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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강 트인 갯벌 보니, 옛 새만금 생각났다”

“청천강 트인 갯벌 보니, 옛 새만금 생각났다”

조홍섭 2018. 06. 11
조회수 2475 추천수 1
 
인터뷰: 8번 방북한 나일 무어스 '새와 생명의 터' 대표
 
2015년부터 북한 습지 조사한
한국 사는 영국인 조류학자
9번째 방북하는 길에 만났다
 
“언덕, 초원, 논, 갈대밭, 갯벌…
수십년 전 남녘 습지의 모습 간직
이미 사라진 종달새·때까치 흔하고
문덕에서는 개리 4만마리 확인”

 

n1.jpg» 나일 무어스 ‘새와 생명의 터’ 대표가 지난 1일 오전 북한 방문길에 앞서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에서 ‘한겨레’를 만나 북한의 해안과 습지 등에 이야기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때에도 북한의 해안 등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둘러본 이는 드물다. 그러나 최근 여덟 차례나 북한의 해안과 습지를 두루 조사한 사람이 있다. 영국 국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 20년 동안 조류보호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새를 한국인보다 더 잘 안다’는 평을 받는 나일 무어스 ‘새와 생명의 터’ 대표(55·조류학 박사)가 그이다. 이메일 인터뷰에 더해, 지난 1일 다시 북한 방문길에 오른 그를 서울역에서 만났다.
 
어떻게 그렇게 자주 북한을 조사할 수 있었나요.
 
“독일 한스 자이델 재단이 지원한 북한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 프로젝트에 조류 전문가로 참가해 왔습니다. 2015년부터 평양과 강원도 고성에서 해마다 워크숍을 열었고 현지조사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두만강 하구인 함경북도 나선 철새보호구역을 네 차례 조사했고 서해안과 동해안을 네 번 갔습니다. 이번에 나선에 가면 9번째가 되네요.”
 
―나선 조사는 무슨 목적입니까.
 
“번식하는 새들과 양서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스 자이델 재단 베른하르트 젤리거 박사와 양서류 전문가인 아마엘 보르지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도 동행합니다. 지난달 조사 때 젤리거 박사가 평안북도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역에서 개구리 소리를 녹음했는데, 나중에 남한의 멸종위기종 1급인 수원청개구리로 밝혀졌지요. 정치적 여건이 나아졌을 때 이곳에 연구나 탐조, 여가를 위한 방문이 가능한지 타진하는 것도 목적입니다.”
 
n2.jpg» 람사르 협약 발효를 기념해 5월16일 평양에서 열린 람사르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워크숍 모습. 새와 생명의 터 제공
 
―5월 16일 북한이 가입한 람사르협약이 발효한 것을 기념해 평양에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날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철회했습니다. 이튿날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북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워크숍 참석과 현지조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던 때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우리 일행은 15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16일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죠. 약 130명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북한(DPRK)의 관련 부처 공무원과 몇몇 외교관이 들어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좋았고, 이전과 좀 다르게 늘 만나던 사람들이 상당히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언제쯤이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가 나라를 더 나은 상태로 이끌 것으로 믿는다는 언질을 주곤 했습니다.
 
―람사르협약 가입은 북한이 더욱 개방적이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람사르에 가입하고 동아시아-호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EAAFP)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진전이고, 북한이 당면한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 국제사회와 더 열린 자세로 협력을 공고화하겠다는 신호입니다.
 
북한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길 원하는 이들에게 큰 부담이 있습니다. 국제기구는 어떤 형태의 관계이든 북한에 대해 존중을 표시해야 합니다. 북한이 다른 나라들을 존중하길 기대하는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분명히 말하건대, 그들의 지도자에게 공개적인 숭배를 표시하는 방식의 존중을 보이라는 건 아닙니다. 지난 여덟 번의 방문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지도자의 동상에 절한 적도 없고 또 그렇게 하거나 정치적 슬로건을 따라 하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존중을 보이라는 건 베트남, 일본 또는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내가 갖길 기대했던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직을 떠나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존중받습니다만 북한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북쪽 당국이 협력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상대하는 국토환경보호성 사람이 분명히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문덕과 나선을 람사르협약의 첫 사이트로 등록할 때 우리의 조사와 자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입니다. 이 두 곳은 지난해 3월까지도 최우선 후보지가 아니었습니다.
 
n3.jpg» 문덕 철새보호구역 전경. 어업과 농사를 위한 개발이 이뤄졌으나 강하구와 갯벌, 모래섬, 바위섬 등은 자연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n4.jpg» 두만강 하구의 나선 철새보호구역의 서봉포 전경. 2014년 3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저는 이것을 우리의 조사 자료를 신뢰한다는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한스 자이델 재단 주도로 국토환경보호성이 지난해 가입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여러 기관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를 믿는다는 거지요(그는 새만금을 200번 넘게 다니며 조사한 보고서를 한국 정부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개탄한 적이 있다). 최근의 결정들이 급속한 진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북한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단지 필요한 걸 수행할 능력(돈이 없고 평야 지대 인구 과밀 등)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미 1990년대에 철새 보호구역을 18곳인가 19곳 지정했습니다.”
 
―람사르협약 가입 기념 워크숍은 어땠습니까. 고위관료나 엔지오 또는 탐조가들도 참가했나요?
 
“아주 성공적이라는 얘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습니다. 문덕과 나선 보호구역에 대한 높은 평가를 부러워하는 관리들도 많더군요. 한스 자이델 재단은 2015년부터 해마다 북한에서 이런 워크숍을 열어 왔습니다. 처음엔 평양에서 열리다가 지난해엔 강원도 삼일포에서도 열렸습니다. 네 번 참가했는데, 이번 행사가 가장 관심을 많이 끌어 국영 텔레비전 방송과 평양타임스 등에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알기론 북에는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나 환경 엔지오가 없고, 아마추어 탐조가도 없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예술작품의 소재이고 방송 뉴스에 나옵니다. 원로 조류학자인 원홍구 교수(남한의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의 부친)는 아직도 유명하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을 정도입니다. 유일한 탐조인이라고 한다면 외국 대사관이나 기관 근무자들인데 이번 워크숍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고 운영합니다. 조선 자연보호연맹(NCUK)은 오랫동안 국제자연보전연맹의 회원단체로 엔지오라고 자임하지만, 남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듯이 엔지오가 아닙니다. 정부기관이지만 국토환경보호성 같은 더 공식적 정부기관보다 덜 권위적이고 영향력이 적은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n5.jpg» 평안북도 청천강 하구인 문덕 철새보호구역의 거주지역 모습. 앞에 광활한 하구가 보인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현지조사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많은 한국인이 방문하신 곳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합니다.
 
“대개 실제 조사 5∼8일에 이동과 회의 등에 2∼3일을 보내는 일정이었습니다. 모든 조사가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의 사업구상과 자금지원으로 이뤄졌고 국토환경보호성과 나선 당국의 협조로 진행됐습니다. 매번 일정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스 자이델 재단, 스위스의 람사르사무국과 북한 대표부 등 기존 채널을 통해 논의됐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반입한 장비 등을 자세히 등록해야 했습니다. 허가를 받아야 망원경과 카메라를 반입할 수 있지요.
 
이번 방문 때는 문덕에서 이틀을 조사한 뒤 동해안으로 원산 시중호에서 북쪽으로 함흥까지 가면서 5∼6개 습지를 조사했습니다. 먼저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인 문덕에서는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습지의 관리에 초점을 맞췄고 나머지는 생물 다양성에 집중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모두가 조류 조사원이 되었습니다. 운전사 한 명과 국토환경보호성 공무원 3명, 지역 당 간부 2명, 국가과학원 연구자 3명까지 나섰는데, 나와 한스 자이델 재단의 베른하르트 제리거 박사가 새의 종을 구분하는 법과 조사기법을 알려주었습니다.
 
n6.jpg» 한스 자이델 재단 등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문덕 주민들과 만나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논의하고 있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나선은 덜했지만 모든 조사 장소에서 갈 수 있는 장소를 엄격히 규제했습니다(때론 보는 것을 막기도 했습니다). 며칠 동안 국토환경보호성이 나서 해안 지역 출입 허가와 지역경계를 넘는 허가를 받았는데 그랬습니다. 보호구역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접근을 통제하는 이유는 나쁜 외국인이 과거에 북한을 곤란에 빠뜨리려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더 그럴듯한 이유는 군부가 너무 막강해 어디에나 힘을 뻗치기 때문일 겁니다. 군부는 어느 곳이라도 무슨 비밀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다면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대상은 외국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어디나 그렇듯 매번 같은 곳을 방문하면 접근 제한은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국토환경보호성이 지역과 허가절차에 익수해지고 또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조사를 하다 보면 늘 불만스러웠습니다. 새들의 최고 서식지로 보이는 곳은 여지없이 접근을 차단당하기 일쑤였으니까요.
 
조사를 통해 얻는 것도 많았습니다. 여덟 차례의 조사를 통해 우리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와 해안지역 몇 곳을 찾아냈습니다. 또 300종 가까운 새를 확인했는데, 이 가운데 몇몇 종은 북한에서 이전에 전혀 기록되지 않은 미기록종이었습니다. 조사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북한의 환경과 새들의 삶을 점차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새 서식지와 실태를 자연히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참 고맙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로 우리의 조사 자료와 통찰, 영상을 자유롭고 신속하게 공유했습니다. 우리가 작업한 자료 공유와 공개가 북한 사람들이 자기 환경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n7.jpg» 문덕 철새보호구역에서 북쪽 인사가 필드스코프에서 본 새의 종을 도감에서 찾고 있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당국과 일반인이 조류 탐사를 어떻게 보던가요. 철새와 자연보전의 필요성을 느끼던가요. 새들이 종마다 어떻게 다른지 등 생태적 지식을 열성적으로 배우려 하던가요.
 
“그렇습니다. 국토환경보호성에서 만난 사람들은 새에 관해 배우는데 매우 관심이 있었고 나라의 생물 다양성 보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함께 일한 이 부처 과장은 생태계, 생태계 서비스, 혼농임업 등 이 분야를 꿰고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정할 만한 자유가 없는 사회이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자료와 핵심 사이트를 토론하기를 원했습니다.
 
―문덕과 나선 철새보호구역을 둘러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그 전에 논문을 읽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지만, 청천강 하구(문덕)를 눈으로 처음 본 건 2016년 5월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였어요. 썰물 때였는데, 하구가 정말 멋졌습니다. 하굿둑 하나 없이 큰 강이 자유롭게 흐르는 옆에 염생식물로 덮인 갯벌이 드넓게 펼쳐졌어요. 모래섬이 바다를 향해 줄지어 있었고, 멀리 작은 바위섬들이 보였어요. 전에 읽었던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의 번식지겠구나 했죠. 그 순간 새만금이 떠올랐어요. 방조제로 막히기 전의 모습 말이에요. 그리고는 금강과 낙동강 하구가 한때 이랬었겠구나 했죠.
 
n8.jpg» 문덕 철새보호구역의 농경지를 나는 도요·물떼새 무리. 간척 이전 새만금 모습과 닮았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나선은 서식지 유형이 너무 다양해 놀라웠습니다. 한눈에 숲이 덮인 언덕, 초원, 논, 호수와 갈대밭,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해안선이 들어왔지요. 비록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이런저런 이유로(언덕의 잡초 태우기, 습지를 논으로 개간하기 등) 훼손됐지만, 아직 새가 매우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두만강 하구인 함경북도 나선은 여러 번 방문했는데, 변화가 느껴집니까?
 
“남한보다는 변화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만 해도 작은 갯벌이 사라지는 걸 보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서식지인데 중국 회사가 갈대밭 일부를 양어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지역이 물새와 바닷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 말고도 우리가 나선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도록 강력하게 추진한 이유는, 이곳의 서식지를 보전하는데 새로운 수단과 추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양에서 멀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자본을 대는 대규모 야심적인 개발사업이 여럿 추진되고 있습니다. 나선 사람들이 그곳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려면 단지 기술적 지원뿐 아니라 인력과 물자 등 체계적 지원이 필요할 겁니다.”
 
n9.jpg» 함경남도 해안에 있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인 금야 철새보호구역 모습. 새와 생명의 터 제공
 
n10.jpg» 함경남도 광포호. 북한의 대표적 철새보호구역의 하나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문덕과 나선이 어떤 습지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문덕 람사르 습지는 식물이 자라는 갯벌과 조간대 하상, 얕은 물 등 3500㏊에 인접한 논 250㏊로 이뤄집니다. 갯벌 대부분은 갈대밭이고 사초과 식물이 자랍니다. 이곳은 매우 중요한 도요·물떼새 서식지인데, 개리의 서식지로 더욱 가치가 큽니다. 전 세계 개체수의 절반 이상인 4만 마리를 여기서 최근 몇 년 동안 확인했습니다. 어로가 허용되는 곳은 아니지만, 보트와 강둑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많아 적지 않은 교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많이 논의한 건 지역주민의 수입과 식량을 보충해 자연자원에 대한 압력을 줄이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나선의 위성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는데요. 보호구역의 핵심은 세 개의 얕은 호수입니다. 둘은 담수호이고 하나는 기수호인데, 주변은 논과 갈대밭입니다. 이 지역의 특별한 가치는 지리적 위치에 있습니다. 중요한 철새 이동 경로에 자리 잡고 서로 다른 서식지를 이어주는 곳입니다.”
 
―북한의 습지 보호구역과 남한의 것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종 다양성, 경관, 자연자원 이용, 보전 정책 측면에서 말입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발전 단계와 하부구조가 남한과 북한 사이에 너무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경제와 사회의 변화 단계도 너무나 다릅니다.
 
n11.jpg» 원산 인근 시정호의 모습.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북한에는 아직도 콘크리트가 거의 없고, 플라스틱은 보기 힘들며, 농촌에는 가로등이 없고 댐과 수문도 거의 없습니다. 기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낮 동안에는 어디나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손으로 농사짓고 고기를 잡습니다. 어떤 지역은 아름답고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지역은 헐벗고 숲이 황폐해졌으며 언덕에 맨땅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닦을 땅과 물이 부족합니다.
 
물론 남한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됐습니다. 환경적으로도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잡고 산림을 녹화하는 등 많은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환경 인식도 많이 높아졌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의 땅과 물을 그저 일상생활을 하는 배경으로만 여기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산악을 떠나 평지로 내려오면 이제 기초시설과 자원 채취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공기는 맑아졌지만 도처에 플라스틱과 쓰레기가 넘칩니다. 감자밭에 덮은 검은 비닐봉지가 나무에 죽은 까마귀처럼 걸려 흔들립니다. 그 옆에는 딸기 농장 비닐하우스에 버려진 파이프와 쓰레기 더미가 을씨년스럽게 놓여있습니다. 남한의 해안은 강물이 그런 것처럼 거의 콘크리트가 줄지어 있는 꼴입니다. 내가 다녀본 유럽, 북미, 아시아 다른 지역 어디보다 더 그렇습니다. 아마 유일한 예외는 일본일 겁니다. 거의 모든 강에, 심지어 아주 작은 개울에도 댐이 있습니다. 게다가 중장비 덕분에 들판이나 강에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유람용 낚시꾼이나 캠핑카와 캠핑족을 빼면).
 
남한의 이런 변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됐으며 누구나 뻔히 보듯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는 꼭 필요하고 또 상당수는 가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금세기 들어 건설과 개발사업은 생태학자이자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개발을 위한 개발로 비칩니다. 보통 사람들이 얻는 혜택은 거의 없고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망칠 뿐인 사업이죠. 이제는 황폐해지고 죽어버린 새만금과 4대강 사업은 아마도 가장 악명높고 개탄할 지속 가능하지 않은 남한의 개발 사례입니다. 내가 몸담은 작은 단체가 조사한 바로는 수백개의 작은 자연 지역이 불도저로 뭉개지고 망가지면서 전에 흔했던 수많은 새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참새, 제비, 노랑때까치, 청둥오리, 도요·물떼새 등 모두가 줄어들어 생태계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n12.jpg» 금강하구 유부도에서 조류를 관찰하는 무어스 박사(왼쪽). 그는 통일이 되면 남한의 건설자본이 북한 해안을 무분별하게 개발할까 걱정이 많다. 조홍섭 기자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건 남한의 건설업체가 평화와 통일이 이뤄지면 비슷한 개발 방식을 북한에서도 되풀이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꼭 필요한 사업부터 시작하겠지만 거의 모든 곳에서 자연이 인공 경관으로 바뀔 때까지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덕을 방조제로 막기 전 새만금에, 또는 60∼70년 전 금강하구의 서천 갯벌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두 곳 다 도요·물떼새의 중요한 도래지(금강 하구는 문덕보다 더 중요)이고, 두 곳 모두 개리가 찾아오긴 합니다(문덕 4만 마리에 견줘 금강에는 30∼40마리). 하지만 문덕에는 전원의 모습과 분위기가 있습니다.
 
나선은 아마도 70년 또는 그 전의 화진포 같은 강원도 해안과 석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고니떼와 수만 마리의 오리가 있는 곳 말입니다. 요즘 화진포 호처럼 고속도로가 뚫리고 가로등이 들어오고 생태 박물관과 수족관, 공원과 펜션이 여기저기 들어선다면 나진이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할까요?”
 
n13.jpg» 북한의 강원도 통천호. 자연스런 호수 형태가 유지돼 있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북한 습지에서 본 새들 가운데 눈에 띄는 종은 어떤 게 있습니까?
 
“간단히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세 가지 얘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이제 남한에서 번식하는 개체를 거의 보기 힘든 종달새와 노랑때까치 같은 멋진 새들이 아직 북한에는 흔합니다. 이들 종이 남한에서 붕괴한 것은 농업의 집약화와 산업화 책임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둘째, 우리가 갈 수 있었던 북한의 해안은 일부이지만 동해에서 조사한 지역에는 모두(나선, 함흥 인근, 강원도) 많은 수의 바다오리, 논병아리, 아비가 있었습니다.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종종 훨씬 많은 수입니다. 이 새들은 각각 다른 종의 해양동물을 먹고 삽니다. 따라서 북한의 해양생태계는 아직 꽤 건강하고 다양하며 자연적으로 생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남한보다 갈매기가 적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갈매기는 주로 어업 폐기물을 먹습니다. 북한에 이들이 적다는 것은 그곳에 쓰레기가 적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끝으로 북한에서는 여태껏 남한에서 본 것처럼 엄청난 규모의 새가 무리를 짓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창오리나 기러기의 거대한 무리나 새만금에서 자주 보는 10만 마리의 도요·물떼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 때 제 장소에 가지 못했거나, 손으로 짓는 농사 때문에 낙곡이나 농업 폐기물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연구를 해야 그 이유를 알 것입니다.”
 
n14.jpg» 함흥의 송천 하구와 배후 농경지. 쓰레기와 인공 시설물이 거의 없지만 부분적인 훼손은 상당하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한 당국이 조류 보전 분야에서 남한 엔지오의 교류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지요. 어떤 분야가 협력에 유망할 것으로 봅니까.
 
“만일 제재가 풀리고 정책결정자가 허용한다면, 그리고 상대에 대한 적절한 존중과 선의에 토대를 두고 북쪽이 무얼 원하는지 명시한다면 북한의 적절한 당국이 조류 보전 분야에서 남북교류를 환영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나라가 다 균질한 것은 아니어서, 예컨대 북의 군부가 ‘주체’를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최선의 방식은, 우리도 그랬지만,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그것을 자신의 조직이나 부처에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입니다. 현 단계에서 작은 발걸음이 큰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철새에 관한 정보 교류를 늘리고, 새 이미지를 공유해 북에서 멸종위기종 목록 같은 자료를 만드는 데 쓰도록 하고, 현지조사에 필요한 자료나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고쳐 쓸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북에선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러나 장차 이런 교환은 점점 동등하고 균형 잡힌 양방향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조류 보전에 관심 있는 남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조류 보전은 새와 그들이 사는 숲, 습지, 바다, 섬 등 서식지의 자연적 생산성을 보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조류 보전은 사람에게 득이 되고 국익에도 기여합니다. 결국 사람은 건강과 복지와 음식 조달을 위해 똑같은 자연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이죠.
 
남한이나 북한이나 새 종의 90%는 대개 이동성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새와 생명의 터 같은 단체가 성공하려면 남한뿐 아니라 조건이 되면 북한에서도 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알래스카든 뉴질랜드든 새의 이동 경로에 있는 나라의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렇게 일합니다.
 
당연히 철새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어느 한 나라나 지역에 속해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는 자유를 선망하곤 합니다.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날아가는 새처럼 세계를 하나로, 분열되지 않고 서로 연결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합된 세계를 상상하면 비로소 철새 보전이 인류의 통합을 돕는다는 것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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