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르포
파인텍 굴뚝농성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12월6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로 밥과 물이 든 가방을 올리고 있다. 11월12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홍기탁·박준호가 굴뚝 위에서 가방을 끌어올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12월6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로 밥과 물이 든 가방을 올리고 있다. 11월12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홍기탁·박준호가 굴뚝 위에서 가방을 끌어올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다시 고공이 솟았습니다. 2년4개월 전 408일 굴뚝농성을 끝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들입니다. 파인텍으로 고용승계 된 지 2년이 못 돼 그들이 다시 굴뚝에 올랐습니다. 죽음을 넘나드는 하늘 동료를 지키며 땅에서 하늘을 살았던 두 남자가 그 하늘에 갇혔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굴뚝 위에서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을 했던 남자가 이젠 땅에서 두 동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더 내려갈 곳도 없었으며, 다만 올라갈 곳만 남아 있었습니다. ‘408일+○○일째’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굴뚝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늘 75m 고공에서 두 남자가 어른거렸다.

 

땅 차광호(47)와 조정기(35)가 물건들을 챙겼다. 12월6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서울에너지공단) 옆 천막 안에서 추위가 펄펄 끓었다. 바닥 군데군데에 핫팩을 놓고 이불을 덮은 ‘핫팩 보일러’는 치밀어 오르는 냉기를 이기지 못했다.

 

“이건 굴뚝 연기 막는 방진 마스크, 이건 소음 차단하는 귀마개, 이건 얼굴과 몸 닦는 물티슈, 이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배터리….”

 

오전 10시30분 김옥배(39)가 식당에서 사온 갈비탕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김옥배와 조정기가 갈비탕을 가방에 넣는 동안 차광호가 천막 구석에서 노끈 두 다발을 꺼냈다. 오전 10시35분. 차광호가 가방을 들고 발전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준 경찰(공단의 시설보호 요청)이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전 지회장)과 박준호(사무장)가 12월6일 밥과 물이 든 가방을 끌어올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전 지회장)과 박준호(사무장)가 12월6일 밥과 물이 든 가방을 끌어올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년4개월 만에 다시 오른 굴뚝

 

하늘 녹색 가방이 밧줄에 묶여 내려왔다. 맑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홍기탁(44·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과 박준호(44·사무장)가 작은 점처럼 흐렸다. 11월12일 새벽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굴뚝을 사선으로 휘감으며 허리께까지 두 사람을 안내한 사다리는 몸을 직선으로 펴 그들을 꼭대기로 올려 보냈다. 주위 굴뚝에서 빠져나온 하얀 연기 기둥이 바람에 쪼개져 산개했다. 굴뚝 5기 중 연기가 오르지 않은 한 굴뚝에 그들이 있었다. 서울에너지공단은 11월20일 건조물 침입과 업무방해 등으로 두 사람을 고소했다.

 

 차광호가 가방을 받았다. 전날 저녁 식사로 올린 가방에서 밧줄을 풀어 이날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담은 가방에 묶었다. 차광호가 챙겨 온 노끈을 가방 한쪽에 연결했다. 홍기탁·박준호가 밧줄을 끌어당겼다. 한 끼를 지켜줄 밥과 물이 밧줄에 매달려 허공에 떴다. 차광호가 노끈을 당겨 가방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도록 밧줄을 긴장시켰다. 굴뚝 중간에 설치된 도르래가 가시처럼 튀어나와 가방의 오르내림을 방해했다. 가방의 귀환을 도우려던 노끈마저 도르래에 걸려 공중에서 맴을 돌았다.

 

하늘 차광호가 408일(2014년 5월27일~2015년 7월8일) 동안 45m 굴뚝에 매달려 있을 때 땅에서 그의 하늘을 지켜준 홍기탁과 박준호가 2년4개월 뒤 그 하늘에 올랐다. 차광호(당시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땅으로 내려오며 합의했던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자 그를 땅으로 내리기 위해 땅에서 하늘을 살았던 두 사람이 ‘하늘 감옥’에 스스로를 가뒀다.

 

“흔들리고 부식돼서 위험했던 스타케미칼 굴뚝보다 난간은 튼튼한데, 난간에서 굴뚝 내경(가스·연기 배출 통로)까지가 60~70㎝ 정도밖에 안 된다.”

 

차광호가 땅을 밟은 날 박준호는 그의 하늘 살림을 내리러 스타케미칼 굴뚝(통로 1m)에 올랐었다. 목동 굴뚝의 통로 너비 60~70㎝는 1인용 텐트도 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했다. 두꺼운 천을 두르고 비닐을 씌워 바람만 막은 ‘방’에서 그는 전화로 말했다.

 

“아래가 더 힘들 것이다.”

 

 

11월12일 파인텍지회 홍기탁·박준호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농성
차광호의 408일 고공 지켜낸 그들
2년4개월 만에 “합의 지켜라” 농성
하늘·땅 역할 바꿔 차광호가 굴뚝지기

 

 

스타케미칼 11명 파인텍 고용승계 뒤
사쪽 ‘가동 당월 단협 체결’ 미이행
지난 8월 기계 철수하며 회사 증발
평생 폐업 겪으며 하늘로 몰린 그들
남은 5명 “굴뚝밖에 달리 방법 없다”

 

 

 홍기탁과 박준호가 올려주는 밥으로 408일(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을 견딘 차광호가 2년4개월 뒤 두 사람의 하늘을 지키며 25일째(12월6일 시점) 그들의 밥을 올렸다. 그는 굴뚝에서 내려온 직후 “누구든 하늘에 올라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올라갈 수밖에 없어도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장기 기록을 깨며 성과를 내는 건 성과가 아니다. 그렇게 만드는 희망은 희망도 아니다.”

 

하늘과 땅의 역할이 역전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차광호가 말했다.

 

“왜 안 말렸겠나.”

 

한국합섬 2공장이 1995년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영업을 개시(1공장은 1989년)했다. 그해 8월 서울에서 일하던 차광호가 고향으로 내려와 한국합섬 노동자가 됐다. 경북 상주에서 온 홍기탁이 입사동기가 됐다. 박준호(경북 예천)는 3조3교대가 4조3교대로 바뀐 2003년 입사했다. 2006년 3월 기계를 멈춘 한국합섬이 이듬해 5월 파산했다. 2005년 말 860여명이던 조합원 중 차광호·홍기탁 등 3명(조합원 자격은 108명이 유지)이 끝까지 남아 빈 공장을 지켰다. 2010년 7월 스타플렉스(스타케미칼 모기업)가 산업은행(주채권은행)과 합의해 옛 한국합섬을 인수했다. 스타케미칼(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로 이름을 바꾼 공장이 2011년 4월 5년 만에 재가동(고용승계와 신규채용 합쳐 직원 230여명)했다. 공장 인수 1년8개월 만인 2013년 1월 시무식에서 김세권 사장이 회사 청산을 언급(1월23일 법인 해산)했다. 사쪽은 적자 누적을 이유로 댔고, 노동자들은 ‘먹튀’ 의혹을 제기했다.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는 회사 청산에 반대하는 차광호 지회장을 불신임(1월3일)·제명(2월19일)했다. 희망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은 28명이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대표 차광호)를 결성했다. 스타케미칼 노사가 공장에서 철수(2014년 5월26일)한 다음날 차광호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 공장 안 45m 굴뚝에 올랐다. 공장엔 11명이 남아 있었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굴뚝으로 올릴 빵과 휴대전화용 배터리를 챙기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굴뚝으로 올릴 빵과 휴대전화용 배터리를 챙기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파기된 약속

 

하늘 “그때나 지금이나 땅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구미 하늘에 있을 때 차광호가 했던 말을 박준호가 목동 하늘에서 했다. 목동은 스타케미칼과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있는 도시였다.

 

차광호 착륙 하루 전 작성된 합의서는 고용 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2016년 1월 내 단협 체결 완료), 생계 및 생활 보장을 약속했다. 고용은 구미가 아닌 “평택 지역 이하”에 신설법인을 세워 승계하기로 했다. 강민표 당시 스타케미칼 전무(현 파인텍 대표)는 “노조 때문에 모기업까지 망하면 어떡하냐”(2015년 3월 인터뷰)며 ‘스타플렉스로의 고용은 절대 불가’ 입장이었다. “그들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운동만 하려는 사람”이라고도 했다(2017년 12월6일 인터뷰에선 “당시 신설법인을 통한 고용은 해고자들의 요구” 주장).

 

2016년 1월 충남 아산에서 파인텍(타폴린 생산)이 가동됐다. 직원은 해고자복직투쟁위 노동자 11명뿐이었다. 구미에 가족을 두고 갈 수 없는 3명이 ‘아산행’을 포기했다. 합의서에 명시된 임금은 ‘최저임금(6030원)+1천원’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 외에 야근이나 잔업은 주어지지 않았다. 세금과 4대 보험료 등을 떼면 월 실수령액이 120여만원이었다. “우리를 고립시키고 스스로 지쳐 떠나게 하려는 것”(박준호)이라고 노동자들은 판단(사쪽 “동일 업종 공장에 비해 직원들 생산성이 떨어졌다”)했다.

 

2016년 1월 안에 완료하기로 했던 단협(노조활동과 복지가 쟁점) 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 18차례를 끝으로 교섭이 중단됐다.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쳐 2016년 10월28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2017년 1월 1명, 2월 1명, 5월 1명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구미로 내려갔다. 5명만 남았다.

 

8월30일 회사가 공장에서 기계를 들어냈다. 건물 임대기간은 연장하지 않았고, 건물주는 새 사업체를 입주시켰다.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홍기탁 전 파인텍지회장(오른쪽)과 박준호 사무장. 홍기탁·박준호씨 제공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홍기탁 전 파인텍지회장(오른쪽)과 박준호 사무장. 홍기탁·박준호씨 제공
땅 한국합섬은 파산했다.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은 철거(차광호가 농성한 굴뚝도 해체)됐다. 파인텍 공장도 사라졌다. 두차례 공장 폐업과 한차례 증발을 겪는 동안 차광호·홍기탁·박준호는 20대 청춘에서 40대 중년이 됐다. 한국합섬 가동 중단 이후 11년 동안 그들이 일한 기간은 2년6개월뿐이었다. 그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더 내려갈 곳도 없었으며, 다만 올라갈 곳만 남아 있었다.

 

5명 중 2명(홍기탁·박준호)은 하늘 사람이 됐고, 1명(차광호)은 전국을 다니며 연대를 호소했다. 1명(김옥배)은 매일 밤 문화제마다 사회를 봤고, 1명은 음향부터 나머지 모든 일을 처리했다. “여기보다 땅이 더 걱정”(박준호)이라며 굴뚝 위가 굴뚝 아래를 보며 애태웠다.

 

굴뚝농성 시작 16일째 날(11월27일) 차광호의 장모가 세상을 떠났다. 장모의 암은 그가 굴뚝에 있을 때 발견됐다. 사경을 헤매는 장모에게 그의 아내는 “남편이 외국으로 장기출장을 갔다”고 했다. 2015년 3월엔 그의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찔러 어머니는 장출혈을 일으켰다. “부모가 다 죽어가는데 뭐 하고 있냐”며 굴뚝으로 전화한 아버지가 호통쳤다. 2년 뒤 새로 솟은 굴뚝은 장모의 빈소에까지 드리웠다. 장모의 삼우제를 지낸 다음날 그는 굴뚝 밑으로 복귀했다.

 

하늘 홍기탁과 박준호는 좁은 통로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제자리 뛰기와 푸시업을 했다. 운동을 마치면 물티슈로 땀을 닦고 땅에서 올려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차광호의 조언을 따라 최대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시간표를 짜서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무너진다”고 ‘굴뚝 선배’ 차광호는 하늘에 당부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그들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인생이고 내 삶이니까. 공장이 사라지는 일을 되풀이해 겪다 보니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바꾸지 않으면 계속 똑같이 살게 된다는 것을 안 이상 예전처럼 살 순 없다.”(박준호)

 

 고공농성 이후 교섭은 열리지 않았다. 지회의 우선 요구사항은 차광호 농성 해제 때 합의한 ‘3승계’(고용·노조·단협) 이행과 공장 정상화였다. 회사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단협을 체결하기로 하고 안 했다는 건데, 5명 회사에서 스타케미칼 수준의 단협을 요구(차광호 “교섭 당시 인원인 8명 수준으로 축소해서 제시”)한다. 적자가 계속 나는데 언제까지 평생직장을 보장해줘야 하나. 폐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걸 빌미로 또 어떻게 나올지 몰라 못하고 있다.”(강민표 파인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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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일+○○일째”

 

정치 고공농성 시작 5일 뒤 고용노동부에서 민주노총에 연락해 농성 이유와 상황을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체(양대 노총 각각 고용노동부와 별도 테이블)가 가동(7월)됐다. 민주노총의 경우 전국 100여개 사업장이 논의 안건으로 올라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땐 없던 움직임이다. 10차례 회의가 열렸고 12월15일 11차 회의가 예정돼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회의에 파인텍 고공농성을 의제로 올릴 계획(이승철 조직쟁의실장)이다.

 

지난 두 정부는 고공농성을 방치했다. ‘노사관계’란 논리 뒤에 숨어 사실상 고사시켰다. 사용자의 불법을 처벌하라며 하늘에 올라도 농성의 대가(사법처리)는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유사 이래 한국에서 벌어진 200일 이상 초장기 고공농성 7건은 모두 이명박(2건)·박근혜(5건) 정부에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차광호의 408일 기록도 이 시기에 쓰였다. 파인텍 고공은 문재인 정부에서 솟아 한달(12월11일)을 채우고 있다.

 

“파인텍은 갈등이 오래된 사업장이라 고용노동지청(천안) 차원에서도 살펴보고 있다.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용노동부)

 

하늘과 땅 “갔다 올게요.”

 

굴뚝에서 내린 빈 그릇과 옷을 들고 김옥배와 조정기가 ‘꿀잠’(서울시 영등포구 도신로)으로 향했다. 비정규노동자 쉼터에서 그들은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얼굴을 씻었다.

 

“오늘(12월6일)은 25일째가 아니라 433일째.”

 

차광호가 날수를 세었다. 408일 고공농성을 했던 그때처럼 기계가 멈췄고, 그때처럼 공장이 없어졌고, 그때처럼 그들은 단협 체결을 요구하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굴뚝에서 박준호(12월5일 통화)가 말했다.

 

“저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게 참… 쉽지가 않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