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세미나 2009-2

 

자기조정 시장의 몰락과 부활

 

자본주의 사회의 몰락이 매우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심하기 어렵게 한다.

(Schumpeter,1943:120)

슘페터가 이러한 생각을 꺼내놓았던 1940년대, 당시의 수많은 서구 지식인들에게 자본주의는 장밋빛 미래가 아닌 꺼져가는 19세기의 유물이었다. 이 시기에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을 펴냈고, 자기조정시장의 몰락과 체제의 급격한 전환이라는 밑그림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사회 전환의 핵심에는 시장 유토피아의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내었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슘페터의 성급한 판단만큼이나 오류로 가득 찬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장경제체제는 굴러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고전적 자유주의의 화려한 재탄생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말이다.

나의 폴라니 읽기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과연 폴라니는 무엇에서 자기조정시장의 몰락을 보았고, 그 몰락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았는가.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저술 이후 자본주의체제는 폴라니의 말대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자기조정시장의 메커니즘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여전히 자기조정시장은 몰락의 징후를 스스로 내재하고 있는가.

 

1. 자기조정시장이란 무엇인가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폴라니,2009:92)

 

'시장경제란 오로지 시장만이 통제하고 조정하며 방향을 지도하는 경제 체제이다.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질서는 이 자기조정 메커니즘의 손에 맡겨진다. 이러한 종류의 경제는 인간이란 그의 화폐 수익의 극대화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행위하게 되어 있다는 예측과 기대에서 도출되어 나온 것이다. 이는 일정한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재화의 공급량이 그 가격에 대응하는 수요량과 일치하는 시장을 가정한다.'(폴라니,2009:238)

자기조정시장은 고전파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어떠한 외부의 개입이나 통제 없이 공급과 수요의 원리에 의해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시장의 메커니즘에 다름아니다. 폴라니가 자기조정시장을 그 핵심화두로 삼고 있는 까닭은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주류경제학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즉, 18세기라는 특수환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그릇되게 읽어내었고, 그로 인해 자기조정시장의 환상을 사회 속에 이식해놓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혼란스러웠던 것은 자기조정시장은 실재한 것인가. 혹은 이데올로기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여지듯이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아이디어가 유토피아라는 의미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과 같으며, 결국 존재하는 것은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인용을 본다면 이러한 혼란은 다소 정리가 된다.

'여기에서 실로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고립되어 따로따로 존재하던 여러 시장을 뭉쳐 하나의 단일한 시장경제로 만들고 또 규제를 받던 시장을 뭉쳐서 자기조정 시장으로 만들어낸 과정이다. (중략)여러 시장이 서로 맞물려서 엄청난 힘을 가진 단일한 자기조정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은 그 여러 시장 속에 내재해 있던 자연적 경향이 마치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저절로 불거져나와 생겨난 것이 아니다. 기계의 출현이라는 사건도 지극히 인위적인 사건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나타난 상황에 대처하려고 그 이상으로 지극히 인위적인 자극제를 사회라는 몸체에 억지로 주입하여 생겨난 결과가 자기조정시장의 출현이었던 것이다.'(폴라니,2009:210)

분명한 것은 자기조정시장이 결코 인간의 본성, 즉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출현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인위적인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폴라니가 이 책 전반부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노동․토지․화폐를 상품화하게 되었는가이다. 즉, 공장제의 발전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산업 생산은 이윤을 목표로 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시장은 全사회를 자신의 운동에 복속시키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흐름, 특히 스피넘랜드법의 출현과 소멸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의 상품화 과정에서 고전파 경제학의 아이디어는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나갔다. 결론적으로 나의 혼란은 맑스의 언어를 빌자면,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두 측면의 상호작용이었던 것이다.

 

2. 자기조정시장의 몰락

 

이제 본격적으로 폴라니가 본 자기조정 시장의 몰락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자.

폴라니에 있어 19세기 사회사는 이중적 운동의 결과였다. 시장 메커니즘을 노동․토지․화폐라는 산업 요소들에까지 확장하게 된 것은 상업사회라는 틀에 공장제를 도입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노동․토지․화폐는 상품화될 수 없는 특수한 특성을 가진 요소였고, 이러한 허구적 상품을 자기조정 시장의 메커니즘에 종속시킴으로써 체제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초하고 있었다. 그 핵심에는 사회의 이중적 운동, 즉 노동․토지․화폐에 대한 상품화와 바로 그 상품화에 따른 사회적 재난에 근거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있다.

'경쟁적 개인들이라는 원자 대신 경쟁을 배제한 집단으로서 뭉친 인간과 자본의 집단들과 결사체들이 들어서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시장의 여러 가격들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그 속도도 늦어졌다.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이 심각하게 훼방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시장의 여러 가격과 비용 구조가 서로 조정되지 않은 상태로 잔존하면서 경기 침체도 빨리 회복되지 못한 채 오래 계속되었으며, 쓸모가 줄어든 장비들이 이러한 조정과정을 통해 퇴출되지 않고 계속 생산과정에 남아 있게 되었기에 수익을 낳지 못하는 투자도 신속히 청산되지 못하게 되었고, 가격과 소득 수준이 서로 제대로 조정되지 않았기에 사회적 긴장이 야기되었다.' (폴라니 2009: 535)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화될 수 없는 것, 즉 상품화에 저항하는 것, 예를 들면 노동과 같은 산업 요소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사체를 조직하였고, 시장 가격은 스스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된다면, 그 모순이 사라지는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논리와 큰 맥락에서 일맥상통한다.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게 주면 균형을 찾아 모두에게 효율적이고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을텐데, 누군가 독점하고 개입하여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의 논의는 이와 다르며 오히려 이를 비판하고 있다.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은 그 자체가 파괴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사회는 스스로의 보호기능을 작동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필연성이 그것이다. 즉, '역사의 침로를 결정한 것은 시장 사회에 내재한 여러 경향들이었'으며, '자기조정이 망가진 것은 보호주의의 결과'였다. 그 결정적 논의는 금본위제와 각국의 중앙은행 체제의 모순에 대한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각국은 전전 체제로의 복귀를 위해 무너진 금본위제를 복원하였다. 그러나 금본위제 하에서는 통화가치 안정성에 대한 고려 때문에 실업에 대한 정책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실업사태는 체제 내의 긴장을 발생시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신용을 팽창 할 경우 통화가치의 하락을 가져와 금본위제의 고정 비율로 회복하라는 압력을 겪게 된다. 당시 각국은 금본위제에 대한 신앙적 지지와 불안한 시장경제 상황 속에서 자국경제가 휘말려들어갈 것에 대한 공포가 중첩된 상황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경제환경 하에서 각국 정부는 대내균형을 주요 관심사로 여겼으며, 부분적으로 그들의 경제를 세계로부터 차단시킴으로써 대외균형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였다. 국제협력이 잘 이루어졌다면 긴장은 지속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끝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시장제도였든 금본위제가 해체되자 마침내 여러 나라 내부에 잠복해 있던 긴장들이 터져 나왔고, 이는 시장경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거대한 전환'은 193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그 이정표가 되는 사건은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 러시아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뉴딜의 출범, 독일에서 나치즘의 국가 사회주의 혁명, 국제연맹이 무너지고 대신 폐쇄형 제국들이 나타난 것 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19세기적인 여러 이상들은 여전히 지고의 자리를 차지하여 그 영향력이 향후 10년간을 지배했지만, 1940년경이 되면 예전의 국제 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약간의 고립된 지역을 빼면 모든 나라들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국제 체제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폴라니,2009:140)

 

3. 관리되는 자본주의 혹은 영속적 자기조정 시장

 

여러 나라의 내부에서 우리는 사회 전체가 경제 체제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끝나는 대신 경제체제에 대한 사회의 우위가 확립되는 전개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폴라니 2009: 589)

 

서론에서 언급하였듯 1940년대는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이 얘기되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시점에 폴라니는 오히려 과거의 체제에 대한 과감한 단절을 제시하고, 사회의 우위가 확립되는 사회를 전망하였다.

사실 폴라니의 대안은 어떻게 보면 매우 급진적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읽는 이들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앞서 보았듯 19세기 문명의 몰락과 그와 함께 진행된 거대한 전환은 각국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파시즘에 대해 비판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밖에 뉴딜 정책과 같은 케인즈주의적 처방에 대해 특별한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또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실험이 사라진 후에도 산업 문명은 비시장적 기초 위에서 존재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은 경제적 진보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장기호황과 그 시기에 나타난 복지국가의 양상이 위기를 맞지 않고 계속 되었더라면 폴라니의 이러한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자본이동의 자유 확산은 자본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회귀하였다.이러한 현상을 읽어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자기조정 시장과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라는 이중적 운동에서 전자가 우세한 상황이라는 해석이거나, 둘째는 자기조정 시장의 강력한 메커니즘의 독주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폴라니의 논지를 전자의 흐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후자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폴라니의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긴장이기도 하다. 물론 폴라니 본인이 사회의 자기보호 기능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기계제 산업의 형성과 자본의 이윤 추구라는 현 시장경제 체제의 기원에서부터 자기조정 시장은 하나의 경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라는 경향성. 물론 폴라니가 강조하듯 노동․토지․화폐는 상품화될 수 없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저항하기는 하지만 시장은 이들의 저항을 끝내는 무력화시켜왔다.

물론 자기조정 시장은 여전히 허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1970년대의 대처, 레이건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에서 배웠듯이, 그리고 1997년 이후 한국의 구조조정에서 배웠듯이 순수한 의미의 자기조정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강력하고 인위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관리되는 자기조정 시장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자기조정 시장의 메커니즘의 지속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과거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처럼 자기조정 시장의 효율성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책의 해제를 쓴 프레드 블록이 인용하고 있듯, 자본의 세계화 흐름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펼친바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당신의 나라가 오늘날의 지구적 경제를 지배하는 자유시장의 규칙들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준수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내가 '황금 구속복'이라는 것을 입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중략) 당신의 나라가 지금 당장 이 옷에 잘 맞지 않는다고 해도 조만간 다 맞게 될 것이다." 과거의 국가들이 금본위제의 구속에서 국내의 실업을 외면해야 했듯이 현재의 국가들은 황금 구속복을 입고, 자국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킨다.

누구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장밋빛 비전을 믿지는 않지만, 모두들 주식시장의 수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노동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이고 가장 강력한 무기는 파업이다. 그런데, 위기의 상황에서 노동은 파업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회사의 이익이 곧 자신의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휘둘린다. 이러한 상황은 폴라니의 종획운동에 대한 평가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농경지에 양을 방목하도록 용도 변경하는 일은 비록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거기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제한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마을의 이익에 전혀 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중략) 이렇게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면 결국 보상효과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시장경제라는 틀이 있을 때에만 당연시할 수 있는 사실이다. 만약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비록 양을 기르고 그 양모를 깎아 판매하는 직업 자체는 대단히 수지맞는 것일지라도 농촌은 그로 인해 피폐해질 수도 있었다.' (폴라니 2009: 166) 즉, 시장경제라는 틀 안에서 우리는 끝없이 GDP나 경제성장에 매달릴 수밖에 없으며 그 틀 안에서의 이익은 단기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결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자기조정 시장은 왜 몰락하였는가. 앞서 설명한 방식은 자기조정 시장의 메커니즘이 사회와 인간,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이에 사회의 자기보호 기능이 작동하여 결국 자기조정 시장의 몰락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부활한 新자기조정 시장을 목도하고 있으며, 사회의 자기보호 기능은 오히려 제한되고 억압되고 있다. 위기는 이중적 운동의 변증법적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자기조정 시장이 갖는 파괴성에 있다.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긴장이 증가한다면, 그리하여 세계 체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된다면, 또 다른 방식의 新파시즘이 출현하지는 않으리란 법은 없다. 결국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우리 사회가 어떤 대안을 준비할지에 달려있다. 그런 측면에서 시장경제의 붕괴와 대안을 다루는 폴라니의 저작이 여전히 유의미한 우리시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폴라니, 2009, 『거대한 전환』,도서출판 길

2. 필립 암스트롱 외, 1993,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두산동아

3. 앤드류 글린, 2008,『고삐 풀린 자본주의』필맥

4. 폴 크루그먼, 2006,『국제경제학』,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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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22:54 2012/06/18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