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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세계 최초 ‘일회용컵 반납 시스템’ 세종에서 미래를 만났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사업장 전국 4곳...아쉬운 점도

 
던킨 세종정부청사점 매장 외부 사진 ⓒ민중의소리 
 
던킨 세종정부청사점을 찾았다. 이곳에서 커피 테이크아웃 주문을 하면 일회용 컵에 생소한 라벨지가 붙어있다. 라벨지가 붙은 일회용 음료 컵을 들고 계산대 옆 작은 테이블에 가면 태블릿PC가 나타난다.

바코드를 태블릿PC 카메라에 찍으니 “삑-” 소리가 났다. 반납 대상 컵이 맞다는 확인 메시지다. ‘자원순환보증금’ 앱을 켜고 바코드를 같은 자리에 또 찍었다. 앱 화면을 확인해보니 적립금 200원이 들어왔다. 200원은 회원가입 할 때 등록한 계좌로 옮겨 현금처럼 쓸 수 있다. 매장 퇴식구에 있는 직원에게 컵을 건네줬다.

앞으로 6개월 뒤, 전국에서 실시될 ‘일회용컵 반납 시스템’이다. 그간 거리에 널브러지던 일회용 컵은 이 시스템을 통해 고급 원단으로 다시 태어난다.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도 이 원단으로 만들었다. 일회용컵 재활용 시스템 도입은 한국이 세계 최초다. 세종시에서 6개월 뒤 다가올 미래를 체험해봤다.
 
일회용컵 반납 과정 ⓒ민중의소리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핵심은 ‘라벨지’다. 라벨지 안에는 고유번호와 바코드가 적혀있다.

라벨지는 보증금이 포함된 컵인지 표시하는 용도로 쓰인다. 일회용 컵을 반납하면 시범사업 기간에는 적립금 200원을 받는다. 보증금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음료값에 함께 결제한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게 된다. 라벨지가 없으면, 해당 컵이 보증금제 대상 컵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비슷한 컵을 사서 보증금을 부정으로 받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라벨지에 적힌 각각의 고유번호를 통해 보증금을 이미 반환한 컵인지 확인할 수 있다. 매장, 수거업체 등이 다른 목적으로 재반환을 반복해서 보증금이 낭비될 우려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라벨지는 표준용기와 비표준용기를 구분하는 역할도 한다. 표준용기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컵, 플라스틱 컵을 말한다.

플라스틱 컵은 인쇄가 없이 투명한 페트(PET)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구분 없이 반납했을 때 보관에 용이하도록 밑면 지름, 윗면 지름, 높이를 표준 규격 이상으로 제작해야 한다. 종이컵도 마찬가지.

라벨지가 붙은 표준용기 일회용 컵은 지정된 수거 업체에서 가져가 바로 재활용 한다. 플라스틱 컵과 종이컵을 녹여 원료로 만들어 다른 업체에서 구매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인다.
 
던킨 세종정부청사점 매장 안 일회용컵 반납용 태블릿PC와 안내문 ⓒ민중의소리
 

할 일 많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안내, 라벨지 부착, 수거까지

던킨 직원은 음료 픽업대에서 일회용 컵에 커피를 가져가는 손님들에게 시범사업을 안내했다. 일회용 컵에 하단에 붙은 라벨지를 가리키면서 나중에 컵만 씻어서 가져오면 200원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이다.

손님들은 “그런 게 있었냐”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여러 번 반납해 본 단골들도 있었다. 던킨 매장과 가까운 사무실에서 일하는 임 모씨(35)와 고 모씨(42)는 일주일에 한 번 일회용 컵을 반납하러 온다. 컵 홀더와 뚜껑, 빨대는 따로 버리고, 컵을 씻어서 사무실 한쪽에 쌓아둔다. 과정은 번거롭지만, 이렇게 모은 컵을 반납하는 날에는 보증금으로 커피를 한 잔 더 살 수 있다.

이 모씨는 “사무실에 사람이 많으니까 단체로 한곳에 모았다가 한꺼번에 반납한다. 시범 운영 동안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던킨 매장에서 회수한 컵은 5월 27일 기준 총 127개였다. 이날 오전에도 18개를 모아 반납한 손님이 있었다. 시행 초기보다 점차 수거량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점주의 설명이다.

가맹점주 유 모씨(48)는 “컵 수거량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앱을 미리 설치해서 바로 반납하는 손님들도 늘어났다. 직원들이 설명을 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장 직원은 환경부에서 제공한 라벨지를 일회용 컵에 하나하나 붙여야 한다. 테이크아웃, 배달에 쓰이는 일회용 컵에는 모두 라벨지를 붙여 보낸다. 던킨 매장은 일회용 컵이 하루 200잔씩 나간다. 라벨지 부착 작업은 2~3일 간격으로 이뤄진다. 한가한 시간에 200잔씩 붙이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다.

던킨에서 일하는 배 모씨(30)는 “처음에는 라벨지를 붙이는 데 속도가 안 났지만, 지금은 라벨 50개를 붙이는 데 1분 정도 걸린다”고 전했다.

던킨 점주는 컵을 반납하러 온 손님 중에는 더러 컵을 씻지 않은 채 가져 오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유 씨는 “이물이 묻은 컵은 안 받아도 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안 받을 수 없다. 컵을 안 씻어서 오는 손님은 수십 명 중 한 명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렇게 모은 컵은 기존 방식대로 폐기한다. 아직 시범사업 단계라서 수거 시스템은 운영하지 않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범사업으로 일이 더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시범사업 매장 점주들은 “그럼에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크리스피크림 도넛 매장을 운영하는 한 모씨(55)는 가맹점주들도 환경 문제에 공공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회용 컵에 음료를 사서 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판매하는 사람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씨는 “우리는 일회용 컵을 줄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이런 정책이 없으면 앞으로 일회용품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다른 해결방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던킨 세종정부청사점 퇴식구에 설치된 안내문 ⓒ민중의소리
 

환경부, ‘일회용 컵 보증금제’ 미리 체험하는 시범사업 운영 중

환경부는 오는 12월 1일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에 앞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시 정부청사 앞 △던킨 △크리스피크림 도넛 △투썸플레이스다. 서울에는 △요거프레소 홍대교육센터점이 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소비자가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구매할 때 보증금 300원을 함께 결제하고, 해당 컵을 반납하면 돈을 돌려받는 제도다. 음료를 구매한 매장이나, 보증금제 시행 대상인 다른 매장에 반납할 수 있다. 재활용이 가능한 일회용 컵이 길거리 쓰레기로 방치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시행 대상은 점포 수가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커피·음료·제과제빵·아이스크림·빙수·패스트푸드 업종의 전국 3만 8천여개 매장이다.

시범 사업은 보증금제 시행에 앞서 제도 운용의 개선점을 찾기 위해 일부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진행하고 있다. 반납용 태블릿PC와 ‘자원순환보증금’ 앱 작동 오류를 잡아내고, 현장에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확인한다.

환경부는 시범 사업 기간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홍보하기 위해 시범 매장에 라벨이 붙은 컵을 반납하면 1개당 200원의 적립금을 지급하고 있다. 물론 음료값도 다른 매장과 같다. 시범 매장 4곳 중 브랜드 상관없이 라벨지가 붙은 컵을 돌려주면 200원을 받을 수 있다.
 
요거프레소 홍대교육센터점 주문매대 위에 놓인 반납용 태블릿PC와 안내문 ⓒ민중의소리


서울은 요거프레소 홍대교육센터점만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시범 매장이 단 한 곳뿐이라는 점은 아쉬웠다. 홍대는 보증금제를 시행하면 지하철, 버스 정류장 근처에 반납이 집중돼 컵 보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지역이다. 시범 매장을 늘려 수거 집중 매장을 파악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환경부는 시범사업이 각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라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을 강제하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각 프랜차이즈 브랜드별로 시범사업을 운영해보고 싶은 가맹점에서 정보를 얻고, 보증금제 운용 방식을 다른 가맹점에 전파하는 정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특정 매장에 반납이 집중되는 경우를 대비해 일회용 컵 수거 업체가 방문해 직접 컵을 가져가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수거 집중 매장에는 인센티브 식으로 지원금 등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라벨지를 붙인 일회용 플라스틱 컵 ⓒ민중의소리
 

‘일회용 컵 보증금제’ 오는 12월 1일 시행…준비할 점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당초 오는 6월 10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 정비를 이유로 6개월 뒤인 12월 1일까지 유예됐다.

현재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은 겉면에 인쇄가 들어간 비표준용기에 해당한다. 지정 수거 업체에서 가져간다고 해도 재활용이 어렵다. 플라스틱 컵은 페트, PP(폴리에틸렌) 등 소재가 다양해 각각 구분해서 선별하기 힘들다.

환경부는 오는 12월까지 프랜차이즈 업계가 비표준용기 재고를 소진하고, 대부분 표준 용기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환경부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표준용기 도입을 유도하기 위해 표준용기와 비표준용기의 처리지원금 책정에 차이를 뒀다. 처리지원금은 수거 업체가 일회용 컵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컵 1개당 표준용기는 4.4원, 비표준용기는 10원씩 내야 한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제도 시행에 따른 비용을 아끼기 위해 표준용기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요거프레소는 제도 유예 전부터 6월 10일 시행 예정일에 맞춰 브랜드 로고를 음각으로 새긴 표준용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제도를 시행해도 표준용기 사용을 각 업체에 강제할 수 없다”며 “다만 처리지원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라도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표준용기 전환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피크림 도넛 세종청사점 주문 매대 아래 붙여진 포스터 ⓒ민중의소리


보증금제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장 가맹점주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카드 수수료’였다. 손님이 보증금 300원을 포함한 음료값을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는 가맹점주가 부담해야 한다.

가맹점주는 제도 시행 최소 3주 전에는 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이하 코스모)’에 컵을 반납하면 지급하는 300원을 미리 지정 계좌로 이체해야 한다. 라벨지를 신청하는 수량만큼 보증금을 계산해서 미리 납부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가맹점주 A씨가 하루 테이크아웃 음료 평균 판매량이 200잔인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루 200잔씩이면 한 달 평균 판매량은 6,000잔이다. 라벨지 주문과 동시에 180만원을 현금으로 미리 납부해야 한다. 시행 첫 달에는 한 달 매장 월세 금액이 나가는 셈이다.

물론 손님이 보증금 300원을 포함한 음료값을 지불하니 보증금을 즉시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보증금 300원에서 수수료가 빠진다는 점이 문제다.

연 매출 3억원 이하인 소상공인 우대 카드 수수료율 0.5% 기준으로 보면, 보증금 300원당 1.5원을 수수료로 내게 된다. 1.5원씩 한 달에 6,000잔을 팔면 9천원, 12개월이면 10만 8천원이다.

연 매출 3~5억원인 매장의 경우, 카드 우대 수수료율은 1.1%다. 300원에서 3.3원씩 수수료가 나간다. 한 달에 6,000잔이면 19,800원, 1년마다 23만7,600원을 내야 한다.

가맹점주들은 보증금 300원에 대한 카드 수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님들이 결제한 보증금으로 보전해 순환 구조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카드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라벨지 비용(1장당 6.99원)을 전액 지원하기로 했지만, 업계의 공감은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정부 정책이기 때문에 보증금에 대한 카드 수수료는 지원해줘야 한다. 한두 잔은 괜찮지만, 계속 나가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부담된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당초 6월 10일 시행 예정이었을 때 업계에서 제도 시행 유예를 우선 요구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하면서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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