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프랑스인에게 이것은 결코 낯선 장면이 아니다. 1934년에 이웃나라 독일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극우 파시스트 세력이 집권 일보직전까지 약진하자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독일에서 나치 정부가 야당과 노동조합을 모조리 해산시키는 것을 목격한 프랑스 노동자들은 가두에서 극우정당 지지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한편 양대 좌파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에게 파시스트에 맞선 연합전선 결성을 촉구했다.
이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반파시즘 인민전선'이 결성됐고, 1936년 집권에 성공했다. 인민전선 정부는 극우정당들이 더 성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프랑스 노동운동의 자랑인 최초의 여름 유급 휴가를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을 단행했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좌파의 영광과 함께 한계와 오류, 비극을 수반한 복잡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 건설됐던 인민전선 경험 덕분에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가 독일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금, 프랑스인들 자신이 이 역사를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새 선거연합의 이름부터가 '신인민전선'이다. 1930년대에 저지했던 역사의 '가장 나쁜' 경로를 이번에도 다시 막아내겠다는 결의가 담긴 이름이다. 주요 네 좌파정당만이 아니라 서른 개가 넘는 좌파 정치조직들이 총출동했다는 점, CGT만이 아니라 제2노총인 프랑스민주노동연합(CFDT)이나 급진적 노총인 연대노동조합연맹(SUD)도 지지를 선언했다는 점, 사회당이 포함된 선거연합을 매번 거부했던 급진좌파 성향 반자본주의신당(NPA)조차 이번에는 긍정적 입장을 냈다는 점, 금융거래과세시민행동연합(ATTAC) 같은 시민운동 조직도 합류했다는 점 등이 하나같이 이런 결기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신인민전선이 마치 마크롱의 좌익 버전인 양 '반파시즘'만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마크롱 정부의 정책 기조와 명확히 단절하고 기존 경제사회 모델을 뿌리째 흔드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모든 '반국민행진'은 지난 수십 년처럼 '시간 벌기'에 그칠 따름이다. 신인민전선은 이런 정책 전환을 '집권 후 첫 15일 계획', '집권 후 첫 100일 계획', '장기 변혁 계획'으로 나눠 발표했다(Harrison Steller, "France's New Popular Front Has a Plan to Govern", Jacobin, 2024년 6월 15일).
우선 집권 후 첫 15일 동안 펼칠 긴급 대책은, 월 1600유로(약 240만원)에 맞춘 최저임금 인상, 필수재와 에너지 가격 동결, 사회주택에 대한 긴급 재원 투입, 유럽연합 재정준칙에 긴박되지 않는 재정 운용이다. 다음으로 집권 후 첫 100일 동안 시행할 정책은, 가계 구매력 증진, 교육 개혁, 보건의료 시스템 개혁, "생태적 계획" 도입, 부자 증세의 5대 입법이다. 몇 년에 걸쳐 실시할 장기 변혁 계획에는, 공공서비스 강화, 사회주택 확대, 녹색 산업혁명, 경찰 개혁, 제헌회의 소집에 의한 개헌을 통해 '제6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것 등이 포함된다. '제6공화국'의 핵심으로는, 내각제 요소 강화를 통한 현행 대통령제 개혁, 의회 선거에서 전면적 정당명부비례대표제 실시 등을 제시한다.
한편 NUPES 와해의 도화선이 된 대외정책 분야에서는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을 명확히 '테러'로 규정하되 네타냐후 정부에게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며 국제 제재를 가한다는 타협안이 채택됐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조건 지지 입장을 확인했다.
미국 대선 이상으로, 인류사의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 될 프랑스 총선
신인민전선의 총선 전망이 장밋빛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에서 신인민전선은 국민행진과 3-5%의 격차를 보이며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51.85%에 머물렀고 따라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정치 실망층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면 신인민전선의 극적인 역전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1차 투표, 2차 투표로 나눠 복잡하게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이기에 단순 지지율만으로 승자를 점치기 힘든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에서 국민행진이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만만히 볼 문제가 있다.
신인민전선 자체의 불안 요소도 적지 않다. 급박한 정치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연대를 복원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하겠지만, 그만큼 채 해소하지 못하고 넘긴 문제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는 일부 반-멜랑숑 성향 현역 의원들이 후보 명부에서 탈락하는 공천 잡음이 있었다. 급진좌파에 우호적인 이들조차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당내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이 사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사회당에서는 마크롱 정부 등장에 가장 커다란 책임이 있는 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지역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신인민전선에서 사회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 인사들은 이를 "올랑드조차 우리 편"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하필 왜 올랑드가 우리 쪽에"라며 탄식해야 할지 착잡해 하고 있다. 아마도 2차 투표에 가서 상당수 지역구에서 마크롱 진영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면, 긴장과 고민, 내부 충돌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 파시즘의 돌이킬 수 없는 성장에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걸려는 프랑스 좌파의 새로운 흐름과 시도는 세계인의 뜨거운 주목과 응원을 받을만하다. 비록 단기적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극우파 집권을 저지하고 좌파 내각을 수립하는 데 실패할지라도, 일단 신인민전선이 NUPES보다 더 확대된 지반을 확보하기만 한다면, 장기전의 승산은 열려 있다. 진지하게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이들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다.
이 점에서, 갑작스럽게 열린 이번 프랑스 총선은 올해 말에 있을 미국 대선만큼이나 인류 전체에게 중대한 선택의 기로가 될 것이다. 아니, 트럼프를 어떻게든 저지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누가 르펜과 맞대결하는가가 이후 세계사의 전개에 더 의미심장한 결과를 끼칠지 모른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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