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드론 자격증은 김건모의 노후를 정말 보장해줄까

등록 :2017-12-24 09:28수정 :2017-12-24 09:3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커지는 드론 시장

 
농약 살포는 농민들의 오랜 숙제였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등 후유증과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드론이 이 고민을 해결하면서 도시보다 들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픽사베이
농약 살포는 농민들의 오랜 숙제였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등 후유증과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드론이 이 고민을 해결하면서 도시보다 들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픽사베이

 

‘이 지긋지긋한 거 그만하고 다른 거 하면서 먹고살 수 없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이런 번뇌에 빠지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 찰나 “7분에 2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이제 반백살이 된 국민 가수가 지상파 방송에서 말합니다. 누군들 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드론 수요 발굴로 5년간 3500억원 규모 공공 수요 창출.”

 

가수 김건모의 감은 아직 살아 있었다. 지난 11월말 김씨는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드론으로 노후를 준비중이라며 “드론을 날려서 농촌에서 비료를 주면 딱 7분 날리고 2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해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한달 만에 현재 704억원 규모인 드론 시장을 4조4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정부 계획이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2일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가·공공기관의 다양한 업무에 드론을 활용한다는 게 주된 계획이다. 계획을 보면, 5년 동안 3700여대, 3500억원 규모의 드론 시장을 창출한다. 공공건설, 도로, 철도 등 시설물 관리와 해양·산림 등 자연자원 관리에 드론이 활용된다. 실종자 수색, 사고·재난 지역 모니터링 등 치안·안전·재난 분야에도 드론이 투입된다. 국공유지 실태, 농업 면적 등 각종 조사에도 드론을 활용할 예정이다.

 

정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6년까지 드론 관련 일자리만 약 17만개 이상이 새로 생긴다. 김씨가 계획했던 ‘농약(비료) 드론 방제사’ 외에도 드론 조종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밥벌이가 생긴다는 말이다.

 

가수 김건모씨가 방송에서 공개한 자신의 드론. 에스비에스(SBS) 화면 갈무리
가수 김건모씨가 방송에서 공개한 자신의 드론. 에스비에스(SBS) 화면 갈무리
국가공인 자격증은 오직 하나

 

폭설이 예보됐던 지난 20일 오후.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선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드론 실기수업이 한창이었다. 김건모씨도 준비중인 드론 조종사 자격증을 따려면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자동차 면허시험처럼 학과시험(필기)과 실기시험을 쳐야 하는데 실기시험에 응시하려면 20시간의 비행 경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문교육기관에서 20시간을 채워야 한다. 드론과 관련한 국가공인자격증은 교통안전공단에서 주관하는 초경량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증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전문교육기관 등 민간에서 발행하는 자격증들이다.

 

실기시험은 이착륙 지점을 기준으로 좌우 이동, 직진·삼각·원주 비행 등을 평가한다. 수업도 시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에서 차량을 느리게 움직이듯이 드론 역시 천천히 움직이되 정확한 지점에서 정지하고 이착륙하는 게 중요하다. 자동차 운전과 달리, 운전자(조종사)가 움직이지는 않은 채 입체 공간에서 드론의 움직임을 눈으로 파악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수업 3일차라 그런지 교육생들 대부분이 아직은 서툴렀다. 한 교육생이 1.5m 정사각형 착륙 지점에 드론을 착륙시키자 교관이 “그래도 네모 안에 넣었네요”라며 웃었다. 수강생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양했다. 인천인력개발원은 지난 9월부터 드론 실기과정을 운영중인데 9회차까지 모두 50명이 수강했다. 30~50대(41명)가 가장 많았고 10대와 60대는 각각 2명이었다.

 

지난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다는 교육생 이정범씨는 수능 이후 시간을 활용해보라는 아버지 권유로 자격증에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공중에 뜬 드론과 지면 위의 지점을 일치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며 “자동차 면허증도 따는 중인데 드론 자격증과 함께 군대 갈 때 쓸모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인력개발원 양재덕 기획홍보팀장은 “방학 기간엔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는 반면 학기 중엔 중장년층 수강생들이 많다”고 했다. 수업은 4인 1조로 진행되는데 하루 8시간 수업을 하면 1인당 2시간의 ’비행경력증명서’가 발급된다. 따라서 수업은 2주(10일) 동안 계속된다. 주말반은 5주가 걸린다.

 

비행시간 20시간이 합격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비행이론 등을 다루는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2년 동안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올해 실기시험 합격률은 60%대다. 자동차 면허시험과 달리 연습했던 ‘그 학원’에서 시험을 보지 않고 신청자들이 모이면 기준에 맞는 장소를 지정해 실기시험이 진행된다. 평면이 아닌 입체 공간에서 드론을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24개 항목에서 모두 S(Satisfactory) 등급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이중열 교관은 “자동차 면허시험처럼 ‘공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 반복 학습으로 합격이 보장되진 않는다. 개인별 능력 차이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현재 ‘드론 자격증’(면허증)을 취득한 사람은 모두 3726명이다.

 

 

 

‘국민가수’도 꿈꾸는 드론방제사
비행경력 20시간 후 자격시험 가능
‘공식’ 통하지 않는 실기시험
합격률은 60%대…3726명이 취득

 

 

‘드론 자격증=고수익’ 보장 못해
“7분 200만원”은 현실과 동떨어져
국토부, ‘드론 발전 기본계획’ 발표
10년간 일자리 17만개 만들기로

 

 

드론 자격증이 없다고 드론을 날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무게가 12㎏ 이하이거나, (12㎏을 초과하더라도) 비상업적 용도로 날리는 경우엔 자격증이 없어도 가능하다. 농민이 본인 소유 논에 방제할 목적으로 12㎏을 넘는 드론을 조종할 땐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 결국 ‘12㎏이 넘는’ 드론을 ‘상업적’으로 운전할 때만 국가공인자격증(면허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대신 개인적 목적의 사용자라도 12㎏이 넘는 드론은 국토교통부에 신고해야 하고 사업 목적일 경우엔 무게와 상관없이 모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3년 193대이던 드론 신고 대수는 2017년 11월 기준 3735대로 늘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완구형 드론은 대부분 무게가 1㎏ 미만이고, 카메라가 달린 드론 역시 전문가급이 아니면 대부분 1㎏ 안팎이다. 12㎏ 이상의 대형 드론을 날리는 사람들에게 신고를 의무화하거나 면허증을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8월 판매중인 20개의 초보자용 드론을 조사한 뒤 “다수의 제품이 안전가드가 없거나, 있더라도 상해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중열 교관은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안전 의식을 주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드론이라도 빠르게 회전하는 프로펠러는 몹시 위험한데 ‘드론=장난감’이라고만 여기니 그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본 12㎏이 넘는 드론은 흔한 장난감 수준이 아니었다. 교육장에도 헬멧을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지난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서 드론 실기수업 교육생들이 비행 전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지난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인천인력개발원 운동장에서 드론 실기수업 교육생들이 비행 전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7분에 200만원은 가능할까?

 

자동차 대형 면허를 땄다고 고속버스를 당장 몰 수 없는 것처럼, 드론 자격증을 땄다고 ‘7분에 200만원을 버는’ 드론 방제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드론 자격증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드론을 날려 생계를 유지하려면 민간 교육기관에서 운영중인 심화 과정에 진학해 추가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실제 현장에 나가 도제식으로 배우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업용 드론은 현재 수요과 공급이 적절한 지점에서 만난 차세대 드론 시장으로 꼽히고 있긴 하다. 국제무인운송시스템협회(Association for Unmanned Vehicle Systems International)는 2013년 보고서를 통해 농업용 드론이 향후 드론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전세계 취미용 드론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의 디제이아이(DJI)도 2015년 농업용 드론 아그라스(AGRAS)-MG1을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2016년 기준으로 국내 드론 활용 시장은 473억원 규모인데, 농·임업(53%) 분야 비중이 가장 크고 그 뒤를 영상촬영(32%), 건설·측량(7%)이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233개이던 국내 드론 방제업체는 올해 6월말 기준 294개로 늘었다. 과거엔 주로 무인헬리콥터를 이용해 방제를 했는데 최근 드론 보급이 늘어나면서 드론을 이용한 방제로 넘어가는 추세다.

 

물론 ‘7분에 200만원’은 과장된 수치다. 드론 방제업체 누리집 등을 통해 확인한 방제 비용은 논이 평(3.3㎡)당 30원, 밭이나 과수원은 50~100원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논과 달리 밭이나 과수원은 접근하기 쉽지 않고 면적이나 경계도 들쑥날쑥해 비용이 더 높다고 한다. 논의 경우 한 시간 동안 드론을 가동하면 1만평 정도 면적에 농약을 뿌릴 수 있다. 한시간에 30만원을 벌 수 있으니 하루 종일 작업하면 ‘이론적’으로는 300만원까지도 가능하다.

 

드론방제협회 노덕호 지도조종사는 “논 방제는 주로 한여름에 하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할 수는 없다. 주로 오전 5시부터 10시 사이,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만 작업을 한다. 한낮엔 햇빛이 뜨거워 약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루에 4만~5만평이 적정 수준”이라고 말했다. ‘7시간 200만원’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수치다. 이 정도 수입도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 드론 자격증을 따고 드론을 구입해 방제사업을 하기엔 초기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만약 김건모씨가 드론 방제사업을 하려면 우선 드론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인천인력개발원의 실기비행 과정 수강료는 280만원이다. 필기시험이 면제되는 국토부 지정 전문학원들의 수강료는 300만~500만원 수준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뒤 알음알음으로 조종 기술이 늘어 방제용 드론을 조종할 수준에 이르렀다면 대당 2000만원 안팎의 드론을 구입해야 한다. 보조배터리와 드론을 싣고 이동할 수단, 사무실 등도 필요하다. 이어 드론 등록, 사업장 등록 등을 하고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현행법상 보험 가입 없이 사업을 할 순 없다. 노덕호 지도조종사는 “날아다니는 것들은 떨어지게 마련이라 대인·대차·자차까지 모두 들어야 하는데 2000만원짜리 드론 한대당 1년 보험료는 390만원”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김건모씨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이 아니다. 시장에 진입해 살아남으려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작물에 대한 여러 정보 정도는 꿰뚫고 있어야 일감을 따 올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세상 만만한 일이 없다.

 

 

1가구 1드론 시대보다 먼저…

 

드론 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는 중이라 현시점에서 4~5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평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드론 가격이 더 떨어지면 그에 비례해 사업 초기 비용도 떨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1농가 1드론 시대가 와서 드론 방제사라는 직업이 탄생과 동시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디제이아이의 농업용 드론을 국내에 판매하는 ㈜퓨처쉐이퍼스 이상민 대표는 “과거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주고 돈을 받던 사진사들이 1가구 1카메라 시대와 함께 사라졌듯이 방제용 드론도 가격이 떨어지면 1농가 1드론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약 17만4000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전망되며 운영 분야가 15만8000명으로 제작 분야 1만6000명보다 9.9배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임업 7만6000명, 건설·측량 4만명, 영상촬영 1만9000명의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드론 ‘활용 시장’의 성장률이 ‘제작 시장’ 성장률의 8.5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 전망이 맞아떨어져서 1농가 1드론 시대보다 정부가 설계한 ‘드론 생태계’가 먼저 구축된다면 김건모씨를 비롯한 수많은 드론 조종사들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국내 유일한 ‘가수 겸 드론 전문가’ 김건모를 볼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천/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