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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바이러스 파이터’ 이재갑 교수 “지금을 정점으로 만들지 않으면 ‘봉쇄’밖에 없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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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20년 내내 코로나19와 싸워왔다. 정부가 낙관론을 펼 때마다 경고해온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4일 강남성심병원에서 촬영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2020년 내내 코로나19와 싸워왔다. 정부가 낙관론을 펼 때마다 경고해온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4일 강남성심병원에서 촬영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비관적 예측 틀리면 다행, 감염병 전문가의 숙명이죠”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공주다. 미래를 내다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놔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예언을 외면한 트로이는 결국 멸망한다.

감염병 전문가 이재갑(46·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사진)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카산드라로 불렸다. 겨울철 대유행 가능성을 경고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본부장 정세균 국무총리)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본부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책을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러스 파이터’다. 2003년 전공의 4년 차 때 사스를 경험했다. 2009년 조교수 발령을 받자마자 신종플루를 겪었다. 2015년 초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돼 에볼라와 싸웠다. 귀국하고 두 달 만에 메르스를 만났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섰다. ‘신천지 관련’ 1차 유행 때는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50일간 당직을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낮에는 외래 진료와 정책자문, 커뮤니케이터로 동분서주한다. 밤에는 병원에서 대기하며 중환자를 돌본다. 코로나19 검사도 세 번 받았다. 모두 음성이 나왔다.

이재갑은 이달 1일 수도권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α’로 조정되기 직전 생활방역위원회(11월26일)에서 ‘2.5단계 상향’ 의견을 냈다. 반영되지 않았다. ‘핀셋 방역’을 강조하던 중대본은 며칠 뒤 2.5단계로 높였으나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그는 “방역은 정부 주도성이 강한 영역이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피해가 매우 커질 수 있다”며 “그래서 심각하면 심각하다고,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으면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비관적)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 틀리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 준비하자’고 말하는 게 감염병 전문가의 의무”라고 했다.

주말인 지난 12일 경향신문사에서 이재갑을 만났다. 토요일 외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인터뷰한 다음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처음으로 1000명을 넘었다.

‘바이러스 헌터’ 이재갑. 권호욱 선임기자

‘바이러스 헌터’ 이재갑. 권호욱 선임기자

‘바이러스 파이터’에게 코로나19의 현재와 미래를 묻다 

이재갑은 바빴다.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에서도 왔지만 언론사에서 찾는 전화가 더 많았다. 그는 신속하게 받고, 차분하게 답했다.

-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심각합니다. 원인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복잡다단한 요인이 얽혀 있습니다. 우선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입니다. 바이러스의 생존에 유리하고, 사람들의 실내활동이 늘어났습니다. 다음으로 시민들이 많이 지쳐 있어요. 사실 가을·겨울에 유행이 커질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예상대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 전문가 입장에서 안타깝긴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건가요.

“저희가 ‘데자뷔(deja vu·기시감)’라고 하는데요.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의 유행 커브를 코로나19와 대비해서 보면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상황을 보며, 사람들은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어요. 미국이나 유럽은 의료수준이 나으니까 충분히 대비했겠거니 했거든요. 미국의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초기부터 가을·겨울 대유행을 경고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서구 선진국 중 가장 나았던 독일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만 상상하고 ‘대비 가능한’ 미래만 준비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지금 가진 커패시티(capacity·역량)로 가능한 것만 준비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상상조차 꺼렸지요. ‘설마 그러겠어’ 하는 심리가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거죠.”

- 그런 측면에선 정부와 시민이 마찬가지입니까.

“우리가 1·2차 유행을 가볍게 앓은 게 외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3차 유행은 1·2차 수준의 대비로는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이미 예상됐거든요. 감염병 전문가들은 그 부분을 계속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선 1·2차 유행에서 자신들이 잘해서 버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시민들도 1·2차 유행 때 정말 많이 노력해준 건 사실인데, 지금은 1·2차 때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안타깝게도 그 부분에서 실감을 덜 하고 계신 것 같아요. 3차 유행에선 지역사회에 훨씬 더 만연돼 있어서, 1·2차 때 했던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수준만으로는 대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 3차 유행의 정점은 언제 올까요.

“(하루 신규 확진자 1000명 안팎인) 지금을 정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올 겁니다. 의료자원 자체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까요. 더 악화되면 유럽이나 미국처럼 누군가 중환자실에 못 가서 죽고, 의료진은 산소호흡기를 누구한테 달아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실제 일부 국가 병원에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온 환자에 대해 치료 못한다며 DNR(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를 받아 일반병실로 옮긴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 서울의료원 공터에 컨테이너식 병상을 설치하는 광경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의료자원이 소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니까요. 충격을 안 받는다면 무감각해진 거죠.”

실제 병상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60대 확진자가 자택 대기 중 사망했다. 경기 부천시 요양병원에서도 70~80대 확진자 3명이 병상 배정을 기다리다 숨졌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자택 대기 중인 환자는 모두 496명(18일 0시 기준)에 이른다.

- 만약 지금을 정점으로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가면 파국이고요. 확진자가 2000~3000명 가면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그 상황이 오면 ‘록다운(lockdown·봉쇄)’하고, 밖에 나오면 벌금 물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K방역’ 이야기하며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해왔는데, 그 부분에서 시험대에 오른 겁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까지도 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3단계 상향을 이야기하는데요. 조금만 더 나빠지면 3단계조차 의미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 3단계도 록다운은 아니지요.

“(거리 두기 단계에) 록다운은 포함돼 있지 않아요. 하지만 3단계에서도 안 되면 록다운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시민들은 ‘조금만 더 악화되면 내가 차 타고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끌어가려면, 정부가 정책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정확히 알려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1·2차 유행 때는 사실 엉겁결에 당한 측면이 있었어요. ‘표적’으로 돌릴 대상도 있었고요. 지금은 표적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 당장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현실 인식이 먼저입니다. 지금껏 안일하게 생각해 온 부분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사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곤 지금부터는 우리도 정신차리고 열심히 할 테니,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병상 문제 해결이 시급한 만큼, 민간병원을 통해 병상 확보를 서둘러야 하고요. 3단계보다도 더한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 부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594명 늘어 누적 3만8755명이라고 밝힌 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병원 음압병동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5일 이후 사흘 만에 일일 확진자 수가 600명 아래로 내려왔지만 이는 전날 검사 건수가 평상시의 절반 수준임에도 신규 발생한 수치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594명 늘어 누적 3만8755명이라고 밝힌 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병원 음압병동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5일 이후 사흘 만에 일일 확진자 수가 600명 아래로 내려왔지만 이는 전날 검사 건수가 평상시의 절반 수준임에도 신규 발생한 수치다.

1918년 스페인독감 유행 커브와 비슷
악화 땐 산소호흡기 우선 순위 따지게 될 것
초반에 ‘병상’ 낙관했다가 부족 문제 키워
복잡한 의사결정구조가 신속 대응 막아
정부, ‘록다운’ 갈 수 있다는 것 인정해야
 

- 현재 가장 불안한 요소는 뭔가요.

“지역사회에 만연한 감염이 병원이나 요양시설로 침범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도 수술실 간호사 1명이 확진돼 전체 수술이 중단됐다가 2~3일 만에 겨우 정상화됐어요. 수술실 간호사 10명이 자가격리 상태예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 대부분 병원이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의료진이 감염됐든지, 환자·보호자 중 확진자가 있든지 아마 20~30명씩은 자가격리하고 있을 거예요. 병원의 기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특히 우려되는데요.

“요양병원 한 곳에서 감염이 시작되면 환자가 70~80명씩 발생합니다. 그분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고 해도 수용할 공간이 없습니다. 결국 그대로 두고 ‘코호트 격리’(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하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가장 비참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시민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다른 게 없습니다. 스스로 록다운한다는 심정으로 지내야 합니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수는 거리 두기 3단계 상향 기준(1주 평균 800~1000명)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3단계 상향을 주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희생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 단계를 제대로 준수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 정부가 거리 두기 단계를 올리지 않으면서 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제 정부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언제든 록다운으로 갈 수 있다, K방역의 상징인 국민의 자발적 참여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직도 1·2차 유행 때 잘 막은 데 취해 있어요. 1·2차 때는 운이 좋았던 걸로 봐야 합니다. 특히 1차 유행 때는 다른 나라에 없던 진단체계가 우리나라에선 갖춰져 있었거든요. 지금 다 갖춰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응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현재의 유행패턴이 상당히 어려운 패턴이라는 의미입니다. 3단계로 상향해서 2주 정도 강력하게 시행해야 병상 확보 등 의료체계를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방역 거버넌스는 복잡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총리실)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부처별 협력을 총괄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복지부)는 의료기관·병상 관련 사항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문제를 맡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질병관리청)는 상황 판단과 역학조사, 구체적 의료지침을 담당하고 있다. 이재갑은 최근 이같이 복잡한 구조가 효과적 방역대책 수립을 저해한다며, 의사결정체계를 단순화하자고 주장해왔다.

- 중대본이나 중수본에서 전문가들 견해를 청취하지 않습니까.

“지난 8월 2차 유행 이후 중수본에서 민간 전문가 의견을 거의 물어보지 않아요. 거리 두기 문제를 자문하는 생활방역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회의 외에는 저한테 물은 적이 없어요. 다른 민간 전문가도 마찬가진 것 같더라고요. 1차 유행 때 잘 막았다는 자신감의 발로겠죠. 그런데 오판입니다.”

- 2차 유행 때 병상 위기가 있었잖아요.

“그랬지요. 그 후 3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병상 준비를 제대로 안 했어요. 방대본서 계속 경고를 보냈는데, 중수본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거든요. 중수본에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는 그룹 가운데 뭔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이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감염병 전문가들 가운데 극히 소수이고 비주류로 분류되는 일부 인사들이 ‘고위험군을 주로 막으면서, 유행을 어느 정도 용인해도 된다’는 주장을 해왔어요. 이런 정보들이 중대본·중수본의 기조를 틀어놓은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 중수본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계신데요.

“과격하게 들리겠지만, 지금의 의사결정구조로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상황 판단은 방대본이 하지만, 병상 가동 등 정책으로 만드는 건 중수본이에요. 상황 판단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이 계속해서 막히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결정이 자꾸 한 템포씩 늦어지는 겁니다. 의사결정 라인을 슬림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방대본과 중수본에 더해 정부 지원부서와 민간 전문가까지 포괄하는 태스크포스(TF)를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현장의 움직임이 반영되고, 결정이 되면 빨리 시행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돌입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오는 27일부터 접종을 시작한다. 정부는 “4400만명분을 확보했다”면서도 제품별 도입 시기와 물량, 접종 시기와 대상 등에 대해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백신 확보 전략이 한발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한국의 백신 확보·접종 전략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신종 감염병 백신이 1년이라는 단기간에 나온 상황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 백신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모두 유사 이래 처음입니다. 구매 전략, 접종 전략, 유통 전략, 백신으로 인한 방역 변화의 시뮬레이션까지 다각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선 안전하면서도 신속하게 접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또 사람들이 백신만 맞는다고 안심하면 안 되거든요. 마스크는 어떻게 씌울 건가, 어떤 식으로 방역을 완화할 것인가 등 로드맵을 갖고 가야 합니다. 범정부 차원의 백신추진단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 시민의 기대에 비해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지 않은가요.

“협상 문제 때문에 공개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겁니다. 이제는 공개된 상황이니까 적정한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소상하게 알릴 필요가 있어요. 백신 문제는 기술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 기자들이 간담회 같은 방식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재갑은 백신 문제와 관련해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국제적 연대를 같이 꾸려가야 합니다. 우리만 접종한다고 코로나19가 해결되지 않아요. 접종을 시작하고 유행이 어느 정도 잦아들어 여유분이 생긴다면 취약한 국가들에 백신을 빨리 접종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 시민들이 염두에 뒀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백신에 대해 기대를 품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정말 많아요. 내 팔에 주삿바늘이 꽂힐 때까지 수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바이러스 헌터’ 이재갑. 권호욱 선임기자

‘바이러스 헌터’ 이재갑. 권호욱 선임기자

“코로나19로 더 많은 피해 보는 건 소외계층…감염병으로 일 못하게 돼도 먹고살 수 있는 여건 만들어야”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재갑 

지난 1월7일. 이재갑은 질병관리본부(질본·현 질병관리청)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중국 우한을 다녀온 사람이 폐렴 의심 증상이 있어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 코로나19와의 긴 싸움이 시작된 순간이군요.

“첫 번째 의심환자였지요. 그로부터 사흘 후 질본 주최로 ‘민간감염병전문가 자문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은경 본부장 주재로 저를 포함한 전문가 10명 정도가 참석했습니다. 회의에선 검사체계를 갖추는 문제를 논의했고, 바로 다음날 검사가 이뤄졌습니다.”

해당 환자는 음성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1월20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 그때까지 중국은 지역사회 감염 여부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었다. 긴장도가 높아졌다.

“1월26일 3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그와 함께 식당에서 한 시간 정도 밥을 먹은 6번 환자가 나흘 후 확진됐습니다. ‘망했구나’ 싶었습니다. 메르스보다 훨씬 전파력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2월18일 대구에서 31번 환자가 발생했다. 이튿날에는 청도대남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폐렴 증세로 숨진 뒤 확진됐다. 첫 사망자였다. 1차 유행의 시작이었다. 이재갑은 2월20일 대구로 향했다.

-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경증 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등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고 들었습니다.

“대한감염학회 신종감염병위원회에 정책팀이 있는데 단체 메신저방에 선별진료소 운영 아이디어를 논의해보자고 올렸어요.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도 그 방에 있었는데, 김 과장이 2018년 저와 함께 생물 테러 대응을 연구한 걸 떠올리며 ‘드라이브스루 검토했잖아요’ 하더라고요. 사흘 후인 2월23일 칠곡경북대병원에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가 처음 문을 열었지요.”

생활치료센터 아이디어도 제안했지만 실현에 이르기까진 쉽지 않았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1급 감염병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 ‘사망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 행정논리 때문이었다. 입원대기 환자가 2000명을 넘어서고 방대본에서 관련 지침을 만들어주면서 3월4일 첫 생활치료센터가 개소했다.

“바이러스가 사람(의 대응)을 만든 거죠. 바이러스는 자기 타임라인대로 가고 있었으니까요. 사람이 거기 맞춰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1차 대유행은 이재갑에게 씻기 힘든 트라우마도 남겼다. 9명이 목숨을 잃은 청도대남병원의 비극이다. 당시 청도대남병원 환자를 받아줄 데가 없어 서울의 한림대강남성심병원까지 전원이 이뤄졌다. 중환자 3명을 받았는데, 1명은 오자마자 사망했다. 2명은 인공호흡기를 단 채 투석을 이어갔다. 이재갑은 50일간 당직을 했다. “낮에는 주니어 스태프들이 진료를 보고, 저는 청도대남병원이나 민간전문가 자문위원회에 갔어요. 밤에는 그 친구들 쉬게 하고 제가 입원 환자 당직을 섰습니다. 하루 4~5시간 잤으려나요.”

- 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와 싸운 이후 가장 고단했을 듯합니다.

“에볼라 때 한 달 정도 계속 밤을 새우다시피 했죠. 50일간 당직 선 건 전공의 1년차 이후 처음입니다.”

- 심리적으로도 힘든 일을 겪었지요.

“의사가 환자 때문에 힘든 건 숙명이죠.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저를 ‘방역 비선’이라고 하는 등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리다 보니 마음고생이 더 심했어요.”

- 8월 2차 유행 이후엔 비관론자라며 ‘카산드라’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2차 유행 전까지만 해도 경고를 하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였는데, 2차 유행 중반부터는 ‘비관론자야, 왜 이렇게 경고만 해’ 식으로 바뀌었어요. ‘양치기 소년’처럼 된 거죠. 그 무렵 ‘시민도 먹고살려면 어느 정도 감염을 용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세력이 부상했고요.”

중대본은 지난 10월 1단계 기준인 ‘하루 확진자 50명 미만’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단계를 낮췄다. 이후엔 거리 두기 체계를 5단계로 개편했다. ‘세분화’라고 했지만 실상은 ‘약화’였다.

- 생활방역위원회 등에서 거리 두기 단계 강화 등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간 전문가로서 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제가 메르스에 대응할 때는 박근혜 정권이었고, 에볼라 현장에 다녀온 뒤에 훈장도 박근혜 정권에서 받았습니다. 현 정권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비판적 시각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 목표는 이 정권이 잘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잘되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방역을 잘하고 국민들이 피해를 덜 보는 겁니다.”

-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는 책도 냈습니다. 반응은 어떤가요.

“2쇄까지는 찍었는데 3쇄가 길어지고 있네요(웃음). 온라인에 오른 서평들을 보면 ‘코로나19가 단순한 감염병 유행이 아니다, 취약한 구조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쓴 데 많은 분이 공감해주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등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대구 영남대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찾은 차량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위 사진). 경북 문경의 생활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경증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등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대구 영남대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찾은 차량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위 사진). 경북 문경의 생활치료센터에서 의료진이 경증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감염학회서 탄생한 ‘드라이브 스루’
생활치료센터는 행정 문제로 초기 어려움
정은경은 권한보다 책임에 집중하는 리더
의사로서 보람?…1차 유행 잦아들었을 때
국내 감염병 체계 정비에 ‘역할’ 하고싶어
 

- 책에서 “취약한 곳은 재난 후에도 취약하다”고 했습니다.

“1차, 2차, 3차 유행에서 피해를 보는 그룹이 모두 똑같습니다. 코로나19를 최소 1년 반 넘게, 2년 정도 겪을 거잖아요. 2년을 겪고도 취약한 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또 다른 팬데믹 상황을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살 만한 공동체가 되려면, 소외된 계층이라는 이유로 감염병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가 되려면, 5년이든 10년이든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감염병 유행이 지나고 나면 백서가 나오는데 매번 똑같은 이야기예요.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근본적 구조 개선은 외면합니다.”

이재갑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을 못하게 되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우리나라가 누구든 잘 살 수 있는 국가인지, 아니면 부자들만 잘 살 수 있는 국가인지 판가름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봅니다.”

- 거리 두기 문제도 지원책과 함께 가야 되겠지요.

“맞습니다. 만약 1단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취약한 곳이 취약해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해요. 그래도 너무 취약해서 문 닫게 해야 한다면, 피해를 보상하는 정책이 같이 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2m 거리를 두고 영업해도 업주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배달·포장만 허용한다면, 배달·포장해가는 소비자에게 할인해주고 대신 정부가 업주들에게 보전해주는 방식이 필요하고요. 지금 생활방역위원회에서 거리 두기 문제를 자문하는데, 실질적으로 돈 푸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한 위원회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 수도권 거리 두기를 ‘2단계+α’로 조정할 때 중대본은 ‘생활방역위원회와 논의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 직전 위원회(11월26일)에서 저와 다른 한 분만 단계를 올리자고 했거든요. 최근에 다시 회의가 열렸는데 뭔가 자숙하는 분위기가 있더군요. 위원 몇 분이 ‘그때 우리가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했던 건 아닌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재갑은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질병청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다. ‘정은경 리더십’의 핵심을 물었다.

“큰 그림을 잘 보지만, 작은 부분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꼼꼼하면서도 아랫사람을 괴롭히지 않고요. 여러 리더를 겪어봤지만, 그런 분은 아직까지 유일합니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될 무렵 통화를 했는데 ‘본부장직을 수락한 건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했어요. 자신이 갖게 될 권한보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 집중하는 보기 드문 리더입니다.”

- 중대본·중수본에서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내세우면서, 정 본부장의 입지가 조금 약화된 측면은 없습니까.

“중대본과 중수본에서 ‘미스테이크(실수)’한 걸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방대본에서 계속 경고했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아 있고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재갑은 거의 매일 방송에 등장한다. 탁월한 커뮤니케이터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감염내과는 병원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감염내과를 전공하겠다고 하면 ‘너희 집에 돈 많으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전문의 자격증 보유자가 270여명인데, 은퇴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직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200명 조금 넘는 수준이다.

- 감염내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입니다. 해외선교를 하고 싶어 의대에 진학했고, 전공도 감염내과를 택했습니다. 전문의가 된 직후 카자흐스탄에 국제협력의사로 다녀오기도 했고요. 에볼라 사태 때 서아프리카에 자원해 간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메르스가 터지고, 올해 코로나19가 발생했어요. 국내에서 할 일이 많아지면서 인생 행로도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습니다.”

- 요즘엔 저녁 때 귀가하나요.

“지난주, 딱 하루 집에서 잤습니다. 사실 그날도 들어갈 상황은 아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요…. 상반기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정부 과제 맡은 것도 마감을 연기해줬는데, 이제는 연말이라 더 미뤄주지 않네요. 올해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내고, 내년 제안서도 쓰는 중입니다. 코로나를 제외한 일상은 다 예전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 상황은 외려 더 나빠졌네요.”

그는 직원식당도 가지 않고 ‘혼밥’을 한다. 편의점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 부인과 세 아들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였습니까.

“코로나19 1차 유행이 잦아들 때였어요. ‘다음주면 (유행 커브가) 꺾일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죠. 우리가 열심히 뛰면 뭔가 정책에 반영되고, 실현이 되고,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 걸 보니까 고맙고 기뻤습니다.”

- 한계를 느낀 때는요.

“에볼라와 싸우던 시기였습니다. 20~30대 젊은이가 2~3일 만에 사망하기도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정말 괴로웠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토록 허무하게 세상을 떴을까 싶더군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재갑은 ‘21세기 슈바이처’로 불리는 폴 파머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책 <세상은,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에서 해답을 찾았다. 파머는 빈곤국 의료 구호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함께 창설한 인물이다. 사회 정의와 국제보건 평등의 열렬한 옹호자로 잘 알려져 있다. 파머는 아프리카 등 빈국 국민의 목숨값도 선진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며, 전 세계 사람들이 평등한 의료·보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요.

“계속 국내에서 살게 된다면 공공의료원에서 감염병 체계를 정비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아주대병원 감염내과에 계시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으로 간 임승관 원장님을 존경합니다. 쉽지 않은 결단이라 생각해요. 저도 그런 분야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겠죠.”

- ‘바이러스 파이터’로서 2020년을 보내는 소회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는 책이 예언서처럼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씁쓸한 연말입니다. 좌절했다가, 어떻게 이겨낼까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서 한 단계 넘어서곤 했는데… 3차 대유행을 마주하자 풀어나가기 쉽지 않겠다는 중압감이 들었습니다. 이번 위기에선 정부, 시민, 의료진 모두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의료진은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국민들께선 더 노력해서 병원에 오는 환자를 줄여주시길 부탁합니다. 파국이 오면 안 되니까,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190600015&code=940601#csidx8315dc7aec7b8c18607da428bf8d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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