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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0순위·그림자 노동…“여성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등록 :2021-03-08 05:00수정 :2021-03-08 09:31
 
[3·8 여성의 날]
‘노회찬 장미꽃’ 받은 여성들 이야기
노회찬재단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한 봉제공장에서 노경숙(52)씨가 봉제작업을 하는 미싱대옆에 전달받은 장미꽃이 놓여있다.달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회찬재단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한 봉제공장에서 노경숙(52)씨가 봉제작업을 하는 미싱대옆에 전달받은 장미꽃이 놓여있다.달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대유행의 영향은 여성 노동자에게 더 가혹했다. 방역 영웅으로 추켜세워진 간호사들은 병원에선 만성적 인력 부족에, 가정에선 돌봄노동에 시달렸다. 30여년 가족을 떠받쳐온 여성 봉제노동자들은 코로나19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여성 감정노동자를 상담하는 또 다른 여성 감정노동자는 “아이엠에프(IMF) 때처럼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해고되기 시작했다”고 걱정했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노회찬재단으로부터 장미꽃을 건네받은 여성 노동자들은 생계 최전선에서 성평등 문제를 온몸으로 절감하는 이들이었다.
노회찬재단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노조사무실에서 장미꽃을 건네받은 김효은(42) 간호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김씨의 업무 강도는 높다. 서울대병원은 병세가 이미 중증이거나 희귀질환 검사를 받기 위한 환자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거동이 힘든 탓에 ‘기본간호’의 품이 많이 들어간다. 몸이 자유롭지 않은 환자는 2~3시간마다 몸의 위치를 바꿔줘야 한다. 스스로 가래 배출이 어려워 수시로 빼줘야 한다. 때때로 환자들의 기저귀도 갈아야 한다. 코로나19로 보호자 출입 통제가 강화되면서 병동을 오가는 안내 업무도 늘었다. 간호사 한명이 돌봐야 할 환자 수는 적게는 10명에서 밤 근무에는 16명까지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간호사 1명당 6~8명의 환자를 간호한다.
신경과 간호사 김효은씨“코로나 방역 영웅 수식어보다직업인으로서 존중이 더 중요”
병원 안 간호사 지위는 여전히 취약하다. 많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간호사를 여전히 ‘아가씨’라고 부른다. “아가씨가 기저귀 갈아야지 왜 보호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여성 간호사에게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별 고정관념과 차별이 의료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성희롱도 자주 일어난다. 최근에도 한 간호사가 환자에게 심각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다. 환자는 묘하게도 의사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간호사는 병원 법무팀에 알리기까지 2주간 그 상황을 참아냈다. 김씨는 “성희롱이 일어나도 ‘너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니 이해하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가장 괴롭다”고 했다.3교대로 병원을 지켜야 하는 김씨는 돌봄노동도 부담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딸이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부모님 도움 없이는 아이들의 밥 세끼를 챙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말 재택근무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는 언니는 아이들 챙기느라 일을 못 한다며 오히려 회사에 일부러 출근을 했어요. 아이는 사회가 같이 키워야 하는데, 재택을 하나 안 하나 아직까지는 엄마의 몫인 거죠.”김씨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발병 때도 격리병동에서 6개월간 환자를 돌봤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그때 마련한 수칙과 인력 기준이 있어 코로나19 대응 때는 혼란이 비교적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 처우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간호사 인력은 여전히 모자란 소모품 같아요. 있으면 쓰고 없으면 끼워 맞추는….”
노회찬재단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한 봉제공장에서 장미꽃을 전달받은 노경숙(52)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회찬재단이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한 봉제공장에서 장미꽃을 전달받은 노경숙(52)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서울 중구 신당동 태일피복에서 일하는 노경숙(52)씨는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봉제노동자다. 노씨는 당시 어린 여공들이 그렇듯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7살 때 아는 언니를 따라 고향 전라도를 떠나 봉제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로 왔다. “그때는 학업을 이어갈 형편이 안 되면 그렇게 아는 언니들, 동네 언니들 따라 서울로 올라왔어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숙식이 해결된다고 하면 덜컥 미싱 일을 하게 되는 거죠.”노씨가 처음 취업한 공장은 창문이나 환기시설이 없어 종일 깜깜하고 공기는 퀴퀴했다고 한다. 복층으로 만들어진 다락방에서 잠을 해결하고 곧바로 작업대로 내려와 하루에 10~12시간씩 일했다. 천장 높이가 낮아 일을 할 때는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했지만, 공장은 2년 가까이 월급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보호자도 없는 18살 여자애가 돈을 달라고 하면 욕설이 날아오는 거죠. 저도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어영부영 일했던 거고.”
30년 봉제노동 노경숙씨“17살 때 올라와 월급 절반 집으로권리 찾은적 없어 뭐 필요한지도…”
“머리가 좀 더 커진” 뒤 공장을 옮겨 한달에 9만원의 돈을 벌기 시작한 뒤에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7남매 중 둘째였던 노씨는 월급의 절반 정도를 집으로 보내야 했다. 노씨가 시다(미싱사 보조)로 일하면서 번 돈은 동생들의 학비가 됐다. 노씨가 오야(미싱사)가 된 다음에 번 돈은 결혼 뒤 낳은 아이들 양육비가 됐다. 그렇게 신당동과 창신동을 오가며 집안을 떠받치는 사이 노씨에게는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가 찾아왔고, 일을 한두달씩 쉬는 일도 있었다.30년 넘게 미싱사로 일해온 노씨는 임금노동자가 아니었다. 봉제노동자는 사실상 공장 소속으로 일하지만 고용노동자가 아닌 ‘객공’, 일종의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한다. 공장이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려면 아침 8시에는 출근해 밤 10~11시까지 일을 이어가야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임금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은 물론 상여금·퇴직금은 꿈도 꿀 수 없었다.월급을 받아왔다는 증빙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봉제노동자 대다수는 전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 외에 어떠한 보조금도 받지 못했다. 50대 이상 여성으로 집안 생계를 맡고 있는 봉제노동자 상당수가 코로나19 지원의 사각에 있는 셈이다.“어느 정도 자기 권리를 받아본 사람들이나 이것도 필요하다, 저것도 필요하다 하지 우리처럼 살아오면 무엇이 필요한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요.”임신을 해도 하루도 쉬지 못한 채 먼지밥을 먹어가며 일해야 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가족을 떠받쳐온 30년이다. 노씨는 “언젠가 봉제노동자들도 사무직처럼 생리휴가를 쓸 수 있는 환경, 몸이 아프면 하루 정도 월차로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회찬재단이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서 조돈문 이사장(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이 장미꽃을 전달한 뒤,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노회찬재단이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투명노동자(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가 일하는 현장을 찾아 장미를 건네는 행사를 벌인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서 조돈문 이사장(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이 장미꽃을 전달한 뒤,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유금분(54)씨는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서 심리상담팀장을 맡고 있다. 최근 ‘해고 불안감’을 토로하는 여성 노동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아이엠에프 때도 비혼 여성 노동자부터 먼저 해고가 되었잖아요. 지금 코로나 시기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제조업이나 고객을 상대하는 직종에 있는 여성들이 요새 부쩍 그런 고민을 이야기해요.”2018년 설립된 센터는 서울시 소재 사업장에 근무하는 감정노동 종사자를 상대로 일대일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8곳 거점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 70여명이 한달에 200여건의 상담을 진행한다. 콜센터 종사자,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잘 알려진 감정노동자 외에 교사, 공무원,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상담을 위해 센터를 찾는다.유 팀장은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법률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으면 서울노동권익센터로 안내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도움을 제공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겨 정신적인 위기를 겪더라도 상담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감정노동 상담 유금분씨여성들 해고 불안감 부쩍 호소“백화점 청소노동자분도…속상하죠”

유 팀장의 걱정은 단지 기우가 아니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년 취업자 수 현황을 보면, 2019년 대비 여성 취업자 감소 폭은 13만7천명으로 남성(8만2천명)보다 1.6배가량 많다. 15~64살 여성 고용률은 같은 기간 57.8%에서 56.7%로 낮아졌다.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교육서비스업 취업자가 40만5천여명 줄었는데, 그중 여성이 25만1천명(62%가량)이었다.“백화점에서 일하는 청소원들은 1~2년에 한번씩 위탁회사들과 재계약을 하거든요. 근데 최근에 계약을 이어가지 못하고 많이 해고가 되시더라고요. 저한테 상담을 받으시던 분도 연말 계약기간이 끝나서 해고가 되었다고 하시는데, 속상했죠.”유 팀장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코로나19 충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고용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여성 노동자가 먼저 해고되고, 그래서 상담을 요청해온 경우를 몇차례나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함께 해결해나갔으면 합니다.”

 

▶바로가기 : 노회찬 장미꽃, 여성노동자에 대신 전합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833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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