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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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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80)의 굴곡 많은 인생은 빨치산이었던 부친에서 시작된다. 그가 “평화통일 시대를 여는 것은 가슴에 새긴 아버지와의 약속”이라고 한 것도 그 연장이다.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을 지낸 그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을 시작으로 민주노총 설립, 민노당 창당을 주도했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에 출마하고, 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21주년이 되었다. 2000년 1월30일 창당한 민노당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 이후 진보정당은 제도권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민노당은 비록 의석수가 10석이었지만 존재감은 무거웠다. 민노당이 주창한 무상급식·경제민주화 등은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됐다.

그러나 지금 진보정당의 위상은 초라하다. 정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겨우 6석을 건졌다. 비례위성정당 창당 등 거대 양당의 농간 탓이 크지만 스스로 대안정당의 비전과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에는 당을 쇄신하겠다며 기치를 든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까지 터졌다. 진보정당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이 나왔다.

민노당 10석을 이끈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80)이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권 전 대표는 지난 15일 “진보정당이라면 무릇 민중의 투쟁 현장, 민중의 바다에서 살았어야 하는데, 정의당에는 그런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자고는 못하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말을 못하면 진보정당이 아니다. 정의당이 무엇을 가지고 진보정당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에서 부각된 것은 ‘데스노트’라는 것 외에 없다”고도 했다. 평소의 화법보다 더 날을 세운 것이다.

인터뷰 당일 공교롭게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별세했다. 권 전 대표는 “강인한 인상과 우렁찬 대중연설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눈물이 많으신 분”이라며 “(그의 부재로) 외롭다”고 했다. 근황과 더불어 진보정당의 화양연화인 민노당 시절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 정계은퇴를 했다. 어떻게 지내시나.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만들어 남북 철도 연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만나 남북간 첫번째 이행사업으로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에 합의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제재에 가로막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강화되기 전까지 매주 미국대사관과 서울역 앞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16일부터 한 달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1인 시위를 한다. 이번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될 수밖에 없다.”

- 진보정당이 정치권에 자리를 잡은 계기가 2004년 총선이다.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할 당시 상황이 어땠나.

“국회에 처음 등원할 때 민노당 10명의 의원이 국회 정문에서 본관까지 횡대로 걸어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국회 앞에서 투쟁할 때마다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원 한 사람만 있었으면…’ 하고 갈망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만든 민노당 의원 10명이 국회에 진입했으니 그 감격이 어땠겠느냐.”

‘진보정당’의 성과와 한계 

민노당, 2004년 ‘10석’ 원내 진입
무상급식 등 주요 어젠다 이끌어
정의당을 왜 진보정당이라 하는지
부각된 건 ‘데스노트’밖에 없는데
 

-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한 뒤 국회가 크게 변했다는 평이 많았다.

“거대 정당의 벽은 두꺼웠지만 민노당이 소금 역할을 제대로 했다. 가장 큰 성과는 진보의제를 보편화시킨 것이다. 민노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부유세와 함께 내걸었을 때 허황된 소리라고 했다. 지금 무상급식은 전국 어디서나 이뤄지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도 전면 실시된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다.”

- 국회도 챙기고 현장도 다녀야 했으니 무척 바빴겠다.

“지금도 초기 감격은 순간이었고 이후 고난의 세월은 길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구속·수배와 단식농성으로 투쟁한 사람들이 의원이 된 뒤에도 또다시 단식농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 그러다 당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하면서 당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분당 후 지금까지 당적을 안 가지고 있다. 지금도 정의당과 진보당이 있는데, 민노당 대표를 지낸 내가 어느 쪽에 몸을 담겠느냐. 진보정당이 통합해 하나의 정당이 될 때 그 당에 입당하겠다. 진보정당 당원이 될 날을 지금도 꿈꾼다.”

- 김종철 전 대표가 정의당 대표가 됐을 때 진보정당의 재건을 기대한 사람이 많았는데, 성추행이 터졌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퇴’라는 TV 자막을 보고 한동안 멍했다. 정신을 차리면서 첫번째 든 생각이 ‘진보정당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거지’였고, 두번째는 ‘종철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였다. 그리고 세번째로 피해자를 생각했다. 이내 나부터 반성했다. 가장 먼저 피해자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 정의당이 김 전 대표를 제명하고 오는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로 문제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 뼈를 깎는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당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공개 대토론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진보정당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진보정당은 노동중심 정당이어야 하는데, 지금 정의당에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를 위해 단식한 것 정도가 전부이다. 또 ‘정의당은 젠더 정당이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젠더, 생태, 환경은 중요한 의제지만, 근본은 노동이다.”

- 노동이 안 보인다는데, 무슨 말인가.

“민노당이 출범할 때 ‘거대한 소수전략’을 세웠다. 국회에서는 소수지만, 노동자와 농민, 빈민 등 거대 세력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의 무대는 민중의 투쟁 현장이다. 이념상으로도 다른 당과 차이가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이야기했을 때 국민의힘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맞받아치지 못했다. 정의당이 그럴 때 ‘빈부격차 없애고, 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당내에) 외연 확장을 의식해 진보적 목소리를 안 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어야 할 노동자, 농민, 빈민이 떨어져 나간다.”

백기완 그리고 노회찬 

단일화 못한 DJ·YS 한스러워해
“목소리 약하면 표 안 온다” 조언
진보통합 이야기 나누고 뜻 같이해
부재가 아쉽고 너무 가슴 아파
 

- 2000년 대선 출마 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어록을 남겼다. 2004년 총선 때는 노회찬 전 의원이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현재 진보정당에 이런 대중의 언어가 없다고 한다.

“모두 즉흥적으로 나온 말들이 아니다.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은 1997년 대선을 거치면서 터득한 말이다. 당시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께 ‘민노당 누구누구다’라고 소개하니 ‘정치가 밥 먹여주냐. 내 밥그릇 빼앗아가지나 말아라’고 하시더라.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살림살이’ 표현이 나온 것이다. 노 전 의원의 불판 발언은 ‘세상을 바꾸자’는 민노당의 첫 구호에서 나왔다.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보정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많이 희석된 거 같다.”

- 노동 외에 진보정당이 내세워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코로나19 이후의 시대가 진보정치를 부르고 있다. 성장, 이윤 창출에만 매몰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배는 사회적 연대고, 사회적 연대는 진보적 가치의 추구에서 나온다. 또 코로나19 시대와 함께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는데, 자동차 등 각 생산 분야에 로봇이 등장하면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느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것을 진보정당이 해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여당이 된 뒤 내로남불식 대응으로 비판받고 있다. 이 때문에 범진보진영이 위기를 맞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민주당의 중심세력인 586세대가 군사독재 시절 개인의 영달을 좇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수구 보수 정당에 대한 비교우위,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인 우리가 국가를 운영하지 않으면 누가 국가를 운영하겠느냐’는 식의 우월감이 오만과 교만으로 흘러갔다.”

- 2012년 12월 경남지사 보궐선거 때 민주당의 지원을 받으며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다. 어떻게 된 건가.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정치무대를 떠났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최측근 인사들이 찾아와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해달라.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데 승부처가 경남이다’ ‘박근혜 정권이 되면 노동과 진보정치 세력이 어렵게 된다’며 석 달 동안 설득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가 결국 수용했다.”

-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면서 나름대로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정책을 펴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여러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 전국교직원노조 합법화는 대법원 판결로 지난해 이뤄졌다. 전교조 법적 지위 박탈은 박근혜 정부의 행정조치로 취해진 것이다. 대통령 결단으로 합법화할 수 있었는데도 직접 나서지 않았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협약, 강제노동철폐협약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 백기완 소장이 돌아가셨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백 선생님은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였다. 노동투쟁 현장 대중연설에서 ‘노동문제는 자본주의 독점자본이 만든 병폐다. 자본을 끝장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1995년부터 매년 설과 추석, 기자촌에 있던 댁에 가서 세배했다. 그럴 때마다 술 한잔 하시고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언제부터인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님, 누님 생각하면서 많이 우셨다. 저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시나 했는데, 한두 해 전부터 나도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나이가 들고 세상을 등질 때가 되면 두고 가는 아들, 손자 생각도 많이 나지만 먼저 가신 부모님을 그리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 속내를 털어놓으셨다는데.

“1987년 대선 때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야권 단일화 압박을 받고 사퇴하게 된 경위를 말씀하셨다. 사퇴 후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에게 눈물을 흘리며 수없이 단일화를 촉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에 대한 분노와 한을 삭이지 못한 듯 같은 이야기를 10년 이상 하셨다. 내가 1997년, 200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진보 후보로 목소리를 강하게 내라. 적당히 한다고 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어떻게 

‘한·미 훈련 중단’ 1인 시위 할 것
문 정부서 남북관계 단절될 수도
진보정당 통합하면 입당하고싶다
백 선생님 보며 ‘삶 정리’ 고민도
 

- 백 선생님이 별세해서 이젠 진보진영의 어른이 된 셈인데.

“몇 년 전 백 선생님 주도로 고공농성, 장기투쟁 노동자 지원을 위한 원로모임을 만들었다. 백 선생님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걱정이다. 나도 내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 2018년 7월 노회찬 전 의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부재가 아쉬울 것 같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에게 1997년 대선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했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1997년 대선 출마, 국민승리21(민노당 전신)을 거쳐 민노당을 창당하기까지 가장 많은 날을 함께 고민했다. 진보통합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뜻을 같이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70600005&code=910100#csidxa6dfd989766d9ab8aab6b3a1769b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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