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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5
    지난 글을 살피다보니
    하이하바
  2. 2006/02/15
    그의 심장이 멈출 때 세상도 멈춰지길 바랬지만!(1)
    하이하바
  3. 2006/01/27
    지리산 유람기1(6)
    하이하바
  4. 2006/01/11
    고요한 새벽
    하이하바
  5. 2006/01/02
    상징에 길들여진 사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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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10/25
    늦은 밤 사무실에서
    하이하바
  7. 2005/09/20
    쫀쫀해서 요리에 실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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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9/16
    김치를 못 먹고 있다. 검도를 못하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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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9/12
    그/녀 들은 오늘도 부쩍 말랐다
    하이하바
  10. 2005/09/07
    가을 하늘이 청명한 이유
    하이하바

지난 글을 살피다보니

블로그에 그다지 글을 많이 쓰지 않아서인지....

몇번 화면을 아래로 내리다보니 "고요한 새벽에"라는 글이 있다.

 

바로 그 글을 쓸때 고인인되신 조문익 선배가 옆에서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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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심장이 멈출 때 세상도 멈춰지길 바랬지만!

세상은 여전히 돌고 있다.

세상이 멈추지 않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 먼길로 돌아 갔을 때 우리는 세상이 다만  1주일이라도 멈춰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눈물 섞인 농담을 했다. 세상이 멈추지 않으면 우리라도 멈춰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갔는데 세상이 1주일은 멈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그 동지의 슬픈 농담은 방황일 수도 있고 혼돈일 수도 있고 무기력일 수도 있다. 어찌보면 한 사람에게 무던히 의지했던 무능력일 수도 있다.

 

나의 벗들은 지금  어느 사막 한 가운데 버려져 있다. 아니면 시베리아 설원을 헤메고 있다. 어쩌면 극점에서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도는 나침반 같다.

 

그가 우리에게 차지하는 자리가 그 만큼 컸기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 갑자기, 정말 준비할 시간도 없이 떠 났기 때문인가? 그는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오만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이리 혼란스러운가?

 

나는 어쩌면 가족이 돌아간다고 해도 그 슬픔이야 더하겠지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슬픔 이상의 슬픔이 있다.

 

그는 확실히 탁월했다. 철학, 역사, 경제, 영성 어느 것 하나 막힘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장활동가 였다. 노동자로 생활했고 노동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갈증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래서 그의 탁월함에는 오히려 천재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항상 낮은 곳에서 대중과 현장노동자, 지역사람들과 호흡하는 사람과 지냈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론만이 아니라 현장운동에 대한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 주었기에 이론을 원하는 사람 현장활동을 원하는 사람 누구도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벗들은 그를 꽤 일찍 만났지만 상대적으로는 나는 꽤 늦게 만났다. 나의 어떤 벗은 그와의 첫만남에서 다시 운동의 희망을 얻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등돌렸던 운동으로 직장까지 버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믿는데 좀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진중한 시간을 거쳐 그를 믿었기에 그 사람만 믿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동지만큼 나는 슬프다.

 

그는 스스로를 남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확실히 가진 것이 없었다. 변변한 집 한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부끄러웠다.

 

나는 몇 년전 나름대로 검소하게 살기위해 돌고 돌아 정가의 반값도 안되는 값으로 할인매장에서 두툼한 겨울 옷을 샀다. 그 보다 몇 년전 일부러 겨울이 다 지날 때 싼 값에 옷하나를 사두고 버리지 않고 여벌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를 보내고 나서 이번 겨울에는 그에게 꼭 옷 한벌 해주고 싶었다는 한 동지의 절규, 그가 마지막까지 입고 지내던 겨울 옷이 지난 2003년 열사투쟁으로 수배된 상태로 농성할때 다른 이가 입고 있으라고 주었던 옷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검소라는 이름으로 사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함께 살아온 아내는 그와 많이 사랑했지만 무던히 싸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많이 미웠지만 정말 하나 미워할 수 없고 존경하는 것은 사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심이 없는 그도 농촌에 살면서 아이들 교육을 도회지에서 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며 정말 똑똑한 큰 아이를 시골에서 키울 때는 가슴이 아팠으리라!

 

나는 그의 형이 "자기 동생을 존경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두번 들었다. 사석에 한번 그를 보내는 영결식에서 한번!

 

그가 우리 안에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조직의 리더로도 아니고 사상 이론의 교주로도 아니다. 남루한 활동가이자 언행일체 소박하고 가슴 따뜻한 혁명가 모습이 그가 차지하는 우리 안의 자리다.

 

그래서 그를 떠나 보내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

 

2006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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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유람기1

지리산 유람기 1.

 

생애 두 번째로 지리산을 다녀왔다. 소위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지리산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없겠는가! 좀 더 정확하게는 지리산이 품어준다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이러 저러한 이유로 2-3번씩 갖다 오는 지리산을 30대가 되어서야 두 번 갔다왔다.

 

첫 번째는 몸이 아프고 나서 시골 은둔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늦여름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첫날은 지독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맘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더군다나 겨울 지리산을 가볍게 볼 수 없기에 파산에 가깝게 무리를 하면서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써 볼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여전히 사적인 욕망을 위해 한 번에 목돈을 쓴다는 사실이 익숙하지는 않다. 돈을 더 벌면 좀 나아지려나? 그렇지만 재정 준비보다도 시간을 내는 것이 더 힘들고 맘이 편하지 않았다.

현재 2-3 곳에 직 간접적인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휴가를 가거나 시간을 장기간 내서 여행을 다녀온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번 여행을 더 특별히 가고자 했던 것 같다.




 원래 12시 경까지 있던 이 기차는 여수, 순천, 광양을 거쳐서 진주까지 가는 기차였는데 KTX가 나온 이후로 9시45분차가 막차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새벽6시 경에 도착하던 기차가 4시경으로 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상당히 애매해졌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배낭의 술을 꺼내 먹는 추태(?)를 보인 끝에 진주에 도착 곧장 목욕탕으로 향해서 잠시 쉬고 7시에 도착하기로 한 경상지역 동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16일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상지역 동지들을 만나 짐을 분배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중산리 행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도착하자마자 한 동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 재차 짐정리를 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나서야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첫 등반 코스는 눈이나 얼음도 없는 무난한 코스였건만 역시 얼마 오르지 않아서 지치기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 갔다. 총 7명의 등반대원 가운데 후미에 3-4명이 처지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리 문제될 만하지는 않고 전체적인 속도도 문제가 없어서 쉬면서 점점 절경을 자랑하는 지리산 풍경도 보면서 등반을 계속했다. 오를수록 산 자락에 쌓인 눈이 더 선명해 지면서 겨울 지라산을 실감하게 했다.

 

점점 멀어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점심을 하기 위해 먼저 서둘러 산장으로 행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같이 산행에 참여한 일명 '해고자'는 자기 부인과 또 한 동지를 데리고 오느라 애 썼다고 한다.

 

로타리 산장에 12시가 못되어 도착한 우리는 물을 길어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개인 식수를 먼저 물을 끓이고 모자라는 물을 길으러 내가 나섰다. 산장 바로 위 암자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데 산장에는 “식수 20M" 이렇게 되어 있었다. 20M 올라 간 암자에는 이런 표지가 있었다. 식수 50M 이런 젠장! 그나저나 이곳부터는 이제 얼음이 얼어 길이 빙판이 었다.

하여튼 물을 길어 내려오니 이미 라면이 끓고 후발대도 도착해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몇이 제기하는 의문, 라면에서 소주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몇몇은 너무 힘들어서 입에서 단내가 나는 줄 알았다나! 라면에 소주를 부었는지 소주병을 잘 닦지 않고 물을 부어서 그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부터 점점 더 어려운 길이다. 빙판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출발하기 전, 한 동지 “아이젠 빨리 해보고 싶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화장실 가면서 아이젠을 하고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웬걸. 아이젠을 신고도 얼음이 무서워 한 걸음도 제대로 못 떼는 것이었다. 산장 근처 평지에서도 이러니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갈 길은 가야했기에 길을 나섰지만 이것이 다가올 고난을 짐작케 했다.

 

이제 슬슬 눈과 얼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파라지는 바위 언덕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뒤에서는 못 간다는 한 동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서워서 못 간다고, 힘들어서 못 간다고 외치는 소리에는 처절했지만 지친 기운이 역역했다.

 

오르면 오를 수록 굽이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지리산 골짜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 눈꽃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나무나 바위 위에서 날리는 줄 알았던 눈이 정상을 향해 다가갈 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지리산 정상에 거의 다다른 가파른 마지막 능선을 앞두고 고드름을 발견했다. 같이 오르던 동지들과 함께 고드름을 뚝, 뚝 끊어서 한 입에 넣고 우드둑, 우드둑 씹었다. 먹고 나니 어떤 얼음보다도 시원하고 담백했고 간식으로 충분할 만큼 기운이 넘쳤다.

 

소소하게 날리던 눈발이 이제 점점 더 세차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반기는 것인지 거부하는 것인지 천왕봉 위에는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 때가 약 3시경 대략 6시간 정도에 정상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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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평소에 일을 차근차근 해야 하는데 여기 저기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것이 쉽지 않다. 걸쳐 있는 곳이 많아서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 모르겠다. 능력은 언제나 부족했으니 특별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항상 똑똑했던 자들이 운동을 그만둘 때 그리도 화가나고 배가 아팠나?

 

암튼 비정규직 철폐 현장투쟁단 토론회를 다녀와서 못 다한 일을 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느낀 점이지만 항상 토론회는 시간에 쫒긴다. 충분히 토론하지도 못하고 다양하게 이야기 하지도 못한다. 그 누구에게 하소연하더라도 특별한 답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번 토론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토론회라는 형식이 남의 말을 듣기 위해서 진행되기 보다는 남의 말을 공격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참 많다. 전혀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 토론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앞의 경우만 하겠는가?

 

이번 토론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운동 상호 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토론회 아니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득하고 인정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높아지길 바란다.

 

여전히 남산타워는 깜빡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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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에 길들여진 사람들

지난해 맘 먹고 아침운동을 했다. 검도를 했는데, 초심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고 있다. 뭐 운동신경이 워낙 없어서 진도도 안나가고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못나가고 해서 별 발전이 없긴 하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처음 검도를 배우면서 가장 맘에 안들었던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국기에대한 경례다. 검도의 5가지 예절 중에 하나라나 뭐라나!

 

그 사람들하고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에 관한 논쟁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5초도 안되는 아주 잠깐 동안 찾아 그 시간이면 항상 국기에 대한 예의(경례)가 아니라 국기에 대한 푸념과 욕을 하곤 했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지난 늦 가을에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무슨 이유인지 어떤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체육관 정면에 붙어 있던 액자형 태극기가 사라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사범님께 대한 경례 이 순서가 이어져야 하는데 구령을 붙이는 사람이 멈칫 멈칫, 국기가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않고 사범님에 대한 경례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나로서야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희한한 일이다.

 

아주 일반적인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상징'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일 것이다. 언제나 일상처럼 진행하던 의식이 국기라는 사물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혼란 스러워 하는 점이나 그 상징이 없으니 의식을 거치지 않는 모습이나 상징에 집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국가라는 상징도 무너트리고자 한다면 혼란기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과도한 연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 없는 혼란에서 새로운 상징, 즉 국가를 무너트리고 대안사회를 제시해야 하는데 대중들이 상징화된 대상으로 인식하는 수준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이다. 즉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로서의 '그 무엇'을 건설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대중, 주체들이 상징화된 표상으로만 인식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상징(후퇴하는 체제)에 의해서 교체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에 포섭되는 사회주체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성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한 방법이나 길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언제쯤 이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아니면 확신을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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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사무실에서

사무실에 있다.

갈월동 사무실에서 청파동 사무실로 와서 12시를 넘기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일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마음만 무겁고 일을 쫒아가지 못하고 있다.

 

때로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지, 이것이 제대로 싸우고 있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제 정신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11월이 온다.

10월이 가면 11월은 그냥 흘러 갈 것 같다.

 

그러면 2005년도 끝이다.

 

정말 시간이 빠르다. 저녁 때 평택에 있는 동지와 통화를 했다. 그러고 보니 모내기 한다고 평택에 오라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벼 베고 있을 시기다.

 

이제 올 한해 일을 정리해 보아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잘 정리할 수 있을 지 만족할 지 모르겠다. 한해 평가가 만족스러울 만큼 일이 잘되거나 세상에 대해서 달관할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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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쫀해서 요리에 실패하다!

지지난주 토요일 담근 김치! 지지난주라고 해봤자 약 1주일 조금 넘었다.

 

어제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 맛을 봤는데, 왕 실패는 아니어도, 객관적으로 실패였다. 김치 실패한적은 없는데.....

 

맛을 보니 마늘 맛이 너무 쎄서 마늘 냄새도 나고 맵기도 하고, 하여든 실패의 원인은 마늘.

 

김치에 마늘을 다지고 넣을 때 좀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안 넣자니 아깝고(얼려서 못 먹고 있는 다진 마늘도 있고, 또 얼려 놓으면 역시 맛이 떨어지고 해서) 버릴 수 는 없고 그냥 미친척 하고 다 넣어 버렸다.

 

역시 실패다.

 

그래도 나 혼자 만족하기엔 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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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못 먹고 있다. 검도를 못하고 있다

월, 수, 금 나가는 복지관 검도..벌써 3주째 거의 못 나가고 있다.

내 기필코 날아가는 모기를 검으로 반쪽내리라 다짐했건만.....흑흑 돈도 아깝고

 

지난 주말에 담근 김치를 아직 못 먹고 있다. 도시락은 커녕 집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사실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여력이 안된다.

 

밖에서 먹고 오고, 해먹을 기회가 없다는 것일 뿐!

 

내 마음에 이렇게 여유가 없어도 세상을 바꾸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것 같은데!

아,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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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들은 오늘도 부쩍 말랐다

이제 무기한 단식농성 27일.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맞는 아침은 가을이 성큼 다가 왔음을 느끼게 한다.

 

선선한 바람, 가을 옷 매무새를 다지고 지나가는 사무직 노동자들, 농성장 주위에 날리는 낙엽들.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하이텍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지는 벌써 90여일이 넘고 있다. 단식만 하도 한달 가까이 되어 간다.

 

금요일 100인 단식 이후 찾아간 아침 선전전! 한 2-3일 사이에 부쩍 스산해진 느낌이다. 아침 선전전 참여대오는 12명, 단식자 3인 농성장에 상시 거주하는 동지 1인을 빼면 8명이 결합했다. 연맹 학생단위 그리고 나와 동지들 초라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모든 것이 살쪄야 하는 가을을 앞두고, 추석을 눈 앞에 두고 점점 몸이 말라가는, 아니 생명이 말라가는 단식자들을 보니  고개가 숙여진다.

 

살찌는 공단 앞에서 단식자들은 말라가는 기운 없는 몸을 부여 잡고 오늘도 산재승인! 감시차별 박살!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늘 점심도, 저녁에도,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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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청명한 이유

가을 하늘은 왜 청명할까?

요사이 하늘 빛이 참 곱다.

 

가끔 들르는 이러 저러한 홈페이지에서도 가을 하늘을 칭찬하는 넋두리를 볼 수 있다.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문자 메시지에서도 가을 하늘에 대한 시셈이 담겨 있다.

 

가을을 칭찬하는 넋두리는 감성을 자극하고

가을 하늘을 핑계로한 문자메세지는 나를 잊지 않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갖게 한다.

 

가을 하늘이 청명한 이유는 나름대로 사람을 생각나게 하기 위함인가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슬픈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 얼굴에  파란 하늘이 살포시 내려 앉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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