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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윤창중 만큼 황당한 박 정부의 ‘사과 매너’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육근성 | 2013-05-14 09:15: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간 박근혜 대통령는 공식석상에서 두 차례 ‘송구’ ‘사과’ 등의 표현을 썼다. 지난 3월 11일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세계경제도 위기인데 경제부총리도 안 계셔서 정말 안타깝고 국민 앞에 송구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야당이 고위 공직 후보자 무더기 낙마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자,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다.

 

 

사과 받아야 할 ‘국민’ 없는 대국민 사과

 

 

하지만 대국민 사과는 아니었다. 첫 번째 ‘송구하다’라는 표현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야당에 대한 힐난이 포함돼 있고, 두 번째 ‘죄송하다’는 말은 야당 지도부에게 한 말이지 국민에게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토록 사과에 인색한 박대통령도 ‘윤창중 사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재미동포와 피해 인턴 여대생에게도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여러분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멘트만 보면 대국민 사과가 맞다. 그러나 이 발언이 나왔던 장소와 상황, 참석 인물 등을 감안한다면 어색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장소는 청와대 회의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였다. 참석자는 수석비서관들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들어야할 ‘국민’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흘린 ‘사과 멘트’를 기자들이 주워듣고 기사화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사과 ‘요지경 속’

 

 

국민이 직접 들을 수 없는 사과를 한 것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박근혜 정부 두 달 반 동안 도합 다섯 차례 정도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매끄럽지 못했다. 사과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뭘까.

 

 

▲대독사과 - 3월 30일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은 17초짜리 사과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7명이 줄줄이 낙마해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청와대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다.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문을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은 것이다. “새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라는 사과문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단 17초.

 

 

대변인을 통해 사과문을 읽게 해도 된다는 발상이 황당할 뿐이다. 사과를 받아야할 국민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안 한 것보다 열배, 백배 못한 사과였다.

 

 

▲셀프사과 - 5월 10일 밤 이남기 홍보수석

 

 

국민 모두를 놀라게 한 ‘윤창중 사건’ 때문에 청와대가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이남기 홍보수석이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대독사과’ 때처럼 단 넉 줄짜리 짧은 내용의 사과문을 읽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죄송하다며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청와대 구성원의 하나로 보지 않고 사과를 받아야할 국민에 포함시킨 셈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도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판에 겨우 홍보수석이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한답시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황당하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정권이다.

 

 

▲불통사과 - 5월 12일 허태열 비서실장

 

 

‘셀프사과’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한 직급 위인 허태열 비서실장이 나선다. 무겁고 침통한 표정으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대독사과’와 ‘셀프사과’ 논란을 의식해서 인지 4분 25초 동안이나 이어진 ‘사과문 낭독’에서 허 실장은 잔뜩 몸을 낮췄다. 세 번 고개를 숙이며 ‘송구’ ‘죄송’ ‘사과’ 등의 표현을 반복 사용했다.

 

 

‘사과문 낭독’까지는 좋았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줄행랑치듯 브리핑 장소를 빠져 가갔다. 배석했던 민정수석,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등도 곧장 허 실장의 뒤를 따랐다. ‘낭독해 주는 것만 듣고 질문을 하지 말라’는 투였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휭하니 자리를 뜨는 게 새 정부 청와대의 버릇이란다.

 

 

▲직급사과 - 사과문 낭독자? 꼼꼼히 직급 따져서

 

 

“먼저 홍보수석으로 제 소속실 사람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고 죄송스럽다.” 이남기 홍보수석의 ‘사과문’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자신이 왜 사과문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상위직급자이기 때문에 사과문 낭독자로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직급을 따지는 버릇은 곳곳에서 관찰된다. 지난 3월 인사위원장 명의의 사과문을 대변인이 대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허태열 실장의 사과문 낭독에도 ‘직급 따지기’ 관행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윤 전 대변인의 상급자인 홍보수석의 사과가 먹히지 않자 홍보수석의 상급자인 비서실장이 나섰다.

 

 

▲간접사과 -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 회의실 사과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는 게 대국민 사과다. 박 대통령은 이런 ‘직접사과’를 꺼린다. 사과의 의도만 전달되면 됐지 구태여 국민 앞에 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이다. 회의실에서 업무 얘기를 하는 중에 대국민 사과를 하는 건 국민을 경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을 어렵게 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국민 사과를 할 때마다 왜 진풍경이 벌어지는 걸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원인제공자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 방법과 내용에 ‘국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과에 인색하다. 한다고 해도 흉내만 낼 뿐이다.

 

 

‘간접사과’를 ‘직접사과’로 둔갑시킨 언론들

 

 

취임 초 대국민 사과를 한 역대 대통령은 여럿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석달 만에 자신의 고향 땅 투기와 생수회자 투자 배경과 관련된 의혹이 일자 “이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하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촛불집회가 확산되자 취임 80일 만에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모두 박 대통령 같지 않았다. 직접 국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육성으로 국민에게 용서를 구했다.

 

 

 

 

‘간접사과’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일부 언론이 거들고 나섰다. 회의 중에 한 몇 마디를 마치 ‘대국민 담화’라도 되는 양 포장하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언론들은 아예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전문’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냈다. ‘윤창중 사건’과 관련해 회의 도중 언급한 내용을 공식 사과문인 것처럼 각색한 것이다. ‘간접사과’를 ‘직접사과’로 둔갑시켜 보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주인에게 사과하는 것, 당연한 일이다

 

 

사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아버지 박정희를 닮아서 일까.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사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시시콜콜 챙기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선적 리더십이 빚은 부작용일 수도 있다. 독선의 뿌리는 위엄과 권위다. 독선적 사고에서 출발하면 사과는 위엄과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위로 보이게 된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부족한 정권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다.국민을 진정 주인으로 여긴다면 대국민 사과를 꺼려할 이유가 전혀 없다.주인에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수치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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