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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2년···버티고 버티던 사장님들 마지막에 고물상 문 두드린다

조해람·한수빈 기자
<picture>12일 낮 12시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고 주방업체에 있는 음식점 간판이 뒤집어져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picture>

12일 낮 12시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고 주방업체에 있는 음식점 간판이 뒤집어져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각종 언론에 소개된 OOOO죽!” 호쾌한 필체의 간판이 거꾸로 뒤집힌 채 경기 고양시의 한 중고 주방기기 업체 마당에 놓여 있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김정훈씨(50)가 지난해 코로나19로 폐업한 한 가게에서 가져와 작업대로 쓰는 간판이다. 12일 찾은 이 업체에는 코로나19로 폐업한 가게들에서 매입한 냉장고 50여대와 의자 70여대가 가득 들어찼다. 고깃집에서 주로 쓰는 원통형 양철 의자가 창고 구석을 채웠다. 마당에 주차된 트럭 짐칸에도 나무 의자가 한 무더기다.

이렇게 물건은 들어오는데 사가는 이가 없다. 자영업 창업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계속 물건이 쌓인다. 자리가 모자라 마당에 내놓은 냉장고도 있다. 김씨는 “비 오면 전자제품은 고장나는데 볼 때마다 걱정”이라며 “모두가 힘든 상태다. 우리도 (매입 문의가 오면) 인건비만 나오면 다 구매해주려 하는데, 자영업자들도 자포자기하고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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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낮 12시3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고 주방업체 물류 창고 마당에 쌓여있는 주방용품들. 코로나19로 판매량이 줄며 창고 공간이 부족해진 것이 원인이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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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중고 주방업체에 12일 업소용 주방용품들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중고 주방기기 매입 업체나 고물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자영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2763만7000명)의 20.2%인 558만명으로 통계 작성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사를 접은 상인들은 한 푼이라도 손실을 메꾸려고 집기류를 판다. 먼저 폐업철거업체와 협상을 해 물건을 판다. 팔리지 않은 집기류는 중고가전 매입 업체로 간다. 도·소매상에서도 거절당한 물건들이 최후에 모이는 곳이 고물상이다.

크게 보면 코로나19 이후 중고기기 매입업체·고물상에 오는 물량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폐업에 따르는 권리금·대출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어서다. 그러나 한계가 오면 매입업체나 고물상 문을 두드린다.

김씨는 그 폐업들을 “눈물의 폐업”이라고 불렀다. 올해 2월 울산에 식당을 오픈하며 김씨에게 물건을 사 간 어떤 부부는 지난 7월에 김씨에게 다시 연락해 “물건을 다시 매입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물건을 매입해도 재판매할 곳이 없지만 여기저기서 오는 매입 문의 전화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폐업하는 분들은 그냥 만사 포기하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단돈 만원이라도 건져낼 수 있는 물건들은 다 파세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김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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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영등포구 한 냉장기구 도·소매점. 오른쪽에 보이는 냉장고와 왼쪽에 올려져 있는 싱크대는 세상을 떠난 곰탕집 사장이 지난해 11월 팔고 간 물건이다. |조해람 기자

“버티고 버티다가, 견디고 견디다가 마지막에 오는 곳이 여기예요.” 이날 만난 서울 영등포구 중고 냉장기기 업체 사장 이대영씨(61)가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일렬로 늘어선 주방기기들 끝에 놓인 한 냉장고엔 식재료 대신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지난해 11월 폐업한 곰탕집 사장이 이씨에게 판 냉장고다.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사장은 스트레스와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35년째 장사하며 골목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터줏대감 이씨지만 장사를 접고 떠난 사장님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여기 오는 사장님들 모두 억울하다고, 쫄딱 망했다고 해요. 죽고 싶다고, 시골 간다고…. 이젠 묻지도 않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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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중고 주방업체 창고 앞에 12일 미처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업소용 주방기구들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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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1/08/13/l_2021081201001667600141894.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12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한 고물상에서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고물로 가져온 ‘광동제약’ 온장고가 눈에 띈다. |한수빈 기자." /></picture>

12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한 고물상에서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고물로 가져온 ‘광동제약’ 온장고가 눈에 띈다. |한수빈 기자.

“경기를 알려면 통계청이 아니라 고물상에 와야 한다”고 자신하는 서울 영등포구 고물상 주인 김모씨도 얼어붙은 경기를 실감한다. 폐업한 가게 물건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덜 들어온다. 그러나 김씨는 고물상에 가게 간판이 안 들어오는 것은 경기가 심각하게 안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자영업 시장이 꽁꽁 얼었다는 증거예요. 시장이 활성화되면 창업도 늘고 업종도 자주 바뀌기 때문에 고물상에도 간판이나 집기류가 많이 오거든요. 지금은 폐업하면 돈은 없는데 권리금도 내야 하고 대출도 갚아야 하니까. 다들 버티는 거예요. 다들….” 18년간 영업했지만 주변 상인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김씨도 최근 매출 감소로 직원 1명을 줄였다. 한 칸짜리 사무실. 언제 켰는지도 모를 고장난 에어컨 아래로 선풍기 세 대가 더운 바람을 실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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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130600011#csidx24b176d28b973f5bdaa779ff9ceaa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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