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야가 상임위를 나눠 갖던 때에도 국회는 '민주주의의 전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각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을 '돌려세우는' 권능을 가진 법사위에서 일어난 일들이 대표적인 예다. 17대 국회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은 법사위 회의장에서 숙식하며 아예 회의를 못 열게 하는 일이 잦았다. 민주당이 소수 야당이 된 18대 국회에선 국회의장의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항의해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다른 상임위가 보낸 모든 법안의 처리를 멈춰 세운 바 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법이 개정된 이후 회의실이나 위원장석 점거는 없어졌지만 법사위의 권능은 여전했다. 20대 국회의 여상규 법사위원장(당시 자유한국당 소속)은 피해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멈춰 세웠다. 상임위를 통과했어도 한국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다시 상임위로 돌려보내거나 법사위에서 다시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겠다고 해, 마치 양원제의 상원의장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법사위에 체계·자구심사권이 있어 가능한 월권행위였다.
다른 상임위라고 해서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몇 개의 상임위원장 자리가 '알짜'라는 평가를 받으며 여야 거래의 대상이 되곤 한다는 점은, 해당 상임위의 활동이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상임위원장의 의중에 크게 좌우된다는 반증이다.
'전환의 강' 건너려면, 민주적 상임위 운영 예시를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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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의 참석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제21대 국회 원구성 마무리를 위해 개의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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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17개 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176석 민주당은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을 넘는데 여기에 모든 위원장 자리까지, 소설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것과 다름없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과거에 익숙했던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데에는 진통이 불가피하다"라며 "전환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완전히 달라진 국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누누이 강조해 온 '일하는 국회'를 향해 전환의 강을 건너려면, 먼저 상임위부터 일하는 곳이 돼야 한다. 상임위에서부터 합리적인 토론과 민주적인 의사진행이 이뤄져야 한다. 보이콧을 선언한 통합당은 한동안 들어오지 않겠지만, 다른 야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과 합리적인 토론을 벌이는 민주적인 운영으로 '일하는 국회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다수당이 돼도 '일하는 국회'가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탐욕을 일으키는 사우론의 눈을 피해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슈퍼 여당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절대반지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골룸의 길이 아닌, 절대반지를 용암에 던져버리는 프로도의 길을 가야 한다.
절대반지를 파괴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국회를 만드는 일. 그 첫걸음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체계·자구심사권으로 월권행위를 할 수 있는 제도부터 뜯어고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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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의 21대 국회 전반기 단독 원구성 강행 처리에 대해 "오늘 의회독재가 비로서 시작된 참으로 슬픈 날이다”며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인한 희희낙락과 일방독주를 국민의 힘으로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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