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8일 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통계청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 9200명)보다 1만 9200명(7.7%) 줄어들며 지난해에 이어 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 ⓒ 연합뉴스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바보인 걸 알아야 해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순간 앎이 시작되거든요."
유시민의 말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무지할 수 있다. 모르면 물어보거나 배우면 된다. 관련된 책을 읽거나 권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통행으로 정책을 만들고 국민과 소통한다면,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만약 진심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과 같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외순방보다는 국민들에게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왜 대한민국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지, 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언제부터 결혼과 출산이 외면받는 게 당연한 나라가 되었는지,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적합한 주체는 저출생과 가장 밀접한 당사자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사안에 대해 남자인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고, 할 말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글을 쓰는 시민기자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다. 웬걸, 그녀들은 이 글은 아빠인 내가 무조건 써야 한다며 한사코 우겼다.
왜 출산의 주체인 여자가 글을 쓰는 건 안 되고 남자인 내가 글을 써야 하냐고 물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나의 질문에 이런 답변이 달렸다.
"아무리 대한민국 최상류 학부를 나오거나 관련 전공자라 하더라도 여자가 이 주제로 말하면 욕받이가 돼요. 저출생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는 여성이지만,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페미년'으로 치부되죠. 반면 기혼 남자나 아이 아빠, 또는 미혼 남자가 출생률 관련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사람들이 듣기는 하거든요."
여성은 건강과 커리어, 미래를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를 쏟아부어야만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속절없이 낮아지는 출생률은 자신의 삶과 출산을 맞바꾼 여성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국가 비상사태'를 외치는 것은 '출생률 개선'이 아닌 '국가소멸'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행동이 아닐까.
두 자녀의 부모로서 내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은 최소한의 복지가 제공되는 나라이다. 소득의 크기나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이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정 출산이 아니라도 분만이 가능하고, 아이가 아플 때 갈 병원이 있으며, 어디에 살든 보육시설과 학교가 있는, 매일 부모가 자녀 돌봄의 공백을 걱정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초저출생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반드시 버려야 할 대상으로 '경쟁'을 꼽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20년간 학업에 시달린다. 운 좋게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더욱 고난도 코스인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경쟁이 이어지는 삶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할 당위성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저출생 공략이 조금이라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삶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내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으니까.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자녀와 부모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저출생 #정책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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