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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문제로 비화한 일본 경제보복…한국은 ‘군사정보협정’ 카드 만지작

박근혜 정부가 졸속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누구 안보에 도움 될까

신종훈 기자 sjh@vop.co.kr
발행 2019-07-23 19:48:17
수정 2019-07-23 20: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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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승리로 끝난 참의원 투표 마감 후 자민당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승리로 끝난 참의원 투표 마감 후 자민당 당사로 들어서고 있다.ⓒAP/뉴시스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분쟁이 안보 사안까지 확전되는 양상이다.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할 태세다. 이에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재검토'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일본의 급소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24일까지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공식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각의(한국의 국무회의)에서 이를 확정·공포하면 3주 뒤 효력이 발생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사이에 관련 절차를 끝낸 뒤 광복절 전후로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7개 국가를 '안보상' 우호국으로 분류해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개별 심사를 면제해왔다. 여기서 한국을 배제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과 안보적 신뢰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이달 초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뒤에도 한국을 줄곧 '안보 우려국' 취급해왔다.

'한국 때리기'로 반한 감정을 자극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내각은 이를 국정동력으로 삼아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지난 19일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담화를 통해 이를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도 '지소미아 폐기'라는 강력한 대응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고노 외무상 담화 발표 다음 날 지소미아를 통해 일본과 교환하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우리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18일 "상황에 따라 (협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공유? 작년 딱 '1건' 뿐…폐기해도 문제 없어"

2015년 11월 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2015년 11월 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지소미아 폐기는 일본이 가장 아파할 만한 카드로 거론된다. 지난 2016년 11월 '탄핵 촛불' 국면에서 협정 체결을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첨단 정보력을 통한 '안보적 실익'을 내세웠지만, 협정의 덕을 본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12년 6월 협정 체결을 밀실에서 추진하다 들통이 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이를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탄핵 정국 속에서 '식물정부'로 전락한 상태에서도 어수선한 틈을 타 추진 한 달도 되지 않아 체결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은 대표적 졸속 협상으로 꼽힌다. 일본은 그만큼 협정 체결을 관철하기 위해 매달려왔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이를 적극 중재했다.

지소미아는 매년 갱신해야 하는 협정이다. 따라서 협정 만료 90일 전까지 어느 한쪽이 파기 의사를 통보하면 종료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7~2018년 파기 통보를 하지 않아 자동으로 협정이 연장돼왔다. 다만 일본이 한국을 '안보 우려국'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같은 조치가 취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협정 기한일은 다음 달 24일이다.

이와 관련, 일본과 교환하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주목된다. 당초 지소미아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의 연장선에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일환으로 이해됐다. 따라서 군부를 비롯해 협정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안보논리가 손쉽게 동원됐다. 하지만 협정 체결 이후 한국의 안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지소미아가 폐기 처분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군사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협정을 파기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군으로부터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평화협상이 시작된 이후에는 한일 간 정보교환 실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작년에 딱 1건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10월 28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일군사협정 재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지난 2016년 10월 28일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일군사협정 재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김철수 기자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한국이 레이더로 먼저 잡고 일본은 항상 나중에 (레이더로) 잡는다. 우린 사전정보를 주지만 일본은 사후정보를 주는 식이다. 지금까지 오간 정보가 그런 거다. 그건 한국보다는 일본에 더 큰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의원은 "일본은 사전탐지가 잘 안 되니까 잘못된 정보를 많이 생산하기도 한다. 과거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 한 번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았고, 또 한 번은 쏘지도 않았는데 쏜 것으로 경보가 잘못 발령돼서 도쿄 시내가 난리 난 적도 있다"며 "유사시에는 작은 실수 하나도 큰 위험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일본의 정보가 도움이 안 된다는 수준을 넘어 '정보공해'로 인해 위기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소미아가 북한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체결된 협정이지만 정작 한국의 안보에는 별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날 러시아 군용기가 동해 독도 영공을 침범했을 때 일본의 자위대기가 긴급 출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는커녕 자칫 우리 땅에서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본의 '한반도 재상륙' 야욕 기반 마련에 활용될 우려도

이처럼 지소미아를 통해 안전보장은 고사하고 유의미한 정보공유가 과연 이뤄지긴 하는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오히려 지소미아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국의 국익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장치로 활용되는 측면이 크다.

2015년 안보법제를 개정해 집단적자위권 행사의 토대를 마련한 일본은 한반도의 정보를 필요로 했다. 유사시 군대를 움직이려면 한국이 수집한 휴민트(인적정보)를 비롯해 영상정보·신호정보·전자정보 등이 필수적으로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공유 가치가 낮은 정보를 얻는 대신 일본에는 핵심적인 기밀을 합법적으로 넘겨주는 협정을 체결한 셈이다.

게다가 집단적자위권을 내세워 대북선제공격(적기지공격론)의 기반을 닦아 놓은 일본 자위대에 한반도 상륙의 길을 열어줬다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일본은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무력행사 '신 3요건'을 충족할 경우 북한에도 얼마든지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놨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밀접한 타국이 공격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험할 경우 ▲군사적 대처 외에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는 경우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일본이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응해 자의적인 상황 판단을 통해 대북공격을 감행할 시, 한국의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의 반대를 묵살할 수도 있다. 지소미아를 통해 제공된 한국의 정보를 기반으로 일본이 한반도 재침략을 감행할 수 있는 형식적 조건은 이미 마련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가 일본의 급소를 제대로 찔렀다"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하는 아베 신조(安倍晉삼) 일본 총리(자료사진)
육상자위대 훈련장에서 관열식을 하는 아베 신조(安倍晉삼) 일본 총리(자료사진)ⓒAP/뉴시스 제공

지소미아가 체결되기 1년 전인 2015년 10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본이 우리와 협의를 해서 우리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면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는 대북 군사정보를 포함한 일본의 관심사항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대선후보 시절 지소미아에 대해 "졸속"이라고 비판하며 '재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두 차례 협정이 연장됐지만, 한 번 체결한 국가 간 협정을 파기하는 데는 그만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본의 무차별적인 이번 보복조치가 지소미아 폐기 결단의 지렛대로 작용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앓는 소리가 나오는 형편이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폐기론'에 대해 "우리들에겐 그런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안전보장 면에서 일미, 일한, 일미한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종대 의원은 "이건 일본한테 (통하는) 카드가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일본의 급소를 제대로 찔렀다"고 평가했다.

한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날 단독으로 한국을 방문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는 전날 일본에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 등을 먼저 만나 수출규제 조치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일 정상) 양쪽이 다 원한다면 나는 (관여)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맞물려 미국이 중재에 나서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동북아 MD(미사일방어)체제 강화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무역도발로 촉발된 이번 사태로 한미일 안보 공조가 약해지는 데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강경론자인 볼턴 보좌관이 직접 움직였다는 점에서 미국의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지 주목된다. 그는 2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자료사진)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자료사진)ⓒ뉴시스/AP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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