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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세계사적 사건!"

[인터뷰]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강양구 기자,남빛나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08 오전 10:35:22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설레고 또 두렵다. 6일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세상에 공표하고 나서, 지난 이틀간 <프레시안> 기자들의 심정이 이랬다.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알리는 기사를 검색하고, 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일희일비하는 모습.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코 간단치 않은 이 질문은 앞으로 <프레시안>이 새로운 식구가 될 조합원과 함께 협동조합 언론의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리라.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순간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도 성공할 것이다.

<프레시안>은 한국 사회에서 바람직한 공생의
모델을 찾고자 노력했던 이들로부터 이 질문의 답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프레시안>이 찾아간 이는 김성훈 <프레시안> 고문(전 농림부 장관). 칠순이 넘은 김성훈 고문은 최근 국민TV 이사장을 맡는 등 여전히 현역으로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는 데 온 힘을 바치고 있다.

국민TV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사실상 공공성을 상실한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
공중파 방송과 보수 언론의 종합 편성 채널에 맞서 대안 방송을 준비 중이다. 국민TV도 <프레시안>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이다. 김성훈 고문은 국민TV가 연말에 제대로 개국할 때까지 '시한부 이사장'을 맡았다.

김성훈 고문은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놓고서 "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주식회사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일은 지난 12년간 사회 정의, 경제 정의, 환경 정의를 지향해온 대안 언론으로서 당연한 귀결"이라며 "한 마디로 사필귀정"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훈 이사장은 더 나아가 "이번 전환은 천민자본주의에 기생해 '언론'이 아닌 '폭론'으로 행세하는 보수 언론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언론의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라며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과 대안 언론을 향한 <프레시안>의 꿈이 행복하게 만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고문과의 인터뷰는 <프레시안>이 협동조합 전환을 공표하기 하루 전인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 진행은 강양구 기자, 정리는 남빛나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 김성훈 <프레시안> 고문(국민TV 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 사필귀정!

프레시안 : 지난 3일 <프레시안> 주주와 임직원이 '주식회사 <프레시안>'을 '협동조합 <프레시안>'으로 전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앞으로 창립총회를 거쳐서 6월부터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김성훈 : 축하합니다. 사실 이번 결정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언론사와 협동조합사에 기록될 만한 대단한 일입니다. 주식회사 언론이 협동조합 언론으로 바뀐 예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걸요.

프레시안 : 특히 기존 <프레시안>의 주주들이 기득권을 포기했습니다.

김성훈 : 주식회사의 주주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일은 보통 결심으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지분의 권리를 포기한 거잖아요. 이런 훌륭한 주주들이 있었던 덕분에 그동안 <프레시안>이 버텨온 게 아닐까요?

솔직히 말하면, 몇 달 전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에게 협동조합 전환 고민을 들었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당장 기존 주주들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첫 출발이 아주 좋아요. 기존 주주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꺼이 협동조합 출발의 밑거름이 되기로 했잖아요.

시작이 좋으니, 앞으로 1만 명, 2만 명, 3만 명의 조합원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일단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데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사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왜 협동조합이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성훈 : '사회적 경제' 개념이 한국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애초 한국 사회에 사회적 경제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향약, 두레, 품앗이 같은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외침이 끊이지 않았고, 엉터리 왕도 많았지만 500년이나 버텨 온 이유도 바로 상부상조의 전통이 풀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풀뿌리 수준에서는 '배려'와 '나눔'이 체화되어 있었어요. 같이 굶을지언정 어느 한두 집만 굶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일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노동이나 땅을 제공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날 사회적 경제 개념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경제의 전통이 천민자본주의하에서 뿌리째 뽑혔습니다. 돈 많은 놈이 돈 내놓고 돈 따먹고, 큰 놈이 작은 놈을 삼켜 먹는 승자 독식 사회가 등장한 것입니다. 서구 자본주의를 따라서 한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서구의 자본주의도 우리나라처럼 천민자본주의는 아니에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서구 자본주의의 몰락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서구 자본주의가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서구 자본주의는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해왔죠. 이런 힘의 원동력은 뭘까요?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그것을 기독교 윤리라고 지적했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단적으로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세요. 빌 게이츠는 어떻습니까? 43억 달러의 재산을 기부한 빌 게이츠 부부가 세 아이에게 물려준 돈은 총 100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워런 버핏은 아예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했어요. 한국의 부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게이츠나 버핏이 보여준 이런 모습에, 바로 베버가 지적한 기독교 윤리가 깔려 있어요. 베버의 기독교 윤리를 염두에 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그 자체로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일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번 돈을 자녀에게 물려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자기 자녀가 스스로 힘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복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거죠.

목사, 장로부터 앞장서서 잘 먹고 잘 살고, 또 교회를 바벨탑처럼 짓고, 그걸 다시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국과는 참 다른 모습이죠. 아마도 예수님이 대한민국 교회를 찾아오면 길을 잃어버릴 거예요. 이게 바로 천민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추악한 자화상입니다. 또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경제 개념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죠.

프레시안 : 협동조합은 그런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라는 말씀이신가요?

김성훈 : 맞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역시 1980년대 이후에 금융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이 부각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일이 2008년 금융 위기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 때문에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경제가 휘청댔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협동조합 기업이나 협동조합 경제의 비중이 큰 지역은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았어요.

장담하건대, 만약에 그런 나라의 경제가 다시 회생한다면 그 중심에 협동조합이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유엔이 세계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한 것도 괜히 그런 게 아니에요. 세계 금융 위기를 겪고 나니 새삼 협동조합의 힘을 실감한 것이죠.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이윤 지상주의의 승자 독식의 천민자본주의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에 기반을 둔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바로 협동조합입니다. 그러니까 대안 언론을 표방해온 <프레시안>이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대사건이라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사회 정의, 경제 정의, 환경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한 마디로 '사필귀정'입니다!

'폭론'에 맞선 대안 언론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렇지 않아도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그간 한국 언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생명, 평화, 평등, 협동' 네 가지 가치를 지향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일보>를 비롯한 한국의 보수 언론과의 악연이 한두 번이 아니시죠? 악의적인 오보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김성훈 : 천민자본주의의 최첨병이 한국의 귀족 보수 언론입니다. 최근의 행태만 봐도 그렇죠. 남북 분단 상태를 상업화하는 데 앞장서서, 남북 갈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금방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북쪽 감정을 북돋는 기사를 줄기차게 써대고 있잖아요? 그런 보수 언론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북쪽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렇게 보수 언론이 남북 갈등을 부추겨서 결국 이익을 누가 봤습니까? 미국이 재미를 봤지요. 지금 미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는 군수 산업입니다. 그런데 이번 남북 갈등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무기를 19조 원어치나 사주기로 했잖아요? 미국은 손 한 번 안 대고 코를 푼 셈이죠.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겪었듯이 진짜 전쟁은 결코 미국에 도움이 안 됩니다. 밑천만 많이 들고 정작 재미는 못 봤죠.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정말 이상적이죠. 미국이 태도를 바꿔서 다시 대북 대화 국면을 조성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한 가지 이유도 이미 잇속을 다 차려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미국만 재미를 본 게 아닙니다. 보수 언론 종합 편성 채널의 시청률도 늘었다죠? 애국가 시청률도 안 나오는 그런 종합 편성 채널이 남북 갈등을 부추겨서 특정 세대의 이목을 끕니다. 또 기업을 압박해 광고를 따고요. 더구나 그런 보수 언론의 행태를 일부 정치 세력이 이용하죠. 이런 게 바로 천민자본주의에서 보수 언론이 생존하는 방식이에요.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이런 '언론'이 아닌 '폭론'의 행태를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언론 생태계 구축의 의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런 폭론이 어찌 생명을 얘기하고 평화를 얘기하고 평등을 얘기하고 협동을 얘기하겠습니까?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앞날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협동조합, 누가 빨간 딱지를 붙이나?

프레시안 :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니 금세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성훈 :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을 놓고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합니다. 한 편에서는 협동조합 하면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농협과 같은 곳을 떠올립니다. 농협과 같은 곳을 비판하는 자리는 아닙니다만, 저는 한국의 농협은 주인인 '농민'이 없는 '기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 협동조합을 표방하니, 국민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있나요? 한 가지 당부하자면, 앞으로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농협과 같은 기존의 협동조합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죽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좋아질 수 있겠죠.

협동조합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그것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레시안> 협동조합 전환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그런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해서일 거예요. 여기서 개인적인 얘기를 하나 할게요. 저는 태어나기 전부터 협동조합이랑 인연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웃음)

프레시안 : 기대됩니다. (웃음)

김성훈 : 제가 1939년생인데요. 1930년대에 저희 아버지가 소지주의 아들로 지역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하셨어요. 일제 강점기하에서 대지주든 소지주든 지주들은 대개 총독부와 밀착되어 있기 마련이었는데, 아버지는 소작농을 빈곤에서 탈출시키려는 협동조합 운동을 하신 거죠.

그런데 총독부가 아버지를 잡아갔습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독립 운동을 했다면서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협동조합 운동은 곧 사회주의 운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겁니다. 마치 과거 독재 정부에서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것처럼. 결국 아버지는 4년이나 옥살이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옥살이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진짜 독립 운동가가 되어 버렸어요. 여담이지만, 4·19 혁명 때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대학교 농과 대학의 시위를 주도했어요. 그러다 경찰에 잡혔는데, 당시 수원경찰서장이 "이놈들 콩밥을 먹이다가는 진짜 빨갱이가 될 거다" 하고서는 저를 포함한 학생을 다 순방했습니다. 그런 훌륭한 경찰서장도 있었어요. (웃음)

아버지는 감옥을 나오자마자 만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그때 전 어머니 뱃속에 있었고요. 그리고 어머니가 저를 낳자마자 7일 만에 강보에 싸서 중국 봉천(심양)으로 향했어요. 닷새째 되는 아침에 봉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업고 두 누나와 형 손을 잡고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아무튼 협동조합 운동을 한 덕분에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졸지에 고향을 등져야 했지요. 1945년 해방 후에는 온 가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고향에서 다시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자라면서 협동조합을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중에 농업 경제학공부한 것도, 또 석사 논문유통 과정을 장악한 상업 자본이 농촌 경제를 어떻게 좀먹는지를 연구한 것도, 더 나아가 외국에서 한국의 농업 금융 제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공부를 계속한 것도 그 뿌리는 협동조합에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개인사를 털어놓는 까닭은 일제 강점기 그리고 반공 독재 정부를 거치면서 관변 협동조합을 제외한 자생적 협동조합 운동이 불온하게 여겨지게 된 이유를 짚어보고 싶어서예요. 협동조합 하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역사의 상흔 때문입니다. 젊은 언론 <프레시안>이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도 했으면 좋겠어요.
 

ⓒ프레시안(손문상)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희망, 시민은 힘이 세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보면서 가장 회의적인 이들이 언론인을 포함한 지식인입니다. 일단 <프레시안>은 올해 1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레시안>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3~4만 명의 조합원만 받쳐줘도 말 그대로의 '독립 언론'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1만 명은커녕 5000명도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은 시민의 의식 수준을 한심하게 생각하죠. 특히 지난 대선을 지나면서 그런 목소리가 부쩍 커진 것도 사실이고요. 협동조합 <프레시안>을 새롭게 시작하는 처지에 이런 질문이 좀 힘 빠지긴 합니다만, 정말로 희망이 있을까요? 물론 희망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김성훈 : 그런 기운 없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의외로 우리나라 시민의 의식 수준은 절대로 낮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서민 대부분의 살림살이가 팍팍하기 때문에 넓고 깊게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 수준이 정말로 낮은 것일까요?

지난 대선 결과만 놓고 봐도 그래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농사짓는 농민들이 분명히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많이 던졌을 거예요. 그런데 그걸 꼭 의식 수준이 낮아서 생긴 결과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요? 오히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라고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게 했던 일을 보세요. 노무현 정부에서 먹고살 만한 진보 지식인 일부야 다른 정부 때보다 기를 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서민의 삶은 어땠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과연 서민의 기를 살려줬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재벌 편을 드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올인(all-in)했어요.

그래서 시중에 이런 농담도 돌았죠. 이회창 씨가 이랬다죠. '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눈치를 보느라 감히 못했을 일을 노무현이 했다!' 이 씨에게 확인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럴 만했죠. 이 씨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진보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감히 한미 FTA 같은 일을 화끈하게 추진할 수 있었겠습니까?

프레시안 : 지난 대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인 문재인 후보도 한미 FTA 추진을 반성했죠. 그런데 민주당은 대선이 끝나니 슬그머니 한미 FTA 재협상을 포기했습니다.

김성훈 : 이건 신문에서 기사로 본 내용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랬다더군요. '한 가지 아주 잘한 일이 있다면, 한미 FTA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 노무현 전 대통령 머리가 '띵' 했다죠. 그러고 나서 봉하 마을로 내려가자마자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때야 '내가 뭘 한 거지?' 하고 정신을 차렸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슬그머니 한미 FTA 재협상을 포기하다니. 저는 민주당 보면서 할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던 속담이 생각하곤 합니다. '조선 놈들은 머리가 깨져서 피가 나 봐야 정신을 차린다.'

민주당 지지자인 서민들은 피가 나도 여러 번 났죠.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아직 머리가 깨져서 피가 안 났거든요.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요즘 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변화를 두려워하는 세력이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처럼 보여서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민주당의 형편이 이러니 서민들이 등을 돌리는 게 당연하죠. 그런 점에서 대선 결과를 놓고서 시민의 의식 수준 운운하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 언론이 그들에게 희망을 한 번도 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겁니다. <프레시안>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의 꿈과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김성훈 : 박박 기어야죠. <프레시안>이 지난 12년간 나라와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지성인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훨씬 많은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남대문 상가의 상인들, 전라도 들판의 농민들이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공론화하는 역할을 <프레시안>이 해야 해요. 이런 점에서도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적절합니다. 협동조합은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거예요.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론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성훈 : <프레시안>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이들 대부분은 결코 여유가 있어서 매월 1만 원씩 내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에게 1만 원은 재벌 2세의 1만 원과 비교했을 때 백 배, 천 배, 아니 만 배의 가치가 있습니다. <프레시안>의 기자들은 그런 조합원을 든든하게 생각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프레시안>의 독자들에게도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주식회사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사건입니다. 새로운 희망의 길을 만드는 데 하나 둘 힘을 보탠다면, 이번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이 한국 언론 또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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