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열기가 뜨겁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충청권 압승과 홍준표 전 대표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하지만 거대 양당 후보들의 치열한 대선 경쟁 그 어디에도 국가 최고 지도자다운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선룰이 어떻니, 역선택 방지니 하며 공정을 떠들지만 정작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철 지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가 하면 무료변론 여부를 밝히라며 막장드라마도 서슴없이 연출한다. 대통령 선거는 고사하고 동네 반장 선거만도 못한 낯 뜨거운 이전투구가 난무한다.

2.

한때 동네 통‧반장을 자체적으로 뽑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아파트자치회장을 선출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장은 매달 반상회를 열고, 일선 행정기관의 업무수행을 보조한다. 당연히 동네에서 가장 신망 있는 사람이 반장에 선출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선 고등학교 학생주임 선생님인 동룡이 아버지가 반장이었다. 당시 반장 물망에 오른 후보자를 두고 뒷이야기도 하지만 대체로 덕담이 오간다.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네일을 잘 봐달라는 격려와 당부가 담겨있다.

3.

지금 우리 사회는 대전환기를 맞았다. 200년 만에 산업혁명이 다시 일어나고, 한 세기를 주름잡던 미국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조선)은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20년 만에 세계 최대 교역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그림1).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생겨난 주식과 부동산 거품은 IMF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격변기에 치러지는 2022년 대선, 그러나 이 선거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들은 격변하는 시대 흐름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런 후보들이 더 큰 재앙일지 모른다.

▲ (그림1) 2000년 세계 최대 무역 상대국은 미국이었지만, 2020년 대부분 중국으로 바뀌었다. [자료 : UN Comtrade]
▲ (그림1) 2000년 세계 최대 무역 상대국은 미국이었지만, 2020년 대부분 중국으로 바뀌었다. [자료 : UN Comtrade]

4.

대통령은 국가 최고 지도자다. 동네 반장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런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면 세계사적 흐름을 통찰한 시대정신이 밝혀지고, 중장기 국정과제에 기초한 당면 시책의 실효성 여부가 공론의 장에 펼쳐져야 마땅하다. 예컨대 첨예한 미‧중 갈등 속에서 국익을 위한 선택은 무엇인지? 꽉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지?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대유행으로 최악이 된 불평등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막장드라마나 즐기고, 술자리 잡담에나 등장하는 신변잡기를 논할 만큼 대한민국은 지금 한가하지 않다는 소리다.

5.

대선 후보라면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전국민적 힘을 하나로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이것은 동네 반장이나 한 지역 국회의원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후보나 정당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유력 후보일수록 이를 회피하는 이유는 국민을 믿어 본 적 없는 기성 정치인들의 구시대 정치풍토 때문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이전투구를 해도 결국 국민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할 것이라는 낡은 관념에 사로잡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한심한 정치놀음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런 대선판에 부끄러움은 온전히 국민 몫이라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