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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영혼을 붙잡아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15 13:13
  • 수정일
    2013/08/15 13: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제안] ‘유체이탈 방지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의 영혼을 붙잡아라
 
정주식 | 2013-08-15 11:25:0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략 이런 화법>

유체이탈(遺體離脫)이란 말 그대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영화 속 심령술사들이나 사용할 법한 이 기이한 ‘도술’을 현실세계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 여사다.

지난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세법개정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말만 들으면 이번 세법개정안은 관료들이 대통령 몰래 지하실 같은 곳에서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나라살림의 근간을 이루는 법안을 대통령 몰래 만들어 발표했으니 저 법안을 만든 관료들은 능지처참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물론 대통령의 오리발에 속을 사람은 많지 않다. 아주 조금만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대통령의 말에서 이상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8일 공식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이미 지난달 말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안이었다. 기획재정부 김낙회 세제실장은 지난 2일 출입기자들에게 이미 확정된 세법개정의 방향을 설명했다. 이후 주말 동안 여당 및 청와대와의 세부 협의를 거친 뒤 현오석 부총리가 지난 5일 최종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참여한 당∙정∙청의 합작품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나라의 세법을 대통령 ‘몰래’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 대통령은 청와대와 여당, 정부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 끝에 내놓은 세법개정안을 하루아침에 설익은 정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치 자신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대체 누가 저런 개정안을 만들었냐는 꾸짖음으로까지 들린다. 서늘하다. 저런 오너에게 충성을 바칠 관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걸 ‘유체이탈 화법’이라 한다. ‘유체이탈 화법’이란 자신이 벌인 일을 마치 모르는 일인 양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듯 말하는 화법을 말한다. 이 화법은 주로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재벌총수,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들의 언행은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의 증상과 유사하다. 기억을 상실했으니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유체이탈 화법의 대가는 이명박 전대통령이었다. 이따금씩 청와대에서 그의 '격노'소식이 전해질때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럴 때마다 꼬리가 하나씩 잘려나갔다. 그런 식으로 MB는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모든 과오와 사건사고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유체이탈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인물이었다.

MB를 뛰어넘은 유체이탈의 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이미 전임자의 아성을 넘어선 듯 보인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분 누가 임명했나요?>

작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극우 폴리널리스트 윤창중 씨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새누리당까지 온 나라가 그의 임명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은 무슨 계시라도 받았는지 고집을 꺽지 않고 임명을 강행했다. 얼마 뒤 대통령의 방미일정 중 그 유명한 ‘엉덩이사건’이 터진다. 그는 결국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다. 사건이 터진 뒤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난번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밝혔듯 이런 문제가 생기면 관련 수석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조치할 것이다”

결국 윤창중이 엉덩이를 만진 것에 대한 책임은 그를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이남기 홍보수석이 져야 했다. 대통령은 심지어 “이것을 계기로 청와대는 물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완벽하게 제3자로 빙의했다. 섬짓하다.

지난 5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중 난데없이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개성공단이 문닫은지 불과 5일 만에 나온 발언이다. 개성공단 파국의 당사자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한 것이다. 지난달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결렬된지 이틀 만에 대통령은 또다시 이 몽상을 설파했다. 회담결렬을 놓고 남북이 격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었다. 유(遺)와 체(體)가 함께한다면 불가능한 현상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한민국에는 마치 두 명의 대통령이 있는 것 같다. 한명은 일을 벌이고, 다른 한명은 그것을 부인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대통령의 영혼이 수시로 육체를 드나들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은 유체이탈의 달인이다.

8년 동안 10억이 넘는 보수를 지급받고 이사장과 이사들을 마음대로 임명했던 정수장학회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발뺌했던 일이나, 여당의 1인자로 군림해왔던 그녀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로 정권교체’라는 황당한 구호를 들고 나왔던 일 모두 유체이탈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이다.

대통령의 영혼을 붙잡아라

자신의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거나 뻔뻔한 사람이다. 어떤 경우든 저런 말투를 즐겨 쓰는 사람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고 자신의 언행을 뒤집는 거짓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원수의 유체이탈 화법은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사회일반의 도덕성을 해친다. 한마디로 ‘사회악’이다. 이 유치찬란한 모르쇠를 계속 두고 볼 수많은 없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의 제정을 제안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 발언과 지시에 대해 인정하지 않거나, 그와 반대되는 언행을 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유체이탈 방지법>혹은 <박근혜 방지법>, <대통령 오리발 금지법>이다. 대통령의 ‘영혼’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법안의 이름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대통령제가 갖는 거의 유일한 장점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책임정치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차원에서도 책임정치가 되지 않는다면 정권차원의 책임정치가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대통령의 책임이 실종된 대통령제는 사실상의 ‘왕정’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을 왕정으로부터 구하는 길은 대통령에게 영혼을 찾아주는 일이다. 법안을 만들든, 심령술사를 고용하든 대통령이 하루빨리 유체통일을 이뤄내 책임있는 정치를 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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