시에 유사 가족적 집단이다. 이 속에서 말하는 것은 주체의 공간상의 위치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 나는 활동가다!
메타 언어적 특성은 부정을 긍정에 종속시켜 상위 차원이 지닌 긍정성속에 그것들을 봉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언제나 새로운 대상, 그러나 접근 불가능한 대상이 설정될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위계사회의 구조이다. 성층화한(stratified) 거대 조직들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글쓰기 실천은 발화 주체의 위상적 관계를 보여주는 의미화 실천에 관한 기호학적 분류이다.
) J.Ktisteva,윗책, pp.90-106
지금까지의 발화하는 주체로서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타자와의 관계 즉, 의미 작용과 관련해서 갖게 위상적 관계는 어떠한가? 조직과 활동방식, 가족주의 혹은 유사­가족주의, 그리고 인간됨의 기준을 가르는 기술이 문제인 것 같다.
4) 유사­가족주의와 종속된 주체
일반 노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활동가들도 육체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는 다소 거리를 두었던 가족주의적 구조속으로 급속하게 재 포획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농촌에서의 빈곤과 도시 주변부 계층으로서 중산층적 안식처로서 가족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거나, 가족으로부터 단신 이탈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희망으로서만 존재해 왔던 가족의 재구성이 이제 현실화되었다. "오로지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는 꿈만을 위해서 실연당한 설움을 (극복하여) 잊으려고 미친 듯이 일하여 반장이 되었다"라는 어느 노동자의 한스런 언급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이제는 마누라가 억척스럽게 해서 피자 집을 차렸고 제법 장사도 되기 때문에 "구태여 감독자들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어느 전직 소위원의 언급이나, "그동안 모은 돈으로 땅을 마련했고, 융자받아 집을 지어 가게라도 마련하려 한다"는 쉬고 있는 활동가의 언급들에서 가족이라는 안식처가 부각된다.
공과 사의 도식적 분리 하에, 가족은 피난처로서 표상화되고 있다. 동시에 부양자로서의 의무로 표현되는 가족 구조 속의 위치 설정은 활동가 주체의 발화를 정언적으로 규정짓는 것 같다. 술부는 문법에 정확히 따른다. 가족사의 서사적 구현 속에서 자신의 위치는 가장으로 변하였지만, 여전히 가족 삼각형에 갇혀 있다. 이 삼각형은 집단으로 회사로, 조직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듯하다. 이들의 쉬고 싶다는 표현은 '노동자 권력'으로 부터, 조직으로부터, 동료와 회사로부터의 소외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의식화된 활동가의 경우는 과학과 사상성으로 위계화하는 담론을 산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곧 위계적 그물망속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방식이 아닐까? 조직 속에서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지식-육체노동의 분리라는 모순은 이론과 실천 속에서 언제나 이미 현실화되었고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면 도구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기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푸코를 따르자면, 그것은 규제적 자아(regulatory self) 이상으로 기능하는 자아를 기획하는 인간으로 인간들을 종속화 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그것은 인간을 통치하고 인간 행위를 바라는 방향으로 조성하기 위한 수단, 기법, 공간, 판단 체계 그리고 프로그램들의 총화이다.
) N.Rose, 윗책, pp.128-150
푸코나 들뢰즈 갸타리 등의 기술 개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특정 부류의 사람으로 경험하는 바로 그것이 (즉, 자유를 추구하고,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며, 개인적 권력을 추구하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동물로서 경험하는 것), 일련의 인간 기술들(human technologies)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 푸코, 들뢰즈와 갸타리의 기술 개념에 대해서는 Deleuze G.(1988), Fouacult, Trs. G.Hand, Minneapolis: Univ. of Minnesota Press. 들뢰즈와 갸타리(1994), 『앙티외디푸스』, 민음사, 부록, 그리고 미셜푸코, 이희원(역), 『자기의 테크놀로지』, 31~86쪽을 참조할 것.
그 기술들은 인간 존재의 제 양상들(modes of being human)을 그것들의 대상으로 취한다.
) 그러한 총체의 공간적 형태에 관해서 이진경, 『근대적 시ㆍ 공간의 형성』, 1997을 참조할 것.
'신중하고 절제적인 삶을 사는 책임있는 아버지', 경영자들이 지닌 권위의 불가침성과 보상의 기대에 터한 '노동자들의 유순함'과 '성실한 노동자'와 같은 이상(ideal)들은 어떤 지식 체계와 윤리적 가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을까? 푸코나 들뢰즈 등에 의하면, 인간됨에 관한 이상과 모델들은 다양한 실천들에서 그리고 인간 행위에 관한 특수한 문제들과 해결책들과의 관계속에서 접합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개인 모델을 윤리적 이상으로 제시하려는 신경영기법들의 프로그램적 시도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경영관리자나 활동가 및 노조 간부들의 합리성의 신화 및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감수성의 특징이나 스타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신병현, 윗책.
한/노/정/연
#AN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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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호 투쟁 평가서

현장에서 희망을 여는 노동자회 평가서입니다
제출용 자료와 내부토론으로 결론내린 자료입니다
【노동열사 고 배달호동지 분신사망 투쟁 보고 및 평가회 관련 제출용】
63일간의 투쟁,
누가 감히 “그래도 결과는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1. 평가에 들어가며
배달호 열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온 몸을 불살라 죽음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63일간의 투쟁이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이 투쟁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승해야 하는가?
투쟁평가는 평가주체에 의해 그 내용이 달라진다. 더구나 그 투쟁이 전국적 쟁점을 이루고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투쟁을 바라보는 입장과 위치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배달호 열사의 투쟁은 대책위, 민주노총, 금속연맹, 금속노조, 지회, 현장조합원 등 여러 단위에 따라 각각의 입장의 차이가 있다.
배달호 열사의 분신은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충격이었지만 금속노조, 금속연맹, 민주노총 등 민주노조운동의 핵심단위에서는 조직의 사활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배달호 열사 분신과 이후 벌어진 투쟁 상황은 현재 민주노조운동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투쟁이었다.
산별노조를 지향한다는 금속노조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일부에서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였기 때문에 이번 투쟁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2. 산별노조의 위력을 보여준 투쟁이었나?
배달호 열사는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그리고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노조탄압분쇄 등 두산중공업의 현실,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하며 분신하였다.
적어도 금속노조의 건설은 기업별 노조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여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투쟁의 중심은 명백히 금속노조여야 했다.
그런데 과연 이번 투쟁에서 금속노조는 주체였는가?
대책위는 “산별노조의 조직력과 집중력이 이번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향후 산별노조로의 확대 강화에 중요한 계기를 형성하였다” “이번 투쟁으로 산별노조가 중요한 교섭의 당사자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평가한다.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가?
금속노조가 이번 투쟁을 위해 비상 대의원대회, 비상총회 등 조직적 움직임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지속적 조직동원이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대책위 집행위에서 지침식으로 하달되는 책임할당식 간부중심의 인원동원이 중심이었고, 대의원이든 중앙위원이든 조직적 의사결정에 따른 현장을 조직하려는 실천적인 활동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다. 금속노조가 투쟁의 중심이 아니라 대책위의 지침에 따른 인원동원 책임단위로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금속노조가 대책위의 이름으로 자신의 책임을 떠넘긴 것은 아니었는가?
금속노조가 실천적으로 현장을 조직하는 투쟁을 이끌어가지 못하면서 대책위가 현장을 조직하지 않고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나가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거나 참가조직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로 나가지 못하고 집행위 중심의 정치적 협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구조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의 금속노조가 안고 있는 조합원들의 무관심 ,금속노조 제일주의 등 많은 문제들을 상층부 중심의 교섭력 인정등으로 해결해보려는 조직형식주의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연대투쟁에서 모범을 보여준 투쟁인가?
이번 투쟁은 일관되게(?) 투쟁을 회피하고 협상에 의지하는 투쟁이었다. 투쟁의 주체였던 두산중공업지회는 투쟁을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지역, 전국의 활동가들이 대리투쟁을 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발적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공식적인 지도부지침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며 누구도 책임의 문제를 비껴가려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총연맹을 포함한 각 조직에서 내부적으로 조직적 참여,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월 18일 투쟁에서는 지도부의 노력과 대중들의 열정이 나타나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연대투쟁의 에너지를 형식적 투쟁의 압박용 전술로만 받아들임으로서 이후 현장을 조직하기 보다는 동원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곧 일천 결사대 철회의 결과로 연결되었다.
결국 금속노조와 대책위, 민주노총의 지속적인 협상중심의 합법적인 기조는 사실상 연대투쟁의 진출과 확산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손배가압류 총파업 결의, 강력한 연대투쟁을 결의했던 일천결사대 투쟁을 하루 전 날에 타결을 기정사실화 한 지도부에 의해 취소된 사건 !
4/2 총파업의 철회에서 발생한 조직적 혼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3월 11일 정오까지로 협상 시한을 분명히 정해 놓고 1천결사대 투쟁에 임했는데, 노동부장관이 내려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러한 원칙을 완전히 저버렸으며, 당일 밤 늦게까지 아직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았는데 1천결사대는 이미 취소하는 것으로 연락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과연 그러한 결정을 한 단위는 어떤 단위인가? 타결도 되지 않았는데 타결이라고 보도한 연합뉴스와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1일 밤 10시 일천결사대를 취소해 놓고 다음날 7시 합의할 때 까지 협상에 매달리지 않았는가?!
결국 일천결사대 취소사건은 두산 자본 측이나, 정부 못지않게 대책위, 금속노조가 얼마나 연대투쟁의 확산을 두려워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대책위는 일천 결사대를 통해 투쟁으로 상황을 돌파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교섭의 압박용 수단으로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결사대의 조직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결사대의 위상과 역할, 활동내용 등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인원할당식으로 지침이 내려왔다. 그나마 현장에서는 일천 결사대를 열심히 조직하고 있을 때, 지도부에서는 조합원 대중과의 약속은 외면하고 협상용 카드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4. 누가 감히 "그래도 결과는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1) “이 상황에서 이 정도면 잘한 것 아닌가?”에 대하여
우리가 배달호 열사 투쟁평가 할 때 많이 나오는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란 것이 무엇인가? 두산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의 투쟁동력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현장의 투
쟁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버텨서(?) 협상을 이끌어 낸 것이 대단한 성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산중공업에 투쟁동력이 없었는가? 우리는 배달호 열사 분신한 후 며칠간 수백 명에 달하는 현장의 조합원 동지들이 작업을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왜 시간이 지나면서 투쟁의 현장을 외면하게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두산중공업 지회 집행부가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은 이후에 폭로된 불법 사찰에서도 드러나듯이 현장조합원들은 엄청난 감시와 탄압의 한복판에 있었다.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현장순회조차 제대로 안하는 집행부, 열사의 시신이 공장 안에 누워있고, 사측의 온갖 회유, 협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제대로된 파업지침 조차 내리지 않는 집행부, 현장의 감시와 탄압을 뚫고 집회에 참석한 수백 명의 조합원들에게 이런 두산중공업 지회는 어떻게 보였을까?
그리고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지회 집행부가 문제인데 어떻게 할 수 있나며 투쟁의 책임을 미루었다.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는 대공장인 지회집행부에 대해 올바른 비판조차 제대로 못하고 눈치보기식의 행동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두산중공업 지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회피적인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나가는데 방조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이 상황”이다.
결국 투쟁동력이 없었다는 식의 두산중공업 상황평가는 배달호 열사의 분신항거 투쟁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던 조합원 동지들의 싹을 자르고 뭉개버린 두산중공업지회 집행부의 투쟁회피적인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것이며, 이러한 심각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공장 지회집행부의 눈치를 보면서 끌려다닌 금속노조 지도부의 방기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2) “이 정도면 그래도 결과가 좋은 것 아닌가?”에 대하여
이번 투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금속노조 차원에서는 그동안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던 두산중공업이 김창근위원장을 상대로 타결당사자로서 합의를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이 마치 두산중공업 조합원들이 그동안 산별노조에 갖고 있던 불신감을 상당부분 해소하게된 근거라도 되는 듯 평가하고 있다.
또 손배가압류에 대한 쟁점화와 제도개선, 연대투쟁에 모범을 보여준 투쟁, 산별노조의 위력을 보여준 투쟁, 해고자 복직의 토대 마련, 두산중공업 현장조직력 복원의 토대마련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였다.
이번 두산중공업 투쟁에서 손배가압류를 철회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개인 손배가압류는 철회되었다. 그러나 40%에 달하는 조합비에 대해서는 합의로서 가압류를 인정하여 노동조합에서는 아직도 조합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측의 억지에 의해 만들어진 가압류를 노조가 합의로서 인정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발생한 이번 분신투쟁은 사회 정치적으로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또한 두산중공업 사측이 불법사찰, 한중인수와 처리 문제, 재벌상속의 부도덕성 문제, 부당내부거래 등 전형적인 재벌들의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결국 이러한 조건은 흔히 나타나는 시신탈취, 공권력 투입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했으며, 최상의 조건에서 투쟁에 임하게 했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에서도 두산중공업 내부의 투쟁동력을 세워내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사측과 정부에 대한 협상에 매달리고 그 결과 조합비 가압류 인정, 해고자 일부분만 복직, 불법사찰 등 명백히 드러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 등이 없는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과연 무엇이 그래도 괜찮은 결과란 말인가?
18명의 해고 동지들 중 5명의 복직합의가 과연 성과인가?
무엇을 근거로 두산중공업 현장 조직력 복원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산중공업 사측에서 금속노조 위원장을 파트너로 인정해서 합의서에 같이 서명해 준 것이 그렇게도 자랑할 만한 것인가?
5. 결론에 대신하여
우리는 지난 60여 일간 눈물겨운 투쟁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초라해 허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확인했다. 두산 자본, 그리고 현 정권이 기를 쓰고 배달호 열사의 투쟁을 축소, 은폐시키려 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워던 것은 바로 뻔히 보이는 그들의 작태를 철저히 부숴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투쟁 과정에서 현재 민주노총, 금속연맹, 금속노조 지도부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확인했다. 철저히 깨져버린 비참한 투쟁을 “산별노조의 위력을 보여준 투쟁” “연대투쟁의 모범”으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낀다. 결국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는 현장에서 다시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다시 한번 힘차게 투쟁의 출발을 선언해야 한다.
63일간의 배달호열사 투쟁 평가
1. 배달호열사는 왜 분신하였는가?
1)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손배가압류
열사의 죽음은 단지 두산자본의 악랄한 노동탄압에 의한 것이 아니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착취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속에서 총자본이 휘두른 서슬 퍼런 현장통제의 칼날이 열사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한국중공업이라는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산으로 민영화되지 않았거나 설사 공기업으로 유지되었다고 해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 현장통제의 강화도 필연적인 것이다.
구조조정에 의한 현장통제 강화는 개별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다. 정권은 언제나 그래왔지만 IMF를 기점으로 자본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숨김없이 대변하며 구조조정의 선봉대로서 노동자를 탄압해왔다. 나아가 입법부, 사법부는 물론이고 언론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흐름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나갔다.
이러한 것들이 두산중공업에서 현장통제, 블랙리스트, 징계해고, 구속수배, 손배가압류, 식당하도급화, 사택매각 등으로 나타난 것이며, 이는 열사의 유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번 투쟁에서 손배가압류는 사회쟁점으로 떠올랐다.
손배가압류는 멀리 무노동무임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노동무임금은 파업에 대하여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자본의 논리로서 87년에서 89년으로 이어지는 노동자투쟁속에서 노동자들의 파업대오를 분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일하지 않으면 임금도 없다'말은 다시 말하면 '임금은 노동의 댓가이다'라는 것으로 당시 전노협의 임금인상 투쟁의 기본논리였던 '임금은 노동력의 댓가'라는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후 자본은 무노동무임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임금만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파업기간에 대한 손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파업기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초기에는 조합간부에 대해 손배청구를 하였지만 나중에는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직접겨냥하기 시작했다. 손배소송에 이은 가압류는 법과 제도가 얼마만큼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무노동무임금에서 손배가압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철저히 자신들의 논리와 통제에 따라
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결투쟁과 파업을 통해 쟁취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며 생산성향상과 노동자간 경쟁을 통해 자본에게 인정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손배가압류는 단지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투쟁을 저지하려는 총자본의 전술로 봐야하며, 손배가압류에 의해 빼앗긴 노동자의 생존권과 파업권은 제도개선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총단결투쟁과 총파업투쟁을 복구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2) 민주노조운동의 대응
이번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민주노조운동은 심각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열사투쟁 기간 중에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게 스스로 '죄인'이기를 자청했다. 하지만 죄값은 개인이 받을 수 있어도 조직에 대한 평가 없이는 과연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는 되돌아 볼 수 없다.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한 것은 장엄한 투쟁이었으며, 한 사람의 투사가 이 사회속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적 투쟁의 최후수단이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투사가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조직적 투쟁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병폐가 노동자에게 어떠한 고통을 주는가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번 열사의 죽음이었다면, 동시에 열사는 민주노조운동속에서 그러한 상황을 뜰고나갈 어떠한 조직적 투쟁의 전망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을 제기한 것이다.
(1)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통한 구조조정분쇄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비록 결과는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에 의해 왜곡되었지만, 96년 12월 노동법날치기 통과 당시 총파업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항한 투쟁은 총파업투쟁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그 동력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작년 발전노조투쟁 당시 4/2 총파업투쟁 철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시키기 위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투쟁현장으로부터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 결과 임원진 사퇴라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총파업이 철회된 이후의 상황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대항한 노동조합의 투쟁은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본의 분리전술에 따라 각개격파를 당할 수밖에 없다. 전국의 모든 구조조정 사업장은 단위노조, 지회의 고립된 역량으로 구조조정 싸움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년 두산중공업 지회의 47파업에서 두중 노동자들이 감당했어야 할 그 투쟁의 무게가 민주노총의 4/2 총파업 철회와 과연 무관한 것인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 금속노조의 조직형식주의적 전술배치
작년 집단교섭 당시 두산중공업은 집단교섭에 불참하였다. 그렇지만 경남1지부의 경우 집단교섭이 성사된 것으로 보고 두산중공업 지회만 남겨둔 채로 집단교섭을 진행하였다. 집단교섭과 대각선 교섭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투쟁이 형식적 배치로 나아갔다. 금속노조 전체적으로 그렇게 잡아나가게 되었고, 자본은 지회에 대해 더욱 탄압을 노골화하였다.
집단교섭과 투쟁은 결국 지회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집단교섭은 궁극적으로 산별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집단교섭, 산별교섭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올해나 내년에 얼마만큼 많은 사업장에서 사측이 교섭대표를 파견했는가를 기준으로 삼거나 교섭 테이블을 유지시키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산별교섭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총단결을 위한 것이라면 현시기 집단교섭은 금속노동자의 단결투쟁을 조직화해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년 집단교섭의 경우, 금속노조 차원에서 집단교섭이 성사되었다는 형식적 성과를 남기는 것에 무게가 실리면서 두산중공업지회처럼 철저히 고립되어 집단교섭에 응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타격투쟁이 형식적 배치로 머물렀다. 이런 상태에서 여타의 사업장은 집단교섭을 진행해버리고 이 집단교섭마저도 원칙도 없이 대각선교섭과 병행함으로써 애초에 상정하였던 원칙과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즉, 집단교섭을 통한 금속노동자 단결투쟁의 강화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투쟁을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원칙도 없었고, 투쟁의 계획도 부재하였다.
두산중공업 지회의 경우, 작년 47파업이 투쟁의 전술적 측면에서 올바랐는가 잘못되었는가는 이와 같은 금속노조 전체의 문제점이 우선적으로 지적된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즉, 금속노조가 투쟁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동력이 떨어져 있는 두산중공업 지회가 과연 '자본과 금속노조의 대리전이다'라고 얘기되었을 정도의 투쟁을 감당해낼 수 있었는가의 문제가 평가될 필요가 있다.
(3) 두산중공업지회의 현장동력 부재
두산중공업 내부적으로 보자면, 이후 통합지도부가 탄생하였으나 임단협 타결안에 대해 뚜렷한 평가도 되지 못하고 당위적인 통합지도부의 틀속에서 그 결과는 결국 받아들여지게 됐다. 반면 임단협 타결안에 대한 문제의식은 완전히 묻혀버리게 되었다. 공기업하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탄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도 부재하고 민영화에 대해 그 투쟁을 평가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장은 그야말로 얼어붙어 있었다.
한편, 현장활동 부재의 문제는 두산중공업 지회의 문제만은 아니며 대부분의 민주노조가 현시기 공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일부 대공장의 경우에는 대의원의 반 이상을 사측에서 장악한 상태이다. 두산중공업 지회의 현장동력의 문제는 두산중공업 지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의 현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비롯한 모든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지 못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사는 어떠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2. 투쟁의 과정과 타결에 대한 평가
1) 현장을 조직하지 않고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한 싸움이었다.
이번 배달호 열사투쟁은 현장을 조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소식지, 분향소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도 노력이 없었으며 투쟁의 기간 중에 지역에서 투쟁의 조직화를 위한 대의원대회도 없었으며, 이미 열사투쟁과 무관하게 계획상에 있었던 통합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을 첨가하는 정도에 머물렀을 뿐이다. 중앙차원에서도 대의원대회 같은 책임성 있는 회의체계를 통한 조직화로 가지는 못하고 전국지회장결의대회로 대체하였다. 물론 여태껏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지역동지들의 철농참가는 성과로 평가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간부들 선에서 머물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조합원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현장의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지역연대가 간부중심이 철농으로 배치되면서 현장 조합원들을 연대투쟁으로 이끌기 위한 활동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철농마저도 초기에 비해 이후에는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대책위가 이번 싸움을 현장을 조직하여 그 동력으로써 투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해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정권교체기라는 점 때문에 더욱 가중되었다.
대책위 평가 초안에도 노동부장관의 직접중재에 대해 '한편으로는 이번 두산 중공업 문제에 대한 계속적인 정치권에 대한 입장전달 및 조직화가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 내었던 상황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대책위 평가초안은 '꿈적도 않는 악랄한 두산을 상대로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투쟁방법이나 역량을 통해서 상황을 협상국면 돌파해나가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앞뒤가 거꾸로 되어 있다. 지역만 놓고 본다고 했을 때도 현장을 조직하려는 계획과 의지가 있었는가를 분명히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시신사수투쟁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 이에 대한 평가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번 투쟁의 중요한 문제는 두산중공업의 현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였다. 장례식에 조합원 참석을 보았을 때 현장을 살렸다는 성과가 없다. 두산중공업 조합원들은 이번 싸움은 금속노조가 대신 싸웠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데 향후 실제 투쟁이 자신의 문제로 닥쳐왔을 때 나설 수 있겠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그 만큼 현장을 조직하는 문제는 절대적인 과제였다. 보일러 공장 조합원들이 자발적 시신사수를 보아도 초기에 현장을 치고 들어가서 붙으면 가능성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방향성 없고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후반기에는 금속
노조 위원장, 지부 및 지회 임원, 민주노총경남본부장 등이 역할을 분담하여 현장순회와 토론회, 아침조회를 실시하였으나 투쟁의 기조가 분명하지 못한 상태 속에서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열사 고 배달호동지 분신사망 대책위는 투쟁대책위로서 금속노조의 위상과 역할이 분명했음에도 대책위가 전국과 지역연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현장을 조직하는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두산중공업 현장과 조합원의 상태가 이번 투쟁의 한계였다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2월달 들어서는 투쟁전술의 배치가 없었으며 고작 노동부 집회가 고작이었다. 노동부집회에서도 그나마 집회 참석자들은 투쟁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대책위가 이를 자제시키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후 지역동지들은 '집회참석하기도 싫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사태로 이어졌다.
2월에 우리가 유리한 국면에서 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정권교체기라는 국면에서 정치권을 이용하려는 방식으로 나가게 되었다. 실제로 대책위 내부에서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희망적 기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한 방식으로 인해 특히 2월에 들어서서 폭로가 대책위의 주요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두산자본에 대한 폭로는 실제로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손배가압류에 대한 폭로는 그동안 노동자의 삶에 관심도 없던 거대언론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나아감으로 인해 손배가압류의 본질보다는 '어떻게 두산은 저렇게 비인간적으로 월급도 안줄 수가 있는가'는 식의 노동자 개인의 고통의 문제로만 국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열사의 분신으로 이미 손배가압류는 여론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책위의 중심과제는 여론화가 아니라 어떻게 싸움을 조직하느냐 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언론은 동정어린 시각으로 한 가장의 죽음, 경제적 궁핍, 한없는 슬픔 등을 다루었고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뿐이었다. 손배가압류가 노동자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노조활동의 자유, 파업권, 노동권을 얼마나 침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역대 정권과 입법부, 사법부에 의해 그리고 언론 스스로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여론은 3/12 노사합의안에 그대로 반영되어 개인가압류는 해지하였지만, 노조활동의 자유와 관련된 조합비가압류의 문제, 해고자복직의 문제, 부당노동행위처벌에 관한 문제 등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역으로 조합비 가압류를 인정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책위의 전술이 가지는 문제점이 그대로 합의안의 한계로 나타난 것이다.
노동부 특별조사가 시작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기자회견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두산중공업 현장에서는 관리자들의 통제가 이완되어 이를 계기로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이 계기를 살려서 현장조직화로 나가지 못하였고, 폭로와 고소고발에 그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현장투쟁으로 가자고 했을 때 '과연 그게 가능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을 조직하는 문제는 그 결과가 얼마나 위력적으로 되었는가와 무관하게 투쟁전술로서 충분히 가능했으며 이번 투쟁과정에서 분명히 성과로 남겼어야 했다. 대책위가 현장을 조직하지 않고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은 대책위의 조직운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책위는 참가조직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로 나가지 못하고 집행위 중심으로 나가게 되었다. 의사결정이 참가조직과 일선실무단위들의 의견수렴과 토론에 기초하여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정이 대책위 집행위에 의해 이루어졌다.
현장 투쟁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의사결정구조보다는 정치적 협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3/20 총파업은 조합원들의 찬반투표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다. 총파업의 조직화는 중앙에서 지침을 내려서 현장에서 투표를 진행한다고 그냥 통과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조합원들에게 총파업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을 시켜야하는 것이며 특히 작년 4/2 총파업의 철회는 조합원들에게 총파업을 설득시키는데 힘든 요소가 되어있다.
총파업을 가결시키는데는 현장에서는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있는 반면에, 타결과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언제부터인가 총파업 결정은 조합원이 하고, 파업중단과 철회는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은 단위에서 알아서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민주노조의 명백한 의사결정구조의 문제를 시간이 없다는 등의 실무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2) 연대투쟁에 대한 평가
비단 우리지역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마창지역은 금속노조에서 결정이 안되면 어떠한 사업이나 활동이 집행이 안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연대투쟁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자발적인 움직임이 축소되어가고 공식적인 지도부 지침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려 하며, 누구도 책임의 문제를 비껴가려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전에는 연대가 활발하던 것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합법화 과정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활동가를 키워내는 틀이 없어지고 교육도 본조에서 강사섭외까지 관장하여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운영위에서 결정나면 지침을 수행하는 것이 지역활동이 되고 있다.
2월25일 경남1지부 홍지욱 조직부장에게 용역깡패들이 폭행테러를 저질렀을 때 지역의 동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두산중공업 정문으로 달려왔다. 이를 계기로 지역의 연대를 살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지도부의 분명한 방침의 부재로 인해 정문과 중문을 부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본관으로 올라가면 본관이 작살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두번째 문제이고, 그 날 상황은 반드시 본관으로 올라가 본관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25일 상황에서 지역동지들은 두산자본에 대한 분노와 함께 투쟁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에 대한 분노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25일 대책위의 무력대응의 문제는 단순한 폭력의 문제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이미 열사의 죽음 자체가 경찰과 검찰을 비롯한 정권, 국회, 검찰, 사법부까지 동원된 총자본의 악랄한 보이지 않는 폭력테러에 의한 것이고, 두산자본은 2/24 노동부 1차중재안이 나온 후 대책위가 일정부분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폭력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두중지회든지 금속노조든지 이러한 상황에서 무력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항복선언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25일의 무력대응은 우리 사회속에서 총자본의 강요에 의해 노동조합이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고 필수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합활동과 연대투쟁의 일부분인 것이다.
2/25 당일 농성장은 많은 지역동지들이 자리를 지켰고, 다음날 아침 선전전에도 대개 참석하였다. 그러나 26일 항의규탄집회가 아무런 내용 없이 본관 앞에서 조용히 마무리 집회를 하는 것으로 끝나면서 당일 농성장은 그야말로 썰물이 빠져나간 것처럼 텅비어 있었다. 형식적인 철농과 집회로는 지역의 연대를 추동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확고한 투쟁의 기조속에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투쟁에 임해야 한다. 2/25 상황은 새로운 연대투쟁의 조건을 형성시켜 당시까지의 투쟁의 흐름을 바꾸어줄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그러함에도 대책위가 25일을 기점으로 하여 새로운 투쟁의 전선을 조직하지 않은 것은 전날 발표된 노동부 1차중재안에 대해 대책위가 조건부거부로 입장을 정리한 것과 직결되어 있다.
조건부거부로 정리한 상태에서 그것이 '조건부거부'인지 '조건부수용'인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향후 일정을 투쟁을 재조직하는 것으로 가기에는 상황이 이미 너무나도 확연한 마무리 협상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즉, 중재안에 대해 얼마를 더 따낼 것인가에 대한 국면이었으며, 대책위로서는 25일 상황이 더 확대되었을 때 그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27일 창원 상공회의소 앞 집회가 취소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대책위 평가초안에서는 25일 상황에 대해 '두산중공업 사태를 더 이상 끌고 가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무거운 과제를 정치권과 노동, 자본진영, 여론에 던져준 계기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1천결사대에 대한 평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1천결사대 취소에 대해서도 분명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책위 평가 초안에는 '가장 기본적인 노사자율협상이나 타결의 가능성은 60일을 넘기면서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노동부장관의 중재에 나서는 것을 누구도 마다할 사항이 아니었다. 노동부 역시 사전에 두산에 의사타진을 해본 결과 노조측과의 의견을 좁히거나 타결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재에 나설 계획이 없었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아무런 준비 없이 중재에 뛰어 들었고, 노동부 장관이 생각하는 타결지점은 노조가 생각한 것 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중재협상을 통해서 최대한 유리한 타결로 이끌어 가는
것이 현실적이었다고 판단된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중재협상을 임함으로서 그나마 합의안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고 본다'라고 평가를 했는데 이것을 '벼랑끝 전술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책위는 1천결사대를 통해 투쟁으로 상황을 돌파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교섭전술상의 압박용 수단으로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결사대의 조직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결사대의 위상과 역할, 활동내용 등에 대한 조합원 조직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인원할당식으로 지침이 내려왔다.이것은 중앙과 현장의 완벽한 괴리현상으로 현장에서는 1천결사대 조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중앙에서는 협상용 카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1천결사대투쟁의 조직화는 현장동력의 복구를 통한 연대투쟁의 위상을 가지면서 2003년 투쟁의 힘찬 출발점이 되었어야 했다.
또한, 작년 4/2 총파업의 철회에서 발생한 조직적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3/11 정오까지로 협상 시한을 분명히 정해 놓고 1천결사대 투쟁에 임했는데, 노동부장관이 내려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러한 원칙을 완전히 저버렸다. 지난 투쟁의 평가를 통해 정한 원칙을 스스로 간단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또한 11일 밤 아직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았는데 1천결사대는 이미 취소하는 것으로 연락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과연 그러한 결정을 한 단위는 어떤 단위인가? 앞서 말한 대책위의 의사결정 구조는 어떠했는가를 다시 짚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음날 12일 새벽, 협상이 결렬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갔는데 11일 늦은 밤 상황에서 과연 1천결사대를 취소한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타결되지도 않았는데 타결됐다고 보도한 연합뉴스나 타결되지도 않았는데 타결될 것으로 보고 1천결사대를 취소한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3) 교섭의 비민주성
대책위가 구성되고 대책위의 요구가 확정된 이후 교섭의 과정에서 요구가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 요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유가 되지 않았다.
대책위 구성조직의 각급 회의단위서는 물론이고 대책위 실무자선에서도 공개되지가 않았다. 특히, 노동부 1차중재안이 나오고 난 이후에 대책위 내에서 조건부거부로 정리된 이후부터 노동부장관의 중재까지의 시기에서 대책위 요구안이 정리되는 과정이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동부 장관의 중재가 진행되는 도중, 지역방송의 보도에 보도된 내용조차 실제로 대책위가 그런 요구안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초기 대책위 구성시 유족의 동의, 대책위, 지역, 지회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합의한다는 타결에 대한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역차원에서 협상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는 점과 노동부 1차중재안에 대한 조건부거부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부장관 중재 당시 내부 혼란으로 단일화되었지만, 협상에 있어 공식적 통로와 비공식적 통로를 동시에 가동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과연 비공식 라인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의 필요성은 있었는가? 비공식 접촉에서는 무엇을 다루었는가? 마찬가지로 비공식적 정치권과의 협상 등에 대해서도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에서 요구안의 확정과 교섭, 타결과정은 철저히 공개되어야 한다. 이번 대책위의 협상과정의 비공개는 민주노조의 원칙에 따르면 완전히 불신임 대상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4) 합의안에 대하여
합의안은 여론과 정치적 협상에 의존한 싸움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개인손배가압류는 해결이 되었으나 여타의 조합활동의 자유와 파업권, 노동권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대책위 평가 초안에서는 이번 투쟁의 성과로서 개별사업장에서 손배가압류를 철회시킨 것을 성과로 보면서 '쟁의권의 정치사회쟁점화와 제도개선'을 이끌어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방용석 전 노동부장관의 합법파업발언은 부하직원인 노동부 관료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했으며 이번 합의에
서 47파업에 대한 합법여부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단지 방용석 전 장관의 합법파업발언을 놓고서 '제도개선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대책위 평가초안은 '이번 열사투쟁을 통해 개별사업장에서 손배가압류를 철회시킨 것은 수많은 사업장의 손배가압류가 실제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철회시킨 것이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열사투쟁이라는 틀 속에서조차 개별사업장의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철회시켰을 뿐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번 열사투쟁속에서 한번의 토론회를 빼고는 전국의 수많은 손배가압류사업장의 연대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며 사실 이 한계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대책위 평가초안에서는 '해고자복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해고자 18명이 모도 부당해고자이고 특히 3-4명 정도는 이번 투쟁이 아니었어도 해고무효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복직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고자 복직의 문제가 투쟁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쟁점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마무리 시점에서야 논의가 되었다.
따라서 단지 합의안에 5명 복직을 명시했다고 향후 해고자 복직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을 부각되지는 않으며 '해고자 복직의 토대 마련'이라는 평가는 형식적 평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책위 평가 초안처럼 '비록 합의내용은 부족하였지만 그 동안의 투쟁으로 인해 현장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였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형식적인 문구에 불과하다.
과연 63일간의 투쟁을 돌아보았을 때, 어떠한 토대가 형성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되어야 한다. 두산중공업 현장동력의 문제는 일관되게 제기된 문제였으며, 타결에 즈음한 시점에서 진행된 두중지회 파업에 확대간부를 포함하여 60여명이 참석하였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투쟁을 계기로 소위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투쟁에서 가장 정치적 성과를 얻은 것은 바로 노무현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자신의 기반으로 한다. 자칫 배달호 열사의 투쟁으로 인해 그러한 정치적 성격이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폭로될 수 있는 위기에서 정치적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낙관론이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노무현 정권 하에서 민주노총이 단일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3. 향후과제
열사부인께서는 금속노조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다. 그렇다면 왜 그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는지, 왜 금속노조의 분명한 방향설정을 하지 못했지를 평가해봐야 한다.
대책위 평가초안은 '이번 투쟁을 계기로 인적 물적 집중력, 지속성, 그리고 조직력에 있어서 산별노조의 위력이 발휘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를 구체적 자료와 사실, 지역의 동지들의 평가를 가지고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책위 평가 초안은 '특히 두산중공업 지회의 경우 조합원들이 그동안 산별노조에 대하여 갖고 있던 불신감은 이번 투쟁을 통하여 상당부분 해소되었다고 판단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두중지회 조합원들이 금속노조와 대책위에 대해 이전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일부분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신 싸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 계급적으로 함께 단결하여 함께 투쟁하는 '산별노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열사투쟁이 끝나고 산별 확대보다 반대현상으로 가고 있다.
산별노조를 표방하지만 열사부인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금속노조 위원장이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위원장이 권한을 가졌다하더라도 지침을 하달했을 때 현장동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중앙에서도 힘을 쓸 수가 없다. 지금 상태는 현장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지침을 내리고 그
지침을 수행하는 것으로 활동이 되고 있다. 지금 구조로서는 지회는 중앙에 대해서, 중앙은 지회에 대해서 서로 핑계를 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장이 강화되어야 지역이 강화되고 지부가 제대로 설 수 있다. 각 지회가 어떻게 강화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지부와 지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속에서 사업의 성과가 축적되고 훈련되지 않는다면 지부를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이러한 속에서 금속노조를 현장동력에 기반한 노동자의 투쟁조직으로 새롭게 재편하여야 한다.
또한, 금속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사업장과의 연대의 문제에 있어 금속연맹과 금속노조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공동투쟁의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의견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현장에서는 현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자발적 모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시에 상호 연대와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한편 이번 투쟁을 통해 향후 민주노조운동이 노무현정권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기되었다. 열사투쟁을 평가해볼 때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분명히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협상으로 가는 판단의 근거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분명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노선에서 한 발치도 물러섬이 없으며 이번 열사투쟁에서 과연 정권이 허용해주는 선 이상을 넘어섰는지 평가를 해야한다. 이것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향후 5년간의 민주노총의 투쟁은 단일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전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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