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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봄 가뭄에 농민 속 타는데, 국가가뭄정보는 모두 '정상'?

[내일의 기후] 농촌 현장과 괴리된 기상정보 제공의 문제점

22.06.03 07:18l최종 업데이트 22.06.03 07:18l
4km 밖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농민들이 40미터 길이 호스 1백개를 연결해 물을 대고 있다.
▲ 2022년 5월 27일 전남 고흥군 봄 가뭄 현장 4km 밖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농민들이 40미터 길이 호스 1백개를 연결해 물을 대고 있다.
ⓒ 신경남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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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비가 안 온 달이었다. 5월 한 달 누적 강수량이 전국 평균 5.8mm로 평년 강수량(105.5mm)의 5.9% 수준이었다. 최악의 봄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민들은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국가가뭄정보포털'에서는 모든 게 '정상상태'로 나온다. 국가 정보가 현장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셈이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농촌현장과 가뭄정보 간의 괴리에 대해 기록한다.

지난 5월 27일 금요일, 전남 고흥에서 25년째 쌀 농사를 짓고 있는 신경남씨는 '농사를 시작한 뒤 5월에 이렇게 비가 안 오기는 처음'이라며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농민들이 4km 바깥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40m짜리 호스 100개를 이어붙였고, 이미 말라붙은 하천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웅덩이를 파고 다소의 물을 확보한 현장 사진이었다. 그야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만들어낸 물이었다. 

- 강수량은?
"5월 달 전체 1.3mm (5월27일 기준)"  - 예? (수도권은) 엊그제도 비 오던데...

"여긴 안 왔어 하나도 안 왔어."

- 모내기 상황은?
"많이 미루고 있어. 한 청년 농업인은 모내기 하려고 비닐하우스에 못자리(8일간 키우는 어린 모)를 해놨는데 싹 폐기해 버렸어. 물이 없어 모내기 못하니까."

- 저수지는?
"난리여. 한 저수지(두원면 동신지)는 지난 겨울에 작업한다고 물을 싹 빼 버렸어. 당연히 올 봄에 비가 와서 물이 찰 줄 알고. 근데 비가 안 오니까 싹 말라붙어 있어. 그 동네 분들 큰 일이여."

이런 상황은 고흥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5월 24일 <연합뉴스>는 강원 춘천지역 한 저수지가 바짝 말라 바닥을 드러낸 상태를 전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이날 강원지역 농업용수 저수율은 57.7%였다. 5월 25일 전남 구례군의 5월 강수량은 1mm 수준으로 전년 108.5mm와 평년 91mm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바닥을 보인 하천 바닥을 포크레인으로 준설하여 웅덩이를 파내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고 있다.
▲ 2022년 5월 27일 전남 고흥군 봄가뭄 현장 바닥을 보인 하천 바닥을 포크레인으로 준설하여 웅덩이를 파내고 농업용수를 확보하고 있다.
ⓒ 신경남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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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충남 홍성군 농민들은 4월 26일 이후 비소식이 없어 고구마가 말라 죽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관련기사 : 가뭄 장기화에 충남 지역 주민들 "고구마 말라 죽고 있다" http://omn.kr/1z2lf). 5월 28일 토요일, 농어촌공사 고흥지사는 농민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고흥만 지구 담수호(당두양수장) 금일 염도 3000ppm입니다.'

봄 가뭄에 농업 용수의 염도가 너무 높아졌으니 간척지 논에는 모내기를 사실상 하지 말라는 정보였다. 다음날인 5월 29일 저녁부터 5월 30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전해졌다. 비가 그친 뒤 사정이 조금 나아졌는지 물어봤더니 고흥 농민으로부터 이런 답신이 왔다.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왔네요. 0.1mm"

농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흥 0.1mm, 여수 0.4mm, 남해 0.4mm, 보성군이 좀 많이 와서 1.2mm. 5월 30일 월요일 오전 10시 기준 기상정보였다. 큰 일이었다.

농민들 울상인데, 국가가뭄포털 "모두 정상 단계입니다"
 
큰사진보기'5월 31일 두원면의 수원은 주암(본) 댐으로 저수율이 28.4%이며 생활 공업 용수, 농업 용수 모두 정상단계입니다.'
▲ 2022년 5월31일 국가가뭄정보포털 "우리동네 가뭄" 지도 "5월 31일 두원면의 수원은 주암(본) 댐으로 저수율이 28.4%이며 생활 공업 용수, 농업 용수 모두 정상단계입니다."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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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농촌 현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주류 미디어는 선거 소식만 전했다. 날씨 예보 역시 '어제부터 내린 비로 다소 쌀쌀하겠다'는 도시민 중심 정보만 전했다. 뭐가 문제일까? 국가 가뭄 정보 사이트를 들어가 봤더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타 들어가는 농촌 현장과는 달리 국가의 모든 지표는 '정상 상태'로 공시되고 있었다.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에서 제공하는 '국가가뭄포털'에 들어가 제보를 받은 전남 고흥군 두원면 지역의 가뭄 현황을 검색해 봤다. 읍면동 맞춤형 정보제공인 '우리 동네 가뭄' 화면이 뜬다. 이런 문구가 나왔다.

'5월 31일 두원면의 수원은 주암(본) 댐으로 저수율이 28.4%이며 생활 공업 용수, 농업 용수 모두 정상단계입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정상단계라니. 그 전날과 전전날의 가뭄 상황을 검색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정상단계를 알리고 있었다.

'5월 29일 두원면의 수원은 주암(본) 댐으로 저수율이 28.7%이며 생활 공업 용수, 농업 용수 모두 정상단계입니다.'

이 지역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저수율 수치만 다를 뿐 정상단계로 공지되고 있었다. 반면 전 세계 가뭄 지수(Drought Index)를 보여주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위성자료는 지난 4월 말과 5월 중순까지의 한반도 전역의 가뭄 수준이 지난 2021년 5월과 비교해 '심각단계' '극히 심각 단계' 지역이 확연히 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북한의 가뭄 상황을 전하는 미국의 소리(VOA) 보도 내용이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가뭄 현황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수문기상 가뭄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5월 한 달 간의 누적 강수량은 전국 평균 5.8mm로 평년 강수량(105.5mm)에 비해 5.9% 수준,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강수량을 보였다. 전남 고흥 지역의 5월 강수량은 1.6mm, 평년 강수량(136.6mm)보다 100분의 1도 비가 오지 않았음이 수치로 증명됐다.
 
큰사진보기고흥군 두원면 '정상상태'로 나온다.
▲ 2022년 5월29일 가뭄상황을 나타낸 국가가뭄정보포털 지도 고흥군 두원면 "정상상태"로 나온다.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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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상상태'라니, 뭐가 문제일까? 국가 가뭄 정보 분석 센터 담당자의 말을 들어봤다.

담당자 : "저희 쪽 정보는 사실 생활용수나 공업용수 쪽이고, 농업 분야의 경우 농식품부나 농어촌진흥공사 쪽에 알아보셔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 "그런데 농업 용수까지 포괄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나요?"
담당자 : "그렇기는 한데 사실상 저희가 직접 관할하지 않고 그 쪽(농업분야)에서 주는 데이터를 받아 쓰고 있기 때문에..."

농업 분야 이슈는 해당 기관에 문의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지난 2015년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가뭄에 대비하는 국가 가뭄 예·경보 시스템 차원에서 설립된 국가가뭄정보센터의 설립 취지는 이렇다. 

'전국의 흩어진 물 정보를 취합·분석하고, 지역별 현재의 가뭄 수준과 장래의 상황을 예측하여 그 정보를 국민, 정부, 지자체에 신속히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기상 가뭄 따로, 농업 가뭄 따로, 생활 용수 따로?

과연 국가가뭄포털은 취지에 부합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농업 분야 가뭄 현황에 대해 농어촌 공사 농업가뭄센터장의 말을 들어봤다. 

"(농업 분야) 상황이 심각해서 저도 지금 현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밭 농사의 경우 심각하고요. 논 농사의 경우 다행히 지난해 저수율이 90% 수준으로 꽤 많았기 때문에 올 봄 모내기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모내기 이후에도 지금처럼 비가 안 오면 상황이 심각해지죠." (한영규 농어촌 공사 농업가뭄센터장)

그러나 농어촌 공사가 제공하고 있는 'ADMS 농업가뭄관리시스템'에 의하면 제주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이 관심, 주의 지역으로 분류된 밭 가뭄 현황과 달리 논 가뭄의 경우 전국 모든 지역이 '정상'으로 나온다. 논 농사의 경우 저수율을 기준으로 가뭄 예경보 기준이 분류되고 있기 때문인데, 과연 지금의 기상가뭄을 외면한 채 저수율만으로 농업분야 가뭄 단계를 구분하는 방식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취재과정에서 제기된 정보제공에 대한 의문은 다음과 같다.
 
- 국가가뭄포털이 분야별로 흩어진 물 정보를 취합, 분석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상 가뭄' 상황은 평년 5월보다 1백분의 일도 비가 오지 않은 지역들을 '약한 가뭄'으로 표시하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평가방식인가?
- 국가 가뭄 예경보 기준에 따르면 논 농사의 경우 영농기(4~10월) 평년 저수율의 50% 이하면 '경계' 40% 이하면 '심각' 단계로 분류하는데, 지금과 같은 '기상가뭄' 상황을 외면한 채 저수율만으로 농업 분야 가뭄 단계를 분류하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체계일까?

*참고자료
- 양지웅, '봄 가뭄에 바닥 드러낸 저수지' (연합뉴스, 2022.5.24)
- 조준성, '구례군, 가뭄 피해 예방 농작물 현장기술 지원' (스포츠서울, 2022.5.25)
- 이재환, '가뭄 장기화에 충남 지역 주민들 "고구마 말라 죽고 있다"' (오마이뉴스, 2022. 5.25)
- 함지하, '북한 곡창지대 봄 가뭄, 미 위성자료 통해 확인…"코로나 속 북한 식량난 우려"' (미국의 소리 뉴스, 2022. 5.31)
-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 '국가가뭄정보포털'
- 기상청 '수문기상가뭄정보시스템'
- 농어촌공사 'ADMS 농업가뭄관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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