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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8.01.14 07:11:00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등이 11일 서울 광화문 일자리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등이 11일 서울 광화문 일자리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가맹점·건물주에 손발묶인 소상공인…애꿎은 최저임금만 정쟁도구로 희생

최저임금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최저임금을 지난해 6470원에서 16.4% 올린 7530원으로 정했다. 정치권은 안전장치 없는 포퓰리즘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는 매년 악화되고 있는데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으로 일자리는 더 줄어들 것이고,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상인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고 있다. 직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가족 또는 본인의 노동력을 투입시키거나, 휴게시간을 늘려 전체 총임금은 그대로 유지한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해고는 현재진행형이 맞는 셈이다. 소비자물가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형태의 외식업체들은 지난해 7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이후 꾸준히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11월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를 각각 100원, 200원씩 인상했다. 또 디저트, 음료 가격을 최대 5.9%까지 올렸다. KFC 역시 지난해 12월 치킨과 햄버거, 사이드 메뉴 등 총 24개 제품에 대한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신선설농탕의 경우 제품 가격을 1000원씩 인상했다. 이들 업체는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소상공인들이 직원을 해고하는 이유는 자영업자들이 임의로 건드릴 수 있는 비용이 임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매달 지급하는 로열티나 수백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 등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정부도 건드릴 수 없는 ‘고정비용’ 으로 취급된다. 물가상승도 선후가 뒤바뀐 눈속임이라는 지적이다. 프랜차이즈 요식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 전부터 제품 가격을 꾸준히 올려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해 6월 “각 기업은 주요 원재료비 인상,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해당 기업이 주장하는 인상요인은 가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제품 가격을 올린 뒤 임금인상을 핑계 삼는다는 것이다.
 

2002년 16.8% 인상에도 ‘경제혼란 無’ 

역대 최대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한 2002년에는 어땠을까.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은 16.8%였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IMF 금융위기 이후 대거 양산된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이뤄진 임금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에도 최저임금을 13.1% 올렸지만 실직자 증가나 물가상승 등의 부정적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2002년 고용률은 60%로 전년에 비해 1%포인트 올랐다. 2006년에는 고용률이 59.7%로 전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고용률은 최저임금 인상과 연관성이 낮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임태준씨(38)는 2014년 5월부터 경기도의 한 주택 밀집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도 있고, 1인가구형 빌라촌이 형성돼 있어 수익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은 총 5명의 직원이 교대로 편의점을 맡고 있다. 평일에는 임씨 외에 오후조·야간조가 있고, 주말에는 3명의 아르바이트생이 교대로 근무한다. 그의 2017년 11월 총매출액은 5036만원이다(12월은 재고조사로 인한 정산금이 붙어 정확한 확인이 어려워 제외했다). 총매출 자체는 여타 편의점에 비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판매된 제품 원가비용(3643만원)을 제외한 매출총이익은 1393만원이다. 매출총이익을 기준으로 여기에 본사 영업비 138여만원, 가맹수수료(로열티) 339여만원 등 총 478만원이 본사에 자동지급된다. 본사 영업비는 수도세, 편의점 수선비, 비닐봉투 등 소모품비, 재고 로스 비용 등으로 당장 지출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빠져나가는 비용이다. 월세는 81만원(5.8%)이다. 경기도 지역이라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편이다. 11월 매출총이익에서 본사와 건물주에 지급하는 비용을 제외하고 임씨가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은 834만원이다. 여기서 5명의 직원 인건비와 4대 보험료(45만원) 명목으로 월 616만원이 나간다. 임씨의 11월 순소득은 218만원이다. 

임씨가 가맹본부에 지급하는 비용은 전체 매출총이익의 34.3%에 달한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44.2%)보다는 낮지만 전체 수익의 3분의 1을 가맹본사가 가져간다. 임씨는 “몇 년 전부터 본사에서 점주들을 ‘사업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며 “점주 재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는데 본사는 ‘사업주’라고 부르며 최저임금 인상분 등 함께 분담해야 할 영역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월 매출의 30% 이상을 고정적으로 가져가는 구조가 옳은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편의점 점포개발담당 출신의 ㄱ씨는 “점주들이 지급하는 로열티는 점주들의 심리적 저항을 고려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사는 30% 이상 가져가지도 않지만, 30% 미만으로 줄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분은 고스란히 점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맹점 “점주 심리적 저항 고려한 로열티” 

송일호씨(49)는 2012년부터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송씨의 부인만 가게에 나와 일을 했지만 2년 전부터 송씨도 이곳 일을 돕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송씨의 2017년 12월 총매출액은 4430만원이다. 고깃값으로 1370만원, 점심장사용 반찬·찌개 재료로 770만원이 지출됐다. 수도세·전기세 등 관리비, 카드수수료 명목으로 340만원이 지출됐다. 월세가 매달 510만원씩 고정적으로 나간다. 지난해 10월 이후 월세가 70만원 올랐다. 송씨 부부가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은 1440만원이다. 여기에서 인건비가 나간다. 실장 1인에 대해서만 월급 개념으로 한 달에 300만원(일 12만원×25일)을 지급한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인원 3명의 월급으로 712만5000원이 지출된다. 총 1012만5000원이 인건비로 나간다. 프랜차이즈가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로열티는 없다. 송씨 부부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서 벌어들인 지난 12월 순수익은 427만5000원이다. 지출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월세(22.7%)와 인건비(31.1%)다. 송씨는 “그마나 메인 상권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 정도”라며 “메인 상권으로 가면 월세가 700만원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다. 건물주는 ‘갓물주’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중소상인들은 상가를 빌려 영업을 한다. 프랜차이즈 업체도 ‘위탁 타입’의 경우 직접 상가를 임차해 점포를 낸다. 건물주는 소위 ‘숨만 쉬고도’ 임대료 수익을 얻는다. 방이동 먹자골목의 경우 점포 규모, 건물 위치에 따라 점포 임대료가 300만~1200만원까지 다양했다. 이 지역에 빌딩 2채를 소유한 임대업자 ㄴ씨는 “한 달 임대료로 1억2000만원 정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ㄴ씨의 건물에는 노래방, 커피숍, 이자카야 등이 입점해 있다.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상인들은 그러나 임대료에 대해서는 저항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총지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임대료 지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상인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상가 권리금이다. 임대차계약이 끝난 상인들은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고 가게를 접는다. 여기에는 건물주의 ‘배려’가 있다. 임차인은 자신이 지불했던 금액 또는 그 이상의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 영업을 지속하면서 권리금을 회수하려 노력한다. 만약 건물주가 당장 퇴거할 것을 요구하면 임차인은 자신이 지불한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쫓겨날 수 있다. 방이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ㄷ씨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현실에서는 힘이 없다”고 말했다. 법은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때까지 건물주가 강제퇴거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력한 조항이다. ㄷ씨는 “법은 임대료를 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며칠 전에도 월 임대료 500만원짜리 가게가 50% 인상된 75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면서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고 항의하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그러면 나가시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임차인은 을(乙) 중에서도 을(乙)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법은 계약일로부터 5년까지는 임차인이 임대료 인상을 거부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2년마다 갱신되는 게 관행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이 가게를 접지 못하고 인상된 임대료를 내면서 버티는 이유는 권리금 회수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방이동 먹자골목의 한 치킨집은 권리금만 5억8000만원에 달했다.
 

천정부지 임대료 상승은 외면 

송파구에서 프랜차이즈 24시 찌개집을 운영하는 최모씨(47)는 지난 11일 가게를 내놓으며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권리금 좀 잘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최씨는 롯데월드몰 건설로 증가할 유동인구를 보고 지난 2016년 2월 권리금 1억3000만원을 지불하고 가게를 차렸다. 76㎡ 작은 규모의 가게 임대료는 월 370만원이다. 최씨는 지난 12월 한 달 동안 171만원을 벌었다. 그는 “어제(10일) 주간매출(12시간)이 4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최저임금 인상분이 부담 안 되는 자영업자는 없다”면서도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비용으로만 월 1000만원이 나가는데 솔직히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매출실적이 저조한데도 권리금을 회수하기 위해 장사가 잘 되는 척 ‘가장영업’을 하는 상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업자 ㄷ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장사하기 어려워졌다는 사람들의 장부를 잘 들여다보면 인건비 상승폭보다 임대료 상승폭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진작에는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편의점 점주 임씨는 “오른 최저임금을 받은 알바생이 그 돈을 어디서 쓰겠나.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과자라도 하나 더 살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낸 ‘최저임금 인상 고용영향평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0% 인상되면 1.1% 정도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최저임금 상승으로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아온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소비가 많이 늘고, 결과적으로 산업생산을 유발·촉진하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생산 유발이 일시적 고용 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순환고리에 따라 고용도 다시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선순환고리가 이뤄지기까지 소요되는 기회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 것인가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영향권에 드는 사람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23.6%에 달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모두에게 부담이다. 자영업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방이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ㄹ씨는 “아직까지는 시급을 올려달라는 아주머니는 없었다”면서 “다만 인력소에서 나온 일당 알바들은 이미 인력소에서 최저임금 인상분만큼을 더 내도록 하고 있어(8만5000원→10만원) 기존 일하는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동요되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홍대 인근 족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모씨(23)는 “겨울인데도 손님이 없어 휴대전화만 볼 때가 많은데 ‘최저임금 인상분을 더 달라’는 말을 꺼낼 수는 없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편의점·음식점업·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에 대한 계도기간을 준 뒤 이달 말부터 두 달간 집중 점검에 나선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준수 여부와 함께 임금체계를 임의로 개편하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한 사례 등을 중점적으로 살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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