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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그룹 노무관리 실태와 해고자 문제

자료/『현장에서 미래를』17(1997/01)
해고노동자 문제를 통해서 본
LG 그룹의 노무관리 실태와 부당노동행위 보고서
최형익(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세상에 태어나 보람된 일, 성취감을 느끼는 일을 많이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꿈을 다 접어두고 장렬히 산화하고 싶은 충동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황폐화되고 가정이 황폐화되어 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습니다."-이동렬(LG 전선 안양공장 해고노동자)
1. 들어가며
문민정부라고 자처하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93년 3월 10일, 당시 이인제 노동부 장관은 지난 5, 6공 군사정권 하에서 해고된 5,200여 해고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발표가 선언에 그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노동부 장관의 발표 직후 전교조 해직교사를 비롯하여 지하철, 현대, 대우, 삼성, 기아, 태평양 등 많은 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이 전체 또는 일부분 복직되어 정든 일터로 돌아갔다. 또한 96년 최근, 공공부문 노조들은 해고자 복직 문제를 임투과 연계하여 해고자 문제가 단체협상의 의제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해고자 복직 문제에 미동도 하지 않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국내 굴지의 재벌인 LG 그룹이다.
LG 그룹의 경우 해고자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무소불위, 치외법권의 영역인 양 행세하고 있다. 유독 LG 그룹에서만 해고노동자 문제가 개선은커녕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실제로 LG의 경우 1995년 8월 현재 53명이던 해고자의 수가 줄기는커녕 1996년 7월 현재 오히려 늘어나 67명에 이르고 있으며, 복직을 시킨 사례도 전무한 실정이다(『주간 노동자 신문』, 96. 5. 7. 참조). 그러나 더욱 악질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해고사유가 하나같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의 실현, 특히 노조활동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상 부당 노동행위와 노조파괴로 인한 해고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LG의 전근대적이고 악랄한 수법의 노동자 탄압이 결코 우연적이 아니며, 그룹 차원의 구조적이고도 치밀한 노무관리 아래 자행된 것이었음을 본 연구과정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자료 2
LG그룹의 노무관리 실태와 부당 노동행위 보고서
LG 그룹의 노무관리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는 달라서, 표면적으로는 노조를 인정한다
) 삼성의 노무관리에 대해서는 김기원, 「삼성재벌의 노사관계」,『이론』, 1995 가을, 새길, 제130∼152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 그러나 일단 노조가 들어서면 길들이기에 나선다. 노조를 노무관리의 일개 부서화하고 사용자의 구미에 맞는 어용노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며, 이러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가 들어설 경우 노조 자체의 와해를 위해 노조집행부와 노조에 적극적인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는 등 부당 노동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실례로, 길게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금까지 11년, 짧게는 올 96년 한 해에 해고된 LG 그룹의 해고자들의 경우, 모두 노조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LG 그룹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95년말까지 64명이었는데, 최근 LG 화학 청주공장 노조간부 3명이 추가로 해직돼 총 67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해고노동자들은 모두 노조위원장, 대의원, 노조간부 등으로서, 사규에 근거한 해고치고는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LG의 해고노동자들은 87년 이전 노조설립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들과 그 이후의 해고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은 87년 이후 민주노조 설립과 조합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활동했던 분들이다. 89년과 90년을 지나면서 민주노조 진영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LG 그룹에서는 기획조정실을 만들어서 노조탄압의 선봉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민주노조의 핵심인 노조위원장, 지부장, 노조 집행간부, 대의원 등을 무자비하게 집단 해고시키고 고발, 구속시켰다. 심지어는 노동조합 전체 간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노조활동을 극도로 억압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그룹 전체 해고자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64명
) 해고자 현황에 대해서는 LG 그룹 해고 노동자 복직 실천 협의회 간(刊), 자료집 『LG 그룹 해고자 현황과 그룹측의 입장 및 탄압사례』(1996), 본고 부록 <자료­1>을 참조하기 바란다.
에 이른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노조파괴와 활동억압의 일환으로 자행된 노동자 해고를 사업장 중심으로 먼저 살펴보고, 그러한 해고과정에서의 부당 노동행위의 유형을 사례 중심으로 고찰해보기로 하겠다.
2. LG 그룹 주요 사업장 해고자들의 해고사유
현재 LG 그룹 해고노동자 복직실천협의회에 소속된 해고노동자 단위사업장은 LG 전자(구 금성사) 창원 1·2, 구미, 평택 공장, LG 산전(구 금성 산전) 창원 공장, LG 전자부품(구 금성 알프스) 광주 공장, LG 전선(구 금성 전선) 안양, 군포 공장등이다. 먼저 안양, 군포 공장의 경우 해고자는 조용표 외 10명이다. 이들 중 조용표, 김옥수, 김원식, 허태홍, 도영호, 정원용은 LG 전선에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활동하던 중 사규위반 및 명령 불복종 등으로 해고되었다. 그리고 김종식과 김상호, 양송욱은 87, 88, 89년 각각 임단협 투쟁의 활동으로 구속·해고되었으며, 이동렬의 경우 89년 1월 노조 조사통계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부당한 출장명령을 거부한 뒤 명령불복종으로 해고되었다. LG 산전 창원 공장의 박원주와 성홍식은 88년 8월경 대의원으로 피선된 후 89년 임단협 투쟁을 주도하다 사측의 고소로 89년 5월경 폭력 및 업무방해 등으로 구속되었으며, 7월경에 단협투쟁(파업)과 관련하여 사규위반으로 구속된 상태에서 해고되었다.
또한 LG 전자 창원 1공장의 해고자는 이균하 외 3명이다. 이균하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89년 5월경 구속되었으며, 구속된 상태에서 89년 파업과 관련하여 사규위반으로 해고되었다. LG 전자 창원 2공장의 해고자는 하태욱 외 11명인데, 대부분 89년 단협 때의 파업과 관련, 사규위반으로 구속 중 해고되었다. 당시 사측의 고소로 무려 70명의 노조간부 및 노조원이 집단으로 고소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해고사업장은 LG 화학 청주 공장으로, 여기서는 신종 부당노동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91년부터 93년까지 청주지부 산업안전부장이던 임진용의 경우, 색상 구분이 잘 안되는 색약자이어서 근무가 불가능한데도 94년 12월 30일 회사측이 제조실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부당한 인사발령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작업거부를 하자, 사측에서 인사명령 및 작업거부로 1995년 2월 6일부로 징계·해고 조치하였다. 또한 대의원을 2회 역임하고 94년 청주지부 교육선전부장을 역임한 오현식의 경우, 95년 11월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자 사측에서 청주공장 모노륨 생산과에 근무하던 사람을 돌연 본사 C/S 팀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부친이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어서 가정형편이 어려움을 호소하였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측은 인사명령 거부로 1996년 1월경 징계·해고하였다. 노조 대의원을 3회 역임하고 96년에도 청부 지부 대의원을 맡았던 이강칠의 경우에는, 96년 4월 15일 청주 공장 공무실에 근무하던 사람을 업무 관련성이 전혀 없는 서울 본사 C/S팀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 이에 본인이 부당한 인사명령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휴직계를 제출하고 C/S팀으로의 출근을 거부하자, 사측은 1996년 7월 9일 무단결근 및 지시불이행으로 징계·해고 조치하였다.
LG의 이러한 무단적 노무관리에서 여성노동자들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과거 금성 알프스 전자로 알려진 LG 전자부품 회사는 노조 간부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87년 노동자 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를 세우고 조합원들의 전폭적인지지 하에 노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측은 단지 여성이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노조를 간섭하고 탄압해 오다가, 90년 임금 협상을 앞두고 지부장, 부지부장을 집시법 위반, 노동조합법 위반 등의 이유로 구속시켰다.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준법투쟁을 하며 맞서자, 또 다시 교육선전부장과 사무장을 구속시키고 40여명의 여성간부 모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정직, 출근정지, 해고 등을 자행했다. 해고자 9명 모두가 미혼인 여성간부였는데, 회사측이 여성 조합원들을 구타하고 실신시켜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광주 지역에서는 구사대의 폭력에 항의하는 집회가 계속되었다.
아홉 명의 해고자들은 출근투쟁을 하였고, 회사측은 경비들과 노무과 직원들을 동원하여 또 다시 폭력으로 대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게 되어 복직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다가, 93년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정부의 복직시키겠다는 발표에 힘입어 다시 복직투쟁을 전개하였다. 현재는 LG 본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하는 해고자도 있고, 결혼한 해고자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여성은 해고를 시켜도 결혼하면 그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무자비하게 해고시킨 회사측의 생각을 깨고, 이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LG에서 자행된 해고사례를 단위사업장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규위반과 명령불이행 등의 명령으로 해고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LG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점차 지능화·전문화되고 있다는 점을 잘 반영해준다. 사규위반과 명령불이행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이전에 노조파괴와 부당 노동행위가 진행되었고, 사규위반과 해고는 그러한 노무관리의 예정된 수순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탄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해고 노동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해고되었는지에 대해 수집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3. LG 그룹의 노동자 탄압과 부당 노동행위의 사례 및 유형
사례1> 노조 규약 개악을 통한 노동운동 무력화 기도:LG 화학
청주에 본조를 두고 청주, 울산, 나주에 5개의 지부를 두고 약 4,500명의 조합원으로 결성되어 있는 LG화학 노동조합은 1963년 5월 15일 창립대회를 치루고 결성되어 87년도 이전까지는 조합의 대표자를 간선제로 선출하다 87년도 민주화 대투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여 현재까지 12대 집행부 33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용자들은 과거 87년 이전에는 간선제로 당선된 집행부를 철저하게 지원하여 노조는 완전히 어용화되어 있었다. 87년도 이후 직선제를 쟁취하고도 사측의 치밀한 계획과 노­노 갈등에 의해 민주적인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88년도부터 90년도 까지 장기집권했던 김병욱 위원장이 재선되어 사측의 지원을 받으며 어용의 길을 걸었다. 91년도와 93년도에는 민주후보가 당선되었으나 사측의 분열전술과 리더십 부족으로 이용만 당하였다. 94년부터 96년에는 사측에서 지원한 어용후보가 당선되어 철저한 노조 길들이기를 하여, 96년 8월 28일 대의원­위원장의 이중 간선제가 전격 도입되었다.
화학은 87년 이후 무쟁의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대외적으로는 노사화합이 잘 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94년부터 LG 전자를 모델로 하여 간선제를 도입하겠다는 목표 아래 쟁의도 한 번 없던 회사에서 "1) 노조대표자에 출마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2) 전·현직 노조간부들에 대해 공장에서 본사로의 인사이동 명령을 하여 노조와 단절시키고, 3) 이러한 인사명령을 거부하면 무단결근 및 지시 불이행 등 사규위반으로 해고를 시키는 방법으로 노동자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LG 화학 노조 민주화 추진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대의원 대회 당시 부당 노동행위 현황에 대해서는 <자료­2>를 참조하라.
특히 LG 화학의 경우에는 이러한 탄압이 어용화된 노조집행부와 일부 대의원들과 회사의 공모 아래 추진되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사측은 96년도 임기 대의원대회에 개입하여,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파 쪽에서 출마하려는 조합원들을 회유·협박하여 출마를 저지하였고, 그래도 출마할 경우에는 모노륨 2공장 오현식의 경우처럼 입후보 등록 다음날 전격 본사로 인사조치 하였다. 그리고 타일부 김형오의 경우에는 입후보 등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공고에는 명단조차 나오지 않았고, 투표용지에도 단순히 찬반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간선제 도입과정에서는 해고와 강제 사직서 제출, 강제 직제간 전환을 통한 조합원 자격 박탈, 그리고 부당전직 및 노조지부장과 애로사항 면담 후 인사이동 조치 등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노동탄압 기술을 구사했다. 이와 같은 사측의 뛰어난 각본에 힘입어 노조집행부는 대의원 대회를 통한 대의원­위원장 간선제 도입이라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했다(『중부매일』, 96. 9. 3.;주간 『내일신문』(96. 9. 18.), 자료­3> 참조).
사측과 노조는 대의원 대회 당일에도 민주파 대의원의 참석을 저지하기 위해 협박·회유하였으며, 불응할 경우 교육 및 출장 명령을 내렸고, 거부하면 사규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교육 및 출장을 거부하고 대의원 대회에 참석하였다. 대의원 총인원 48명 중 상기한 이유로 28명이 참석한 대의원 대회 장소에서조차 대회에 참석하려는 민주파 대의원을 복지관에서 관리자들과 노조 집행부 간부들이 1차 저지하고 본관에서 다시 2차 저지하였다. 그리고 대의원대회에 일반 조합원들이 참관하는 것을 철저히 저지하고 그 자리에 사측의 중역들과 관리자들만이 대거 참석했다. 또 민주파 대의원 9명에게는 발언권을 전혀 주지 않았고, 규약이 변경되었으면 변경된 규약에 의거하여 대의원을 재선출하고 위원장 간선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의원으로 위원장 선거를 강행하려 하였다
) 자세한 내용은 『충청리뷰』(96. 10), '왜 그래요, LG! 노조 어용시비에서 사용자 지배개입 의혹까지 … ' 안의 '정도 경영'(제68∼71면) 기사를 참조하라.
그러나 이 날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규약개정이었다. 총 제적 대의원 28명 중 19명의 찬성 하에 단행된 규약개정은 "노조 위원장, 지부장, 대의원 간선제 도입"(21조, 42조), "임단협 교섭위원 위원장 지명"(51조), "운영위원은 위원장 재청한 자로 선출한다"(25조), "교섭권, 체결권은 위원장이 가진다"(51조), "선거규정은 운영위원회에서 제정, 개폐한다"(39조), "해고자와 지부가 없는 곳으로 인사이동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11조)를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제21조 대의원 간선제 규정과 제51조 임단협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원장이 갖는 소위 직권조인 조항이다. 먼저 제21조는 "조합대의원 선출은 지부대의원 중 지부대의원 대회에서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고 조합원 100명 단위당 1명을 선출하며 단수 51명을 초과할 시에는 1명을 초과선출할 수 있다. 단, 대의원의 총수는 2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료­4>). 이 조항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독소조항임과 아울러, 노동조합법 제20조 제2항 "대의원은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선거되어야 한다"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불법조항이다. 또한 제51조 위원장 직권조인 조항은, 87∼88 노동자 대투쟁의 최대 성과물이자 어쩌면 세계 노동운동, 아니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임단투 쟁의행위와 임단협 체결시 조합원 전체의 총의를 묻는 조합원 투표조항을 무화시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 폭거이다.
현재 LG 화학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당 노동행위는 사측과 노조 집행부의 공모에 의한 것이지만, 이러한 사태에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단호히 대처하지 못한 민주노조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거 이후 청주를 중심으로 LG 화학 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지금 현재 힘있게 투쟁하여 직선제 쟁취(『매일노동뉴스』 제1123호, 제11면)를 다시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례 2> 유기용제 솔벤트 5200 사용에 의한 산업재해 은폐기도:LG 전자부품
LG 그룹의 대표적인 부당노동행위로 우리는 유기용제 솔벤트 5200의 사용과 관련된 산재 은폐기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LG 전자부품(주) 경남 양산 공장에서 20명의 여성 노동자와 8명의 남성 노동자의 성염색체가 손상되고, 이중 특히 2명의 여성노동자가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중증의 진단을 받음으로써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내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대량 생산체계였기 때문에, 산재사건이 발생할 때에도 주야 맞교대에 하루 평균 11∼13시간씩 근무하였으며, 작업자의 휴가 시에는 다른 동료들이 철야와 특근 등으로 생산 부족분을 채워야 했을 정도였다. 특히 잔업과 특근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해서, 매월 생산실적 96∼99%의 성과달성을 자랑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업과정 중 부품세정 용제로 쓰는 솔벤트 5200+SPG 6AR의 혼합 침지액은 94년 2월 경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휘발성이 강한 붉은 색의 용제였는데, 사용 초기에 휘발 악취로 인해 갖가지 고통들을 호소했다. 호흡곤란, 현기증, 두통, 안구통증이 극심했다. 그런 점들을 관리자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건의하거나 호소하면 '일본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 오는 것인데 걱정말라. 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 근무시간에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반응하며 '주동자'를 찾으라고까지 했다. '주동자'라는 말에 움츠려진 분위기 탓에 작업환경 개선과 관련된 어떠한 건의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도, 작업자들은 후각의 마비증상 때문인지 그럭저럭 근무해왔던 것이다. 외부인들이 '작업장이 이렇게 공기가 안 좋은데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말할 정도로 작업장 내 환기는 최악의 상태였다.
또한 작업의 생산성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었으며, 94년 여름엔 ISO-2000 인증을 위해 작업장과 기계들의 청결이 강조되다 보니 밀폐된 공간 내에서 기계를 청소할 때면 침지액을 계속 겁 없이 사용해 댔다. 그해 여름 기상청 설립 이후 최고 온도가 연일 갱신되던 무더위 속에서, 고장난 환기시설과 가동되지 않는 국소배기장치 시설로 인해 가히 찜통같은 살인적인 실내온도로 많은 동료들의 건강에 이상증상들이 나타났다. 95년 1, 2월에 두 명의 동료가 재생불량성 빈혈로 회사를 그만두었고, 동료들도 온몸에 멍과 같은 반점들이 생기고 한 번 걸린 감기는 낫지 않았다. 이러한 자각증상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의 질병이라 여겼다.
95년 7월 7일 다섯 동료들간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생리중단과 생리불순 문제가 전체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제서야 94년 가을 이후 대개의 동료들이 갖가지 원인 모를 질병들에 시달려온 것이 알려졌다. 생리중단, 두통, 현기증, 지속적인 감기, 뇌기능 감퇴, 요통과 신경통, 말초신경염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온몸에 멍이들고 심지어는 고막이 터지는 등 실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자각증상들로 고생하고 있었다. 또 검사상 밝혀지지도 않는 이상증상들이 있었는데도 과로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들만 하니 벙어리 냉가슴 앓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95년 8월 10일 두 명의 노동자가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도 '불규칙한 습관 때문이다', '용제는 일본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으며, 용제의 성분분석 결과는 없으나 다른 것이 문제지 용제는 문제가 아니다. 작업장 전환을 해줄 테니 이야기하라'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최 과장이라는 자는 '미혼사원들이 술·담배를 많이 하고, 아침식사를 걸러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했으며,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는데 뭐가 걱정이냐, 일이나 하라'고 하는 등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여전히 헛소리만 해댔다. 또한 작업환경의 개선이라고는 전혀 없이, 여전히 유기용제에 노출된 상태에서 특근과 잔업, 철야를 강요받아야 했다(『집단중독 사건 자료집』, 「공청회」 부분 중 차미진의 증언, 제50∼53면, 자료­5>).
더구나 이러한 산재 은폐기도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할 노조위원장이 회사에 빌붙어 한몫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노조위원장은 95년 7월18일에는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사태수습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1) 잔업을 재개하라, 2) 치료 받을 병원을 물색하겠다, 3) 개인적인 질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서 사태의 본질을 호도했다. 또한 96년 3월 8일, LG 전자부품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건 공청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부착 여부에 대해 대책위가 노조에 문의했으나 위원장은 이를 외면했다. 이러한 노조의 비협조로 인해 피해 환자들의 실상과 현황을 알릴 길이 막혀있다 보니, 다른 현장의 동료 노동자들에게조차도 피해환자들의 실상이 잘못 알려져 있어서 피해노동자들은 이중의 격리감을 갖게 되었다고 토로했다(『집단 중독 사건 자료집』, 「보도자료」, 제111면).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요구에 대해 노조위원장은 '산재 신청을 안하는 이유는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이다. 산재에 맡기면 회사는 손뗀다.'고 하였다. 또, 생리중단과 관련해서도 '호르몬 치료만 받으면 깨끗이 해결된다', '알아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조금씩은 문제들이 있더라'고 하였다. 이런 식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여, 피해 노동자들은 심지어 "LG 전자부품 솔벤트 중독사건 시민대책위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현장에서 미래를』, 96년 4월호)였다고 한다. 환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개별 접촉을 통해 사태를 미봉으로 해결하려는 기도에 맞서서, 피해 노동자들은 95년 12월 LG 전자부품 솔벤트 중독 피해자 협의회를 결성하고 시민대책위와의 공조 아래 힘있게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96년 3월 6일에는 시민대책위 33개 단체들과 함께 300명 이상이 참석한 공청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러한 투쟁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유기용제 솔벤트에 의한 중독을 직업병으로 인정(『부산일보』, 96. 1. 12.)받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96년 6월에는 솔벤트 5200의 주성분인 2­브로모프로판에 대한 동물실험 결과 인체의 생식 및 조혈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노동부 산하 한국 산업 안전공단이 발표함으로써, 산재 투쟁에 새로운 전기를 이루게 되었다(『부산일보』, 96. 6. 4., 자료­6>).
그러나 이러한 직업병 인정과정에서 LG 부품측은 은폐기도(『국민일보』, 95. 8. 20., 자료­7>)를 계속하였다. 직업병 판정이 나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을 솔벤트 용제에 계속 노출시킨 채 작업을 강행(『부산매일』, 95. 8. 20., 자료­8>)하는 등, 몰지각한 행위를 서슴지 않아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자민련의 정우택 의원은 96년 국정감사에서 LG 화학이 산재 사실을 은폐하고도 무재해 5배 달성장을 수여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LG 에서는 산재 은폐도 노경 협력사항에 해당되느냐'고 힐난했다(『매일 노동뉴스』 1118호, 96. 10. 23., 제8면).
사례 3> 노조 확대 간부회의 및 대의원 대회 방해 사례:LG 전선
LG 전선 노조의 경우에는 95, 96년 두 해 동안 정기, 임시 대의원대회 등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이 사측의 치밀한 방해공작으로 무산되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방해는 95년 2월 12일 사측의 조장제도를 비롯한 신인사제도 저지를 위한 '확대 대의원, 간부 비상 연석회의'를 사측이 무산시키려 기도한 것이었다. 노조 노보에 따르면, 회의 방해과정에서 사측은 전 부서 관리자를 동원하여 조합간부, 대의원에게 회유, 협박, 납치를 자행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노보 『깃발소식』 제9호(95. 4. 4.) 참조). 심지어 조합간부의 집에 부서관리자가 술, 음료수, 안주를 사들고 쳐들어와서 회의 불참을 종용하고 '노조활동을 하면 어떠 어떠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기도 하였다는 것이다(동 노보 제8호(95. 3. 27.) 참조). 이날 회의는, 현 노조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사측에서 '성과급 차등지급'과 '조장 제도'를 일방적으로 도입한 데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한편, 노조측은 2. 12. 조합회의 방해사건과 관련하여 경기도 지방 노동위원회에 사측을 상대로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서'( 자료­9>)를 1995년 3월 16일 접수시켰고, 96년 6월 27일 현재 5차 공판까지 열렸다. 5차 공판에서는 피고측 증인 안양 공장 노경 개발실장 주종명 씨에 대한 원고(노조)측의 심문이 진행되었다. 피고측 증인은 "조장제도는 새로운 직책을 만든 것이 아니고 기존에 실시하던 제도를 확대 실시한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징계규정에는 징계 8급에 경고장 발급이 징계의 종류로 분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장 발부는 징계가 아니다"라며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하였다(동 노보 제71호(96. 7. 2.) 참조).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회사측의 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5년 3월 24일 조합원의 생존권이 걸린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하는 매우 중요한 임시 대의원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사측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일부 대의원들은 ― 대의원 대회 동안 일부 대의원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구미 지역 대의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매우 조직적으로 대회장을 이탈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밝혀졌는데, 구미 노경과 차장과 대의원 9명이 모 음식점에서 10시 30분부터(음식점 종업원 진술) 술과 음식을 시켜 놓고 먹고 있는 것을 조합 상근간부가 목격한 것이다. 음식대 금 16만 7천원을 노경과 직원이 지불하는 것도 목격하였고, 카메라와 비디오에 담기도 하였다(동 노보, 95년 제 8호 제4면 참조) ― '대회장소가 비좁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의원 대회를 무산시켰다. 96년에도 일부 대의원들이 임원 인준건과 관련하여 조직적으로 대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함으로써, 임단협을 위한 임시 대의원 대회까지 무산시켰다. 이들이 얼마나 조합원의 대의를 왜곡시켰는가 하는 점은, 무산된 대의원 대회를 대신하여 96년 3월 20일 개최된 임단협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임단협 요구안이 89.2%, 교섭위원 인준이 86.9%라는 매우 높은 찬성율을 얻어 총회안건이 가결된 것이다.
사측의 방해 메들리는 96년 임단투 국면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구미 지부의 경우를 보면, 6월 27일 권선사업부에서 조합원 신분의 반장들이 쟁의결의가 결정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파업을 하면 안 된다'라는 요지의 서명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구미 지부는 성명문을 통해 "이러한 반장들의 행위는 조합원 동지들의 분노를 더 살 뿐이다"라고 강하게 질타하였다. 그리고 '사측의 책임 있는 사람이 공개사과하고 서명을 즉각 중단하고 명단을 소각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권선사업부 관리자들의 관리능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하였다(동 노보 96년 제71호 참조). 사측은 또한 7월 12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동 노보 참조).
그러나 이러한 사측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해 노조는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조는 동 노보 제75호(96. 7. 10)의 집중분석 '사측의 의도적 탄압행위, 무엇을 노리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금 사측의 임단협 파괴공작이 비정상적인 사람의 치마바람처럼 온 공장에 날리고 있다.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의 목적은 투표불참을 강제하여 노조의 정상적인 결의행위 자체를 무산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투쟁을 통해서는 한 가지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향후 노사관계에서 현장을 힘으로 장악하고 앞으로 말 잘 듣는 노조를 양성하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사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조차도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의 안을 제시해 놓고, 노조더러 임단협을 끝내는 협상을 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사측의 또 다른 목적이 노조에 싸움을 거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노조를 궁지로 몰아넣고 성과를 하나도 내지 못하는 집행부 이미지를 심어주고, 집행부를 무력화 시킨 후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몇 가지 안을 더 제시하여 '임단협은 사측에서 알아서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조합원들에게 심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이러한 과정에서 회사의 말을 듣지 않고 부당 노동행위라고 주장하거나 노조활동을 활발히 하는 자에게는 사규위반 = 해고만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러한 자는 다시는 현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것, 바로 이러한 수순이 LG 그룹의 노­경협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4. 노조탄압과 해고노동자 문제의 성격:LG 기조실 간(刊), 『노무관리 자료집』(1988. 2. 15)의 분석
지금까지 우리는 LG 그룹 해고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면서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LG 그룹의 부당 노동행위와 해고 노동자 문제는 대개 어용노조와의 협력아래 자행된다는 것이다. 즉, 노조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노조를 통한 분할­지배 전략(divide and rule)이 구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이미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하여 노조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검토해 본다. 가) 노조견제 세력의 구축. 강력한 노조가 탄생하면 창구일원화로 일사분란한 노조접촉에 편리하고 실익이 있을 수 있으나, 한편으로 경직성과 강력한 요구사항 위주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발생의 예방을 위해 '대의원 선거 낙선자, 현 집행부에 대한 불평자' 등을 포섭, 노조에 대한 반대세력을 구축해야 한다(제148면, 자료­10>)." 그러기 위해서 "노조는 세력을 너무 키워서도 안 되고 약체화해서도 안 되므로 조정가능한 범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제154면)." 만일 노조 본조의 어용화 기도가 실패할 경우에는 LG 화학과 LG 전선의 예에서처럼 지부를 어용화 한다든가, 아니면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연결하는 대의원들을 회유하여 사측의 의도를 어떻게든 관철시키는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되는 것이 바로 인간화 경영과 한 쌍을 이루는 공작적이고 음모적인 노무관리 체계이다.
『자료집』은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근로자들의 본질적인 만족의 증대는 그들을 '인간'으로서 인정해주고 '우리' 의식을 갖게 해주며 더 나아가서 성장감과 성취감을 갖도록 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 이를 위해 기업이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갖추어야 한다."(제20면) 그렇다. 정답은 '인간중심, 정도경영'이다. 이러한 경영방침을 실현하기 위해서 친목회, 향우회, 동문회, 입사동기회, 군동기모임(제179면) 등의 비공식 그룹(informal group)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해서 "재정지원 등 적극적 지원으로 사원 개인간 유대를 강화하여 인화기반의 구축을 유도"(제66면)한다. 더구나 이러한 "조직 내 비공식 그룹(친목, 취미활동 전개, 단체)의 적극적인 후원은 의사소통의 통로를 다원화하여 구성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조직목표에 대한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제110면)하기 위한 취지도 아울러 갖는다. 그러나 인간경영의 실현을 위한 비공식 집단이 허울을 벗으면, 사측 정보조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본색을 드러낸다. 『자료집』을 보자.
"라. 노조 및 현장사원의 동태파악을 위한 정보망 구축. 노조 및 현장사원의 동태파악을 위한 정보망 구축은 노무관리의 필수적인 업무이다. 이것은 주시할 필요가 있는 사원에 대해서는 사내뿐만 아니라 사외활동에 대해서도 소상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보망 구축에 있어서는 2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내 사원을 정보요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예) 운반원 ― 현장 이동작업자이므로 정보수집 용이.
인적, 취미동호인, 동향인 ― 확실한 정보수집이 가능.
신입사원 ― 의도적인 채용이므로 정보수집 가능.
둘째, 사외 정보요원 확보 활용방법이다.
요주의 대상자를 선정하여 추적정보 수집.
예) (1) 주의대상자 주거 인근지역의 가게, 술집의 종업원 포섭.
(2) 회사 주위 음식점 요원 확보 정보수집 가능
(3) 공장 출입의 납품업자에서도 정보수집 가능
(4) 사내 인포멀 그룹 내 정보요원을 확보"(제151면, 자료­11>).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소위 비공식 정보망 운영방안의 기본원칙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가. 기본원칙. # 노무담당자 직접관리(중간보고 매체 없음. # 점조직으로 운영(정보는 신분노출 절대방지). # 구두보고 원칙. # 정보원 관리 신중(신원확인 및 적절한 보상)"(제179면, 자료­12>)
) LG는 심지어 극우조직인 반공연맹까지 자신의 노무관리에 활용하려는 제3자개입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공장장은 반공연맹 지부장이며, 부지부장은 인사부장, 그 산하에 정보부, 공안부, 조직부, 교육홍보부를 두고 있다(『자료집』, 제277면, <자료­13>).
또한 LG는 현행 노동법에서 금하고 있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노무관리에 활용하였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부당 노동행위를 자인하고 있다.
"동향일지 작성(럭키 울산):공장 내 전 기능직을 대상으로 노사분규시 가담정도 및 가입 인포멀 그룹, 성격, 교우관계 등을 파악하고 강경파 List를 작성하였으며 그중 특히 주동급 인물에 대해서는 따로 동향일지를 작성하여 그 부서장을 통해 주 1회 이상 수시로 동향을 파악하고 있으며, 문제점 발견시 즉각 대처하고 있음."(제185면)
두 얼굴의 쌍둥이 LG 경영진의 야누스적 행태는 계속된다.
"경영관리자들이 지향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정립과제를 최우량 노사관계의 구축이라고 집약했을 때 최우량 노사관계의 지도이념은 … 노동자측에서는 분배의 공정화를 포함해서 '인간성' 및 '민주성'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대의 자본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은 근로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일실(逸失)하지 않는 가운데 축적된 부를 '配分的 正義' 원칙 하에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자료집』, 제186면)
그런데 갑자기 다음과 같이 태도가 변한다.
"향후 노사전망은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 물결에 의한 근로자 및 노조의 인간화 요구 및 경제적 배분요구가 강화될 전망이며, 특히 좌경의식화 세력의 현재화 및 실질적 대두가 예견되는바 종업원의 건전한 생활보장과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 풍토 개선 및 불순세력에 대한 기업내 대응조직 활동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제187면)
자신들이 민주성과 인간성을 말하면 건전하고, 노동자들이 말하면 불순하다는 식의 발상에는 노동자를 단지 이윤창출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불순한' 기업 논리가 깔려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고방식과 노무관리 방식을 LG 그룹이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LG 그룹의 부당 노동행위와 그에 따른 해고노동자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5. 결론에 대신하여:대기업 노사관계와 해고노동자 문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해, LG 그룹의 해고노동자 문제는 전근대적 노무관리 과정에서, 즉 사측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압살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현장에서 격리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음습한 노사관계의 현실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LG 그룹의 노무관리는 찬양 일변도이다. 실제로 96년 환경노동위 노동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LG 그룹 내 LG 정보통신이 95년 대기업 부문 노사화합 대상을 수상하였고, 노동부 산하 한국 노동교육원 노사협력 센터가 수집한 사례집에서 LG 전자의 노사관계가 노사협력 모법사례로 선정되었다. 『매일노동뉴스』 1118호는 「'초우량' LG, 그들만의 '정도경영'」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노동교육원이 발행한 '혁신하는 자만이 미래를 연다'는 제목의 '노경혁신 사례'는 LG 전자를 '공동체적 노경관계를 구축하여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이 되었다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런 류의 치사는 정부관계자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700만원의 예산으로 약 2000부를 발행하여 기업과 언론사 등에 무료배포한 이 책에는 LG 전자의 '노경협력' 사례 4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노조가 앞장서 에어컨 판매에 나서고 바뀐 회사 로고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벌인 사례, 'LG 사랑회'라는 사원 부인 모임 등을 통한 '家社不二' 운동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또 일반소주에 勞經不二酒라는 딱지를 붙여 노조와 회사의 간부가 상견례를 갖는 회식장에 내놓았더니 모두 그 술만 찾더라는 '노경불이주를 아시나요', 임단협 교섭장에 '신뢰', '영원한 사랑' 등의 꽃말을 가진 각각의 꽃을 앞에 놓고 회장의 말씀을 교양강좌로 들으며 교섭을 시작한다는 사례는 이 회사의 노경협력이 평범한 수준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게 한다."(『매일노동뉴스』 1118호, 제5면)
다시 말해서 LG의 노사관계와 노무관리는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노사관계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한 노조관리를 통해 노조를 기업 내에 묶어두고 소위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LG의 노사관계가 다른 기업도 준용해야 할 동시대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으므로, 현재 LG의 노무관리 기법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LG 해고노동자와 부당 노동행위의 차원을 넘어 전체 노동자 계급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서의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사용자의 입장에서 기고한 글인 「價値를 創造하는 LG 新勞經文化」(이하 「신노경문화」)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노경문화」는 용어 사용에서부터 남다르다. 「신노경문화」에 따르면, "노사라는 표현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수단으로 삼아서 목적을 달성하자는 사상이 깔려있고, 지금과 같이 고도화된 시장경제를 중심으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은 일정한 목적을 가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뚜렷한 역할분담은 생겨나지만 인간적으로는 대등한 관계에 있으므로 이것을 어떻게 협조적, 생산적으로 조화시킬 것인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고 한다. 또 이를 위해 "노조의 역할을 이해하며 근로자와 경영인이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협력하여 참여의 제 역할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자는 노경관계를 만들어 내었다"(제6면, 강조는 인용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경관계는 "단순히 용어의 변화가 아니라 질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동체적 노경이라는 신노경문화를 창조하게 되는 기반 및 추진력이 되었다"(제6면)고 설파한다. 노경관계가 이렇게 심오한 뜻을 가지므로 이제 우리는 '노사관계'라는 말조차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사관계 개혁 특별위원회'도 「신노경문화」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수단으로 삼아서 목적을 달성하자는 사상"이 깔려 있으므로 실패한 것 아닌가. 「노경관계 개혁 특위」라고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나 이러한 시답지 않은 용어변화 그 자체에 눈을 뺏기지 않는다면, 「신노경문화」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이 '노경관계'라는 용어는 '질적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질적 전환'이 한국 노동교육원의 연구위원 및 관변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권장하는 '협조적 노사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신노경문화」는 이것을 '공동체적 신노경문화'라는 신조어로 정의하며, 그 목표를 "첫째, 노경 partnership의 강화", "둘째,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의 정착", "셋째, 정도경영으로 세계화 선도(제7면)"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 살펴볼 점은 두 번째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의 정착이다. 「신노경문화」는 "조직과 제도개혁 추진"을 통해 "인적 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생산적으로 조직하였다"(제7면)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붕붕데이(상대방을 칭찬하는 날), flexible time제, two-to time제(오전에는 기획 관련 업무, 오후에는 기타 업무를 하는 업무능률 향상제도), 반일 휴가제 등이 유연한 조직문화로써 창의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고, 발탁승진 및 능력주의 처우 보상체계, 사내공모제 등은 HLP(high performing leader)를 육성하는 제도이며 고충처리 전용 전화 운용, speak up 제도, 구로 공장의 소사장제(현장 책임사원에 사장 직위 부여), 구미 공장의 뚝딱 시스템(다품종 소생산을 위한 고능률 생산 시스템), 평택 공장의 바로바로 시스템(고능률 자율생산 시스템) 등은 인적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어 자율경영팀으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고 있다."(제7면)
간단히 말해서, 「신노경문화」가 부르짖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란 "발탁승진 및 능력력주의 처우 보상체계"와 "HLP(high performing leader)"와 "소사장제" 등 직반장 체계의 완비를 통해 현장 통제력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측의 '공동체적 신노경문화'가 현실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LG 전선(노조위원장 장건)의 소위 '신인사제도'이다. '신인사제도'는 '성과급 차등지급'과 '조장제 도입'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사측의 입장인 「신노경문화」에서는 "조직과 제도 개혁 추진을 통해 인적자본의 참여와 협력을 생산적으로 조직"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혀 상반된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LG 전선 노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합원들은 사측의 탄압에 강력한 대응을 원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금 사측의 신인사제도 도입에 따른 불안감과 고용문제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번 집행부는 위원장, 지부장 모두가 신인사제도 저지를 최고공약으로 걸고 당선되었다. 이런 조합지부의 일체감으로 인해 사측은 집행부가 강력한 집행체계를 잡기 전에 성과급 지급보류 공작과 차등지급을 일방적으로 실시하고 신인사제도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조장제도를 도입하여 집행부를 초기에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집행부는 희생을 각오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런 사측의 노조 무력화 기도를 직시한 조합지부에서는 군포지부 성과급 차등지급 조합원 보고대회, 여의도 항의방문 투쟁 등을 벌여 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동들은 집행부가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
집행부는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 희생을 감수하여야 한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집행부에서는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더욱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장건 위원장의 행동신조인 '필사즉생'의 각오로 사측의 교묘하고 지능적인 노동조합 말살책동을 박살내고 신인사제도 도입 기도 분쇄와 성과급 차등지급 철폐, 조장제도 철페를 위한 투쟁의 길은 지금보다도 더 험한 가시밭길인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더욱 힘차게 전진하는 집행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LG 전선 노보, 『깃발소식』 제10호(1996. 4. 11.))
이러한 노조 집행부의 의지는 근거 없는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조합원들의 설문조사에 기반하고 있다. 소위 신인사제도라고 알려진 두 가지 조치에 대해서 일반 노조원들의 절대 다수가 반대했다. 노조가 신인사제도와 관련하여 실시한 조합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 다수가 임금격차가 커지며(92.9%), 고용안정이 침해당하며(90.8%), 노조가 무력화될 것(90.7%)이라고 답했다(동 노보 제8호(1995. 3. 27.);자세한 내용은 자료­14> 참조). 또한 실제로 조장으로 임명된 일부 조합원들은 "조장 임명장을 반납하거나 찢어버리는 일까지 발생"(동 노보 제8호(95. 3. 27.))했다고 한다.
LG의 '공동체적 신노경문화'가 표방하는 목표나 그것의 일환으로 실행된 '신인사제도'는, 대기업에 열풍으로 밀어닥친 소위 '신경영전략'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신경영전략이 왜 새로운 전략인지, 그리고 노사관계가 아니라 '신노경문화'에 왜 새로울 '新'이 들어가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현대중공업 노조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현대 중공업을 사례로 하여 신경영전략을 장기간에 걸쳐 심도있게 추적·분석하였다. 그 결과물인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1995)에 따르면, 신경영전략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첫째, 개별적 노사관계 관리의 정비와 체계화라는 성격을 지닌다. 둘째,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경쟁하게 만들어 서로 통제하게 한다. 셋째, '강압적 통제'와 '유화적(부드러운) 통제'를 동시에 구사한다. 그리하여 넷째, 밑(현장)에서부터 노조를 무력화시킨다. 다섯째, 극단적인 노동강도와 효율적 노동력 이용을 통해 최대한의 노동력 지출을 뽑아낸다.(『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 제16∼18면 참조).
정리하면, '신경영전략'은 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와해시키고 현장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을 높여서, 궁극적으로 노조를 회사에 종속시키는 '협조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LG 그룹의 경우에는 약한 노조를 바탕으로 소위 '신경영전략'을 성공적으로 이식시켰기 때문에 자본의 귀감이 되었다. 그에 따라 영광에 빛나는 95년 노사화합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노사협력 사례집에 일순위로 들어간 것이다. 그다지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신경영전략 및 그와 관련된 정리해고제와 변형시간 근로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이 민주노조의 적절한 대응책 없이 그대로 관철될 경우 노동자 계급에게 닥칠 현실은 끔찍한 것이다. 노동강도를 가일층 강화시켜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며, 신인사제도에 관련된 앞서의 설문조사가 잘 보여주듯이 동료 노동자들간에 경쟁을 격화시켜 고용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를 경쟁력 강화와 '가치창출'을 통한 이윤 제고라는 기업논리에 맹종하게 하여, "하는 일이 재미있고 이기는 일이 하고 싶어 출근하는 삶터를 만들어 영원한 승리자가 되고자"(「신노경문화」, 제7면) 부당 노동행위도 감수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쓰다 녹슬면 버리는 고철기계처럼 산재와 직업병으로 시들어진 노동자를 폐품 처리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 "어떻게 하루가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퇴근 뒤 쓰러져 잠만 자 가족들로부터 '통나무'란 핀잔까지 듣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산재사고가 크게 늘었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들리고 직업병도 심각하다는데 이러다 큰일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태산같다. 그러나 고충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다. 같은 작업반 동료도 이제는 경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상대평가와 다름없는 반장의 고과점수에 따라 호봉승급의 차이가 나게 되어 있어 동료를 밟고 서지 못하면 내가 밟히게 된다.
올해 들어서만 5백여 명의 동료들이 이곳을 떠났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퇴근 뒤 동료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그 날의 피로를 달랬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한숨만 나온다.(중략) 집회에 참가하려 해도 큰맘을 먹어야 한다. 반장에게 찍히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나 하나 때문에 반의 실적이 떨어져 도매금으로 고과점수에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반장과 동료들의 눈총이 따갑다. 이것은 '신경영전략'이 성공적(?)으로 도입된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생각이다."(『한겨레 21』(1995. 7. 20., 제68호), 「대우 조선 '옥포의 눈물':고속성장 이면에 고단위 노동통제. "희망90s에 절망"」)
노사협력 대상에 빛나는 LG가 동시에 "LG 화학 청주 공장 등 49곳 산재은폐"(『한국무재해신문』 제89호, 제1면) 등 이 분야에서도 제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앞으로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과 신경영전략의 정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해고 노동자 문제가 현재처럼 LG나 일부 기업에 집중된 부당 노동행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제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민주노조 전체의 사활이 걸린 대안책이 시급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기원, 「삼성재벌의 노사관계」, 『이론』, 1995 가을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노무관리 자료집』, 1988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 『매일노동뉴스』 제1098, 1106, 1108, 1118, 1123, 1124흐
·현대중공업노동조합·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현중노조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보고서 요약집』, 1995
·LG 그룹 해고노동자 복직 실천협의회, 『LG 그룹 해고자 현황과 그룹측(계열사)의 입장 및 탄압 사례집』, 1996
·LG 전선 노조회보, 『깃발소식』, 1995, 1996
·LG 전자부품(주) 솔벤트중독 피해자협의회, LG 전자부품(주) 노동자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태해결과 모성보호,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LG 전자부품(주) 노동자 유기용제 집단중독 사건 자료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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