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KTX 투자 "국민연금과 협의"? 국토부의 거짓말

[단독] KTX 투자 "국민연금과 협의"? 국토부의 거짓말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 "투자 협의 없어…예의상 접대 미팅"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19 오전 10:14:37

 

 

국민연금이 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쪼개기'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또한 국토부가 "국민연금과 협의했다"고 사전에 밝힌 것도 사실 "예의상 접대 미팅"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국토부는 국민연금과 사전에 "협의했다"고 주장하고 이와 달리 국민연금 측은 "협의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왔는데, 국민연금 측에서 수서발 KTX 법인 투자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프레시안> 취재 결과 지난 7월 26일 철도노조 관계자 등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관계자 등이 국민연금기금운영본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수서발 KTX 운영사 선정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연기금을 포함한 공적 자금이 70%의 지분 투자를 하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앞서 국토부는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지난 4월 23일 국민연금 측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마치 국토부와 국민연금이 사전에 교감을 나눴다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당시 참석자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측 고위 관계자는 7월 26일 철도노조 관계자 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토교통부(세종시 소재) 담당자가 서울에 출장을 왔기 때문에 예의상 '접대 미팅'을 한 것이다. 당시 미팅을 한 사람은 기금운용본부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다. (국토부 측으로부터) 문서 등 자료가 제시되지도 않았고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상부에) 보고할 만한 내용도 없어서 면담한 사실조차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당시 담당자가 국토교통부에 설명한 내용은 '기금 운용 절차상 정부 부처와 직접 협상은 불가하고 국민연금 단독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기금으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금 운용사를 포함한 시장에서 검토와 제안'이 있어야 한다."
 

▲ 수서발 KTX 운용사 설립 자체가 가능한지, 국토부가 제시한 방안대로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 "국민연금과 협의"? 국민연금 "협의한 사실 없다"

국민연금의 입장은 사실 예측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기금운용본부에서 "가장 젊은" 직원을 만나 상부에 보고될 가치조차 없는 미팅을 진행해놓고, 마치 국민연금과 공식 협의를 진행한 것처럼 발표했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원래 국민연금이) 정부 부처와 직접 투자 상담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되면 연기금이 정부 쌈짓돈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국토부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연기금 투자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국토부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이 같은 의미 없는 면담을 진행한 후 '협의했다'고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쇼'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토부는 앞서 수서발 KTX 법인을 세우겠다고 발표하며,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할 경우 그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묶어놓겠다고 발표했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도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6월 19일에 연 기자 간담회에서 "수서발 KTX는 코레일 30%(를 출자하고), 연기금이 70%를 투자하는 형태로 설립할 계획이며 연기금이 투자한 부분은 절대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현재) 기금이 안정적이지 않다.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이런 경우에 자금이 한 곳에 묶여 있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한마디로 수서발 KTX 자회사 자체가 투자처로 매력이 없다는 말이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또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이윤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여 7 ~8%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업이 어느 정도 운영되어 자금 흐름이나 사업성 등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을 때 투자 여부를 검토한다"며 "특히 정부는 투자 대상으로서 매우 불안정하다. 정책 변화에 따라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토부가 '자신감'을 보인 배경도 의문이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정부 최고위급으로부터 재가를 받은 것 아니냐", "청와대와 같은, 철도 민영화를 기획하는 최고위의 어떤 '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같은 대화가 오간 것과 관련해 국민연금 측은 "7월 26일 면담을 한 것은 맞다"며 "국토부와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고, 국민연금의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국토부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국토부가 70%의 공적 자금을 끌어오겠다는데 정작 '협의'했다고 언급된 당사자는 투자 계획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며 "이를테면 아파트를 짓는데 투자자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투자가 이뤄질 것처럼 얘기한다면 사기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교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문제며, 사기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 실장은 "수서발 KTX 법인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투자되는 부분은 보건복지부 장관 소관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러나는 국토부 꼼수들…수서발 KTX 투자, 가능하기는 한가?

국토부의 '수서발 KTX 법인' 설립 계획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국토부의 구상대로 '철도 발전 방안'을 추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코레일의 사장 공모는 벌써 '낙하산', '외압' 논란으로 흔들리고 있다. '철도 민영화'에 부정적인 전임 정창영 전 사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표를 낸 후 국토부의 '꼼수'가 하나둘 드러나는 모양새다.

국토부 계획대로라면 수서발 KTX 법인은 올해 안에 설립돼야 한다. 그러나 연기금은 투자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만약 연기금이 갑자기 투자에 참여하게 될 경우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무리하게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역풍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