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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신뢰' 최대 성과…'美주류 반발' 극복 과제

[전문가 진단] '세기의 회담' 무얼 남겼나
2018.06.13 01:40:53
 

 

 

 

획기적인 '빅딜'은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전환을 위한 첫 발을 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주앉은 '세기의 담판'이 모두 마무리됐다.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12일 마주앉은 양 정상은 총 190분(단독 회담 35분, 확대회담 100분, 업무 오찬 55분)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한 최종 결과물을 '북미 공동성명'에 담았다.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 조항이 골자다.(☞ 공동성명 전문 : 北美, '통큰 주고받기' 첫발 뗐다)
 
공동성명 자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 그대로 '포괄적'이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미뤄졌다. 일괄타결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가운데, 북미가 한 발씩 물러나 향후 시간을 갖고 풀어나갈 과제로 남겨둔 셈이다. 
 
특히 미국 측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명문화되지 않았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CVID"라고 가이드라인을 쳤던 것과 다른 결과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후속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힐난섞인 질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내가 서명한 공동성명에는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반박했다. 공동성명에 명시된 '확고하고(firm), 변함없는(unwavering)' 비핵화가 사실상 CVID와 동일한 의미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맥스 선더' 훈련이 빌미가 돼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뻔했던 점에 비쳐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폭탄 발언'에 가깝다. 한미 군사당국은 "정확한 의미 파악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젠가 논의할 일"이라고 단서를 달았으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도 한미 보수층에서 적지않은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한반도 정전 상황에 대해 "조만간 실제로 종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 미국과 더불어 한국과 중국을 종전 선언 당사국으로 언급함으로써,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등 상징적인 계기에 4국이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이벤트를 예고했다.
 
이처럼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남긴 첫 만남이었지만, 70년 간 대립과 갈등을 이어온 적대국 정상들이 마주앉은 자체가 기념비적 사건이다.  
 
가장 큰 수확은 두 정상이 '신뢰'라는 토대를 놓은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쏟아질 '워싱턴 주류'의 반발이 향후 예상되는 가장 큰 난제로 꼽혔다. 다음은 세 명의 북한 및 미국 전문가들의 북미 정상회담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AP=연합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공동성명과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는 미북 관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겨있다. 공동성명이 나온 것 자체가 큰 성과다.  
 
물론 기대했던 만큼의 구체적인 무언가는 부족하다.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 계획이나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 보장에 관한 구체성이 다소 아쉽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미 양측이 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욕심이 있었겠지만, 70년 간 누적된 반목과 적대시 정책이 너무 뿌리깊고 내재화되어 있지 않나. 이번 회담은 그 뿌리깊은 불신을 확인한 계기였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북미 정상이 우여곡절 끝에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까지 도출했다는 것은, 과거의 반목에 좌절하기보다 욕심을 서로 자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신뢰의 시작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나아가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양측이 빠른 시일 내에 후속 회담을 약속한 점은 미래를 위한 의지를 담은 것이다.  
 
과거의 아픔과 불신을 직시하고, 신뢰를 구축해 발전해 나가자는 미래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보면, 회담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디테일이 다소 아쉽더라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CVID'가 빠졌다고들 하는데, 한쪽 눈을 감아선 안 된다.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계획도 들어있지 않다. 양쪽 다 뺀 것으로 봐야 한다. CVID를 명문화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체제안전 보장 방안도 명시해야 하는 것이다. 북미 회담은 비핵화 회담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주는 회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쪽이 동일하게 각자의 욕심을 내세우기 보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신뢰를 다지자고 한 것은 얼핏 보기에는 미약해 보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이후에 더 속도를 낼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 후 미국 주류 사회와 적지 않은 마찰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당신들은 지금까지 무얼 했느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박에는 일리가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것이다. 이는 북한에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남한에도 엄청난 폭탄을 던진 것이다. 향후 한미 동맹이나 방위비 분담 문제, 한미 FTA 등 경제 문제를 비롯해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상징적인 조치를 하나씩 한 것으로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 말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을 안하겠다고 했다. 이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 간에 신뢰의 고리를 걸어 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문제와 한미 군사훈련 문제를 언급한 것이 가장 큰 이슈일 텐데, 이는 미국의 안보 딜레마를 천기누설한 듯한 느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의 비용 문제까지 언급하며 안보 딜레마를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 연합훈련은 연례적, 합법적, 방어적 훈련이라는 것이 한미의 공식 입장이었다. 북한에 위협이 되지 않는 훈련이며 북한의 도발과 교환될 수 있는 등가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간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면 한미 훈련을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멘붕'에 빠질 문제다. 
 
실제로 한미 훈련이 중단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테지만, 기본적으로는 '쌍중단(핵미사일 실험 중단,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지속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얘기한 만큼, 적어도 전략자산 전개는 하기 어려워졌다고 본다. 
 
게다가 만약 7.27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할 명분도 빈약해진다. 14일부터 남북 군사회담이 시작되는데, 남북간 협의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CVID와 체제보장 문제에선 당초 기대보다는 수위가 낮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현실적으로 돌아선 결과다. 일괄타결이 어렵다고 보고 여러번 나눠서 진행될 문제라고 인식한 것이다. 비핵화에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돌아섰다. 
 
공동성명에 담긴 순위에서도 비핵화는 세번째 의제로 들어갔다. 북미 간 새로운 관계 구축이 첫 번째 의제인데, 이는 북미 간 관계 개선과 신뢰를 통해 비핵화로 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비핵화 문제를 단번에 끝내겠다는 입장에서 '과정'이 필요한 의제로 변경하고, 3분의 1로 줄인 것이다. 1, 2번 항목이 수반돼야 3번(비핵화)이 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는 현재 상태에서 북미가 취할 수 있는 맥시멈(최대치)을 담은 것이다. 평화정착이 이뤄지고 신뢰가 누적돼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4.27 판문점 선언의 연장선으로 본다. 청와대가 북미 회담을 "한반도 냉전해체 선언"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 맥락으로 본다. 
 
다만, 이번 합의 결과로 인해 미국은 내전이라고 할 정도의 갈등에 휘말릴 것 같다. 워싱턴 주류와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붙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공화당은 과거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 수교하고 이란과 협상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었다. 그렇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북한과 하는 협상은 모순이라고 공격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진보 쪽은 대통령이 평화 교섭을 한다는데 이를 공격하면 모순이 된다. 
 
이처럼 워싱턴 주류와 복잡한 내전이 전개될 텐데, 트럼프 대통령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어서 쉽게 물러나지는 않겠지만, 의회가 공동선언을 조약으로 비준해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희망적 기대가 컸다면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북미 정상의 만남 자체가 역사적이다. 공동성명에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문제가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됐지만, 북미 양쪽 모두 손해를 본 결과는 아니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포괄적 합의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성과라면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도 연관된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종합적으로 사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트럼프 외교의 단면이다.
 
이 문제는 사전 협상에서도 거론됐을 것으로 본다. 비핵화에 상응하는 교환 품목은 외교적 조치, 경제적 대가, 군사적 조치인데, 북한이 그동안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가장 크게 반발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조치가 가장 쟁점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군사훈련 중단을 언급한 것이어서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공동성명에 'CVID'가 명기되지 못했는데, '확고하고(firm), 변함없는(unwavering)'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대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CVID 중 'V'와 'I', 즉 검증과 불가역성이 난제다. 어느 수준에서 타협을 볼 것이냐가 관심이었지만, 결과로만 보자면 싱가포르 현장에서도 끝내 타협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 결과를 미국 주류가 동의해 줄 수 있느냐가 제일 걱정이다. 기존에 나왔던 북미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북미 공동 코뮤니케,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올 당시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다르다.  
 
당시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단계였기 때문에 비핵화가 미국에 절실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의 북한이 핵국가 지위에 올라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핵화가 당면 현안이 된 현재, 미국 주류가 이 합의 결과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고도화된 핵능력이 트럼프 대통령 탓이 아니기에, 미국 주류들 역시 '과거에 무얼 했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를 해 낸 것에, 만점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합당한 평가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옳다.
 
주류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후속 협상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V'와 'I'가 진척을 봐야 체제안전 보장 방안도 제시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악마는 여전히 디테일에 있고 이제부터가 진짜다. 
 
종전 선언은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아니다. 평화협정으로 곧바로 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단계적 조치로 놓은 것이다. 다만, 당초부터 이 문제는 남북미와 함께 중국이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중국까지 종전 선언 당사국으로 불러낸 것은 좋은 시그널이라고 평가한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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