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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부터 장례 시작까지..‘김용균이 떠난 뒤, 57일간의 투쟁’

유족·동료노동자들·시민사회·정치권 공조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결말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2-08 00:43:53
수정 2019-02-08 00: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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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김용균 씨의 시신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 빈소가 마련됐다.
22일 오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김용균 씨의 시신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 빈소가 마련됐다.ⓒ김철수 기자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은 태안화력 故 김용균 씨 사고와 관련한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당·정 발표문에는 그동안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유족이 요구해 온 내용이 적잖이 반영됐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원칙으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용균 씨가 몸 담았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부터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키로 했다. 또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권고를 정부·여당, 사측이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안전을 외면하고 비용과 효율을 앞세워 진행되어 온 발전산업 민영화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28년 만에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원안에 비해 후퇴된 지점도 많았지만,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성과는 “내 아들의 죽음이 다신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와 그 가족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용균 씨 동료들, 이 투쟁을 곁에서 응원하고 함께해 온 시민들,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알았던 일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용균 씨의 죽음 또한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처럼 묻히고 말았을 일이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5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5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청년 노동자의 쓸쓸한 죽음에  
촛불든 시민들…“내가 김용균이다”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김용균(24)씨가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분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한 뒤, 몇 시간 동안이나 방치돼 있다가 동료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용균 씨의 상태는 너무나 처참했다. 

이 사고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다뤄졌고,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갖가지 사고 원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전소 점검 업무는 본래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예산과 인원이 축소돼 이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청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위험 설비 개선 요구도 원-하청으로 나뉜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대부분 묵살돼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한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불법 파견 논란도 일었다.

또 용균 씨가 일했던 곳에서만 2010년 이후 8년 간 1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숨진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사고가 반복돼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원청 서부발전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사측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수차례 제기됐다.  

용균 씨 동료 노동자들은 시민사회와 결합해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용균 씨의 가족들은 권한을 시민대책위에 위임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수많은 시민사회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사고발생 이틀 만에 태안시외버스정류장과 서울 광화문에서 용균 씨를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시민대책위는 매주 토요일마다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광화문과 태안버스터미널에 모인 시민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며,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찾아간 용균 씨 어머니 
1400여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 
목소리에 힘입어 통과된 ‘김용균 법’
 

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용균이가 겪은 안전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거의 모든 시민대책위 활동에 참가했다. 시민대책위 주최 대부분의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진상이 규명되고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또 김 씨는 시민대책위와 함께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관련 법안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엔 하청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계류되어 있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 논의와 공청회 등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보수야당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발목잡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률개정안 핵심 내용들이 후퇴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의 일방적 주장을 바탕으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민생법안을 처리해주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는 산안법 등 처리를 위해 이들의 정치공세까지 감내해야 했다. 

김 씨는 국회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끈질기게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국회 밖에선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영하의 날씨 속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1400여명의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용균 씨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된 ‘위험의 외주화’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산재사고 발생 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를 통과됐다. 

정부의 ‘알맹이 없는 대책’ 발표,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 

정부 관계부처는 사고 발생 이후 수차례 해결 방안이 담긴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 원인과 관련된 내용이 빠진 ‘알맹이 없는 대책’이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잇따라 발생해 온 하청 비정규직 산재사고의 근본원인을 ‘위험의 외주화’로 판단했다. 본래는 정규직들이 하던 업무를 효율과 비용의 논리로 외주화 한 뒤,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판단이었다. 또 ‘하청비정규직들의 시설개선 요구가 대부분 비용을 이유로 묵살됐다는 점’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무겁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도 외주화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시민대책위는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곧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원청이 직접고용하라”는 요구였다. 

12월 17일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합동브리핑’을 열었지만, 근본대책은 빠져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긴급안전조치 등에 대해서만 발표했을 뿐,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관련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으론 뭔가 바뀐다 해도 겉핥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바로잡기 위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전국 곳곳에서 故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이 타올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故 김용균 씨의 유언이 되어버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를 기치로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 행진, 선전전 등을 시작했다. 청년전태일 등 청년학생단체들은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청년추모행동’을 발족해 추모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용균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1월 11일, 시민대책위는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내놨다. 설 명절 전에 용균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월 19일까지 정부가 관련해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1월 15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029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그달 18일엔 고용노동부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독립적인 조사활동과 중립적 운영이 보장되는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진상조사위원을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와 현장 노동자 등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요구와 관련해서는, “정규직 전환여부에 대해선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라는 짧은 답변에 그쳤다.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가족 및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정부 요구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에 관련 답변을 오는 19일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2019.01.11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가족 및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정부 요구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에 관련 답변을 오는 19일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2019.01.11ⓒ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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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책위 단식농성 15일째 발표된 당정 후속 대책 
시민대책위 “적폐 카르텔 뛰어넘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 “정부 여당에만 기대지 않을 것”
 

사고 발생 40일이 넘어가도록 정부에서 근본문제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시민대책위는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태안에 있던 빈소를 서울로 옮겼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5인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종교인들은 추모기도회와 오체투지로 정부에 근본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이들은 설 연휴에도 단식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단의 단식농성이 15일째에 접어들었던 설 명절 당일(5일), 정부와 여당은 전보다 진전된 대책을 발표했다. 그제서야 대표단의 단식농성도 중단됐다. 

사고발생 62일 만인 오는 9일,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 故 김용균 씨를 떠나보낸다. 용균 씨의 장례식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정부 발표로는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시민대책위의 입장이다. 또 당·정이 용균 씨 동료들에 대한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직접고용을 통한 전환방식이 아니기에 원-하청 ‘외주화 구조’를 온전히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발전산업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온 관료들이 정부 곳곳에 있는 한,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설 명절 당일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대책위는 “우린 산업통상자원부와 공기업에 똬리를 틀고 발전 산업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 온 적폐 세력의 공고한 카르텔, 그것을 핑계 삼는 정부의 안일함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여당의 발표에서 희망을 보았다”며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믿는다. 뜻을 모아준 시민들, 유족과 현장 노동자의 투쟁 없이는 오늘의 발표도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대책위는 “애초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 중심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발표하고 “‘죽음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발표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한 투쟁으로 지속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등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출발, 청와대를 향해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등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출발, 청와대를 향해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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