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유럽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 ⑯] part 2 들어가는 글

<노회찬의 나라 밖 인물 산책>은 11월 1일부터 매주 월·수·금 3번 씩 연재된다.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노회찬재단)과 <프레시안>이 함께한다.편집자.

 

part 1 혁명 그리고 정치

 

① 다섯 번째 기록 이야기를 열며 (☞바로가기)

② 마르크스 上 "대한민국의 진보, 어디로 가시나이까"...노회찬, 마르크스를 만나다(☞바로가기)

③ 마르크스 下 "정치가 정치를 잊을 때, 가장 취약한 이들이 고통받는다"(☞바로가기) 

④ 레닌 上 레닌의 '불꽃' 만난 노회찬, 한국사회 논쟁에 뛰어들다 (☞바로가기) 

⑤ 레닌 下 노회찬, '혁명가의 길'에서 '정치가의 길'로 (☞바로가기) 

⑥ 호찌민 上 "씩식한 군인이 돼 베트공 없애겠다"던 노회찬 어린이, 어쩌다? (☞바로가기) 

⑦ 호찌민 下 "정적들도 그에게 정중한 조사의 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가기) 

⑧ 저우언라이 上 중국 '인민의 총리' 저우언라이와 이어지다 (☞바로가기) 

⑨ 저우언라이 下 "민주노동당의 '주은래' 노회찬의 꿈" (☞바로가기) 

⑩ 룩셈부르크 上 '잠들지 않는 붉은 장미' 로자 룩셈부르크를 만나다 (☞바로가기) 

⑪ 룩셈부르크 下 로자 룩셈부르크의 '츠비츠비', 그리고 노회찬의 '잘 놀다 간다' (☞바로가기)

⑫ 그람시 上 민주노동당의 분당,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 (☞바로가기) 

⑬ 그람시 下 '희대의 반항아' 그람시와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 노회찬 (☞바로가기) 

⑭ 체 게바라 上 (☞바로가기) 

⑮ 체 게바라 下 (☞바로가기)


 

ⓒ연합뉴스

노회찬, 유럽 사회민주당의 리더들과 조우하다 : "생애 내내 진보적 이상과 현실주의가 만나는 접점을 탐색한 탐험가, 노회찬" 
 

 
▲유럽 지도

"순결한 운동가의 길이 아니라 세상의 때를 묻히더라도 민중의 삶을 반 발짝이나마 전진시킬 정치가의 길을 택한" 노회찬.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이에 대해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노회찬은 생애 내내 진보적 이상과 현실주의가 만날 접점을 탐색하는 탐험가"이자 '현실주의(실사구시)적 진보주의'의 길을 걸은 진보정치가였다고 묘사한다.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시사IN>, 568호, 2018.8.6)


 

▲<2021 노회찬의 말글달력> 2월. 글씨: 영묵(永墨) 강병인 작가 Ⓒ노회찬재단

'탐험가 노회찬'은 정치를 출세의 수단이나 타락의 위협이 아니라 현실을 바꿔내는 무기로 인식했다.

 

"노회찬은 이상주의자여서 세상을 바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동시에 그는 현실주의자여서 그 목표를 이뤄낼 수단을 찾아내야만 했다. 진보는 너무 큰 목표여서 정치를 쓰지 않고는 이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진보정치가로 살았고, 진보정치가로 삶을 마감했다."(천관율 기자, 「노회찬은 이런 정치인이었습니다」, <시사IN>, 568호, 2018.8.6.) 

 

인민노련 사건으로 2년 4개월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노회찬은 '혁명가의 길'에서 '정치가의 길'로 살의 방향을 전환, 진보정당 창당에 매진했다.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였던 노회찬은 길동무들과 함께 한 발짝 앞서서 진보정당의 '길'을 만들어온 사람으로 '길'과 관련해 이런 말글을 남기도 했다. 

 

"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서 걸어왔습니다." 

"물은 길이 없다고 멈추지 않습니다. 물은 스스로 길을 만들고 또한 스스로 길이 됩니다. 진보정치는 물과 같아 길이 없어도 멈추지 않고 새 길을 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걸어가는 개척자들입니다. 애초에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면서 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낸 이 길을 따라서 이 땅의 4천만 민중이 걸어올 것이고, 나아가 7천만 민족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있을 것입니다."

 

"진보정의당의 앞길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철로는 놓여 있지 않습니다. 진보정당의 앞길에는 이정표도 신작로도 없습니다.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선 우리는 더 바뀌고 더 채워야 합니다."

 

노회찬이 진보정당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변화는 정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면 쿠데타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치를 통해서만 사회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창비, 2018)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꿈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회찬, 「(여는글)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다시, 꿈꾸기 위하여」,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 노회찬, 「서문」, <노회찬의 약속>, 레디앙, 2010 참조)

 

 

민주노동당 창당 전인 1999년, 발기인 노회찬은 창당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3000년의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인간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정당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물론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곧 세습권력으로서의 왕권이 소멸하였거나 현저히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당이라는 형식의 정치결사체가 등장한 것은 그 자체로서 역사의 진보라 할 수 있다.

(…) 

진보정당의 역사는 귀족, 자본가, 대토지 소유자들의 정당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체의 정치활동으로부터 배제된 다수의 대중, 그 중에서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근로계층이 새로운 정당을 만든 것이다. 

이 새로운 정당은 대개의 경우 '사회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내걸었으며, 의회 의원 한 명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당원을 조직하는데 주력하여 대중정당으로 출범하였고, 다수의 당원을 관리하는 제도로서 엄격한 당비 납부제도를 초기부터 실시하였으며, 투표권조차 없던 상태에서 보통선거권과 비례대표제 쟁취를 위한 투쟁을 강화하였다. 

(…) 

물론 진보정당의 출현과 성장이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전개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이 지체되고 절대왕권이 지속되었던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나라들에선 진보정당의 모든 활동이 오랫동안 불법화되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진보정당의 활동은 독재정권에 의해 탄압받거나 금지되어 왔다.  

1987년 노동자 대파업투쟁 이후 비로소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자유가 쟁취된 것처럼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부분적인 활동의 자유를 획득한 것은 겨우 10년 남짓한 역사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의 진보정당은 세계 진보정당의 역사가 확보한 보편적인 경험과 함께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환경을 조화시키는 데서 자신의 성격을 형성하고 발전 경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보정당 건설의 전략과 전망」, <노동과 사회> 통권 37호, 1999년 10월호)


 

자타공인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인 노회찬이 합법적 대중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꿈을 키워가면서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만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세계 진보정당의 역사가 확보한 보편적인 경험', 그 성과와 한계는 오랜 단절의 역사를 지닌 한국 진보정당의 비전 설계와 발전 경로 탐색에 소중한 참고서였기 때문이다. 노회찬이 설계하고 개척한 한국 진보정당의 강령은 이렇게 적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의 오랜 지혜와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강령, 2000.1.) 

"시대가 아무리 절망의 나락에 빠져도, 역사에서 자유는 더욱 성숙해왔고 만남은 확장되어왔다. 근대 시민혁명이 자유와 인권의 이념을 보편화시킨 이래, 사회주의 혁명이나 사회민주주의 개혁운동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진보적 정당들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와 생태파괴 문명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 역사에서 한계와 오류도 있었으나,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나가려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진보신당 강령, 2009.3.) 

"우리가 꿈꾸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함께 행복한 상생의 나라이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가는 정치가 상생의 정치이다. (…)  

우리는 자유・평등・연대・생태・평화를 실천해 온 세계 진보 정당의 역사적 경험과, 복지국가를 이룩한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를 21세기 한국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정의당 강령, 2015.3.)

 

▲키어 하디, 켄 리빙스턴(영국), 빌리 브란트(독일), 장 조레스,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빔 콕(네덜란드)

이번 <part 2>에서는 '유럽 사민당 리더들과의 조우'라는 틀로 영국의 키어 하디와 켄 리빙스턴, 독일의 빌리 브란트, 프랑스의 장 조레스와 프랑수아 미테랑, 네덜란드의 빔 콕과의 조우에 대해 다룬다. 

이어서 <part 3>에서는 '사회의 공기까지 바꾼' 북유럽의 경우를 특화해,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와 타게 에를란데르, 노르웨이의 에이나르 게르하르센, 핀란드의 마우노 코이비스토와 타르야 할로넨과의 마주침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151011213985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