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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이것 저것 살아가는 상념, 또는 푸념

3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13
    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하이하바
  2. 2007/05/06
    무지개 잡기(3)
    하이하바
  3. 2006/06/24
    6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하이하바
  4. 2006/06/12
    어쩔 수 없을 때, 더 화난다.
    하이하바
  5. 2006/05/27
    장하다! 한겨레(1)
    하이하바
  6. 2006/05/23
    난생처음 영화추천 : 가족의 탄생을 보다(2)
    하이하바
  7. 2006/05/11
    나, 아직 멀었다
    하이하바
  8. 2006/03/12
    노래 "철의기지"(1)
    하이하바
  9. 2006/03/11
    전화번호가 지워진데도!
    하이하바
  10. 2006/03/08
    '하이' 가 들어가는 말(3)
    하이하바

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다가오는 518 그리고 “오래된 정원”


이제 곧 518이다. 올해가 몇 주년(?)인지 가물거린다. 고대 제국의 연호처럼 ‘광주민중항쟁 OO년’을 문서, 플랜카드에 써 넣던 시절이 있었다. 518은 역사와 상징 이전에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였다.


그런데 이제 몇 주년인지조차 가물거린다. 사실 80년에 일어난 사건이니 계산하기 쉬워 잊지는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정신이 무엇인지가 가물거리는 것일 터인데 518의 정신을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 내 비록 아직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릴 연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운동의 년차가 오래될수록 이런 원론적인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멀어지고 어려워진다. ‘정신’의 내용보다는 정신을 삶 속에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어려움의 본질이다.


비록 원작을 읽지 못했고, 보는 사람마다 관점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영화 ‘오래된 정원’은 지독하게 우울하다. 광주 민중항쟁 이후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가는 더 이상 투사도, 전사도 아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은 더더군다나 없다.

원작자 황석영, 혹은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가 무엇이건 간에-그것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내가 느낀 점은, ‘우리는 왜 오늘을 살고 있는가?’ ‘어제의 정의는 유효한가?’와 같은 질문이다. 사실 영화는 그 답을 주지 못한다. 투사의 감금된 시간, 그리고 변한 세상과 애틋한 사랑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많은 암시와 풍자(?)는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의도이든 아니든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갇혀 있던 감옥에서 억눌려 있던 것은 육체일 뿐, 정신도․사회모순의 근본적인 원인도 아니다. 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망월동에 묻혀 진 것은 투쟁하는 민중들의 육신일 뿐, 역사도 진실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어떤가! 역사를 기념한다는 망월동 묘역은 그 위상에 걸맞게 단장되고, 꾸며지고 있지만 기념관으로 바뀌면서 역사마저 묻어버리고 있다. 이제 다시 맞이하는 518에, 떠나간 자들을 욕하기보다 ‘내’가 끌고 나갈 역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518의 이름 없는 전사들과 이름이 남겨진 전사들이 함께 살고자 했던 삶이다. 그런 삶을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지 못하기에 우리는 더 혼란스러울 뿐이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것이 총을 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이 있다면 총을 들고 지키고․바꾸고․만들려고 했던 세상을 우리 일상과 삶 속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다시 역사적 시간이 도래했을 때 광주의 민초들처럼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518을 맞이하는 우리가 혼란함과 우울함을 해결하는 길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는 나병환자 촌에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 놓은 강을 발견한다. 그 강은 나병을 치료하는 사람․ 병증이 약한 사람과 병증이 심한 사람들 사이의 분리의 강이자 계급이며, 연대를 가로 막는 강이었다. 그 강을 건넌 게바라는  진정한 ‘체 게바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도 참 많은 사람들이 그 강물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직도 그 강을 건너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의 깊이와 너비에 절망하며 목적지에서 멀어지고 있다.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강물에 밀려나고 있다. 강물을 거스르지 못하고 말이다. 체게바라가 그 강물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강 건너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 그리고 역사를 일치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된 정원에서 내가 느낀 우울함은 변하지 않은 오늘의 현실이 오래된 정원이 아닌 오래된 무덤으로 바뀌고 있는 역사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가지 못하고 역사에 밀려가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현실의 강물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나와 우리는’ 강건너 새로운 세상을 실천하는 일부이어야 한다.


도래해야 하는 삶을 미리 살아가는 것이 아마 현실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밀어 갔던 518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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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잡기

꿈은 집착해서도, 쉽게 포기해서도 안된다.

 

뜬 구름 위에서가 아니라,

발 딛고 사는 땅위에서 현실의 무지개를 잡는 날까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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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6월, 외롭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2003년 한 노동자가 죽었다.

쓸쓸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목을 맸다.

사람들은 그곳을 85호 크레인이라 했다.


6월 그가 크레인에 올라갔을 시간이다.

고통스러웠던 4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그는 떠나갔다.

외로움과 분노의 시간을 뒤로하고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겼지만, 많은 사람이 남지는 않았다.

역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불현듯 그가 떠올랐다.

인테넷이라는 알 수 없는 미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한 아나운서의 몇 년 전 휠라이스 운동화와 관련된 오프닝멘트가 가슴을 저미게 하고 있다.

그 아나운서 또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가 떠 오른 것은 그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나서야

그와 함께하지 못한 120여일을 반성했다.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서러워했다.


야만의 자본주의와 광기의 신자유주의가 계속 될수록

고통 받는 나의 이웃이 늘어간다.


이 참혹한 세상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싸우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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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을 때, 더 화난다.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는 더 힘들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보증제도는 없는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한다. 한국에서 내놓라 하는 기업에다 외국계 자본이 지배해서 이름도 외국이름과 한국이름을 합한 유수의 기업에서 아직도 신원보증을 받는다는 것은 참 '거시기'하다.

 

이런 회사가 여전히 신입사원에게 신원보증을 받는다. 신원보증-연대보증 말로는 참 부담스럽고 무시무시하다. 신원보증만이 아니라 재산세를 얼마 이상 납부해야 보증인 자격도 생긴단다. 이런 보증서는 없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고도 또 보증인을 구하려고 이러저리 알아보고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한다니.....

 

아무튼 급하게 보증서가 필요해 소위 인감증명이라는 것을 구하러 갔다. 내가 인감증명서 쓸일이 언제 있었겠는가? 거기에 노파심 많은 부모님, 내 인감을 간혹 쓸일이 있었던 부모님 덕에 내 인감 도장은 거의 고향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감을 다시 바꿔야만 증명서를 신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감변경을 신청하는 데 이 공무원이 내 손을 달라는 것이다. 무심코 내민 손에 잉크(?)를  묻히고 지문을 뜨는게 아닌가? 순간 울컥하다가 별 수 없어 저항을 포기했다.

 

인감변경을 해야만 인감증명을 구할 수 있고 그래야 후배가 취직을 할 수 있으니, 거기에 후배가 다른 사람을 구할 시간은 더더군다니 오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이문제로 싸울 수 있는 시간을 없었다.

 

체념하고 지문을 내어줬지만, 도무지 이 놈의 나라는 무슨 지문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지....분명 본인이 가서 인감변경을 요청하는데(인감도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고)..지문을 요구하는가?

차라리 유치장에서 진술서나 신원조회라면거부하기 쉬웠겠지만 이런 경우는 무지하게 울트라 캠숑 "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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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한겨레


 

한겨레 21 최근호다.

 

월드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이와 함게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를 비롯한 월드컵 광풍 논쟁으로 홍역을 치뤘던 한 인권단체 활동가의 글이 있다고 해서 맘먹고 서점에 들렀다.

 

잠시 서가에서 꺼내 들척거려보니 이것저것 다양한 사람들의 비판저인 월드컵 견해가 나와 있더라! 음, 그냥 한번 사봄직 하네! 생각을 굳히고 계산을 하는데 주인이 잊은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또 다른 책 한권을 얹어 준다.

 

일명 별책부록.......

 

이 별책부록 제목부터 가관이다.

 

나의

월드컵

        다이어리

엠파스와 함께 하는 31일간의 밤샘 지침서

 

이 정도 제목이면 할말 다 했다. 내용은 거의 날짜별로 어떤 나라와 어떤 나라가 경기를 하는지 경기 일정표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거기에 각 나라별 상세한 정보도 놓지지 않고 수록하고 있다.

 

월드컵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월드컵의 상업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한겨레의 노력이 눈물겹고 장하기까지 하다.

 

인터넷 한겨레에 올라와 있는 자기들의 홍보문구를 보라!

월드컵 준비 3종세트


월드컵이 코앞입니다. 놀 준비 되셨습니까? 뭔 소리냐고요? 잘 놀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월드컵 준비 3종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고생깨나 했습니다. 첫째, 붉은 악마부터 인권운동가까지 10명의 월드컵 이야기. 월드컵은 하나가 아닙니다. 월드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봅니다. 둘째, 별책부록 월드컵 다이어리. 31간의 밤샘 지침서를 드립니다. 셋째, 월드컵 퀴즈. 노트북 등 푸짐한 상품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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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영화추천 : 가족의 탄생을 보다

가족의 탄생.....

 

참 재밌게 볼만한 영화다.

 


[포스터 출처 /맥스무비]

 

가족이 자본주의 재생산의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데, 그 가족의 이데올로기는 가려지고 항상 일방적인 정당성을 강요한다. 또한 특정한 형태를 강요한다. 그 특정한 형태는 전 근대적인 가부장제, 봉건제가 결합하고 이성애 중심주의가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자본주의의 생명을 넣어주는 결혼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 항상 (대략)난감이다. 동거가족이나 동성가족,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글쎄 왜 그럴까! 자본주의 재생산을 담당하지 못해서일까?

 

어째거나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지적하지는 못하지만 일방적인 남성 중심 가족구성에 대한 비켜가기! 여성중심의 가족구성의 가능성 친밀성 정도는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뭐 맞는지, 틀리는지 분석할 수는 없지만 재미 있던 영화다. 영화평을 하는 것이 꼭 심오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재미 있는 영화다.

 

문소리와 고두심의 연기는 일품이다.

 

남에게 영화를 봐보라고 해본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거의 처음 있는 영화 추천(한 두 번 해봤을 수도 있지만)이다.

 

모두 투쟁에 바쁘더라도 꼭 한번 봐보시길.

 

ps 어차피 쓰면 영홍보도 되는데 저 포스터에 출처를 밝혀야 하나? 포스터 찾은 곳은 맥스부비라는 싸이트인데 포스터 저작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거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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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멀었다

KTX 농성장에 침탈 위협이 있어 잠시 다녀왔다. 긴박한 상황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지만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건 그렇고 잠시 머무는 동안 출산을 마치고 슬슬 활동을 다시 하는 여성동지를 만났다. 얼마 전까지 애기를 데리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라 무심코 물었다.

 

"애는 어쩌고?"

 

ㅜㅜ

 

나도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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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철의기지"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

 

<철의 기지> 

무쇠바람부는 울산의 하늘아래선

육천의 전사들이 태어났다. 흩어질 줄 모르며

 

그들은 지칠 줄 모르며 그들은 배신할 줄 모르며

그들은 머무를 줄 모르는

 

그들은 자신을 가두었던 철의 감옥을 거대한 화로로 녹여

자신을 지키는 요새로 만든다.

 

무엇을 얻었는가 그대 자유와 평등과 그대의 벗들

무엇을 잃었는가 그대 폭력과 구속과 나약한 환상

 

무엇을 얻었는가 그대

무엇을 잃었는가 그대

 

그대 철의 기지 철의 용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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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가 지워진데도!

오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아무 생각없이 넘기다 무심코 이제 필요없는 전화번호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일때문에 임시저장했던 전화번호, 사실 앞으로도 전화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옛친구등 몇몇을 정리했다.

 

그러다 지우지 못하고 있던 몇몇 번호들이 나왔다.

 

비두, 샤말.....

 

참 열심히 활동했던 이주노동자들이었는데 노동운동, 노동조합 하자고 해놓고 정작 그들이 가장 힘들 때는 내가 곁에 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나보다.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에 과감하게 지웠다.

 

그리고 아직도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가 있다.

 

이젠 걸 필요도 받을 사람도 없는 전화번호다. 그걸 알면서도 목록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부질없는 집착인가보다. 예전에도 죽은 후배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한 세월을 보내다 한번은 전화까지 해본적이 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그냥 저장되어 있어야 할까보다. 죽은 선배가 전화번호가 있다고 해서 살아올리 만무하다. 내 삶이 더 성실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미 없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흔적을 쉽사리 날려 버리는 것이 더 어려운가보다. 손쉽게 입력과 취소가 가능한 디지털 시스템도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는 여운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잊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만큼 삶에 대한 무게가 더해진다. 삶의 무게를 운동의 무게로 온전히 옮기는 일이 다른 운동과 함께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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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가 들어가는 말

3월 7일은 하이텍 알시디 코리아의 첫 오창투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아니 얼마 전부터 세간에 이목을 받는 투쟁 사업장들이 떠 올랐다.

 

하이텍

하이닉스

하이스코

 

모두 "HI-하이"가 들어가네....

 

젠장, 이명박은 hi 서울 이군.

 

내 블로그 이름과 닉네임으로 쓰이는 하이-하바를 바꿔야 하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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