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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을 이제 시민의 품으로 구출해야 합니다”

[인터뷰]20만 국민청원운동 중인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
▲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는 현 경찰인권센터 전경. 조사실이 있던 5층 창문은 고문의 고통에 못 이겨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을 사전 봉쇄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좁은 간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던 5층 복도 창문 틈으로 열차 소리가 들린다. 당시 대공분실에 끌려온 민주인사들은 작은 창 너머 들려오는 열차 소리로 ‘이 곳이 역 주변이구나’, ‘고향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리라.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제 이튿날인 15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기념관에서 김학규 사무국장을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기자들의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청와대 20만 국민청원운동’에 대한 문의였다.

김 사무국장은 “영화 <1987>로 인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늘었지만 오는 길 어디에도 안내 표지판 하나 없다. ‘경찰청 인권센터’ 표지판만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쉽게 찾을 수 없는 ‘박종철 기념관’

김 사무국장은 요즘 기념사업회와 대공분실을 오가며 방문객을 안내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 일만큼 ‘국민청원운동’도 중요하다. 지난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김 사무국장은, 2008년 이곳에 박종철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5~2006년 함세웅, 명진스님 등 민주인사들은 기념관 운영과 관리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이관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청 인권위원회’라는 일종의 경찰 자문기관이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해 놓고 실제로는 ‘경찰청 인권센터’, 즉 경찰이 직접 맡았다.”

당시 경찰은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실제 대공분실을 홍제동으로 옮기고, 경찰의 관리 아래 둔 것. “경찰은 ‘인권센터’라는 이름을 달아 마치 인권경찰이나 된 양 거들먹거렸지만, 정작 박종철기념관을 그 안에 가둬버렸다”며 김 사무국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종철기념관은 경찰인권교육‧전시관 안에 작은 ‘박종철 전시실’로 마련돼 있다(기념사업회는 '박종철기념관'이라고 부른다). 관리와 운영을 모두 경찰이 담당한다. 경찰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이곳을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라고 안내해주는 표지판도 없거니와,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는 시간에도 제약이 따른다. 평일(오전 9시반 ~ 오후 5시반)에만 가능했던 관람시간을 주말인 토요일까지 개방하도록 연장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평일에만 개방하고, 주말에 관람하려면 일주일 전에 요청해야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년에는 주말 개방도 못하게 했다. 경찰들이 주말까지 힘들어서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주일 전에 신청해야 가능했던 토요일 제한적인 개방도 못하겠다고 해서 결국 석 달 동안 개방하지 못했다”고 김 사무국장은 전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난해 7월부터 평일부터 토요일까지 관람도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경찰은 ‘토요일에 개방하니 일요일은 신청하지 말아 달라’며 주말 관람을 어렵게 했다.

김 사무국장은 “경찰이 힘들어서 주말 개방을 못한다고 하면, 운영 인원을 늘리거나 예산을 더 투여할 방법은 고민하지 않고 ‘주말 개방은 안 된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그 얘길 듣고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가 영구임대식으로 제공한 자료도 다시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되면 경찰이 더 자의적으로 이 공간을 운영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꾹 참고 요구하면서 원상태로 돌렸다는 것이다.

▲박종철 기념관 전시물을 안내하고 있는 김학규 사무국장

남영동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민주주의’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 그들만의 공간이 아닌 인권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 2일부터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운동을 시작했다. 김 사무국장은 “경찰이 아닌 권력의 변화에 부침이 덜한 기관에서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는 게 맞다”면서 인권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민사회단체에 위탁하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자신들의 운영‧관리 권한을 내놓고 싶지 않아 한다”고 전했다.

박종철 열사 31주기 기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 조사실을 찾아 헌화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 청장은 이날 ‘법의 테두리 내에서 시민단체도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유족과 기념사업회와 의논해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이에 대해 “시민단체 일부를 참여시켜 구색 갖추기만 하겠다는 것으로, 경찰이 이곳에서 손 뗄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운영과정에서도 개입하겠다는 뜻”이라고 못 미더워했다.

“옛날(2005~2006년)에 다 했던 얘기다. 지난 13년간 경찰의 관리 아래서 힘들게 버텨온 것도 이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 참아왔던 건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에서도 지금까지 당했던 것을 또 한 번 하자고 한다.” 의미 없는 논의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김 사무국장은 탄식했다.

기념사업회가 만들고자 하는 인권기념관은 ‘인권경찰로 거듭 태어난 경찰’이란 홍보 문구만 넘치는 곳이 아닌, 과거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의 상징이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도록 하는 공간이다. “촛불혁명 이후, 정권교체로 적폐청산이 논의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 공간은 더욱 그렇게 만들어야 마땅하다”고 김 사무국장은 강조했다.

시민사회가 ‘공동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박종철 열사, 김근태 의장을 비롯해 수많은 민주인사와 학생들, 학림사건 등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이 고문을 당했던 이 곳을 시민들이 전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김 사무국장은 “남영동 대공분실이 갖는 상징성에 맞게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고문치유센터, 저항예술 전시공간, 시민인권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시민이 쉽게 찾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종철을 기억한다는 것

김 사무국장은 영화 <1987>을 보며 인문대 동기인 박종철 열사를 기억했다고 한다. 학생회 유인물을 함께 만들던 친구 박종철을 마지막으로 본 게 1986년 10월이다. 87년 초 자신이 수배생활을 하고 있어 70여 일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 소식을 1987년 1월15일자 석간 중앙일보를 통해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87년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기위해 노력한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를 다시 만났다”는 김 사무국장은, 영화 <1987>이 국민청원운동의 여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함세웅 신부, 이부영 전 의원 등 많은 인사들이 참여해 영화관을 찾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남영동의 실상을 알리고 국민청원운동 참여를 호소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1월 한 달간 진행되는 국민청원운동의 속도가 아직은 더디다”면서, 많은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해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사무국장은 끝으로 2018년 현재 박종철 열사를 기억한다는 말의 의미를 “박종철은 31년 전 고문당해 죽었지만, 이제 시민의 품으로 박종철을 구출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최근 10년 동안 민주주의는 희미해지고 흐릿해졌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절실함도 높아졌고 결국 촛불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정권교체까지 이뤘다. 87년 6월 민주항쟁이 있었기에 촛불혁명도 가능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새삼 느끼게 되면서 87년을 되돌아보게 되고, 박종철을 재조명하고 있다. 30주기였던 지난해 박종철은 우리 곁에 촛불로 살아있었다. 촛불혁명의 승리, 하지만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보통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할 때 민주주의는 공고화되고 넓어지고 깊어진다.”

<국민청원운동 참여하기>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navigation=petitions

▲조사실이 있는 5층 복도 창문 너머로 남영역이 보이고, 열차 소리가 들린다.
▲ 시민들이 박종철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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